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97
제397화. 자이라의 물음
쉬이익-!
자이라는 끝없이 비행했다.
높이, 높이, 더 높이. 아득히 먼 저 달을 향하여.
함께한 마법사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짓하였으나, 아이는 시선을 달에만 고정한 채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정찰을 위해서라기보다 꽉 막힌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폭주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클리포포드 수도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오른 다음,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칼바람이 그 무거운 숨을 조금씩 베어내는 것 같았다.
‘자이라, 너는 나보다 더 먼 세계를 보게 될 게다.’
‘할머니보다요? 왜요? 같이 보면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어. 너에게 그걸 보여주기 위해 내가 먼저 살아왔으니까. 자이라. 너에게 이 세상을 보여주게 되어 할미는 기쁘다. 그리고 미안해. 먼 세계는 미지의 곳이라, 손잡아줄 수 없거든.’
‘괜찮아요. 그때 되면 저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요.’
‘그래. 그렇게 네가 간 길은 또다시 네 동생이 가게 되겠지. 그게 바로 인간의 삶이거든.’
아이의 몸이 무중력에서 헤엄치듯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귓가에서 할머니의 음성이 계속 요동쳤다. 생생하여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하지만, 자이라는 인지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언젠가 할머니가 말했던 더 먼 세계에 자신이 발을 들여놓았단 것을.
“자이라!”
쉬익!
힘겹게 따라온 마법사가 소리쳤다.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다고, 이런 돌발 행동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자이라는 고개를 까딱거리고 나서 천천히 마력을 거두었다. 헤엄치던 몸은 곧바로 납을 단 것처럼 가라앉았고, 이내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쉬이익!
클리포포드 장벽 일부분 그리고 왕궁을 중심으로 한 수도 곳곳에 불이 지펴져 있었다. 이리 보니, 이것 또한 밤하늘 같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별들.
자이라는 장벽이 점점 가까워지자 마력을 아낌없이 개방하여 기운을 펼쳤다.
지이이잉! 지잉!
마치 자신이 여기 있는 걸 알아달라는 듯이 말이다.
에리포니 왕은 최대한 은밀히, 그리고 분명히 돌아오라 명하였다. 자이라는 왕궁에 남아있는 동생을 떠올리며 복종하겠노라 맹세했지만, 그 자리의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리엘 마법사들이 불능이라 하지만, 설마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겠나? 결국 왕께서 바라는 것은 정보와 귀환. 그게 다일 것이라.
촤아아악!
장벽 안, 병사들의 숫자 식별이 가능해진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갑자기 날아오르며 자이라 앞을 가로막았다. 휘날리는 적색의 머리칼 그리고 그와 똑 닮은 눈동자. 베릭이었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는 짧은 순간. 자이라는 반사적으로 마력구를 터트렸고, 베릭은 흑검으로 그걸 받아냈다.
퍼어어엉! 퍼엉!
콰앙!
“으아악! 뭐, 뭔데! 갑자기!”
“저기! 저기 하늘에 뭐가 있습니다! 공습입니다! 마물인지 뭔지는 어두워서 확인 불가합니다!”
“침착하라! 마검사가 대적할 것이다! 병사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장벽을 수호하라!”
“허둥지둥하지 말라! 우리는 버고스와 루스웨나를 주시한다!”
아닌 밤중에 갑자기 허공에서 터지는 마력인지라, 병사들이 기겁한 듯싶었다. 그들은 허겁지겁 움직이며 대열을 정비했고, 이내 낯선 자의 침범에 마검사가 대응하러 나섰다는 소식이 진영 곳곳으로 퍼졌다.
자이라는 하늘에 뜬 채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나가떨어진 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죽었나?”
“죽긴 누가 죽어!”
퍼어엉! 펑!
그때, 뒤에서 다시금 날아오르는 베릭. 마법사처럼 공중에서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운 터라, 다시금 장벽을 딛고 뛰어오른 것이다.
뒤에서 훅 들어오는 공격에 자이라가 기민하게 반응했다.
“날파리! …치고는 애기네?!”
“…미친놈입니까?”
“어린 넘의 새끼가 뭐라는 겨!”
콰지지직! 콰앙!
베릭은 자이라의 보호막에 흑검을 꽂아넣으며 데롱데롱 매달렸다.
아이가 인상을 찌푸린 채 베릭을 쳐다보자, 그는 기름기 잔뜩 묻은 입가를 닦으며 씩 웃었다.
“혼자 왔니?”
“저리 비키세요. 너한테는 볼일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밥 먹는 중이었는데,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지이잉! 지잉!
촤아아악!
“개고생하고 있잖아! 대답 좀 제대로 해라!”
