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3
제403화. 에리포니에게 쏜 화살
“너 입조심해라. 이안이 지금 빡돌았으니까.”
베릭이 문을 열어주며 자이라에게 경고했다.
아이는 샐쭉한 시선으로 묶인 두 손을 들어 올렸고, 이내 보란 듯이 턱을 빳빳하게 쳐들었다. 마력봉인석으로 결박당한 손목. 바보가 아닌 이상 입조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너나 잘하라는 무언의 대답이었다. 베릭은 그걸 알아듣지 못한 것 같지만, 아무튼.
끼이익.
문이 열리자, 이안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나뉜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아이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는데, 아까 밤에 보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보다 적대적이고, 예민하며, 날 선 느낌. 그러는 와중에도 비장함이 물씬 풍기고 있었으니.
“이안 님. 루스웨나 마법사 들었습니다.”
낮에 그렇게 치고받던 앙금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버고스에서 동료의 목을 잘라 보내왔다. 버고스와 동맹 맺은 루스웨나가 덩달아 가시 박힌 시선을 받는 건 당연했다.
자이라는 주춤주춤 앞으로 들어섰고, 이내 창가에 앉은 이안 앞에 무릎 꿇었다. 이안은 자이라를 보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싸늘한 시선에 아이는 조심스레 엎드리며 예를 갖췄다.
“이안 히엘로 장관님.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루스웨나 마법사, 자이라입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격을 갖추라, 자이라는 이안의 명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안의 시선이 곱게 모인 아이의 손끝으로 내려갔다. 자그마한 떨림도 없다. 앞으로 아이가 무엇을 제안하든, 그것과는 별개로 기백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할 듯싶다. 이런 상황에서 떨지 않는다는 건, 그 그릇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뜻했으니.
“그래. 자이라. 고할 것이 있다 전해 들었다.”
“이안 님과 단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거절한다. 앞으로의 모든 작전과 시행은 마법부 전체가 하나와 같이 움직일 것이니, 그대의 언질 또한 모두가 함께 들을 것이다.”
이안은 자신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니, 그 결단에 대하여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한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이라의 전언 또한 함께 나눌 수밖에.
자이라는 입술을 짓이기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밤새 생각하고 곱씹은 것을 조심스레 내뱉었다.
“저는 솔직히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상관없습니다. 마법사들이, 그러니까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성하고, 왕궁에 남아있는 가족들 또한 무사하다면 말이지요.”
“왕궁에 많은 자들이 묶여있나?”
“제 동생을 비롯하여 피가 섞였다 싶은 자들은 모조리 잡혀있습니다. 처음에는 마법사들의 출전 축하식이라 하여 초대받았는데, 그저 환대받는다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리 나와보니, 아닌 것을 알았지요.”
왕궁을 나설 때만 해도 행복했다. 그들이 전쟁터에 나감으로써 가족들은 왕궁에서 호의호식 편안한 나날을 보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허울 좋은 껍데기를 뒤집어쓴 결박과 다름 없었다.
자이라는 부탁하듯 다시금 허리를 납작 숙였다.
“제가 돌아가지 않으면 왕궁의 동생이 죽습니다.”
“안타깝구나.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분명 너 혼자 오지는 않았을 터인데, 나머지 정찰 마법사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아. 이는 우리 쪽의 정보가 루스웨나로 새어나갔다는 걸 의미하지.”
“…루스웨나에서 저를 원한다면 돌려보내 주십시오.”
“쟝과 맞바꿀 생각은 있다. 그런데 어쩌지? 너희 왕께서 너무 바쁜 나머지 아직도 소식이 없구나. 속으로 기도하거라. 혹여 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너를 쟝의 길라잡이로 삼을 것이다.”
꽈악.
자이라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꾹 눌렀다.
루스웨나에서 응답이 늦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믿음이 있었다. 정찰 마법사가 돌아갔다면 자신이 잡혀있는 것 또한 전해졌을 터.
그렇다면 함께한 마법사 동료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어떻게 해서든 왕께 부탁하여 자신을 구하고자 할 것이다. 시간문제이지, 그것을 벗어난 다른 문제는 없을 게다. 분명히.
“…전쟁은 제 관심 밖의 일이지만, 금기의 마법은 제 인생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도와주신다면 제 한평생을 바쳐 금기의 마법 풀 방도를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아까 패악 부리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구나. 사람 속은 알 길이 없으니, 내 지금은 되려 불신한다.”
뭘 믿고 이쪽으로 받아줄까?
이안은 에리포니와 관련된 사안을 쉽게 말할 수 있게끔 물꼬를 틀어주었다. 자이라는 똑똑한 아이였다. 이안이 내민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덥석 잡았다. 우선 한쪽만.
“제가 에리포니 전하에게 마법을 걸었습니다.”
