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돌아오다
천려에서 스스로 전사라 칭하는 자들은 모두 대사막을 내달리고 있었다. 카칸티르를 선봉으로 하여 모래바람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안 역시 후드를 뒤집어쓴 채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베릭은…….
“우헤. 우헤헥.”
“시끄럽다. 입 좀 다물라.”
이안을 호위하는 전사의 뒤에 딱 붙어서 연신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저를 두고 가지 않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짐짝처럼 천에 돌돌 말려서는 끈으로 고정된 상태였지만.
“이안 경. 이거 정말 들고가도 되겠습니까?”
“어쩌겠나. 두고 가면 사고 치겠다 하는데.”
“미친놈. 쉬라고 해도 싫다 하네.”
“그게 쉬는 거냐? 열외당하는 거지!”
베릭은 기적적으로 상체를 일으킬 수는 있었으나, 걷는 것도 버거워했다. 역시 두고 가는 편이 낫겠다며 다 같이 의견을 조율하던 중, 녀석이 폭탄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두고 가면 혀 깨물고 죽어 버리겠다는.
어이가 없지만, 베릭이라면 진짜 할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이건 전투에 참가하는 거냐? 계속 쿠실레 뒤에 매달려서 옮겨 다니기만 하는 거지. 뭐, 화살 날아오면 네가 방패나 좀 해주라.”
“응. 싫어. 내가 봤을 때 이틀이면 이거 나아.”
“대가리가 맛 갔구만.”
“진짜임. 느낌이 와.”
이안은 전사와 떠들어대는 베릭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시 저놈, 마검사 외 숨겨진 비밀이 있으리라. 자연의 기운을 타고났다는 천려족 조차 저 정도의 회복력을 보이진 못했다.
이안은 계속 곁눈질로 베릭을 살폈고, 베릭은 그걸 알아채고서 히죽 웃었다. 기분이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타닥타닥!
“카칸! 바리엘이 보입니다!”
“가자!”
앞서 내달리던 전사 한 명이 소리쳤다. 화친 협약을 맺었던 작은 신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칸의 외침에 일제히 쿠실레 속도를 올렸다.
히이잉!
순식간에 신전을 스쳐, 국경으로 여겨지는 두 개의 바위도 지나쳤다. 베릭은 구룻잎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돌아왔다!”
“좋냐? 베릭?”
“그래! 기분 째져!”
전사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뒤를 힐끔거리던 카칸티르 역시 마찬가지. 그는 쿠실레 고삐를 천천히 잡아당기며 속도를 늦췄다. 수와 만나기로 한 약속지점이었다.
“다들! 여기요!”
“수!”
수의 등장에 다들 반가워하며 다가갔다. 그녀는 동료들과 포옹하는 것도 잠시, 이내 전세를 바로 보고했다.
“브라츠 사병이 꽤 쓸만합니다. 수세가 밀리는데도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잘 막아냈어요. 물론, 그것 외에는 나은 부분이 없는지라 어쩔 수 없이 전세가 기울었지만요. 저택 탈환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갔으면 말 끝난 거 아니겠습니까? 아주 박 터지다 못해 처절하게 싸워댔습니다.”
“데르가는?”
천려족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카칸티르의 분노가 그대로 담겨있는 물음에, 수가 방긋 웃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중앙군이 추격을 멈추지 않았거든요. 저택으로 딱히 들어오는 기별도 없어 보이고.”
“좋다, 수. 합류하도록 하라. 브라츠 안쪽으로 들어간다.”
카칸티르의 지시에 다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점점 더 브라츠의 중심으로 내달렸다. 브라츠를 가로지르는 강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가 사방에 즐비했다.
그뿐이던가.
가을 추수를 앞둔 밭은 반파된 주거지의 잔해로 엉망이었고, 비명과 울음이 한데 섞여 인간이 낼 수 있는 제일 끔찍한 소리가 귀를 찔러댔다. 어디서 들리는 것이라, 짚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아아아악!”