베릭이 마력을 개방하여 자이라의 보호막을 내리찢었다. 아이가 당황하여 물러섰고, 이내 로브 역시 함께 찢겨 후드가 벗겨졌다.
아무리 발각을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이런 소란은 원치 않았다. 자이라는 루스웨나 진영을 힐끔거린 다음 이를 꽉 깨물었다.
“난 상대가 애라도 안 봐준다. 목숨은 서로 한 개씩이니까, 공평하게. 응?”
우측 진영에는 아직 아무런 소란도 들리지 않았다. 마법사의 숙소가 좌측에 있거나, 아니면 사달을 본 마법사가 아예 접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자이라는 재빠르게 진영 안쪽을 살폈다. 불. 불이 왜 지펴졌는지를 알아내는 게 우선이다.
“얌마! 내 말 무시해?!”
“마법부 장관은 어디 있지?”
“이안이? 으응. 시바, 알겠다. 너 죽은 루스웨나 마법사 복수하러 온 거지? 그러면 더더욱 안 돼! 걔 지금 오랜만에 고기 먹는다고!”
콰앙!
피이잉!
“살아는 있나 보구나. 할머니는 그렇게 죽여놓고.”
“할매 죽은 게 왜 이안이 때문이야? 그쪽 왕 때문이지. 너 이안이 앞에서 그딴 소리 지껄이면 진짜 왕꿀밤 대갈빡 딱 들어간다.”
“장관이랑 친해?”
“이게 은근슬쩍 말 놓네.”
채앵! 챙!
퍼어엉!
베릭이 공격을 퍼부을 때마다 자이라는 보호막을 새로이 생성하여 가볍게 막아냈다. 아이는 하찮다는 눈빛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너 죽이면 장관이 여기로 나와?”
“나 죽으면? 나오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래? 잘됐다.”
자이라가 두 손을 맞대었다가 천천히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차가운 냉기가 천천히 몰려들며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생성해냈다.
“…장관 나오라 그래. 물어볼 거 있어.”
“그렇게 만나고 싶었으면 정문으로 오지 그랬냐. 존나 정중하게 절차 밟고. 그러면 만나게 해줬을 텐데, 이렇게 오면 절대 안 보여주지!”
“혹시 바보인가 싶었는데, 진짜 바보 맞네.”
“뭐? 와씨, 오랜만에 덥다. 하하핫!”
장벽 위로 떨어진 베릭이 어이없다는 투로 부채질을 해댔다. 누군가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낯이었으나, 이미 병사들은 창공의 전투에 대피한 지 오래. 편들어줄 사람이 없다.
자이라는 베릭이 웃는 것조차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정보 하나를 흘려주었다.
“바리엘 마법사 한 명, 우리가 데리고 있어.”
“근데?”
근데? 지금 근데라고 되물은 건가?
자이라는 머리에 돌던 피가 싹 굳는 기분이었다. 하필이면 제일 먼저 마주친 게 저런 멍청이라니.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다.
“…말이 안 통하네.”
이안을 만나 물어볼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 게다가 바리엘 마법사를 포로로 데리고 있는 지금, 그와 어떤 방식으로 접촉하든 자이라 자신의 안위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정찰을 가장하여 작은 마찰을 일으키는 것. 이것이 이안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만날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지이잉.
자이라는 손에 쥔 바람을 날카롭게 여며 베릭에게 내던졌다.
하지만 베릭에게 닿기 전, 먼지처럼 흩어지는 공격. 제이럿 대장이었다. 그는 가볍게 착지하여 엉망으로 앉아있는 베릭을 내려다봤다.
“어, 영감. 그 눈빛, 뭐야.”
“눈빛이 왜?”
“날 보는 게 저 애기랑 똑같은 눈빛인데?”
자기가 뭐 날파리를 따니 어쩌니, 신나게 떠들더니만. 꼴을 보아라. 대지에 발을 디딘 자가 어찌하여 창공의 적과 맞설 수 있겠나?
베릭은 흑검을 지팡이 삼아 짚으며 일어났다.
“아, 거참. 나 아직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그 맥심 영감님이랑 차라도 잡수쇼.”
따악!
“아악!”
제이럿은 저도 모르게 황궁에서 했던 것처럼 베릭의 이마를 두들겨 깠다. 타국이라 체면을 지키려 했건만, 당최 협조를 안 해주니, 원.
제이럿은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마검을 불러냈다.
지이잉. 지잉.
“루스웨나의 마법사가 이 시각에 선을 넘어왔으니, 이는 선전포고라 봐도 되겠지. 어린것이라 하여 동정하지는 않을 게다. 그저 너의 운명을 동정하마.”
“누가 누굴 동정해…….”
쉬이익!
타앗!
