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6
제386화. 바리엘과 루스웨나
“이안 님!”
마법사들이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이안의 옷 어깨 부분이 찢겨나가 피를 보였으니, 그의 소매 끝을 따라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미 클리포포드 왕국에서 한차례 큰 고비를 겪었던 터라, 이안만큼은 피를 흘리지 않게 하겠노라 결심했던 것이 무색한 상황이었다.
다들 당황하여 멈칫거리자, 이안이 왼쪽 팔을 뒤로 살짝 가리며 소리쳤다.
“앞을 봐라! 집중해!”
마법사들이 이안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도 이드갈 화살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몇몇 마법사들의 보호막에 틈이 생겼고, 이내 이안과 같이 화살에 스쳐 맞은 자들이 생겨났다.
이안은 사령술사를 공격하기 위한 마법진을 거두고, 홀로 거대한 보호막을 창공에 생성했다.
지이잉. 지잉.
퍼엉! 펑!
타오르는 금빛 눈동자가 흔들림 없다.
이내 마법사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보호막. 수백, 수천 발의 이드갈 화살이 보호막을 파훼해도 순식간에 생기는 벽은 결코 마법사를 해칠 수 없었다.
이안의 턱을 따라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고, 이는 이안 또한 마찬가지.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부하들의 정신을 바로잡았다.
“나는 피를 흘리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모두 하던 바를 계속해. 너희가 등을 보이면, 내가 등을 보이는 것과 같다.”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러니 이안이 부탁하는 것이다. 자신이 부하들을 믿고 움직일 수 있게끔, 평정심을 유지하길.
“죄, 죄송합니다!”
“다시 보호막을 가동하겠습니다!”
지이잉! 지잉!
걱정스레 이안을 보던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앞을 바라봤다. 이안의 보호막이 아니었다면 이드갈 화살에 온몸이 꿰였을 터. 그들은 이안을 대신하여 보호막 유지에 힘을 보탰고, 다시금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냈다.
이안은 욱신거리는 왼팔을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드갈로 만든 화살에 낯선 마력이 감돌아 있었다. 아마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이겠지. 저들이 가까이 오면 더한 혼돈이 섞여들어 전쟁은 파국으로 치달을 터.
“이안 님, 정말 괜찮습니까?”
가까이 날아온 아코렐라가 등을 보인 채 물었다. 그녀 역시 마법사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 나키나의 일이 떠올랐다. 일전 내란에서, 이드갈 화살을 맞았던 나키나가 일시적으로 마력을 쓸 수 없게 되지 않았었나?
“스쳤다. 감각이 둔해지긴 했지만, 괜찮아.”
“아, 그래요? 나키나는 제대로 맞아서 그랬었나. 그러면 서둘러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이안 님 다치면 클리포포드고 뭐고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 없잖아요.”
이안은 대답 대신, 마력을 발동하여 더더욱 높게 날아올랐다.
「회록(回祿)」
그의 어깻죽지로 뻗어나온 화염이 날개 형상을 만들어냈고, 이어서 천천히 사람의 형체로 변화하여 이안을 감쌌다. 어지러이 뒤섞인 사람들과 합성 마물이 발치 아래로 내려와, 모든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퍼엉! 펑!
이안의 손짓을 따라 사람 형체를 한 화염이 같이 움직여 한 지점으로 주먹을 내려쳤다.
하샤가 일러준 첫 번째 사령술사의 위치다. 그다음은 왼쪽 지점, 이어서 열 시 방향으로 또 한 명…….
지이잉. 지잉.
“그, 그 불입니다! 화염신입니다!”
“으아악! 피해! 피해라! 단숨에 불탈 것이라!”
“저번에 봤던 그겁니다!”
병사들은 난리가 났고, 사령술사 또한 당황하여 자신에게 내려오는 화염신의 손길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나무가 빼곡한 숲에서 어찌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합성 마물을 방패 삼아 자신들을 감싸도록 움직였고, 장군 또한 기민하게 움직이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사령술사를 노리고 있다! 대피하고, 지켜라!”
“지, 지키라니요? 어떻게요?”
“이런 한심한!”
장군은 검을 다잡으며 사령술사 쪽으로 내달렸으나, 병사들을 헤치고 다가서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안의 공격이 거침없고 단호했으니.
콰아아앙!
퍼엉!
“으아아악!”
화염신은 사령술사를 완전히 뭉개버렸고, 이어서 합성 마물과 함께 온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병사들이 모래를 퍼서 끼얹었지만, 그런 것 따위로 쉬이 가라앉을 화마(火魔)가 아니다.
