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8
제388화. 그 시각, 베릭
창공에서 마법사들끼리 맞붙는 와중, 베릭은 멍하니 그 아름다운 폭발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버고스 측과 클리포포드 측이 엉켜들며 사위에서 피가 터져 올랐으나, 하늘의 저것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베릭은 이안과 마법사들이 마력증폭제를 꺼내는 순간, 하샤의 비명을 들었다.
“으아아악!”
수많은 음성 속에서도 뚜렷했다. 아는 자의 목소리라서 그런 것일 터다.
베릭이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합성 마물 쪽을 쳐다봤고, 이내 버고스군 장교로 보이는 자들이 하샤에게 검 휘두르는 걸 발견했다.
하샤가 급히 티에페의 혀를 틀어 자신을 보호하려 하자, 장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더욱 사령술사를 몰아세웠다.
“왜 이러시오!?”
“왜 이러는지는 네놈이 더 잘 알 터인데! 변절자 같으니라고! 클리포포드 쪽에 있었을 때 정보를 흘려주었지? 그렇지 않고서, 마법사가 어찌 사령술사의 위치와 정보를 알아채?”
“모함이고 오해요! 젠장! 검은 적군에게 겨눌 것이지 어찌하여 이런단 말이오?”
“제일 가까이 있는 적군이 네놈이라 그렇다!”
“왕께 일러 아스타나의 절멸을 선물해주마!”
“저쪽 마법사와 무슨 거래를 했는지 터놓아!”
채앵! 챙!
들켰구나.
하샤는 티에페의 혀로 장교들의 검을 계속 쳐냈으나, 한순간에 폭탄 속으로 몸을 내던진 것과 같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령술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병사 배치에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든든하게 에워싼 병사들이 장교의 명령에 공격 방향을 바꾸었고, 클리포포드로 향하던 검이 죄다 하샤 쪽으로 몰리게 되었으니.
클리포포드 병사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잠시 멈추어 사태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상대측 진영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기회 아니겠는가?
“밀어붙여라! 상대측 좌익이 붕괴된다!”
“우익에서 합성 마물이 합류하기 전에 이쪽을 먼저 정리할 것이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 계속 힘차게 전진하라! 죽음을 두려워 말고 계속! 우리의 발걸음에 가족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기억하라!”
“전진! 전진!”
버고스군의 맨 앞줄, 그러니까 방패로 무장한 좌익 병사들은 기세 높아진 클리포포드 병사들을 피해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자신들이 막고 있는 동안 이를 견제해줄 공격이 나와야 하거늘, 하샤로 인하여 공격이 죄 분산되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여전히 휘젓고 다니는 베릭. 그는 모른 척, 적군을 베며 천천히 하샤 쪽으로 접근했다.
‘알은척하면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베릭은 이안의 말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이 전쟁의 마지막 전투라면 상관없었다. 버고스는 몰락할 것이고, 그로 인해 아스타나가 피해 입을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되려 북쪽으로 전진한 클리포포드가 아스타나의 편의를 봐주어 그쪽에는 광명이 깃들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전쟁 초반이라는 것이다. 장군을 비롯한 저 지도자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 이상,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면 하샤의 변절이 다몬의 귀로 들어갈 터. 그렇다면 당장 아스타나가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하샤의 승계 또한 마찬가지.
‘아, 쉬바. 어떡하지.’
구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능하다면 하샤가 홀로 맞서서 잘 빠져나오면 문제없겠는데, 상황을 보고 있자니 쉬운 것 같지 않았다.
“이안아아아!”
베릭이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으나, 계속하여 터지는 굉음에 묵살되고 말았다.
명령 좀 내려주라! 나 어떡하면 좋을지!
“야아아아! 이안아아아!”
“어미 잃은 것마냥 울기는!”
“지랄하네, 나 엄마 없거든!”
촤아아악!
베릭이 짜증스럽게 병사들을 베었다.
마력을 개방하는 것도 제한되어있고, 상대에게 잘 먹히지도 않았다.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조금은 재미없게 계속 검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다.
베릭이 그런 식으로 하샤에게 다가가자 길이 생겨났고, 그 틈으로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진입할 수 있었다.
“저쪽이다! 열 시 방향이 비었다!”
“틈을 파고들어라!”
“와아아아!”
챙! 채앵!
합성 마물의 썩은 내가 슬며시 풍기는 데까지 다가갔다. 버고스 병사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는 하샤를 보자, 베릭이 저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소리쳤다.
“야! 버고스 왕 따까리!”
“뭐, 뭐?”
“나 여기 있는데. 니들 뭐함?”
촤아악!
하샤 또한 베릭이 다가온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저를 도와달라 쉬이 이를 수 없었다.
그는 계속 날아드는 검을 피하며 정신을 집중했고, 이내 장교에게 경고했다.
