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1
제401화. 눈을 감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적요한 밤.
다몬은 피곤한 기색으로 이마를 짚었다. 에리포니는 뱀 같은 자라, 언제 아킬레스건이 물릴지 모른다는 자세로 대하는 게 현명했다. 하여, 그 짧은 만남에도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안보다는 그래도 덜하지만.
다몬이 탁자 위를 뒤적거리며 궐련을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전하.”
적요를 깨고 익숙지 않은 음성이 그를 불렀다.
다몬은 이럴 때면 언제나 티모시를 떠올렸는데, 저 자리에서 자신을 불렀던 건 언제나 그였기 때문이다. 망명을 빙자하여 도망간 놈이, 감히 제 삶에 흔적을 남기다니. 다몬은 미간을 찌푸리며 궐련에 불을 붙였다.
“사령술사들이 보고를 하고자 합니다.”
“들어라.”
스윽.
다몬의 허락 아래, 천막이 젖혀졌다.
북쪽에서 온 자들의 생김새는 참으로 개성 있었다. 누군가는 큰 눈에, 누군가는 유독 도드라지는 이마 그리고 또 누군가는 체격부터가 타 부족임을 알리고 있었으니.
이번 전쟁에 동원된 북쪽의 계승자들이 일렬로 왕 앞에 섰다.
“그래. 수확은?”
“송구합니다. 전하. 아무리 해도 마법사의 시체는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후우, 다몬은 심기가 어지럽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사령술사 중 그나마 제일 세력이 큰 자가 고개를 숙인 채 덧붙였다.
“다른 시체들과 같이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만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마력 운용은 감히 저희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아예 발동 자체가 걸리지 않아 이번 전쟁에서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혹 시체를 저희에게 양도해주신다면, 연구를 통하여 마법사 조종법을 반드시-”
“아니요. 저희 부족으로 주십시오. 버고스에서 제일 가까우니 부패의 정도가 제일 덜할 때 연구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날이 더워지지 않습니까?”
“마법사들 중 한 명을 제 합성 마물이 잡아냈습니다. 공로로 치는 것이 마땅하지, 거리로 따지는 건 옳지 않습니다.”
“공로? 말 잘 하셨소. 우익에 있을 때 마검사 하나 못 잡아서 완전 난리 났더구만. 그런 꼴을 당하고도 공로라는 말을 꺼내시오?”
“지금 뭐라 했소?”
콰앙!
사령술사들의 언성이 높아지자, 다몬이 짜증스럽게 탁자를 내려쳤다. 안 그래도 계획에 차질 아닌 차질이 생겨나 고민스러운 이때, 고작 마법사 시체 하나 갖겠다고 저 난리들이라니.
다몬이 궐련을 질겅거리자, 사령술사들이 일동 침묵했다.
“시체는 차치하고, 다른 마법사들은?”
“숨 붙어있습니다. 군의관이 치료 중이고요.”
“마력이 필요할 것 같은가? 루스웨나 측에서 마법사를 빌려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숨은 붙어있는 쪽이 좋으니, 살아있는 것들은 우선 살려두도록 하라.”
“예예. 여부 없습니다.”
“그, 전하.”
그때, 사령술사 한 명이 슬쩍 말을 보탰다. 아스타나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부족 출신이었다. 하샤가 배반하여 클리포포드 쪽으로 돌아갔으니, 그에 맞는 합당한 응징이 필요할 터. 그걸 자신의 부족이 앞장서서 해낸다면 그 일대의 패권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와 마찬가지.
“아스타나 처단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혹 따로 생각해두신 바가 없다면 저희가 버고스의 이름을 대신하여 아스타나인 모두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치익.
보아라. 하나부터 열까지 거슬리는 것투성이다. 다몬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연기를 불어댔고, 잠시 침묵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스타나. 그래. 그쪽에도 어떠한 처단을 가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시 중에 전력을 나눌 수는 없는 노릇.
톡톡, 다몬 왕은 손끝을 튕기더니 안주머니에서 작은 팬던트를 꺼냈다.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손때가 잔뜩 탄 녹슨 것이었다.
딸깍.
그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이드갈.
전쟁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조금 밝아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 발화를 견디지 못하여 부서질 정도의 마력 흐름이 필요했다. 그것이 없으면 대지진이 일어나더라도 균열을 일으킬 수는 없을 터.
다몬이 손끝으로 팬던트를 매만지는 순간이었다.
