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96
제396화. 식사 방해 금지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천막은 유달리 분위기가 무거웠다. 낮만 하더라도 함께했던 노인이 죽었고, 그 과정에서 사로잡은 바리엘의 마법사 하나를 구석에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결박당하여 피 흘리고 있는 쟝. 그는 의도치 않은 타박상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있었다.
루스웨나 마법사 한 명이 한숨을 푹 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마력봉인석을 채워놨다고 해도, 포로를 왜 우리가 지키고 있어야 하나? 같은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전하께서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원래 전쟁은 너무한 법이지.”
“적이지만, 그래도 마법사 아닙니까. 저런 몰골을 한 자를 우리가 지켜서 대체 뭘 어쩌라는 겁니까.”
“혹여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것이라 하셨잖은가. 마법사니까, 마법사만이 제압할 수 있다고.”
“…젠장, 젠장, 젠장!”
콰앙!
마법사가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를 걷어차자, 쟝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는 살아있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중이었다.
“자중해. 자이라가 있어.”
마법사들은 아이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폭력적인 소리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자이라는 오히려 덤덤했다. 마치 모든 것에 초연한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천막 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걸 걷기만 하면 할머니가 서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외부의 어떠한 방해도 자이라의 집중을 흩트릴 수 없었다.
의자를 걷어찼던 마법사가 제 손으로 그걸 바로 하며 앉았다.
“왕께서 우리 정체성에 대해 이리 무지할 줄은 몰랐습니다. 돌아가면 다시는 밖에 나오지 않겠습니다. 더, 더 깊이 들어가서 왕조차 찾을 수 없게 사라질 겁니다.”
“커헉!”
쟝이 갑작스레 피를 토하자,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마력을 넣어주고 싶어도 마력봉인석 수갑으로 인해 불가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의 허락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마법사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궐련을 찾았다.
“죽으면 우리더러 시체 처리도 하라 하시겠지요. 어찌 이리 모지신지 모르겠습니다. 알려진 것과 너무 달라요.”
“국민들은 그저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될 일이니 그런 것이다. 우리도 그러했고.”
“저렇게 두면 아침까지 못 버틸 것 같은데. 의사가 보긴 했지? 다시 불러올까? 저렇게 두는 것보다 그래도 눕히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아까 찾으러 갔는데 의무병밖에 없더라고. 군의관은 어딜 갔는지, 원.”
치이익.
궐련을 문 마법사가 자이라를 힐끔거렸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테이블을 두드리며 아이의 시선을 가져왔다.
“자이라. 이제 말해봐. 여긴 우리밖에 없어.”
“…….”
“몰래 또 뭘 익혔어? 너 아까, 전하 화살에 뭐 한 거, 다 알아.”
바닥에 닿지 않는 아이의 발이 기분 좋게 흔들렸다. 복수의 순간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울적한 기분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으니까.
“전하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알게 될 거예요.”
“가장 중요한, 뭐? 하, 답답하네. 정말.”
타닥타닥.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했고, 이어서 천막 입구가 젖혀졌다. 엘더트가 군의관과 함께 쟝을 찾아온 것이었다.
마법사들이 모두 일어나 그를 맞이하는 와중에도 자이라는 가만 앉아서 그를 빤히 올려다봤다.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라 무시하는 것인지 몰라도, 엘더트는 문제 삼지 않고 바로 쟝에게 다가가 턱을 붙잡았다.
“상태는?”
“나아지는 기미가 없습니다. 마력이라도 나눠주지 않는 이상은요. 전하께서는 하명 없으십니까?”
“아직. 버고스 측과 합의하여 정할 생각이신 것 같다. 그쪽에 사령술사들이 있으니, 마법사의 시체를 이용하여 무언갈 할 수 있는지 파악 중이시다.”
끔찍했다.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그 소름 끼치는 계획을 한 귀로 흘려버리고자 노력했다.
마법사의 시체를 사령술에 이용해? 그렇다면 자신들은? 자신들 역시 죽으면 죽지 못한 채로 계속 이용당할 것인가? 노인이 간 것과 같이 산산이 파훼되지 않는 이상, 전쟁터를 벗어날 방법이란 없는 건가?
‘설마. 전하께서 자국민 마법사들에게도 그리하실까.’
다들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루스웨나는 유서 깊은 왕가였고, 에리포니는 나라를 건실히 운영하여 촉망받는 자였다. 적어도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 마법사들도 은둔하는 와중 그리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보아라. 활을 겨누는 왕의 모습은 인정 없는 포식자에 가깝지 않던가.
“그, 그때 가서 죽이더라도 지금은 살려두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말씀 올려주십시오. 솔직히, 저와 같은 마법사가 저리 죽어가는 건 보기 힘듭니다.”
군의관이 자상을 살피다 마법사들을 힐끔거렸고, 엘더트 또한 의아한 눈빛을 내었다. 같은 마법사인 게 대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는 듯.
