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93
제393화. 두 번은 안 된다
불편하고 불안한 기운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마법사들은 벽에 기댄 채 서로를 힐끔거렸고, 가끔가다 제국방위부나 마검사들과도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도 별반 다를 것 없는 눈치였다.
회의실 중앙, 이안과 제이럿 그리고 트웰러가 앉아 노아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톡톡.
이안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팔걸이만 두드려댔다. 초점 없는 허공이 어디에 닿고 있는지, 가까이 앉은 트웰러와 제이럿은 가늠할 수 없었다. 부디 멀지 않게만 가 있으면 좋겠거늘.
“이안 경.”
트웰러가 이안을 부르자, 이안은 눈동자만 돌려 그를 쳐다봤다. 같은 장관의 입지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익장을 대하는 태도라 하기에는 상당히 불손하였으나, 트웰러는 짚지 않았다.
아이는 무언의 선을 그어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밟고 있었으니, 절로 상대측이 몸을 낮추게 되었다.
“노아 왕자님이 오시기 전에, 변경 사항을 논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에게도 좋을 것 같은데.”
“…….”
하지만 이안은 한 귀로 흘린다는 듯 다시금 시선을 바로 했다. 몇몇 제국방위부 부하들이 욱하였으나, 곧 사그라들었다.
지금 이안이 풍기는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장관들마저 어깨를 으쓱하며 넘어갈 정도라. 이 자리의 그 누가 이안에게 한마디 할 수 있을까.
‘색이 모두 바래버린 수채화 같다.’
제이럿은 불붙지 않은 궐련을 이리저리 돌리며 이안을 지켜봤다. 외상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의 내면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난 게 분명했다. 마법의 부작용이라고는 하는데, 뭐랄까.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싶다.
부작용은 그저 껍질을 깬 것에 불과하고, 그 속에 잠들어있던 무언의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 이 평온하면서도 기이한 이안의 분위기를 설명할 수 없었다.
베릭은 연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였고, 이내 노아 왕자가 오고 있음을 제일 먼저 알아챘다.
“온다.”
그의 중얼거림에 바리엘인들이 모두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확히는 이안을 향하여.
끼이익.
“이안 경. 일어났는가?”
문을 열고 들어온 노아가 먼저 이안의 상태를 확인했다. 자잘하게 긁힌 상처 외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는 게 기적이다. 베릭이 바로 받아내어 구한 덕이겠지.
그가 의자를 끌어당김과 동시에, 낯선 분위기를 감지했다. 모두가 이안과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쩐지 그 결이 다르다. 노아는 천천히 앉으며 가볍게 던졌다.
“왜들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무슨 문제라도?”
이안이 피식 웃으며 노아의 말을 따라 했다. 트웰러는 못 들은 척 궐련을 물었고, 제이럿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안 경.”
“지금 상태 좀 보십시오. 문제가 없어 보입니까?”
짧은 고갯짓은 마법사들의 부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마법사들은 다친 부분을 가리며 괜히 멋쩍게 웃었다. 지금 이안이 이상하니까 왕자께서 적당히 넘어가 달라는 듯이.
“마법사들의 부상에는 유감을 표하는 바다.”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안 경.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제가-”
이안은 무슨 말을 꺼내려다 한숨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 미간을 연신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서자 이안의 몸이 아니었다면, 더 나아가 황궁에 있었을 때 수련을 조금 더 했더라면,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더 나은 선택과 결단을 내렸더라면. 자신을 위해 이쪽으로 왔던 마법사 다섯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지 않았겠나?
이안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정을 다스렸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파괴하고 무너트리며, 되돌리고 싶었다. 아, 이래서 다몬이 회귀했나?
“…마법사 다섯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굉장한 유감으로 생각하며, 클리포포드 지원의 대가로 여기기에는 바리엘이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 생각합니다.”
노아 왕자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당연한 말이었다.
클리포포드가 버고스 측에 점령당한다고 한들, 그것은 바리엘에게 있어 1차 경계선이 뚫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물의 범람도 직접적인 피해는 클리포포드에게 있지, 바리엘은 그때 가서 또 그들만의 대책을 세울 수 있으리라.