“여기 누가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잠깐만, 잠깐! 도둑이야! 도둑!”
“이 새끼가 돌았나! 내 빵 내놔!”
퍼억! 퍽!
검이 베고 간 자리에서는 인간의 밑바닥이 흘러내렸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발을 밟는 것 따위는 당연하다는 듯, 약자가 약자를 그리고 다시 약자를 누르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보다 더 처참하군.”
“그렇습니까? 저는 딱 생각만큼 처참한 것 같습니다.”
카칸티르의 말에 이안이 대답했다. 수많은 전쟁을 겪었던 이안이었기에, 익숙했으나 여전히 불편했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속 한 부분이라 한들 말이다.
네르사른은 멀리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서로에게 꽤 치명타인 것 같은데요.”
“그래. 아주 완벽하다.”
중앙군과 데르가의 사병. 두 세력이 최대한 궤멸하여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가는 것이 이안과 천려족에게는 최선이었다. 그래야만 천려족의 존재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며, 이안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헉! 저, 저것 봐!”
그때였다. 거리를 수습하던 영지민들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천려족의 행렬을 알아챈 것이었다.
“야만족이다! 야만족이 쳐들어왔다!”
“오, 신이시여! 대체 왜! 왜!”
“다들 도망쳐! 도망쳐!”
“으아아앙!”
다들 아이를 품에 안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질겁한 채 기도만 올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군과의 전투로 이미 초토화가 된 상태다. 엎친 데 덮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않나. 야만족까지 가세하면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 이때다 싶어서 쳐들어왔지? 짐승 같은 놈들아! 꺼져! 꺼지라고!”
“여보! 그러지 말아요! 제발!”
“그래, 죽여라! 다 죽여! 죽이고 신 앞에서 심판받아 보자! 죽여어어어!”
“천려족이 쳐들어왔다! 천려족이다!”
“저 새끼들은 은행도 털 새끼들이야, 어서, 어서 계속 달려! 달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카칸티르의 표정은 덤덤했으나, 전사들은 자못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도와주러 온 것은 아니지만, 말마따나 습격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들은 아주 천천히 쿠실레를 몰고 저택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으아앙!”
쿵!
내달리던 영지민들 사이로, 한 아이가 넘어졌다. 손을 놓친 부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카칸티르는 쿠실레를 멈추고서 아이를 내려다봤다.
“흐윽…….”
올망졸망한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아이가 입을 꾹 다물며 달달 떠는 동안에도, 카칸티르는 말없이 아이를 내려다볼 뿐이다. 도망치던 영지민들 역시 멀찌감치 떨어져 그 상황을 지켜봤다.
“앞에 아이가 있다. 쿠실레를 잘 몰아라.”
“예. 카칸.”
타닥타닥.
일으켜주거나, 몸 상태를 묻는 자상함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뒤쪽의 일행에게 지시하여 그 작은 아이를 바위라도 되는 마냥 갈라져서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고개만 쳐든 채 놀라서 굳어버렸다.
“자. 일어나거라. 바닥이 차다.”
이안은 지나가면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후드 속 보이는 얼굴은 천려족이 아닌, 익숙한 금발과 녹안이다. 아이는 꼬질꼬질한 손으로 저도 모르게 이안을 붙잡았다.
“착하구나.”
이안은 아이를 안은 채 천천히 쿠실레를 몰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영지민에게 손짓했다.
“와서 아이를 데려가시오. 부모가 거기 있는가?”
“저, 저, 저요! 제가 아비입니다!”
“아비 된 자가 게 서서 무엇 하나.”
이안의 부름에 한 사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달려왔다. 그리고 움찔거리며 아이를 건네받았다. 살짝 걷힌 후드 속 모습이 익숙하다.
“…이안 님?”
“나를 아는가?”
“저, 저 마구간지기입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아아. 그래. 자네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낯이 익다. 자잘한 상처는 차치하고서라도 워낙에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쓴 터라,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이안은 마구지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오랜만일세. 살아있어 다행이야.”