마법사에 대한 해석 차이였다. 저들에게는 정체성이지만, 왕가에서 보기에는 그저 같은 능력을 지닌 자였다. 무술에 뛰어나 무관이 된 자와, 마력이 있어 마법사가 된 자의 차이가 무엇 있나?
“그리 보기 힘들면 직접 말씀 올려라. 이 얘긴 여기까지 하고, 마법사 두 명 정도를 차출할 것이다. 각각 장벽의 좌측과 우측으로 날아들어 안쪽 동태를 확인해야 한다.”
“정찰을 나가란 말씀입니까?”
“그래. 클리포포드 장벽 안에서 불이 지펴졌다. 이것이 뜻하는 바를 당장 알지 못하겠으니, 그대들이 가서 보고 오라.”
야간에 불이 들어온 것은 쉬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안쪽에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니. 그걸 파악하는 게 현재로서는 제일 중요한 사안이다.
“두 명…….”
마법사들은 눈치 보며 서로를 쳐다봤다. 원래 이럴 때는 노인이 앞장서서 나서거나 적합한 자를 추천하곤 하였는데, 그 자리가 비어버린 게다.
잠깐 동안 침묵이 감돌자, 자이라가 손을 들었다.
“나, 갈래요.”
“자이라. 안 돼. 넌 너무 어려. 대신 내가 가마.”
“그래. 나랑 형이랑 가면 되겠네. 이렇게 둘이 가겠습니다. 엘더트 님.”
아이가 먼저 손 들자, 다들 화들짝 놀라며 저지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이를 그런 곳에 보냈다간 심연에 있는 노인이 그들을 꾸중할 게 빤했다.
하지만 자이라는 무슨 생각인지, 눈만 동그랗게 뜨며 반박했다.
“왜요? 삼촌들은 저보다 마력도 약하잖아요.”
“자이라.”
“그리고 저는 체구도 작고요, 혹여 문제 생겨서 들킨다 한들 아이라서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어요. 이안이라는 바리엘 장관, 엄청 대단하다면서요. 결계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여기서는 느껴지는 바가 없지만.”
“결계 치기에는 상대측 전력이 너무 약화되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삼촌은 덩치가 너무 커요. 달빛도 밝은데, 장벽 안 불이 왜 지펴졌는지 보려면 은신하기에 좋은 작은 체구가 딱 일 것 같은데. 엘더트 님. 저, 갈 수 있어요.”
마법사들끼리 작은 분쟁이 일어나자, 엘더트는 팔짱만 낀 채 그들을 주시했다.
확실히 자이라는 어리다는 것 외, 정찰 임무에 아주 적합한 인재였다. 아까 보여준 반항 어린 모습이나, 장군에게 얻어맞은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 중에 자이라의 가족이 있나?”
“우리 모두가 가족입니다. 숲에서 함께 지냈으니까요.”
“직계 말이다. 피가 섞인 자.”
마법사의 주장은 엘더트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이라의 동생을 일러주었다.
“왕궁에 자이라의 동생이 있습니다. 남아인데, 그 아이는 평범합니다.”
“좋다. 그럼 자이라가 좌측, 우측은 그대가 가도록.”
“엘더트 님! 자이라는 너무 어립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저토록 의지가 단단한데, 어리다고 하여 문제 될 것이 무엇 있나? 전하의 화살에 힘을 보탠 마법사다. 그리고 이곳은 전장이지. 나이 따위는 중요치 않아.”
자이라는 의자에서 내려와 로브를 집어 들었다. 어둠 속 자신을 지켜줄 작은 천 조각. 아이는 제 머리칼을 후드 속에 꼼꼼히 숨겨 넣으며 물었다.
“장벽 안의 상황만 보고 오면 되는 거죠? 다른 건요?”
“다녀와서 상세히 보고만 하면 된다. 들키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 자이라.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 동생 또한 할머니의 곁으로 갈 것이란다.”
엘더트가 무릎을 꿇으며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마법사들이 입술을 짓눌렀으나, 자이라는 싱긋 웃기만 했다.
“돌아와 전쟁의 승기를 가져가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영광이 깃들고요.”
“물론이지. 네 할머니의 희생을 비롯하여, 그 모든 아픔을 전하께서 치유하고, 보상해주실 것이라. 자이라. 너는 자랑스러운 루스웨나인인 걸 잊지 말려무나.”
“알겠습니다. 엘더트 님.”
“그럼, 가지. 전하께 직접 보고한 후 바로 정찰에 나갈 것이다.”
엘더트는 쟝의 치료를 군의관에게 맡긴 뒤, 두 사람에게 고갯짓했다. 자이라가 망설임 없이 천막을 나서려고 하자,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달려들어 그 앞을 막았다.
“자이라!”
“너 진짜 무슨 생각이니? 응? 왜 그래?”