“클리포포드 모두는 바리엘 마법사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심장에 새겨넣었다. 바리엘과의 공식 동맹에서 그 뜻을 가감 없이 표할 것이라.”
“무엇으로요? 포도주로요?”
이안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비소를 지었다. 클리포포드가 감사의 뜻을 보인다 한들, 그게 바리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영광이 있겠는가?
노아 왕자의 낯이 굳어지자, 그의 부하가 소리쳤다.
“이안 님! 언사가 과하십니다!”
“과한 것은 그대의 언사다. 상관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작태는 어디서 배운 것인가? 보아라. 여기서 그대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앉아있는 제이럿과 트웰러까지 침묵하고 있건만, 감히 어디 일개 장군 따위가 큰소리를 내는지에 대한 경(更)이었다.
노아 왕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부하를 뒤로 물렸고, 침착하게 물었다.
“이안 경. 바라는 바를 말해주게. 알다시피 아침이 오고 있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클리포포드에서는 마법사들의 소재 파악 및 귀환을 바리엘 소관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마검사와 마법사들이 사라진 동료를 찾는 데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하니, 클리포포드는 당연히 마법사들의 확보보다는 전투에 대비하는 중이라.
뜨끔, 정곡을 찔린 노아 왕자가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소리. 우리도 마법사들의 행방 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네. 버고스와 루스웨나 왕의 접촉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 특임대를 구성하여 정찰하고 있으니, 정보가 들어오면 필히 행동에 나설 것이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법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마법사밖에 없으니, 많이 양보한다 한들 클리포포드의 병사 수가 한참 모자란다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루스웨나의 참전과 계속될 그들의 지원을 생각한다면요.”
“바리엘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다 들었네만.”
“그건 바리엘군이지요.”
이안은 말이 되는 소릴 하라며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는 왼쪽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 쉬었고, 이내 경고성 짙은 투로 일렀다.
“하루 주겠습니다.”
“하루라니?”
“버고스나 루스웨나 측에서 포로로 데리고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클리포포드에서는 그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여 내 부하들을 데려와야 할 것입니다.”
바리엘은 바리엘, 클리포포드는 클리포포드. 이안은 남의 나라 사정까지 봐주며 자신의 사람을 잃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잃지 않을 생각이었다.
“전투에 있어 마법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십시오. 루스웨나의 참전으로 그것이 힘들다 하면, 징집령을 내리세요. 클리포포드는 많은 인구수가 장점인 나라 아닙니까?”
징집령. 병사가 아닌 자들에게도 참전을 명하게 하는 것. 이미 장벽 가까이 사는 국민들이 함께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종전 소식만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상태였다.
노아가 반발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수는 없네.”
“어째서요? 징집의 대상이 되는 자들의 수효는 왕궁에서도 파악하고 있을 터인데요.”
“그것은-!”
“왜요. 바리엘 군대가 온다 하니 클리포포드 국민들은 피를 좀 덜 흘려도 되겠다 계산하였습니까?”
“이안 경!”
“맞서기 힘들다면, 클리포포드는 고혈을 짜내어 그 틈을 막으십시오. 마법사들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그리고 그자들이 모두 제 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바리엘은 클리포포드를 도와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이안이 트웰러와 제이럿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의 없음을 확인하는 턱짓이었다. 사실상 제국방위부나 황궁친위대 모두 마법사의 귀환 명을 받고 온 것이기에, 이안의 결정에 토 달 여지가 없었다.
“하루라 하였습니다.”
톡톡, 이안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경고했다.
“그 이후에도 마법사들의 신병 확보가 불가하다면, 제 친히 나서서 모든 것을 흘려보낼 것입니다.”
클리포포드 대지 아래 잠들어있는 균열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적어도 부하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클리포포드는 버고스의 방파제가 아니라 그저 전쟁 중인 타국으로 인지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균열? 마물? 모든 것이 재앙으로 뒤덮여도 바리엘은 건사할 것이다. 이는 이안의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지금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신께, 그리고 과거이자 미래에서 존재하는 자신의 바리엘에게, 나아가 나움과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그 모든 것에게 맹세하여 말이다.
