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5
제385화. 황금빛 화살
부우우-
버고스 진영에서 물소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모든 병사들에게 고하는 것이다. 그들의 왕이 직접 왔다고, 하여 기세를 끌어올리고 승리를 확신하여 앞으로 나아가자고.
좌측과 우측으로 벌어져 있던 본대의 병사들이 죄다 엎드려 중앙 쪽으로 절을 올렸다. 티모시의 탈영은 어느새 옆으로 치워지고, 왕의 참전만이 머릿속에 남아 병사들의 심장을 두드려댔다.
왕이 직접 오는 전쟁이라, 이는 절대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을 터라. 더 나아가, 승리는 높은 확률로 자신을 삶을 구할 것이고, 생존하여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자신들의 왕과 함께 말이다.
“장군님!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알고 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체된 상태였다.
하여, 다몬은 허례허식 따위 잠시 미뤄놓고 도착하는 즉시 함께하는 공격을 명령했다. 수도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일분일초라도 서두르는 게 이롭기 때문이다. 대지진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바리엘에서 대군이 오기 전에 끝장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장군은 손짓하여 깃발을 올리게 했다. 이어서 다시 울리는 물소뿔 소리.
부우우-
“진형을 유지하여 전진할 것이다!”
“좌익은 방패를 단단히 들어 수비에 집중하라!”
왼쪽에 방패를 들고, 오른쪽에 무기를 든 채로 전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패 든 좌익이 먼저 적군을 만날 수밖에 없다.
적군의 좌익과 아군의 좌익. 어느 쪽 방패가 먼저 무너지는지에 따라 승패가 크게 기우니, 장군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진형을 가다듬었다.
아마 왕은 참전하되, 전장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뒤에서 그저 지켜보고 있겠지. 그렇다면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왕에게 직접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게다. 티모시의 탈영으로 먹은 망신살은 한 번이면 족했다.
쿠웅! 쿵!
“사령술사들은?”
“예. 사령술사마다 합성 마물 움직일 수 있는 유효 거리가 있는지라, 그 간격을 유지하여 적절히 배치했습니다. 좌익 쪽 병사들과 함께 상대 진영을 먼저 들이치는 것이 반, 그리고 뒤쪽에서 지원하는 것이 반입니다.”
장군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궐련을 집었다. 폐 깊숙이 들어오는 연기는 언제나 맛있었으나, 죽음을 가장하고 태우는 것은 색달랐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그 어느 것이라도 색을 짙게 띄는 법이니까.
“마법사들의 공격은 생각했겠지.”
“예. 사령술사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저번에 보니까 붉은 머리칼의 마검사가 뱃가죽을 뚫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한 번에 하나씩 대응하는 것보다 서로 협동, 보완 하는 쪽으로 언질하였고, 최소 2인 1조로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핵만 부서지지 않으면 무제한으로 사용 가능한 전력이니, 그것을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하샤라는 사령술사는?”
“좌익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래?”
“왜 그러십니까?”
티모시가 도망가던 날 밤, 하샤의 합성 마물이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발견이 늦어졌다.
하샤는 사령술이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 하였지만, 확실히 어딘가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이다. 티모시가 사라지기 전, 계속해서 하샤의 심문을 강조했던 것도 그러하고.
장군은 궐련을 계속 태워대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눈을 붙여두어라. 혹여 전시 중 특이 행동을 보인다면 즉시 보고하거나, 상황에 따라 즉결 처분도 허락한다.”
“즉결 처분은…….”
부하가 당황해하며 멈칫거렸다.
왕이 와 있는 전장이다. 사령술사의 능력에 따라 판세가 판가름 날 것인데, 즉결 처분까지 강행한다니. 원래의 장군과는 전혀 다른 행보 아닌가.
장군은 아예 궐련을 비벼 끄며 부하에게 경고했다.
“왕께서 와 계시니 그런 것이다. 혹여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사령술사로 얻을 이득과, 왕께서 참전한 전투에서 내 명예에 흠집이 나는 것. 무엇이 무거운지 굳이 알려줘야 하나?”
“아닙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자, 그러면.”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는 투구를 경건히 쓰며 말에 올라탔다.
“마법사들이 먼저 몰려올 것이다.”
“예. 장군님.”
“물소뿔을 울려라. 가자.”
“물소뿔을 울려라! 진격할 것이다!”
부우우-
쿵! 쿵쿵!