“나, 나는 다몬 왕을 도와 아스타나에서 온 후계자다! 이런 식으로 모함하고 위협을 가한다면 나는 정식으로 다몬 왕에게 항의할 것이고, 이는 다른 사령술사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줄 터!”
“닥쳐라! 변절자!”
“변절자라고 하면서, 증거 하나 못 내밀고 있잖은가!”
베릭은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계속 검을 휘두르며 귀를 쫑긋거렸다. 눈 마주친 하샤가 다급하게 동공을 좌우로 움직였다. 자신이 신호 주기 전에는 움직이지 말라는 게다.
저런 건 또 기똥차게 알아먹지. 베릭이 눈으로 윙크하였고 마주했던 병사가 어이없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베릭의 눈인사가 누구에게 간 것인지, 알아채기 전에 머리가 떨어졌지만 말이다.
“계속 공격한다면 나는 클리포포드로 의탁하겠다!”
“하하하! 이것 봐라, 이것 봐! 어디서 수작질을!”
“의탁하여, 정식으로 다몬 왕께 항의하지. 북쪽 나라들이 작기는 하나, 속국도 아니고 오히려 버고스 곳곳에서 크게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런데 이런 취급에 이런 태도라! 나의 항의는 다른 사령술사들을 움직일 것이고, 모두가 버고스에서 등을 돌리리라!”
조목조목, 하샤는 합성 마물을 움직이면서도 명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버고스 병사 대여섯 명이 잇따라 공격해온다.
이를 차분하게 쳐내는 티에페의 혀. 이들 역시 이드갈로 저민 무기를 지니고 있는 터라, 많이 잘려나가 짧아지긴 했다.
하샤는 베릭 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거기! 그, 클리포포드의 전사!”
“나? 나 바리엘 사람인디.”
“아무튼! 항복을 선언한다! 나를 도와줄 수 있겠나?”
“아, 오키오키. 그런 거? 에이.”
도와달라는 직접적인 부탁이 들어왔다. 바로 이거지!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판단을 내리기보다, 내려진 판단 아래 움직이는 게 훨씬 편했고 복잡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이안이 머리 짚을 일 없었다.
“그것만 기다렸다! 하-”
“하샤다! 내 이름은 하샤!”
“아, 그래. 우리 초면이지? 음. 그래. 하샤! 내가 길 만들 테니까 저쪽으로 쭉 달려. 엄호할게!”
“그래, 고맙다. 베-”
“베릭이다! 내 이름은 베릭!”
“알고 있어! 마법사들이 너를 부르는 거 들었거든!”
“아, 너는 그랬어? 나는 몰랐네!”
서로 어설프게 모른 척, 이름까지 나누는 모습이다.
베릭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마력을 개방했다. 흑검에 번쩍이는 빛이 감돌며, 붉은 머리칼이 휘날렸다. 병사들이 재빨리 방패를 땅에 박으며 버티기를 시전했지만, 이번에는 베릭 또한 학습한 뒤였다.
“그쪽으로 안 할 거지롱!”
지이잉! 퍼엉!
방패를 무너트리기보다, 그 위쪽으로 힘을 보내 모두가 주춤거리게 하는 것.
하샤는 합성 마물을 방패 삼아 베릭 쪽으로 움직였고, 베릭은 그를 호위하듯 움직였다.
“저것들 봐라! 이제는 대놓고 변절이다!”
“변절 아니라고, 빡대가리야! 방금 통성명하는 것 못 봤냐? 눈깔 삐었어? 귀 먹었어?”
“저저, 천박한! 죽여라! 클리포포드의 주요 전력이다! 저놈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
“나 바리엘 사람이라고! 진짜 빡대가리 맞네! 내 대가리 가져가면 나도 상 준다! 해봐라!”
촤아악!
챙! 채애앵!
“사령술사가 도망친다! 잡아라!”
“저, 저걸 어떻게 잡습니까?”
“마물 말고 사령술사를 잡으라고! 멍청아!”
하샤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으로 인해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말 위에서 그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노아 왕자.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샤가 이쪽으로 공식 항복을 하려는 듯했다. 노아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베릭을 도와라! 합성 마물이 가까이 오면 공격하지 말고, 버고스 병사들만 상대하라!”
“네. 알겠습니다!”
“길을 터놓아라! 합성 마물과 사령술사가 이쪽 편으로 돌아섰다! 보아라! 승리의 깃대가 움직인다!”
“와아아아! 가자!”
하샤를 중심으로 일어난 갑작스러운 상황. 다른 사령술사들이 의아하게 그를 지켜보았고, 이내 장군의 명령을 따라 하샤를 공격하기 위해 이동했다.
