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9
제389화. 삶에 쌓인 고통
버거웠다. 돌이켜보면 이안의 삶은 언제나 버거웠다.
애정없이 가문만을 위해 태어난 아이라, 그 시작부터가 고난이었다. 모든 걸 가졌지만 완전하지 못한 채로, 이안은 그리 살아왔다.
크로니의 말만 믿은 채 마법사의 정체성을 숨기려 부단히 노력했고, 황제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자신을 옭아매던 크로니를 잘라내기 위해 힘썼다.
그 후에는 어떠했는가? 황제로서, 바리엘을 위하여 온몸을 내던졌지만 결국에는 친우를 제물 삼아 겨우 살아났다.
버거웠다. 가끔은 모든 걸 내던지고 죽음의 심연으로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바람처럼 훌쩍 사라지고픈 마음도 들었다.
‘사랑스러운 나의 돌덩이.’
이안은 필리아의 애정어린 속삭임에 다시금 가슴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필리아를 잡아주었던 게 서자 이안이었다면, 황제 이안을 잡아주었던 건 바리엘 그 자체였다.
제국민들의 웃음소리, 새롭게 떠오르는 아침, 조화롭게 움직이는 도로, 내일을 꿈꾸는 자들, 평화로이 떠내려가는 구름 그리고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이들.
퍼어어엉! 퍼엉!
“이안 님!”
아코렐라의 찢어지는 고함이 이안의 사념을 지워냈다. 세상이 아득해지며 어그러지는 듯했다.
뒤에 서 있던 마법부원들이 두려운 기색으로 눈을 꼭 감았고, 이는 루스웨나 측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껴안으며 굉음과 폭발에 몸을 움츠렸다. 오로지 이안만이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그 힘과 맞설 뿐이었다.
이안은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등이 되겠노라고, 힘들면 몸을 내던져도 좋고 버티고 싶으면 함께 버티겠노라 했던 자들이 보였다. 이안은 턱 끝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중얼거렸다.
“…간다.”
노인의 주위로 검은 오라가 점점 짙어졌다. 화염신이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고 있었으나, 점차 그 위력이 저지되는 기분이었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답이 나왔다. 증폭제와 마법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자신은 서자 이안이요, 아직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반면, 저쪽은 금기의 마법으로 인해 가면 갈수록 강해지겠지. 시간을 제 편으로 가져오는 게 승기를 가져오는 것이라. 이안이 창공에서 발돋움하며 검을 꺼내 들었다.
촤아아악!
화염신이 닿지 못한다면, 이안이 직접 노인의 심장을 뚫을 수밖에 없다. 마력봉인석으로 만든 검인지라, 제아무리 금기의 마법이라 한들 이를 막아설 순 없을 게다.
“이안 님!”
“할머니!”
이안이 덤벼들자, 각 진영의 마법사들 역시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대장을 지키고자 공격과 방어를 쉴 틈 없이 주고받았다.
촤아악! 퍼엉! 펑!
이안의 왼팔을 노리는 마력구. 아코렐라가 대신 막아서며 반으로 갈라버렸고, 이안은 화염신과 함께 노인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이안을 막아서려고 하는 자들은 마법부가 모두 저지하여 그의 발걸음에 멈춤이 없게 했다.
창공에서 터지는 빛의 향연. 아래에서 보는 자들은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퍼어엉!
쉬이이익!
그때, 노인의 어깻죽지에서 솟아나는 검은 날개. 이안의 회록(回祿)과 같은 것이었으나, 색이 어둡고 탁했다. 이안의 것이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라면, 노인의 것은 모든 걸 삼킨 후의 잿빛 흔적이라.
거대한 화염신은 봉인이 풀린 것처럼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이것이 금기의 힘.”
노인은 경이롭다는 듯 손을 뻗어 자신의 힘을 가늠했다. 이안과 노인의 힘이 맞물리면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아주 가깝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
이안이 물었다.
“…기분이 어떠한가?”
“…슬프구나.”
진리를 탐구하고 신의 자리에 다다르기 위해 오랜 세월 정진하였건만, 이토록 쉬이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단 말인가. 역시 달콤하다.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언제나 달콤했다. 노인이 손을 크게 휘젓자, 잿빛 바람이 불며 이안의 화염신을 에워쌌다.
솨아아악!
지이잉. 지잉.
“심연으로 떨어지면 영원토록 슬플 것인데, 어찌하여 그리 마음이 급한가.”
촤아악!