“전하. 클리포포드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클리포포드에서 먼저 연락이 들어왔다. 사령술사 모두 서로를 쳐다봤으며, 다몬은 고개를 꺾은 채로 생각했다. 전령이라?
“서신만 들이되, 전령은 밖에서 대기시켜라. 그리고 장군들도 불러와.”
“예. 전하.”
다몬은 하늘에서 떨어지던 마법사들을 기억해냈다. 필시 클리포포드의 전언에는 마법사의 안위가 적혀있을 터.
예상이 맞는다면, 바리엘은 클리포포드와의 동맹보다 마법사의 안위를 더 우위로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현명하고, 당연한 처사였으니까.
당장 곤란한 것은 클리포포드다. 아직 바리엘 지원군이 오지 않은 지금, 마법사들이 힘을 거둔다면 저들은 바람 앞의 등불이라.
‘이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게 제일 변수인데.’
“전하. 장군들이 도착했습니다.”
“서신을 올리겠나이다.”
다몬이 눈짓하자, 장군 하나가 힘 있는 글씨체를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장 클리포포드에서 나갈 것. 피해 비용을 보상할 것. 이어서 마법사들을 데리고 있다면 되돌려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그렇지 않다면 응징하겠노라는 게 주된 주장이었다.
왕의 천막에 모인 자들은 글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거렸다.
“전하. 아무래도 클리포포드와 바리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 해석하셨나요? 저는 되려 문제가 없다 여겨집니다. 마법사들은 바리엘 소속이니, 혹 그들에게 해를 가했다가는 클리포포드가 나서겠다는 뜻으로 들려서요.”
“그게 그거지요. 클리포포드가 왜 나서겠습니까? 나서지 않으면 바리엘을 붙잡을 수 없으니 나서는 것입니다. 전하. 잘 되었습니다. 이쪽에 마법사가 있음을 알리시고, 협상을 이끄시지요.”
“바리엘이 클리포포드가 아닌 마법사의 안위를 선택한 것이라면, 좀 강하게 나가도 되겠습니다. 바리엘이 중립국으로 돌아서지 않을 시, 모두 죽이겠다고요.”
“너무 자극적입니다. 그건 아니 될 말이에요.”
장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대충 결은 비슷한 것이, 바리엘에서 마법사들의 귀환을 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게다.
다몬은 서신의 필체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노아 왕자가 직접 쓴 것은 맞는데, 내용이 어색하다.”
“내용이 어색하다니요?”
“단어를 사용하는 감에 바리엘 공용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 마법사의 안위가 걸려있는 만큼 바리엘과 합의하에 작성하였을 터.”
“그렇다면 저쪽 동맹에는 문제가 없다 여기시는지요?”
“아직까지는 크게. 하지만 앞으로는 모르지. 이렇게 전언을 먼저 보내면서까지 묻고 있잖은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클리포포드의 대지가 바싹 말라가는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다몬이 피식 웃으며 서신을 탁상에 던졌다. 그러곤 사령술사들에게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대답하라.”
“아, 예. 전하.”
“마법사의 시체를 정녕 사용할 수 없겠나?”
“예. 저희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래.”
할 수 없다. 다몬은 그들의 한계를 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포니는 쟝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동맹의 뜻으로 마법사의 로브를 넘겨주었다. 이는 바리엘과 클리포포드를 속이는데 요긴한 수가 될 터였다.
“상자를 준비하라.”
“상자요?”
“이쪽 것과 합하여 모두 다섯 벌의 로브에 피를 잔뜩 먹여 담고-”
에리포니에게도 이 상황을 알리는 게 좋겠다. 아마 클리포포드의 전령은 루스웨나에게도 갔을 테니까.
“죽은 마법사의 머리를 잘라 함께 보내라.”
전쟁은 이제 시작이요, 너희가 바라는 마법사의 무사 귀환은 없을 것이라. 신과 가깝다 여겨지는 그 대단한 마법사가 버고스의 검에 의해 죽었다. 마법이 감히 버고스의 위대한 발걸음을 막을 수 있겠는가? 클리포포드와 바리엘은 동요하여 서로를 흘겨보라. 이 모든 의미가 함축된 답신이다.
장군 중 한 명이 시체 머리를 자르기 위해 천막 밖으로 나갔고, 이어서 피에 흠뻑 젖은 채 로브 다섯 벌을 가져왔다.
굳이 다른 피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죽은 제 동료의 것으로 충분히 적실 수 있었으니까.