“…어, 어찌 된 일입니까?”
“나중에. 지금은 좀 바빠서. 다만 천려족은 브라츠를 도우러 온 것이니 너무 두려워 말고, 이웃들에게도 전해주게나. 그럼, 몸조심하게.”
고개를 돌려보니, 앞서가던 천려족들이 모두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묶인 채 매달려 있는 베릭까지. 이안은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쿠실레를 몰았다.
“이, 이봐. 뭐라던가?”
“아는 놈이야?”
천려족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들 마구간지기에게 달려와 한마디씩 물었다. 앞으로 저들의 운명은, 이 고향은 어찌 되는 것인지 궁금해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이안… 님인데?”
“이안? 백작님 서자 말이야?”
“천려족에 팔려갔… 어?! 그렇네! 사막 넘어갔네!”
“서자가 뭐라던가? 응? 무어라 길게 말하더만.”
다들 잊고 있었던 서자의 존재를 깨닫고 탄성을 내질렀다. 마구간지기는 제 자식을 꼭 끌어안으며 사라진 이안의 뒤를 눈으로 좇았다. 대사막으로 건너기 전, 마치 미래를 아는 것처럼 저택 일을 그만두라, 해나에게 이르지 않았나.
‘꼭 그것 때문에 관둔 건 아니지만은…….’
어쨌거나 저택을 나온 자들은 대부분 화를 면했고, 남았던 자들은 조사단에 의해 죽고 말았다.
백작 부인과 영식조차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용인들의 실낱같은 목숨은 하찮다 못해 땅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으니.
“그, 천려족이 도와줄 것이라고… 했네.”
“천려족이 도와?”
“무슨…….”
영지민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아무도 대놓고 반박하는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현실이 그만큼 절망적이어서 그러했다.
조국인 바리엘과 가주인 데르가가 싸우는 이 상황 속에서, 그들을 말려줄 만한 세력이 또 어디 있던가?
“비켜라. 그대들에게는 볼일이 없다.”
“달려, 계속 앞으로!”
“야만족이다! 야만족 놈들이 쳐들어왔어!”
“아, 거 새끼들 자꾸 야만족, 야만족 이 지랄. 저것만 죽이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꺄아아악! 짐승족들이다! 살려주세요!”
“닥쳐. 무구룬. 한눈팔지 마라.”
“저택이 앞에 보입니다!”
한편, 계속해서 마을을 가로지르던 천려족은 드디어 브라츠 저택에 당도했다. 가문의 깃발 대신 그을린 조사단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누가 전투의 승자인지를 여실히 알려주는 모습이다.
히이잉!
카칸티르가 쿠실레의 목줄을 잡아당겨 완전히 멈췄다. 저택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창을 들이밀었다. 투구와 갑옷에는 피가 낭자했고, 사지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누, 누구냐!”
“변방의 야만족인가! 여기까진 어떻게 왔지?”
처억!
절뚝이며 소리치는 모습이 퍽 안쓰럽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전사 한 명이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오려 하자, 이안이 막아섰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시선을 보이며 한발 앞장섰다.
“나는 브라츠 백작의 서자, 이안이다. 이쪽은 위대한 사막의 전사들, 천려족일세. 대항하러 온 것이 아니니, 그대들의 주인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려라.”
병사들이 이안의 금발과 녹안을 보고 멈칫거렸다. 확실히 저 용모는 바리엘의 사람이다. 그들의 시선은 이안 뒤에 단단히 버티고 있는 전사들에게 향했다.
대자연의 기백을 그대로 담은 자들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포식자의 아우라가 날것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병사들은 주춤거리며 중얼거렸다.
“…자, 잠깐 기, 기다리시오.”
물러나라 하면 당장이라도 제 머리통을 손으로 으깰 것 같으니. 병사는 더듬거리며 뒷걸음질 쳤고, 이내 보고하기 위해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남은 그의 동료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검을 잡았다.
히이잉!
비록 쿠실레의 울음소리에도 움찔거리며, 식은땀을 흘려댔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