사령술사 한 명이 산 채로 타 죽었고, 그와 동시에 합성 마물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오래 전 땅으로 돌아가야 했을 불순(不純)의 덩어리. 그것은 널브러졌고, 티에페의 혀는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장군이 열을 내며 뒤쪽을 돌아봤다. 버고스의 본대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왕께서 계속 지켜보고 계시는 게라.
‘마법사가 사령술사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어떻게?’
그때, 눈에 확 들어오는 푸른 머리칼의 사내. 아스타나 출신의 하샤다. 그는 합성 마물을 조종하는 중이었으나, 시선은 이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뒷머리가 당기는 느낌이 든다. 장군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고 하샤에게 달려갔고, 그 와중 또 다른 사령술사가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솨아아악!
좌익 대열이 완전히 망가졌다.
베릭이 아래에서 치고 오르고, 이안이 위쪽에서 사령술사를 하나씩 처리해나가니 병사들은 오도 가도 못 한 채 전진을 멈췄다. 성난 황소처럼 내달리는 클리포포드 병사들과는 전혀 다르게.
“아스타나 출신의 사령술사를 죽여라!”
“예? 아, 아!”
부하들이 장군의 명을 듣고 다 함께 하샤에게 덤벼들었다.
수신호를 주느라 공격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저 꼴을 보아라. 저자가 배반자다. 이를 왕께 알려 아스타나를 완전히 절멸시키리라.
이안이 그 흐름을 보고 몸을 틀었다. 화염신 또한 그를 따라 고개를 틀었다. 하샤를 지키기 위해 다시금 공격을 내려치려는 순간.
퍼어엉! 퍼엉!
화염신의 손이 허공에서 폭발하여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열을 발산했다. 마치 기름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반응이다.
그 충격으로 ‘회록’이 끊어졌다. 화염신은 스스로 발화하여 사라졌고, 마법사들은 다시금 당황한 채 앞만 바라봤다.
이안을 돌아보고 싶었으나, 그가 이르지 않았나. 자신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등을 내놓는 것과 같다고. 마법사들이 이드갈 화살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이안 님!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세요? 아직 합성 마물이 많이 남았는데요!”
“젠장! 작작 좀 쏴라! 새끼들아!”
이안은 공격이 들어온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이다. 타국의 마법사는 회귀하여 처음 보는 것인데, 때가 영 좋지 못했다.
노인을 선두로 하여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날고 있었다. 선두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 진과 비슷하거나 조금 어려 보였다.
이안은 저릿한 왼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 쉬었다.
‘…어찌 전쟁터에 저리 어린것을 데리고 와.’
훈련된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이 안정적이다.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은 왕궁이 아니라 저들끼리 은둔하여 지낸다고 하였는데, 아마 그 호흡이 마법부만큼이나 잘 맞을 것이었다.
“그대가 이안 경입니까?!”
노인의 바싹 마른 손에 푸른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무슨 마법이지? ‘냉괴(冷塊)’인가? 직접 맞은 것도, 발할 때를 목격한 것도 아닌지라 정체를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다.
“그렇다. 내가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다. 그대들은 루스웨나의 마법사 같은데.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의 전쟁에 공식으로 참전하는 것인가? 그 의미와 그것이 가져올 대가는 알고서?”
이안은 자신의 소속을 정확히 밝혔다. 여기서 더 공격이 가해진다면, 이는 바리엘에 대한 공격이라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금빛 눈을 번뜩이며 이안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는 루스웨나의 마법사들.
‘냉괴가 맞다.’
“여기 모인 자 중, 전쟁의 의미와 대가를 모르는 자가 어디 있겠소?”
냉괴란, 의미 그대로 차가운 마력구를 쏘아내어 상대를 파괴하는 마법. 이안이 마력봉인석 검으로 쳐냄과 동시에 허공에서 찬 눈발이 휘날렸다.
버고스의 장군은 사태를 가만 파악하다가 명령했다.
“이드갈 공격을 중지하라!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섞여있다! 중지! 화살을 쏘지 마라!”
잘 되었다. 아주 적절한 시기에 도달한 지원군이다. 바리엘의 마법사를 루스웨나 마법사가 맡는 동안, 그들은 합성 마물을 선두로 하여 클리포포드군과 맞서면 된다.
비처럼 쏟아지던 이드갈 화살이 점차 잦아들었다. 이에 바리엘 마법사들은, 이안이 루스웨나 마법사들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안 님!”
“X새들아! 이것들이 어디서!”
퍼엉! 펑!
그런 마법사들을 한번에 상대하는 루스웨나 측의 작은 마법사. 아이는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형형한 눈빛을 반짝였다.
“할머니한테 다가오지 마!”
“야, 너-!”
“이거 어떡하냐? 애긴데?”
