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0
제400화. 효시
베릭은 탁자에 턱을 괴고 보글거리는 액체를 쳐다봤다. 그를 주목하는 다른 마법사들. 아무리 보아도 먹을 게 못 되는데, 저걸 먹겠다고?
몇몇은 심각하게 말리는 게 좋지 않겠냐며, 옆 사람에게 속닥거렸다. 기록용 문서를 든 채 방긋 웃고 있는 아코렐라 눈치를 보느라 크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먹는다? 이안아, 나 먹는다?”
“그래, 우리 똥강아지 베릭. 먹어 봐. 두 번에 나눠서 음용할 건데, 처음에는 미각에 집중해서 맛을 표현해주고, 나아가 신체적인 이상 반응 그리고 변화 등을 기록하기 위해서 한 시간마다-”
“그런 거 몰라. 귀찮아.”
아코렐라가 흥분하여 종이를 휙휙 넘겨대고 있는데, 베릭이 그걸 무시하고 한입에 음료를 털어 넣었다.
마법사들은 기겁하며 이안 곁으로 옹기종기 모였고, 이안은 걱정스럽게 눈썹을 까딱였다.
“꺼억.”
“개새끼! 하여간 말귀 알아듣는 법이 없지! 두 번에 나눠 먹으라고 방금 말했어, 안 했어?”
“음. 맛있다.”
“…맛있어? 어떻게? 구체적으로.”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하지, 뭐라 그래. 걍 맛있음.”
꽈득. 아코렐라가 웃는 낯으로 펜대를 부러트렸다. 용감한 실험자라 좋긴 한데, 그만큼 무식해서 연구에 도움 되질 않는다.
베릭은 입가를 스윽 닦아내며 제 몸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를 살폈다.
“베릭, 괜찮아?”
마법사의 물음에 베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시원한 음료를 마신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코렐라를 쳐다봤다.
“이거 실패작 아닌가? 반응이 없는데, 반응이.”
“부작용이 정신이상인가? 감히 위대한 아코렐라 님 작품에 실패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네. 베릭. 이리 와봐. 속에 든 거 게워내 줄게.”
이안은 아코렐라의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겼다. 수없이 나열된 재료와 꼼꼼하게 작성된 제조 과정. 아무래도 전문가의 영역인지라 이안이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도, 이전의 증폭제 보고서와 비교하여 몇 가지 특이 사항은 알아챌 수 있었다.
“아코렐라. 여기 괄호 안에 있는 것들이 대체재인가? 다섯 가지나 새로이 들어갔는데, 그중 러들클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러들클은 마물 혈에서 발견되는 물질인데요, 아직 연구가 제대로 되지는 않았으나, 증폭제에 사용되었던 바이타이롤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걸 클리포포드 왕궁 연구원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물 피가 들어가 있다? 여기에?”
“네.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아코렐라가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그러니까, 전투 후 잘라 온 합성 마물에서 겨우겨우 짜낸 썩은 피라는 말이다.
마법사들이 아연실색하며 반발했고, 베릭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코만 훌쩍거렸다.
“미쳤죠? 그 썩은 피를 섞어서 만들었다고요?”
“이것들이, 지금 다 뒈져가고 앞으로도 뒈져갈 건데. 가릴 처지가 돼? 효과 있으면 흙이라도 퍼먹을 생각 해야지. 쯧쯧. 나 때는 말이야, 어!?”
“이안 님. 제발 혼 좀 내주십시오. 아코렐라 대장, 저러다가 진짜 큰일 치릅니다. 아니, 우리가 큰일 치릅니다.”
“이미 베릭이 치렀어. 이제 뒤졌다. 저거.”
“베릭. 지금 말하는 거지만, 나 너 좋아했다. 네 개 같은 면이 개같았지만, 그래도 나름 좋았어. 잘 가라. 응.”
“꺼어어억.”
이안과 시선을 마주한 베릭이 트림을 시원하게 해댔다. 마물의 피를 직접 마신 것이라. 베릭이 아탄족이라는 걸 모르는 마법사들은 그저 썩은 피 마신 것에 그를 동정하며 껴안을 뿐이었다.
“왜들 이래. 쉬운 말로 좀 해봐.”
“아까 네가 뽀뽀한 거. 그거 피, 지금 마셨다고.”
베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코렐라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가 반으로 부러진 펜을 들고 눈을 반짝였다.
“왜? 반응이 와? 어때? 배가 아프지는 않아? 속은? 아주 작은 거라도 괜찮으니까 주절거려 봐.”