노아 왕자는 마른세수를 하더니 한숨을 숨기지 않았다.
“이안 경. 지금 마법 부작용으로 이런 결단을 내리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쉬었다가 다시 얘기하면 어떠한가?”
“아침이 오고 있다고, 시간 없다 이르신 분 치고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번복하지 않겠다. 이안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다리를 꼬았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일렁임이 일어났다. 그것이 슬픔이고, 벅차오르는 부담이라는 걸, 이안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롯이 다섯 명의 마법사 얼굴만이 가득했다. 노인과 맞설 때 등을 받쳐주었던 자들. 버티고 싶으면 버티라고, 물러서고 싶으면 물러서라고 하였던 자들.
그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하였는데, 자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자신을 따르던 자들을 어찌하여 잃어버렸나?
“…두 번은 못하겠다.”
이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자신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를 보는 건, 정말이지 두 번 못 할 일이다.
“이안 경?”
제이럿이 궐련을 한 손에 든 채 그를 불렀다. 혹여 마법의 부작용이 심해지는 건가? 급히 아코렐라를 찾아보았으나, 그녀는 간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신 헤일이 이안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수면제를 더 달라 할까요?”
“아니.”
이안은 헤일의 손을 밀어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는 다가오지 말라, 뒤따르던 베릭에게도 눈빛으로 거절의 뜻을 보였다. 너 역시 다가오지 말라.
“베릭. 너는 황궁친위대 소속이니 전투에 있어서는 제이럿 대장의 명을 따라라.”
“뭐? 싫어!”
“싫어도 어쩔 수 없어. 그것이 체계다.”
“영감, 아니지. 제이럿 대장! 나 이안이 옆에 있을 게. 쟤 상태 봐봐! 조금 꾸리꾸리… 아니, 시바. 그러니까 내 말은, 제가 열심히 보필하겠다고요. 제이럿 대장님.”
베릭이 손을 번쩍 들며 제이럿에게 간청했다.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저걸 데려와도 문제라. 제이럿은 궐련을 비벼끄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안 경. 베릭은 계속 거두십시오. 훈련이 덜 된 놈이라, 작전 수행에 있어서 크게 도움 되지 못합니다.”
“어라?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좀 나쁜데? 좋은 말로 해주면 안 되나? 어?”
이안을 받아내고 감당할 수 있는 건 소수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가 베릭이라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 로만드로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
이안은 침묵으로 대응했고, 회의실의 모두가 이안의 신경 변화를 예민하게 주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옷을 정리했다.
“노아 왕자. 부디 아침이 오면 모든 게 밝아지길 바라십시오. 앞으로 클리포포드에서 해를 보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를 구하기 위해 모든 걸 바친다면, 그리하여 균열이 일어나 마물이 범람한다면, 클리포포드는 해 뜨지 않는 땅이 되리라.
노아 왕자가 맞춰서 벌떡 일어나 이안과 마주했다.
“그러니까, 알겠다. 마법사들을 데려오면 이전과 같이 협조해준다 이것이라. 나도 도움을 요청하지. 마검사들, 잠시 따라와주겠나?”
“예. 알겠습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전갈을 보내보겠다.”
포로로 잡아둔 자가 있는지, 생사는 어떠하고, 어찌하면 넘겨줄 수 있는지. 노아 왕자는 전령을 꾸리기로 마음먹고 회의실을 나섰다.
제이럿은 궐련을 완전히 비벼 끈 다음 마검사들에게 눈짓하여 왕자 뒤를 따랐고, 트웰러는 가만 앉아 이안을 올려다봤다.
“…이안 경.”
아이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변경에서 막 올라온 어린 것이, 대체 어떻게? 트웰러는 자신을 무덤덤하게 내려다보는 이안을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잠시 저와 얘기 좀 하시겠습니까? 다몬 왕이나, 뭐 이리저리 의뭉스러운 게 많은데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서요. 이안 경의 혜안으로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이안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고, 모두에게 나라가 눈짓했다. 트웰러도 마찬가지.
부하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섰고, 이내 고요해진 공간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