“그 애기가 우리 죽이려 하잖아, 등신아!”
퍼엉! 펑!
마력끼리 맞부딪치며 형형색색의 빛깔이 창공에서 터졌고, 대지에서는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병사들의 혈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금 이안의 심장을 노리는 황금빛 화살.
촤아악!
이안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화살을 느끼며 에리포니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언덕에 선 채로 우아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마치 언제나 즐겼던 사냥터에 온 것처럼.
“이런. 아깝네. 다음.”
“네. 전하.”
마법사들의 마력이 깃든 화살이 양껏 준비되어 있었다. 에리포니의 손짓에 엘더트가 화살을 건네주었고, 그녀는 한쪽 눈을 감아 이안을 겨냥했다.
“루스웨나 마법사를 조심하십시오. 전하.”
“노인이라 그런지 힘이 영 부족한 느낌이다. 이안이라도 붙들어주면 함께 꿰뚫어버릴 터인데.”
에리포니의 중얼거림은 전쟁통에 묻혀 사라졌다. 다행이었다. 왕의 잔혹한 성정만큼 병사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없었으니까.
엘더트의 손짓에 루스웨나 병사들 또한 지상전에 가담했다. 클리포포드는 버고스군과 루스웨나 그리고 합성 마물에 대항하다가 계속해서 죽어나갔다.
채앵! 챙!
“으아아악!”
“노아 왕자님! 옆에서도 몰려옵니다! 이대로는 포위당할 것 같습니다! 퇴각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촤아악!
버고스 병사의 목을 벤 노아가 내달리는 루스웨나군을 쳐다봤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모르게 하늘은 어지럽고, 상대의 수는 많아졌다. 분명 아까 초반만 하더라도 버고스의 좌익은 엉망이었고, 회생 불가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지원군의 등장에, 그것도 마법사라는 존재에 전세(戰勢)의 추가 균형을 이룬 기분이었다.
“젠장.”
투욱.
이안을 올려다보는 노아의 볼 위로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이 이안의 팔에서 흐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노아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시간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클리포포드의 자주(自主)를 너무 쉬이 바리엘에 맡기었나? 외세에 지나치게 의지한 것은 아닌가?
이안 경과 마법사들이 고전하니, 이리도 쉽게 무력해질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노아는 이를 바득거리며 저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을 베어냈고, 이내 퇴각을 명령하려 했다.
퍼엉!
노인의 마법을 그대로 막아낸 이안이 오른손으로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곧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아주 작은 알약. 몸 상태가 거의 호전되긴 하였으나, 그조차 완전하지 않았고, 왼손은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으니. 바닥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판단한 것이라.
“증폭제!”
아코렐라가 그걸 보고 소리쳤다.
“다들 증폭제를 꺼내!”
바리엘의 마법사들은 이안을 따라 동시에 약을 깨물었고, 이어서 그들의 금빛 눈동자가 더욱 짙어졌다.
상대측의 기(氣) 흐름이 기이하다는 걸 알아챈 노인이 다급하게 마력을 끌어모아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 옆의 아이 역시 마찬가지.
곧이어 폭포수 같은 냉기가 휘몰아쳤고, 병사들은 납작 엎드려 싸우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악!
“……!”
하지만 되살아난 이안의 ‘회록(回祿)’.
화염 날개가 가볍게 냉기를 쳐냈고, 이어서 더욱 거대해진 화염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극한의 열기에 세상 모든 것이 타버릴 것만 같다.
이안은 어느새 왼손이 가벼워졌음을 느끼며, 황금빛 눈을 번쩍였다. 그 이글거림이 흡사 신의 분노를 보는 듯하다.
“전쟁의 의미와 대가는 모두가 알겠지. 하지만 그걸 깨우치기 위해서는 죽어서만 가능하다. 잘 보아라. 이게 그대들의 선택이다.”
신의 강림(降臨) 그리고 징벌.
이를 지켜본 모두가 공포심에 물들었다.
이안은 이를 꽉 깨물며 루스웨나 마법사들에게 달려들었고, 마법사들 역시 그 뒤를 따르며 고함을 질러댔다.
“화살, 화살!”
에리포니가 표정을 굳히며 다급히 소리쳤다. 이윽고 이안에게 활을 겨누는 순간.
촤아악!
피로 얼룩진 바르사베가 뛰어올라 그녀의 활시위를 끊어버렸다. 궤를 잃은 화살이 바르사베의 옆구리를 관통했으나, 기세는 여전했다.
깜짝 놀란 에리포니가 활대를 휘둘러 그녀에게 공격을 가했다.
“네놈은…….”
바리엘과 루스웨나.
두 나라의 본격적인 격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