“그래? 어떤?”
“그 전에, 먼저 약조해주십시오. 일이 어찌 되든, 저는 우선 루스웨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법사들과 가족을 받아주겠다던 이안 님의 말씀을 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루스웨나에 있는 거주지에 이제껏 연구하고 쌓아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가져와야 해요.”
연구 결과들? 아코렐라의 귀가 쫑긋거렸다. 루스웨나에만 나는 마력석이 있었는지,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려댔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뛰어난 듯 보였지만, 바리엘에 비해 상당히 원초적이라 그 결이 달라 보였다.
다른 마법사와 잘 화합되지 않는 냉괴를 주력으로 썼던 것부터 하여, 제일 기초라 여겨지는 기속을 모르는 것 등등. 각자의 역사와 시간 속에서 발전해왔으나 그 방향성이 상당히 달랐던 게 분명했다.
“루스웨나 거주지는 어디지?”
“왕궁을 기준으로 동북쪽 숲입니다. 말을 타고 사흘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마법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걸 모두 바리엘 쪽으로 가져오겠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 연구를 위해 지참하는 것입니다. 바리엘을 위해서라 하면,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니 거기에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이것 보아라? 이안이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내려다봤다.
싹수가 보였다. 마력의 깊이부터 영리함을 추구하는 머리 그리고 담대함. 잘만 기른다면 바리엘의 미래에 주력하는 인재가 될 수도 있겠다. 루스웨나 왕은 이런 아이를 두고서 대체 무엇 하는 건가?
이안은 한쪽으로 고개를 치우친 다음, 자이라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선적으로 돌려보내 달라 이것이지. 하나, 아가. 온전히 돌아간다 한들, 에리포니 왕은 너를 의심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적당한 과정이 필요해.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네가 지금 조아리는 그 몸짓이 진실이라면 너를 도와줄 생각도 있다.”
그러니 말하라. 네가 에리포니 왕에게 무슨 짓을 하였는지.
이안의 말투가 조금 너그러워진 것을 포착한 자이라가 긴장된 숨과 함께 고백했다.
“…「현요(眩耀)」를 걸었습니다.”
현요(眩耀)? 마법사들은 처음 듣는 마법인지라, 서로를 힐끔거렸다. 시선은 돌고 돌아 이안에게 종착했다.
이안의 낯이 조금 새로웠는데, 순수하게 놀라면서도 신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현요를 썼다고?”
“예. 이안 님에게 쏟아졌던 화살 중 세 발. 모두가 남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마법은 분명 발동할 것입니다.”
마법사들이 동시에 손을 번쩍 들었다. 자신들도 대화에 끼워달라는 듯이. 이안은 작게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고 이내 다정히 설명해주었다.
“현요는 일종의 함정 마법이다. 발동까지 시간 차가 있고 발동 조건이 필요한데, 그 의미에 맞게끔 대상자가 강한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때 발동된다.”
“아, 그러니까 현요가 뭔 뜻이냐고요.”
“빛나고 있음을 뜻한다, 베릭. 사실상 현존하는 마법 중 저주에 제일 가까워.”
지금 시대에서도 그렇고, 미래에서도 그렇고.
제일 찬란한 순간에 맞이하는 죽음. 한 단계 성취함을 느끼고 미래를 그리는 순간, 내일이 없음을 알리는 자신의 과오.
“에리포니는 앞으로 남은 제 인생에 있어 맞이하는 찬란한 순간에, 자신이 쏘았던 화살을 되돌려 받을 것이다.”
그녀가 쏘았던 것이 병사의 목을 꿰었으면 그녀 또한 목이 꿸 것이고, 심장을 뚫었다면 그녀 역시 심장이 뚫릴 것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화살을 제아무리 조사한다 한들 그것은 그녀의 것이요, 그쯤 하면 루스웨나의 마법사들 또한 각자의 살길을 도모하였을 터.
“여러모로 적절한 처사구나.”
이안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훗날, 모든 것을 감안하여 뒤탈 없는 복수였다. 그걸 이 작은 아이가 구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놀라울 따름이지만 말이다.
“아가. 현요의 대가를 아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일러주신 것이니까요. 할머니는-”
그건 또 무엇입니까? 마법사들이 궁금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지만, 이안은 이에 대해 함구했다. 자이라 역시 그것만큼은 이르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천천히 내리깔았다.
“…헤일. 그리고 아코렐라.”
“예. 이안 님.”
“왜요?”
이안은 두 사람을 부르며 고갯짓했다.
“루스웨나 마법의 발달은 확실히 바리엘과 다르다. 어떠한가? 이자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간의 지식을 융합하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의 생각은?”
“이안 님의 뜻이 저희의 생각이지요. 따르겠습니다.”
