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7
제387화. 어리석은 선택
엘더트는 부하들에게 에리포니를 지키라고 명령할 틈 없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검사라 그런 것인가?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는데?
채앵!
바르사베는 옆구리에 화살이 꽂힌 채로 엘더트의 검을 쳐냈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이 모래처럼 부서지며 사라졌다.
비단 엘더트만 놀란 게 아닌 듯했다. 바르사베의 동공이 커지며 몸이 둔해지는 게 보였고, 그녀는 이를 꽉 깨문 채 다시금 언덕 아래로 뛰어내리려 했다.
“저것을 잡아라!”
끊어진 활시위가 에리포니의 뺨을 긁었나 보다. 왕은 생채기 난 볼을 감싸 쥐며 소리쳤고, 엘더트와 그 병사들이 바르사베의 뒤를 쫓아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르사베가 쓰던 검은 자신의 마력으로 생성해낸 고유의 무기였다. 그런데 이드갈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마력이 무력화된 것이라.
바르사베는 구르다시피 아래로 내려와 시체가 쥐고 있는 검을 뺏어 들었다.
“젠장.”
채앵! 챙!
마력을 쓰지 못하는 자신이 과연 이 전투에서 가치가 있을까? 바르사베는 제 손으로 옆구리의 화살을 뽑아냈고, 분수처럼 터져 오르는 피를 지켜만 봤다. 지금의 저가 널브러진 시체와 다를 게 무엇 있나.
금방 따라붙은 엘더트가 청록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바르사베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황궁친위대 소속 마검사로군.”
“이거 놔라!”
퍼억! 퍽!
바르사베는 무릎으로 엘더트의 명치를 찍어 올렸으나, 닿는 것이라고는 단단한 갑옷밖에 없다. 그가 바르사베를 바닥에 꿇리며 단단히 제압했다.
이드갈로 인한 무력화는 일시적이라 알고 있다. 죽이는 것보다 포로로 잡아두는 편이 나중을 대비하여 유리할 터.
왕의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은 죽여 마땅한 형벌이지만, 엘더트는 바르사베의 어깨를 뒤로 돌린 채 중얼거렸다.
“처벌은 나중에 따로 받도록 하여라.”
어깨를 나가게 할 생각이다.
바르사베는 등골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눈을 꽉 감아버렸다.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니 놀라지 말고 받아들이자. 황궁친위대의 명예를 서툰 비명으로 얼룩지게 하지 말자.
그녀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순간.
촤아악!
엘더트의 목을 잘라낼 것처럼 날아오는 도끼.
그는 고개를 간신히 틀었고, 머리카락을 조금 내어주는 것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바르사베는 엎드린 채 시선을 들었다. 오가다 몇 번 본 적 있는, 그리고 바리엘 제국방위부의 새로운 장관인 맥심 트웰러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반대편 언덕에 서서는 궐련을 질겅이고 있었다.
“죽은 땅 한 바퀴 돌고 오니 개판이로다.”
“바리엘의 지원군이다!”
맥심은 바르사베의 신원을 한눈에 파악했다. 그리고 옆구리에 난 상처와 망가진 에리포니의 활대까지.
맥심이 고개를 까딱거리자, 그의 부하들이 동시에 내달려 바르사베를 구하기 위해 돌격해 내려왔다.
촤아악!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바르사베. 자신을 붙잡고 있는 루스웨나 측 병사의 아킬레스건을 베어버리곤 비틀거리며 바리엘 병사 측으로 내달렸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아수라장. 바르사베는 그저 살기 위해 베고 또 베며, 맥심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 그녀를 중심에 둔 채 바리엘과 루스웨나의 병사들이 전력으로 충돌하듯 질주했다.
타닥타닥!
“놓치면 안 된다!”
“마검사다! 마검사를 데려와라!”
“으아아악!”
“비켜! 젠장, 이씨!”
마력이 파훼되며 체력 또한 범인(凡人)의 수준이 되어버린 것인가. 바르사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인파를 헤쳤다.
자신의 머리칼을 잡으려는 엘더트. 그리고 그보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먼저 바르사베의 손을 붙잡은 맥심의 부하. 바르사베는 손에 이끌려 그대로 말 위에 올라탔고, 병사의 등에 기댄 채 옆구리를 쥐었다. 반대쪽 언덕에선 에리포니가 분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맞대응하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치는 바르사베. 이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에리포니와 루스웨나가 자신을 신경 쓰는 동안, 창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퍼어어엉!