하지만 이안은 유려한 검술로 금기 마법의 맥을 끊어냈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온 힘을 쏟아냈다. 이제 피가 흐르는 것은 느낌도 안 났다. 심장이 크게 뛰고, 정신이 아득해져 세상 모든 것이 정지하는 느낌.
「고하(苦河)」
일정 수준 이상인 고급 마법을, 두 개 이상 동시에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해본 적 없다고 한들, 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대!”
노인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와 동시에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회록이 이자의 전부인 것 같아 그를 따라했거늘, 어찌하여 그보다 상위의 마법을 쓴단 말인가?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힘이 이 정도인가? 이 어려 보이는 소년이 이 마법을 어찌하여 쓸 수 있단 말인가?
아코렐라 역시 놀라서 멈칫거렸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가 싶은 게다.
‘고하(苦河)? 지금 이안 님이 그 마법을 썼다고?’
고하(苦河)란, 사용자와 대상자가 겪었던 일평생의 고통을 융합하여 일순간에 정신세계를 찢어버리는 정신계열의 마법이었다. 걸어온 길이 고될수록, 그리고 그 역사가 오래될수록 깊이가 더해져 상대를 파괴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사용자 역시 잊고 있던 모든 고통을 떠올려야 하는 정신적 부작용이 있었다.
“이안 님! 미쳤습니까!?”
아코렐라가 소리쳤으나, 이안은 노인을 상대하느라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알아챘다. 이안의 머릿속에 모든 번뇌가 섞여 들어갔음을.
그의 눈가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던 게다. 노인과 함께.
콰아아앙!
심장에 번개가 내려치는 것처럼 노인이 발작했다. 가슴을 내려치고, 그러지 말라 고함쳐도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화염신의 불길이 강해지고, 노인의 어깨를 잡은 이안의 손에서는 연신 보랏빛이 터져 나왔다.
“그만, 그만! 아아아악!”
그 보랏빛은 이안의 고통이요, 노인의 고통이었다. 오랜 세월 나눠 지녔던 힘듦이 한순간에 쏟아지니, 노인은 견딜 수가 없어 고통에 몸부림쳤다.
“심연은 이보다 더할 것이다!”
“이노옴! 이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이다. 이안은 그런 그녀를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력검을 찔러 심장을 꿰었다. 심장을 쥐어짜던 고하(苦河)가 함께 터져 나오며 자줏빛을 뿜어냈다.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경악하여 입을 틀어막았고, 누군가는 자이라의 눈을 가려주었다.
“으아아아악!”
발악하는 노인의 괴성이 천지를 흔들었다. 검 손잡이를 쥔 이안의 손등 뼈가 튀어나왔고, 그는 곧 땀과 피로 엉망이 된 채 죽어가는 노인의 눈을 마주했다.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순간이다. 그대도,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았구나. 연민에 가까운 안타까움이 잠시 스쳐갔다. 아주 잠시였다.
“이안 님! 견딜 수 있습니다!”
“예! 구, 굳건히 하십시오!”
지이잉. 지잉!
마법부원들이 최후의 힘까지 짜내어 이안에게 넘겨주고 추락한 것이다. 하늘을 나는 힘조차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창공에서 떨어지는 마법사들을 보고, 노아 왕자가 소리쳤다.
“받아내라! 마법사들이다!”
“마법사들이 떨어진다! 바리엘의 마법사들이다!”
“우리쪽에서 잡아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클리포포드, 버고스, 루스웨나의 지휘관들이 소리쳤다. 힘을 소진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마법사들. 확보하는 것이 곧 전쟁을 승리로 이끌 길이다.
베릭은 병사들이 뛰어가는 것도 무시한 채, 이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안아아!”
자신도 마법사들처럼 힘을 나눠줄 수 있으면 좋을 터인데, 이리 대지에 붙어서 그저 올려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한심했다.
소리치고 또 소리쳐도 이안은 들을 수 없을 게다. 저 공허하게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보라. 반사적인 눈물이겠지만, 지금 그에게는 베릭의 외침 따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어, 어떻게…….”
어쩌지? 어쩌면 좋지? 베릭이 허망하게 중얼거리자, 하샤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가만있으면 무엇하오! 이안 경에게 도움 될 걸 해야지! 마법사들을 확보하러 가!”
퍼어어엉! 퍼엉!
그때, 노인의 심장이 완전히 터지며 광풍이 몰아쳤다. 잿빛의 화염신은 바람에 몸을 싣고 사라졌으며, 노인은 가슴 부근이 너절해진 채 추락했다.
이제 창공에 서 있는 것은, 가쁜 숨을 내쉬는 이안뿐.
“허억, 허억…….”