* * *
“하, 이거-”
클리포포드 장군들이 이마를 쥐어 싼 채 중얼거렸다. 큰일 났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정황상 마법사의 머리인 게 분명했다.
사모보가 노아의 팔을 붙잡으며 뚜껑을 닫았다.
“왕자님. 이거, 이안 경 보여주면 안 됩니다.”
“예. 큰일 납니다. 마법사들 무사 귀환 명한 지 고작 몇 시간 지났습니다. 이제 막 해가 뜨고 있다고요. 그런데 버고스 측에서 이런 도발을 해왔다? 부작용으로 그 행보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우선 바리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그때까지만 시간을 벌어봅시다. 전장으로 들여놓고 보는 겁니다.”
원래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하지 않던가. 마법사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바리엘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그들은 별다른 여부없이 전쟁에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마법사의 죽음이 밝혀지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상의할 일.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 이안의 부작용이 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노아는 쉽사리 결정 내리지 못했다.
“젠장, 젠장!”
이안과 마법부의 유대를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혹여 지금 숨겼다가 나중에 들통이라도 나면, 그 뒷감당을 수습할 수 있을까? 고뇌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모면 혹은 감내. 회피 혹은 감당. 클리포포드의 미래가 달린 갈림길이었다.
장군들은 걱정스레 노아를 지켜봤고, 그는 연신 테이블 끄트머리를 붙잡은 채 침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노아가 결정을 내렸다.
“이안 경을 데려와.”
“왕자님!”
“데려와!”
몇몇 장군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려 하자, 노아가 일갈했다. 흔들리게 하지 말라고. 자신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고. 미래의 자신이 아둔한 선택이라 욕하여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노아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은 숨김없이 동맹에 충실하는 것.
사모보가 한숨을 내뱉으며 대표하여 작전실을 나섰다.
“저는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이봐, 왕자님 결정이다. 토 달지 마라.”
“왕자님. 저는 지지합니다. 옳으신 선택이라 믿습니다. 속이려 들었다간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어요.”
끝없이 의견이 갈리는 와중, 이안이 도착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이안은 작전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고, 이내 위에 피에 젖은 로브를 발견했다.
“…….”
그는 말 없이 가까이 다가와 로브를 집어 들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크기가 달랐고, 소매가 닳은 정도도 달랐으며, 각자의 생활 습관이 그대로 묻어있는 마법사의 옷이다. 이안이 옷을 들어 올리자 그 끝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안의 목소리가 낮았다. 서늘하면서도 그 감정이 꾹꾹 눌려있는 말투인지라,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버고스의 답신일세.”
“…다섯 벌.”
쟝은 루스웨나에 있거늘, 다섯 벌이라? 이안은 담담하게 옷을 다시 개어 올려두었다.
그의 시선이 상자로 닿았다. 노아는 경고한다는 듯이 그 윗부분을 손으로 가렸다.
“상자를 여십시오.”
“이안 경. 사람의 머리가 들어있네.”
“…여십시오.”
달각.
노아가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이안은 단번에 시체의 신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라진 다섯 명 중 한 명인 셀레나였다.
아득히 먼 저 세계를 보고 있는 것처럼, 텅 빈 동공이 그대로다. 엉망인 머리칼, 피부 곳곳에 나 있는 상처.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잘려있는 목.
꽈악.
이안은 상자를 붙든 채 몸을 앞으로 숙였다. 속에서 뜨겁고, 차가우며, 가시를 잔뜩 박은 무언가가 치솟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각하지 못한 채 다시금 눈물을 흘렸다. 그의 턱을 따라 눈물방울이 떨어졌고, 엉망이 된 탁자의 핏물에 스며들었다.
“이안 경. 괘, 괜찮은가?”
노아가 걱정스레 불렀으나, 이안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히 셀레나의 눈을 손수 감겨줄 뿐이다.
길고 흰 손끝이 차가운 시체의 눈두덩이를 지나며 안식을 기원했다. 저 먼 세상, 가는 길 어렵지 않게 이쪽 세상의 빛은 그만 보라며.
“…습니다.”
이안은 눈감은 부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짐하고, 새기고, 또 선언하는 듯한 말투였다.
“다몬의 목숨은 제가 갖겠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다몬은 죽어도 눈 감지 못할 것이며, 그 육신을 온 세상 모든 것들 발치 아래 갈가리 찢어둘 것입니다. 그러니, 클리포포드에서는 다몬에 대해 눈독 들이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