하늘에 폭염의 파도가 너울 쳤다. 꽤 멀리 있던 에리포니조차 소매로 얼굴을 가릴 정도.
이안과 그를 따르는 마법부와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이 전력으로 맞붙은 게다. 전세를 보아하니, 맞붙었다기보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게 맞겠지만.
“흐윽!”
노인과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아주 얇은 보호막을 두르고 그들과 마주했다. 가까스로 만들어낸 것이 힘을 겨우 받아내고 있었다.
숨이라도 잘못 쉬었다가는 보호막이 어그러질 것 같은 느낌에, 모두 패닉에 가까운 긴장 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측이 힘을 조금 조절하고 있다는 기분에, 패배감이 심장 아래쪽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스윽.
이안은 손끝으로 루스웨나 측의 보호막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초봄의 연못 얼음조차 이보다는 단단할 게다.
그는 미소를 가볍게 지으며 조금씩 힘을 주었다. 이안이 짚은 지점을 따라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금이 그어졌다.
“마법사들은 신과 가까운 자들. 국적이 달라 이리 맞서게 되었지만, 내 솔직히 그대들을 죽이는 게 달갑지는 않다. ‘우리’는 특별한 힘으로 서로 유대하는 자들이 아닌가.”
“할머니!”
노인의 코와 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노쇠한 몸에 비해 마력을 너무 과하게 사용한 탓이다. 어린것이 놀라서 소리치자,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이 크게 꾸짖었다.
“자이라! 정신 집중해!”
이안의 시선이 노인에게서 아이로 옮겨졌다.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젖살이 붉게 오른 모습.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말하지 말고 계속 보호막에나 집중해!”
“이곳은 바리엘도 루스웨나도 아닌, 클리포포드의 땅. 그대들은 알지 모르겠군. 우리가 힘을 쓰면 쓸수록, 가이아 대륙의 균열에 자극이 간다.”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게 낯선 정보의 탓인지, 아니면 힘에 부쳐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둘 다일 수도 있겠지.
“북쪽의 균열을 남쪽으로 분배하려는 버고스의 속셈이라. 클리포포드가 마물로 범람한다면 바리엘은 물론 가까운 루스웨나에도 피해가 갈 것이다. 마지막이다. 항복하면 살려주되, 저항하면 이것을 부수겠다. 마력이고 시간이고, 길게 끌어서 좋을 것이 하나 없어.”
이안이 다시금 지그시, 보호막을 눌렀다. 더더욱 크게 일어나는 실금. 노인은 그 틈으로 새어드는 열기를 느끼며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균열이라니. 왕께서는 그런 전언이 없으셨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클리포포드 대지 아래 균열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나? 지금 저자의 말 외에?
노인은 울먹이는 자신의 손자를 잠시 돌아보다 숨을 골랐다.
“이안 히엘로. 그대의 자비에 고마워하지는 않을 걸세. 여기는 전쟁터고 나는 루스웨나의 국민이며, 왕께서는 우리의 삶을 쥐고 계시니.”
그들에게는 가족이 있다. 여기서 바리엘에 무릎 꿇으면, 루스웨나에 남겨져 있는 가족들은 죽음의 신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라.
노인이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이었다.
“어리석은-!”
퍼어엉! 퍼엉!
이안이 화를 내며 보호막을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 겨우 버티고 있던 자들이 열풍에 못 이겨 뒤로 나뒹굴었고, 지상에서 전투하던 자들 역시 다시금 납작 엎드려 공포를 달랬다.
“이안 님!”
“할머니!”
이안의 화염신이 분노를 쏟아냈다. 거칠고 화려하며,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분노.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공격이었다.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한 자에게 줄 수 있는 무언의 그리고 최소한의 연민이다.
콰아아앙!
루스웨나 측 마법사들이 모두 몸을 움츠리며 고통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쩐지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가 조심스레 눈을 떴고, 이내 자신의 할머니가 사지를 축 늘어트린 채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노인을 죽여라! 당장!”
저게 무엇인가, 마법부가 당황하여 쳐다보고만 있자 이안이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노인은 마법에 자신의 피를 허락하였고, 차마 넘을 수 없는 상대를 홀로 오롯이 상대하고자 금기의 마법을 불러들인 게다.