이안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거친 숨을 내쉬며 노인이 떨어지는 걸 지켜봤다. 텅 빈 공허한 눈동자. 죽음 마지막에 맛본 인생의 모든 고통이 그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이안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환청에 비틀거렸다.
‘이안 숙부. 마력을 숨기시라니까요. 천민들 굴로 들어가고 싶습니까? 죽은 공작께서 한탄하여 이안 숙부를 원망할 것입니다. 천해요, 천해!’
‘이안, 황제라니. 네가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나는 그렇지 않다. 네가 그 자리에 오르면 제국민들의 울부짖음으로 바리엘은 기울 게다. 장담하지. 너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반란입니다! 전하! 크로니가!’
‘이안 잘 보아라. 네가 아꼈던 자들이 죽는 것은 다 네 탓이다. 네가 분수를 모르고 황제 자리를 넘보아 죽은 게라. 말했지? 그 자리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움!’
‘이안 님!’
‘죽여라! 모두 죽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러주어라! 저들이 죽은 것은 모두 이안이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안은 몸을 움츠렸다. 너무 선명하게 들려오는 크로니의 목소리. 죽은 노인처럼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안은 힘을 잃었고, 결국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창공에서 떨어졌다.
“이안아아아아!”
“마법부 장관이 떨어진다!”
“이안 히엘로도 쓰러졌다!”
타닥타닥!
그걸 지켜보고 있던 베릭. 시선을 고정한 채 미친 듯이 내달려 이안 쪽으로 향했다. 이안이 고전할 때 도움 하나 되지 못하였으니, 그가 떨어질 때만큼은 안전히 받아내고 싶었다.
베릭을 비롯한 세 나라가 이안을 차지하기 위해 손을 뻗어냈다.
“비켜, 씨발놈들아아아!”
지이잉! 지잉!
촤아아악!
베릭은 표효하며 검을 휘둘렀고, 뒷모습을 보였던 병사들은 속절없이 나뒹굴어 쓰러졌다. 베릭은 제 흑검까지 내팽개치고서 몸을 내던졌다.
쿠웅!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이안을 몸으로 받아냈다. 이안은 기절한 것인지, 눈 감은 채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있었다.
죽었나? 베릭이 놀라서 귀를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댔는데, 이럴 수가.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이었다. 쿵쿵쿵. 노인처럼 심장이 터지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아 왕자!”
베릭이 노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노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퇴한다! 마법사들을 모두 안전히 확보하여 장벽 안쪽으로 옮겨라!”
“마법사들을 보호해!”
“기회다! 마법사들이 모두 쓰러졌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밀어붙여라!”
“와아아아!”
왕궁에 아직 헤일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와 마력을 나눈다면, 충분히 회복 가능할 것이라.
클리포포드는 마법사를 보호하려 했고, 버고스와 루스웨나는 그들을 죽이거나 뺏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몸을 내던졌다.
언덕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리포니. 피 흐르는 뺨을 움켜쥔 채 소리쳤다.
“엘더트! 흑갑옷은?!”
“예! 바로 투입하겠습니다! 가까이 왔을 것입니다!”
“기회다! 모조리 죽이든, 아니면 포로로 잡아야 해!”
루스웨나 진영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먼저 왔던 그들 뒤로, 흑갑옷 입은 병기들이 도착한 것이다.
에리포니는 승리를 직감하며 웃었다. 충격받은 루스웨나 측 마법사들이 전의와 전력을 상실하였으나, 이 흑갑옷만 있다면 저런 조무래기 클리포포드 병사들쯤은 개미 밟듯 죽일 수 있으리라.
그녀가 활시위 끊어진 활대로 정면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진격-!”
그러곤 작게 후회했다. 진격하라고, 가서 적진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라고. 그 말까지 해야 했는데…….
그때.
콰아아앙!
맥심 트웰러가 섰던 언덕에 인기척이 나며, 소규모의 부대가 모습을 보였다. 에리포니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아, 젠장.”
제이럿. 황궁친위대의 대장과 그 부하들. 바리엘에서 힘의 정점에 서 있다는 마검사들이다. 제이럿은 기민하게 전세를 살피다 크게 호흡하며 소리쳤다.
“우리는 바리엘의 황궁친위대다! 현재 바리엘의 본군이 지원을 위해 오고있으니, 그 전에 우리가 힘을 보탤 것이다! 마법부의 이안 히엘로 장관에게 손대는 자는 목을 베어버리겠다!”
촤아아악!
천둥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이안을 안고 뛰던 베릭이 뒤를 돌아봤고, 그는 이내 창공으로 솟아오르는 수많은 마검사들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