제 몸집만 한 방패를 든 채 결의를 다지는 병사들. 그리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합성 마물. 아무래도 악취 때문에 공간이 조금 비긴 하지만, 오히려 괜찮았다. 마법사들의 범위 공격에 대비한 간격 유지로 이해하면 되었으니까.
장군이 말을 타고 앞으로 뛰어나가자, 병사들 또한 대열을 유지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가자!”
“와아아아!”
그리고 저 멀리, 클리포포드의 자줏빛 물결이 보였다. 버고스에 대항하기 위하여, 저쪽에서도 병사들을 앞으로 내보낸 것이다. 장벽을 사수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니, 그들의 전투는 버고스 진영 가까이서 이루어질 터.
말들이 빠르게 내달리는 순간, 부하의 보고가 들려왔다.
“옵니다! 마법사들입니다!”
“마법사들이 온다! 모두 준비하라!”
처억!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는 바리엘의 마법사들. 그들은 로브를 벗어던졌고, 이에 수를 헤아리던 자들을 잠시 헷갈리게 만들었다.
펄럭이며 떨어지는 옷가지들 사이로,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함께했다.
“우와아앗! 또 본다!”
“왔습니다! 붉은 머리칼의 사내입니다!”
베릭이 합성 마물 쪽으로 망설임 없이 하강하자, 인근의 병사들이 모두 활을 쏘아댔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이드갈로 인하여, 대낮임에도 별들이 쏘아지는 것 같았다.
* * *
“아따, 느리고요!”
촤악! 착!
베릭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검을 휘둘렀다. 화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몸 상태가 완벽했다. 이안이 마력을 불어넣어 준 덕이긴 했지만, 역시 피 냄새가 자신을 자극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은 터다.
콰아앙!
“으아악!”
버고스 병사들은 일제히 방패를 위로 올려 베릭의 추락에 대비했다.
등허리 뼈가 그대로 맞부딪힌 베릭이 짧은 고함과 함께 굴렀고, 그 틈 사이로 창이 쑥쑥 올라왔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드갈을 입힌 무기였다.
“죽여라! 창을 올려라!”
“어라라? 어? 어어?”
베릭은 중심을 겨우 잡으며 방패 위를 내달렸고, 징검다리를 밟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창끝을 피해 갔다.
하지만 아무리 회피한다 해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저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베릭은 마력을 발동하여 흑검을 아래로 내려쳤고, 이내 단단히 뭉쳐있던 방패 벽에 틈이 생기며 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으아악!”
“진형을 유지해!”
“아저씨들, 길 트면 내가 봐준다! 나는!”
“밀어붙여! 상대는 한 놈이다!”
“앞줄은 계속 방패를 들어라! 마법사들은?!”
“합성 마물 쪽으로 접근합니다!”
촤아악!
길 트면 안 죽인다면서, 말과 다르게 행동이 먼저 나가는 베릭이다.
그의 검궤 한 번에 진영이 크게 흐트러졌지만, 그럼에도 베릭은 개미 떼 위에 떨어진 짐승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워낙에 많은 수가 덮쳐드니, 베릭의 팔 그리고 옆구리에 수많은 자상이 생겼다.
“아쒸!”
챙! 채앵!
여기서 이만큼 지랄하고 있으면 마법사들이 합성 마물 없앤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이러면 되지?
베릭이 사람들을 밟고 뛰어올라 합성 마물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야! 니들 뭐 하냐!”
“시끄러! 베릭! 넌 하던 거나 계속해!”
“땜빵 치라고? 안 되겠다! 내가 갈게! 내가 죽임!”
“시끄러! 이안 님 명령대로 움직여! 마물은 마법사들이 담당한다!”
“샌님들 저거, 칼질은 스테이크 썰 때나 해봤지! 뭐, 제대로 못 하는구만!”
“닥쳐!”
마법사 두 명이 창공에서 마법진을 그리며 합성 마물의 움직임을 제한하려 애쓰고 있었고, 나머지 마법사들은 티에페의 혓바닥을 잘라내며 천천히 접근하는 중이었다.
시원시원하지 않은 공격에 답답해진 베릭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안아아아! 저것들 칼질 존나 못한다! 들려!? 여기 근처에 있어?!”
채앵! 챙!
“으아아악!”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앞으로 나가!”