‘영속의 저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심연에 빠지는 마법사들의 절망.
퍼엉! 콰아아앙! 쾅!
하지만 웨슬리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 마법사들의 힘이 노인에게 닿지 않았다. 마치 우주로 쏘아 올린 작은 불꽃처럼, 그들의 공격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안이 이를 꽉 깨물며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노인을 태워버리려고 했다. 더 진행되기 전에, 정말 저자가 원하는 대로 강한 힘을 얻기 전에 없애야 했다.
“이안 님!”
화염신이 거대한 몸체를 구부려 노인을 잡고자 하였다.
하지만 쉽지 않다. 웨슬리처럼 접근 자체는 가능했으나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다.
아무래도 웨슬리의 분노는 마력봉인석을 파훼하고 게일과 마주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면, 노인이 바라는 것은 전쟁의 승리를 가져올 만한 강한 힘이라 그럴 터. 그만큼 깊은 심연에 빠질 것을 알고도 행하는 자라.
이안과 노인의 대치가 팽팽하게 이어졌다.
“이안 님! 잠시, 이안 님!”
“이안 님을 방해하지 마라!”
“하지만-!”
마법부 사이에서도 균열이 일어났다.
피를 계속 쏟아내는 이안을 말리는 자와 그런 자를 말리는 자. 증폭제까지 먹었건만 도움 되지 않는 지금, 마법부원들은 절망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모두가 젖었다. 누군가는 땀으로, 누군가는 눈물로, 그리고 누군가는 피로.
“젠장!”
아코렐라가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혹여 증폭제가 더 남아있는지 보려는 것이다.
이대론 희망이 없었다. 바리엘이라면, 황궁이라면 어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인데…….
“우리도…….”
누군가 중얼거렸다.
“우리도 누군가 금기의 마법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안이 저렇게 고전할 정도라면, 마법부 쪽에서도 누군가 희생을 해 주는 게 맞지 않을까? 저쪽에서 저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그에 맞대응하는 게 옳지 않을까? 자신들은 그저 이안의 뒤에서 지켜만 보는 게 답인가?
모두의 머릿속이 엉망으로 번지는 걸 알아챘는지, 이안이 손등으로 피를 훔치며 소리쳤다.
“어리석은 선택은 이미 하나로 족하다!”
저 노인, 클리포포드의 균열을 경고하였음에도 자신을 지옥에 내던진 어리석은 노인.
“그대들은 나를 믿지 못하는가!”
이안이 이를 꽉 깨물었다.
더 이상의 마력 자극은 모두에게 독이 될 뿐이다. 그리고 바리엘의 마법부원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더는 원치 않았다.
그건 나움으로 족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은 나움으로 끝낼 일이다.
이안은 자신을 둘러싸고 웃던 마법부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금 소리쳤다.
“내가 아까 무어라 하였지?!”
콰아아앙! 콰앙!
화염신이 거칠게 타올랐다. 노인의 손끝이 움찔거렸고, 이내 금기의 마법을 담은 육신이 제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쳐들었다.
노인은 울고 있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올라오는 감정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대들은 내 등이라.”
이안이 결국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그러자 아코렐라가 욕설을 중얼거리며 이안 가까이 다가갔다. 금기의 마법에는 닿지 않을지언정, 이안에게는 닿을 수 있으니까. 자신은 이안의 등이었으니까.
“젠자아아앙!”
지이잉! 지잉!
아코렐라가 이안에게 자신의 마력을 모두 넘겨주었다. 그걸 본 마법부원들이 하나둘씩, 동시에 날아들어 금빛 눈동자를 반짝였다.
피로 얼룩진 이안의 안면에 가벼운 미소가 감돌았다. 따뜻했다. 화염신의 뜨거운 열기가 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안 님! 저희가 뒤에 있겠습니다!”
“예! 물러서고 싶으시면 몸 던지십시오!”
“물러서고 싶지 않으셔도 말씀하세요! 버티겠습니다!”
“버틸 수 있습니다!”
“흐으아아앗!”
퍼어엉! 콰아앙!
이안의 대답을 대신해, 화염신이 온몸을 불살라 노인에게 덤벼들었다.
노인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회록(回祿)을 헤치듯이 두 손을 휘저었고, 세상은 다시금 엄청난 빛으로 환히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