“이. 이, 또라이가! 너 진짜 나랑 한판 뜨자!”
“오, 좋지! 증폭제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한번 보자. 덤벼.”
지이잉. 지잉.
베릭과 아코렐라가 동시에 마력을 개방하려 하자, 마법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두 사람을 말렸다.
순식간에 개판 아닌 개판으로 변해버린 회의실. 문이 열렸고, 노아 왕자가 놀란 채로 굳어 그 모습만 바라봤다.
끼이익.
“아.”
“드, 들어오십시오, 왕자님!”
“그, 너무 소란스러웠나요? 하하핫! 핫!”
“이리 와, 감히 나한테 그런 걸 먹여!”
“지가 처먹겠다 해놓고 왜 나보고 난리?”
“둘 다 조용히 좀! 왕자님 왔어!”
“타도 아코렐라!”
“저 새끼 저거, 타도라는 말 모르면서 쓰네.”
“모르긴 왜 몰라? 죽여버린다는 뜻이지!”
“어허어허! 쉿! 조용!”
마법사들이 베릭과 아코렐라를 끝과 끝으로 떨어트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사이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왕자.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낯이었다. 하지만 뭐,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고 별로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이안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스윽.
“무엇입니까?”
“버고스와 루스웨나로 보낼 전서. 마법사들의 안위 확인 및 포로 교환에 대한 협정서일세. 트웰러 장관과 제이럿 대장의 도움을 받았으니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이안 경도 미리 내용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노아는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사실상 바리엘의 노익장 둘이 개입하여 작성한 것이라, 문제가 되어도 클리포포드에서는 일정 부분 책임 회피가 가능했다. 그걸 시사하기 위해, 그리고 부작용 탓으로 한껏 예민해져 있는 이안을 달래기 위해 직접 종이를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이안만 마지막으로 허락한다면, 당장 전령을 보내 접촉을 시도할 터였다. 바리엘 장관께서 으름장을 놓지 않았나? 단 하루 안에 마법사들을 모두 제 앞에 데려다 놓으라며.
“…….”
이안의 눈빛이 조금 차가워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나 싶었는데, 다시금 아까와 같이 냉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마법사들은 서로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바리엘 외, 타국과 대면하면 계속 저러실 것 같으니, 당분간은 자신들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노라고.
“내용은 문제없습니다.”
“그럼 바로 전령을 보내도록-”
“하지만 이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안은 손끝으로 종이 끝을 툭툭 두드렸다.
“다몬과 에리포니를 아시지 않나요? 마법사의 생존 확인 여부를 묻는 이 행위 하나만으로 그들에게는 많은 정보를 내어주게 됩니다.”
루스웨나는 한 명 데리고 있다 하니 차치하고, 버고스 측에서는 몇 명을 데리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다. 혹여 그쪽에 포로가 없다면, 그 행방을 묻는 것 자체가 그들의 카드가 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속여 협상이나 속임수를 끌어낼 수도 있고, 무엇보다 클리포포드와 바리엘 간의 동맹 균열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게다.
다몬과 에리포니는 그런 자들이었다. 단순히 글자만 읽어내리는 게 아니라, 그 아래에서 흐르는 정세를 읽는 자들.
노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면 어찌하라는 것인가? 이것과 함께 우리는 정찰병에 마검사를 포함하여 장벽 인근을 수색할 예정이네. 그걸 원하지 않는가?”
마법사 구해오라고 해서, 클리포포드 측에서는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리 초를 쳐? 이안은 고개를 기울이며 까딱거렸다.
“아니요. 하십시오. 그것이 클리포포드의 최선이라면 말이지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트웰러와 제이럿이 서신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여 책임에 저희의 몫이 있지는 않음을 짚는 겁니다. 이는 클리포포드에서 보내는 전서지요.”
그러니까 책임 전가 따위 생각지도 말라. 얕은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전쟁에 있어 클리포포드가 모든 걸 내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리엘과 별개의 일이다. 바리엘에 문제가 생기면, 그에 대해 고스란히 책임을 묻겠노라. 일종의 경고였다.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이것이 과연 최선인지 자신할 수 있겠나. 한 번 던진 주사위에 작은 수가 그어져도, 이를 극복할 수 있겠나.
서늘한 이안의 충고에 노아가 종이를 거두었다.
“걱정하지 마시게. 이게 나의 최선이니, 곧 클리포포드의 최선이다.”
“그러하면 다행입니다.”