버고스군의 좌익은 앞에서 밀려오는 클리포포드 전력에 완전히 파훼되었다. 우익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이번 전투는 완전한 패배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고스군 우익을 휘젓던 남색 머리칼의 여인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녀 역시 마검사인 것 같았는데, 우익을 압박하는 힘이 없어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원이 가능해졌다.
“좌익은 무너지면 안 된다! 방패를 든 자들은 계속 대형을 유지해! 클리포포드가 밀려와도 두려워 말라! 물 속으로 몸 내던지는 것과 같아! 하나씩 천천히 잘라내면 된다!”
“장군님! 하샤가 계속 움직입니다. 클리포포드 측에서도 길을 트려는 것 같습니다.”
“저것 보라. 역시 변절자였다. 쯧쯧. 작전을 변경한다! 우익의 후열대는 모두 좌익으로 움직여라! 다시 이른다! 좌익에서 승부를 볼 것이다! 우익엔 최소한의 병력만 두고, 클리포포드의 사선으로 진입하라!”
버고스군 좌익과 클리포포드가 전면으로 충돌 중이었으니, 그 틈을 타 우익이 클리포포드의 옆을 치는 게다. 그러면 적을 포위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 될 터. 전세에 얼마든지 변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하샤가 변절했다고 한들, 아직 저희들에겐 사령술사가 남아있었다.
문제없다. 장군은 그리 중얼거리며 사방에서 튀어오르는 피를 닦아냈다.
“하샤! 마물은 버리는 게 어때? 그러면 내가 너 들고 뛰면 되는데!”
“이걸 버리라고?”
“어차피 너 아니면 아무도 못 움직이잖아. 두고 나중에 찾으러 와!”
하샤는 잠시 고민했지만, 베릭의 제안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벽처럼 세워두면 버고스에서는 움직이지 않은 장벽을 품은 것과 같고, 무엇보다 피신에 속도를 더할 수 있으니.
하샤는 베릭에게 손을 뻗었고, 베릭은 그런 그를 붙잡아 단숨에 업어 들었다.
“으라차! 가자!”
“베릭! 거꾸로 들었다!”
“뭐 어때? 너 피도 없잖아!”
“그래도, 어허!”
“어허! 시끄럽다! 나 칼질 중이다!”
채앵! 챙!
하샤는 반쯤 거꾸로 매달린 채 베릭을 붙잡았고, 베릭은 가볍게 뛰어올라 방패를 밟고 내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퍼어어엉! 퍼엉!
콰과광!
하늘에서 터지는 엄청난 굉음. 죽고 죽이던 자들이 반사적으로 엎드릴 만큼 강한 폭발이었다.
베릭은 멈칫거리며 위를 올려다봤다. 이안의 화염신이 검은 무언가를 잡기 위해 휘적거리고 있었으나, 영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이안아?”
이안이 피를 흘리고 있다.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린 채, 저번과 같이 피를 흘리고 있다.
베릭이 놀라서 우뚝 멈춰 섰고, 하샤는 주섬주섬 자세를 바로 하여 고개를 쳐들었다.
“이안 경? 왜 저러는 것이오?”
“이안아! 이안아아아!”
왼쪽 소매는 왜 저렇고, 각혈은 또 왜 하는데? 저기 같이 있는 마법사들은 대체 뭐 하고 있는데? 이안 혼자 검은 무언가와 대적하여, 왜 저러고 있는데? 온갖 말이 베릭의 혀끝에서 맴돌았으나, 쉬이 나오지 않았다.
하샤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쳐내며, 베릭을 잡아 흔들었다.
“베릭! 우선 클리포포드 진영으로 가자! 여긴 위험하다!”
“아니, X발, 진짜.”
“베릭! 움직여!”
“마법부 X새끼들아, 니들 뭐 하는데에에!”
“베릭!”
“XXX, 진짜 뒤졌다.”
아코렐라가 이안의 등에 손을 올린다. 그와 동시에 다른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힘을 보태주는 듯했다.
베릭은 이안이 살짝 웃는 것을 보았다. 웃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베릭은 우선 하샤를 클리포포드 진영에 던져두고 저쪽에 합류하는 게 좋겠다 여겼다. 창공의 전쟁이라, 자신이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안아아아! 기다려 봐! 나 금방 갈게!”
“베릭! 뛰어!”
하샤가 베릭의 어깨를 흔들었고, 베릭은 한 차례 한숨을 내쉬곤 내달리기 시작했다.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베릭을 알아보고 길을 터주었다. 마침 노아 왕자가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하는 게 보였다.
베릭이 그쪽으로 발을 딛는 순간.
퍼어엉! 콰아앙!
이전의 굉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폭음이 터졌다. 대지가 흔들리고, 하늘이 떨렸으며, 산 것의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폭음.
베릭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빛 때문일 것이라.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