베릭은 병사들을 상대하며 이안을 찾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계속해서 진형을 흩트리며 합성 마물 쪽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앞뒤, 양옆으로 공격이 끝도 없이 들어오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베릭은 다시금 마력을 개방하여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학습된 병사들은 방패를 땅에 박은 채 그의 공격을 대비했다. 이드갈로 파훼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날아가지 않게 버티는 것이다.
“그딴 걸로 나를 어떻게 막아! 등신들아아아!”
촤아악!
흑검이 번쩍이며 터졌지만, 방패 벽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긴장한 병사들과 자신만만했던 베릭 사이 묘한 기류가 흘렀다. 거센 소란 속의 작은 침묵이라 할까. 그들은 잠시 시선을 나누더니, 이내 다시금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능성이 있다! 죽여라!”
“그래. 막히네. 시발. 내가 등신이었구나.”
촤아악! 촤악!
투구와 함께 떨어지는 병사들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베릭의 붉은 머리칼 끝에 맺히는 것이 그의 땀인지, 아니면 상대의 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이 또 언제 있었더라? 브라츠에서 이안과 함께 했던 골목길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힘도 개방되지 않았고, 흑검도 없었던 때라 진짜 핏물을 뒤집어쓰다시피 했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나쁘지는 않네.”
한 달 치 훈련한다 생각하자. 베릭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패 벽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쯤 하니, 클리포포드의 병사들도 버고스 측에 가까워졌다.
“와아아! 가자! 바리엘이 우리를 돕는다!”
“조국을 제 손으로 지켜내라!”
“침입자들은 엄히 처단하여 나라를 지켜내자!”
“와아아아!”
전체적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군이 인상을 찌푸렸다. 좌익은 붉은 머리 자식으로 엉망이고, 우익은?
“우익은…….”
마찬가지로 소란스럽지만, 결이 조금 달랐다. 좌익이 이리저리 터지는 불꽃과 같다면, 우익은 서늘하게 사람을 죽이는 독과 같았다.
어찌 되었든,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변함없다. 아직 클리포포드 측과 마주하지도 않았는데.
“사령술사!”
“예!”
장군이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치자, 부하들이 신호를 주고받았다. 클리포포드를 완전히 격파할 수는 없어도, 마법사 몇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왕의 만족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이내 사령술사들에게 알리는 나팔을 불어댔다.
쉬이익!
그러자 합성 마물이 본격적으로 몸을 낮춘 채 마법사들을 잡아채기 위해 집중했다. 티에페의 기다란 혀가 이리저리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꼭 파리를 잡아먹기 위해 애쓰는 두꺼비 같았다.
마법사들은 날아드는 이드갈 화살, 그리고 티에페의 공격을 동시에 피해내며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 분하긴 하지만, 베릭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외근직이 아닌 이상 전투 경험이 없었기에, 애를 먹는 것은 사실이었다.
“젠장!”
그때, 한 마법사가 티에페에게 잡혀버렸다. 손목을 잡아끌어 그대로 자신의 등 쪽에 내다 꽂아버릴 셈이다. 잡아 먹는다 한들, 이미 뚫렸던 경험이 있었기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한들 그 신체는 인간의 것. 독침이 잔뜩 꽂힌 등 쪽으로 내던져지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야!”
“으앗!”
촤아악!
하지만 그때, 이안이 순식간에 티에페의 혀를 잘라버렸다. 너무 순식간이라 그 누구도 이안의 공격을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그저 흔적으로 남는 금빛 눈동자와 그 머리칼을 보며 이안임을 짐작할 뿐.
“사령술사들 위치 확인했다.”
이안은 마법으로 마법사들에게 전언했다.
모두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하샤의 합성 마물이 주는 신호와 그의 위치 따위로 대략적인 사령술사의 위치를 파악해, 그들을 없애는 것.
마물을 터트리면 나올 불순한 물질보다는, 사령술사가 피를 흘리는 편이 낫지 않겠나?
“이안 님!”
지이잉. 지잉.
이안은 창공에서 사령술사들의 위치 가까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이를 막기 위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이드갈 화살. 마법사들은 무방비 상태인 이안을 대신하여 보호막으로 계속하여 그를 지켜냈다.
촤아아악!
하지만 그 순간.
마법사들이 차마 막지 못한 화살 하나가 그의 어깨를 스쳐갔으니. 이안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노란 물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리포니.”
에리포니 왕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늦지 않게 도착한 거 같네. 서둘러 붙자. 창공에 떠다니는 것이 많으니, 내 모두 사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