“곧 있으면 해가 뜬다. 그, 다들 그러지 말고 휴식을 좀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상황이 조금 애매하더라도, 마법사들은 클리포포드의 지원군 중 핵심이었다. 저런 식으로 체력을 낭비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다음 전투를 대비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지만 그 말에, 베릭은 자신이 뭘 마셨는지 상기하게 됐고, 다시 아코렐라에게 덤벼들었다.
“타도! 타도!”
“멍청아! 왕자님 앞에서는 그런 단어 쓰면 안 돼!”
“어디서 주워들은 거래? 미치겠네.”
끼이익.
다행히 노아는 별말 않고 회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전령에게 종이를 건네주며, 엄히 명했다.
“버고스와 루스웨나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으면 그리하라.”
“예. 왕자님.”
진영에 들어선 전령을 해하지 않는 것은 전쟁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조건 없는 복수와 분노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면, 서로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조율하는 게 거시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두 전령은 각각 클리포포드의 깃발을 등에 매달고 장벽 밖으로 내달렸다. 앞쪽으로 직진하는 자와, 오른쪽으로 치우쳐 멀어지는 뒷모습. 노아는 부디 좋은 소식이 되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숨 쉬었다.
“왕자님. 저 아이는 어찌합니까?”
클리포포드 진영 가운데, 떡하니 누워 잠들어있는 자이라. 울고불고 온갖 지랄 발광을 다 하더니, 제풀에 꺾여 잠들었다. 사실상 기절했다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노아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경도 쓰지 말라. 바리엘 마법부의 소관이다.”
“예. 알겠습니다.”
“왕자님. 여명이 틉니다. 장벽 앞, 시체 수색을 나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제이럿 황궁친위대 대장께서 마검사들을 차출해주셨습니다. 4인 1조로 숲 일대를 돌아보겠습니다.”
노아가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설마 여태까지 접촉이 없었을까. 있었다면 그 흔적이라도 찾아내서 행동반경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노아가 작전 시행 명령을 내리자, 다시금 장벽 문이 열렸다. 깜깜했던 밤이 가고, 어스름한 기운이 물씬 내려앉은 사위.
병사들은 무장한 채 시체 밭을 천천히 거닐며 자국민을 가려냈고, 개중에서 또 마법사가 있는지를 면밀히 살폈다.
타닥타닥!
히이잉!
이어서,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퍼져가는 정찰대. 각자 좌측과 우측으로 틀어 적군의 진영 및 행동반경을 확인하고자 나섰다.
까아악, 배를 채우지 못한 까마귀들이 크게 울며 날아올랐다.
* * *
노아가 보낸 전령이 되돌아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벽 위에서 지켜보던 병사가 종을 울리며 전령의 귀환을 맞이했다.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선 병사는 장벽 안의 땅을 밟자마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왜 이리 금방 왔어? 답신은?”
“하아, 답신. 예. 그, 받아왔습니다. 왕자님은 어디 계십니까?”
“작전실에 계시지.”
문지기 병사는 의아한 얼굴로 전령을 살폈다. 갈 때는 없었던 봇짐이 그의 뒤에 들려있었다. 슬쩍 만져보니, 꽤 큼직한 상자다.
“이게 뭔데?”
“버고스 측의 답신이요.”
“나 참, 대체…….”
뭔가 불안했다. 문지기는 루스웨나 측으로 망원경을 돌려보았으나, 그쪽에서는 아직 돌아오는 기척이 없다.
저것이 정상 아닌가. 중요한 전언이 갔으면 지도자를 비롯하여 아랫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그에 맞는 답신을 적어 보내는 것.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게 마땅하건만, 버고스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자만 내어주고 전령을 되돌려 보냈다.
똑똑.
“왕자님. 버고스로 갔던 전령이 돌아왔습니다.”
“뭐? 벌써?”
“예. 저, 송구하오나 안쪽까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다몬 왕의 답신이라. 왕자님과 이안 님이 직접 보면 좋겠다 하던데요.”
노아 왕자는 상자를 감싼 천을 풀어 헤쳤고, 이내 그것이 피로 잔뜩 절은 다섯 벌의 바리엘 마법사 로브라는 걸 알아챘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져 왔다.
그리고-
“대체 무엇이…….”
굳게 닫혀있는 상자.
장군들이 마른 입술을 짓이기며 제안했다.
“제가 열어보겠습니다. 왕자님.”
스윽.
장군이 천천히 상자 뚜껑을 열어젖혔다.
안에는 사람의 머리가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