“다들 비켜요. 시간 없으니까.”
“네가 가면 우리가 할머니를 어떻게 뵙겠어?”
“할머니 뵐 일이 뭐 있어요? 할머니는 심연에 계신데. 이제 아무도, 그 누구도 할머니를 볼 수 없어요.”
혹여 자신이 금기의 마법을 쓴다면, 그러면 볼 수 있겠지.
자이라는 만류하는 마법사들을 지나쳐 엘더트 뒤를 따랐고, 이내 저 멀리, 장벽 한쪽 불이 환하게 들어온 클리포포드 진영을 볼 수 있었다.
“대놓고 불을 피웠네요.”
“실수 없이 하렴. 자이라.”
엘더트의 당부에 자이라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달빛을 그대로 담아내는 까만 눈동자. 아이는 부어오른 볼을 매만지며 로브를 더더욱 단단히 묶었다.
* * *
“고기! 다음 고기!”
“미친놈아, 방금 네 앞에 있던 거 어디 갔어?”
“그거? 내 배 속에. 술도 좀 주라! 클리포포드 쩨쩨하게, 위장에 기름칠을 했으면 싸악, 시원하게 내릴 것도 좀 바로 내와야지!”
“전쟁 중에 누가 너처럼 이렇게 술을 처먹어? 어? 왕도 이러진 않아요.”
“이안아, 쟤가 아까부터 자꾸 나 구박한다. 뭐라 해줘. 세상에서 먹는 걸로 그러는 게 제일 치사해!”
“너는 인마! 양심이 있어야지!”
“어? 어어? 또 뺏어가네!”
“베릭아. 이건 뺏어 먹는 게 아니라, 나눠 먹는다고 하는 거야. 멍청한 새끼야. 여기 탁자 위에 있는 게 다 네 거야? 어?”
우당탕탕!
콰앙!
베릭이 점령한 식탁 위. 이리저리 과일이 날아다니고, 물과 음료가 흘러내리는 시끄러운 식사 자리였다.
반면 가운데 고고히 자리 잡은 이안은, 우아한 몸짓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며 고기를 먹기 좋게 썰었다.
마치 이안과 다른 이들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다. 다들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와중, 그 혼자서만 작은 만찬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으니.
비록 웃음기는 없었지만, 이 소란을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조금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 놔-”
베릭이 접시를 번쩍 들고 소리치다 멈칫했다. 마법사들은 이때다 싶어 고기를 빼앗았는데, 그럼에도 베릭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베릭?”
“얘 갑자기 왜 이래?”
“와씨, 정색하네. 그래. 너 다 처먹어라.”
고기를 빼앗은 마법사가 다시금 베릭 손에 음식을 쥐여주었으나, 베릭은 그대로 식탁에 올려두고는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집 지키는 개가 바깥에서 인기척을 느낀 것처럼.
“어라.”
킁킁. 그리고 쫑긋. 베릭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리고 횅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릭. 고기 금방 온다. 문 닫아! 이안 님 추워.”
“야야야. 잠깐만. 다들 그만 먹고 봐봐. 뭐 안 느껴져?”
“뭐가?”
이드갈로 인해 마력이 사라진 마법사가 반절 이상. 마력에 문제가 생긴 마법사가 또 그 반절. 즉, 상태 이상을 알아차리기에는 모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달그락.
“마력이 느껴진다.”
“그치? 이안아, 이거 마력 냄새지?”
이안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고, 베릭은 반갑게 반문했다.
“어떻게 할까? 이안아, 너 밥 먹고 있을래? 딸까?”
지이잉. 지잉.
베릭이 마력을 발동시키며 흑검을 잡아들자, 마법사들이 빈 그릇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으아아악! 미친놈아, 여기 실내라고! 터지면 우리 또 앓아누워!”
“나가! 그럴 거면 나가!”
“응? 이안아, 따? 말아?”
이안은 반쯤 남은 스테이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입맛이 살짝 돌기 시작하여, 모두와 함께하는 이 자리를 물리기 싫었다. 그는 포크에 다시금 손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말했지. 나 앞으로는 진짜 잘 할 거라고.”
“그럼 제이럿 대장에게 보고하여 네가 정리해보아라. 내 식사에는 문제가 없겠지?”
“물론.”
지이잉!
퍼엉!
베릭은 마력을 폭발시키며 단번에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아래에서 옆구리를 잡은 채 몸 풀던 바르사베가 무언의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날파리 따온다! 제이럿 영감아아아아!”
콰앙!
노아, 트웰러와 회의하던 제이럿이 다시금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봤다는 듯.
“나 좀 위로 올려 보내주라!”
“베릭. 황궁친위대로서 품위를 지켜.”
“내가 따올게! 날파리!”
날파리? 제이럿은 저놈이 드디어 미쳤나 싶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낯선 마력에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