자이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금 마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일제히 뛰어오르는 자들. 황궁친위대였다. 그들은 흑갑옷을 상대했던 것처럼 360도, 상대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모든 각도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놀란 자이라가 공격 마법을 재빨리 보호막으로 치환하였으나, 이미 아이의 종아리를 따라 누군가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촤아악!
“아아악!”
자이라는 짧게 비명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고, 이내 준비하고 있던 병사들이 이드갈 창으로 아이의 사지를 짓눌렀다. 목 주위로 내다 꽂히는 수많은 검.
채앵! 챙! 챙!
“아, 진짜…….”
일이 꼬였다. 살아서 돌아갈 자신은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장관을 못 만나고 가면 낭패다.
자이라는 보름달만 올려다보며 머리를 굴려댔다. 아까 봤을 때 마검사가 총 열댓 명. 아직까지 마법사들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저쪽 전력은 비상인 게라.
“야, 우냐?”
그때, 자이라의 시야로 거꾸로 된 베릭의 얼굴이 쑥 들어왔다. 베릭은 코를 훌쩍거리며 자이라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죽이죽 웃는 게, 재수 없다.
“안 우는데? 눈이 삐었나…….”
“와씨, 진짜 싸가지 없네! 마! 너 나랑 다시 한판 뜨자! 나 제대로 안 싸웠거든! 확-”
“베릭.”
베릭. 고작 이름 하나 부르는 것인데 그 목소리의 힘이 남달랐다. 뭐랄까. 고요한 새벽, 흘러가는 유리구슬과 같다.
자이라는 고개를 꺾어 소리 난 쪽을 쳐다봤다. 금발의 녹안 미청년이 난간에 기댄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저자다. 아까 낮에 할머니와 대적했던 자.
“이안아!”
“식사 계속하라 한 것치고는 너무 소란스럽더구나.”
“밥 다 먹었어? 고기 남았어?”
“충분히.”
충분히 먹었다는 건지, 아니면 충분히 남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베릭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안이 서 있는 건물로 뛰어갔다.
자이라는 거꾸로 선 이안과 시선이 마주쳤다.
“바리엘 마법부 장관!”
이안이 턱을 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마력을 숨기지 않고 접근하였을 때부터 무언가 목적이 따로 있을 거라 여기긴 하였다. 상대가 어린애라는 걸 알고서는 그저 실수한 것인가 싶었지만 말이다.
하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저런 기백이라, 의중이 따로 있는 게 확실하다.
“바리엘은 황궁에 마법부가 있고, 그 안에서도 전문이 세세하게 나뉜다고 들었다. 태초부터 이어온 깊은 유서와 수많은 마법사들의 연대로 그 발전은 가이아 대륙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 하였지.”
“잘 알고 있구나, 아가. 한데 바리엘을 칭송하기 위해 온 것치고는 너무 무례하다.”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다정한 말투였으나, 음성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제이럿과 마검사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계속해서 자이라를 주시했다. 혹여, 이 아이도 노인처럼 금기의 마법을 쓴다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겠나.
“물어볼 것이 있어 왔다.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이라면 가이아 마법사들의 정상(頂上)이라, 할머니께서 일러주셨거든.”
“물어보는 것은 너의 자유고, 답 또한 나의 자유라.”
“금기의 마법을 쓴 마법사를 구할 방법, 있어?”
이안이 멈칫거렸다.
뒤따라 나온 마법사들 역시 웅성거리며 저게 무슨 개소리인지를 논하였다. 심연에 빠진 마법사를 구하는 법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루스웨나 꼬맹이! 멍청한 소리 마라!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금기의 마법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거 맞지?”
“밑에 있는 자들은 빠져! 난 장관에게 묻고 있어!”
“저저, 되바라진 것 좀 봐. 와, 베릭이랑 똑 닮았네.”
“금기의 마법, 되돌릴 방법 있냐고!”
고개를 거꾸로 치켜든 자이라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이안은 잠시 침묵한 다음 단언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나.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이 심연을 두 번 오가는 것이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없다.”
“없다고? 정말?”
“그래. 없어. 금기의 마법은 그 자체로 진리이자 끝이다. 그걸 되돌릴 방법 같은 건 없다.”
자이라가 결국 눈물을 주르륵 흘려댔다. 그리고 악에 받친 듯 큰 소리로 되물었다.
“진리 같은 건 없다고, 그것이 유일한 진리라고 할머니가 그랬어!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말 없어? 네가 모르는 거 아니고?”
“저, 저게 어딜, 이안 님한테!”
다들 발끈하여 한마디씩 보탰지만, 이안은 여전히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서서 아이를 내려다봤다. 정말 없다고 단언하면 정말 없을 것만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이라는 울부짖으며 흙을 움켜쥐었다.
“있다고 말해! 그러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할머니 구해올 거니까! 어서 있다고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