“꼬마야, 너희 마력석 연구도 했어? 내가 알기로는 루스웨나에서만 나오는 마력석은 딱 다섯 종에 불과한데. 그거 맞아?”
“마력석에 관한 것은 제 관심 밖입니다. 적당한 자가 있으나, 그자는 현재 루스웨나 진영에 있고요.”
“아, 서둘러서 얼굴 좀 봐야겠는데. 이안 님. 저는 찬성이요. 보니까 써먹을 게 많겠습니다.”
노골적인 아코렐라의 발언에 자이라가 미간을 찌푸렸으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이라는 현재 무릎 꿇고 앉아있으며, 그들은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좋다. 자이라. 앞으로 한 시간 후. 루스웨나에서 전언이 오지 않을 경우, 우리는 바로 버고스를 공격하여 두 번째 대전투 서막을 열 것이다.”
마법사들을 구하러 가는구나. 자이라가 침을 꿀꺽 삼킨 채 경청했다. 제발 루스웨나에 있던 마법사가 무사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바리엘로 속하는 과정이 험난해질 게 분명했다.
“그때 적당히 탈출할 기회를 만들어주겠다. 진영으로 돌아가도 좋다. 다만, 우리에게 맹세를 하고 가야겠어.”
“맹세요?”
“누가 나서겠는가?”
“제가 하겠습니다. 너, 맹세의 마법 몰라?”
“…그게 뭔데…요.”
마치 등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이제껏 서로가 다루던 마법이 너무나도 달랐다.
마법사 중 한 명이 자청하여 손 들었고, 이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맞잡으라는 듯, 작게 흔드는 재촉. 자이라는 이안의 눈치를 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마법으로 하는 맹세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니, 어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지. 아가, 우리가 지금 나눈 모든 대화를 신께 맹세할 수 있겠니? 진실이었고, 현실이 될 것이라고.”
“예. 대신 바리엘도 꼭 지켜주십시오. 금기의 마법 푸는 연구, 지원해주시기로.”
“그것만큼은 내 환영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약조한다. 자이라. 누차 말하지만 나는 너의 믿음을 응원해.”
이안이 한껏 다정하게 이르자, 자이라는 입을 아주 작게 입을 비죽였다. 저리 나올 수 있었으면서, 아까는 왜 그리 냉랭했던 거람.
마법사가 마력을 발동시키려다 멈칫거렸다.
“이안 님. 마력봉인석 때문에 조금 힘든데요.”
풀어도 좋다. 이안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허락하자, 병사들이 다가와 열쇠를 건네주었다.
잘그락,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법사들은 등 뒤로 은밀히 마력을 개방했다. 자이라가 날뛰면 당장이라도 대응할 수 있게끔. 그건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금안으로 변하지만 않았지, 모두의 시선이 자이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막상 아이는 얼얼한 손목을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이잉. 지잉.
“시작한다.”
자이라는 두 손으로 마법사를 붙잡으며 맹세의 계약을 진행했다. 비장함과 거대한 산 하나를 넘었다는 안도감 속에서 바깥 소란이 들려왔다.
타닥타닥!
“이안 님. 실례합니다. 루스웨나에서 전언이 들어왔습니다.”
지이잉. 지잉.
전령이 돌아온 것이다. 계약을 마친 자이라가 긴장하며 그의 발언을 기다렸다.
“바리엘 마법사와 루스웨나 마법사의 교환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안 님이 직접 나오셨으면 좋겠다 하는데요. 구체적인 협상을 논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어, 어찌하시겠습니까?”
“와, 하!”
“됐습니다, 이안 님. 쟝은 구했습니다.”
“어찌하긴, 이 사람아! 당장 데려와야지!”
“노아 왕자님은? 작전실에 계시나?”
“예예. 이안 님의 결정에 모든 뜻을 지지한다 전하셨습니다.”
이안은 창틀에서 내려와 자이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방긋 웃는 미소에 작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한 시간 기다릴 필요 없겠구나. 아가, 가자. 쟝을 데려오면서 내 너에게 일러주마. 앞으로 에리포니를 대할 때 어찌하면 좋을지.”
자이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은 아이의 어깨를 감싼 채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모두 전투 준비를 마치고 나오라. 루스웨나와 접선하면 해가 온전히 뜰 것이라. 버고스를 바로 볼 수 있겠지.”
“예. 이안 님!”
“준비하자! 가서 애들 데려오자!”
“빨리빨리 움직여!”
콰앙! 우당탕탕!
마법사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와중, 이안은 자이라에게 마력봉인석을 다시 채워주었다. 이번에는 아프지 않게, 조금 느슨히. 자이라는 잘그락거리는 손목과 이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안이 그리 말했지. 인생의 균형추가 저 멀리 있다고. 자이라는 그것이 아주 조금, 아주아주 조금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리엘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