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6
제406화. 북쪽에서 온 지원군
“셀레나가 죽었다.”
이안의 중얼거림에 쟝이 몸을 움찔거렸다. 셀레나. 이름만으로 얼굴을 생생히 그려낼 수 있는데, 죽었다는 그 단어가 가당키나 하나?
믿을 수 없지만, 쟝은 이해했다. 자신 역시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루스웨나 진영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었으니까. 셀레나는 그저 운이 안 좋았던 것이라. 그 끝이 비참한 것은 오롯이 전쟁의 폐해요, 다몬의 결정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바로 버고스 진영으로 갈 것이다. 가서 남은 동료를 구하고, 바리엘 마법사를 건드린 그 대가를 다몬에게 똑똑히 각인시킬 것이라.”
“바, 바로 가신단 말입니까? 지금요?”
지이잉. 지잉.
이안이 쟝의 손등에 손을 올린 채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폐부를 헤집는 신선한 공기. 물먹은 옷을 벗어 던진 것처럼 온몸이 가벼워졌다.
아, 이것이 사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살아있음이로구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과 안도감이 쟝을 가득 채웠다.
이안은 쟝의 안색이 눈에 띄게 편해지는 것을 보고 희게 웃었다.
“그래. 바로. 쟝, 너 또한 이드갈 무기로 인하여 마력을 못 쓰지? 현재 파악한 바로는 세 명이 버고스에 인질로 잡혀있다. 나를 선두로 하여 구출하되, 감히 바리엘의 마법사를 해친 대가가 무엇인지 다몬에게 일러줄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쟝에게 들어오는 마력이 조금 옅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온 힘을 다하여 힘을 넘겨주고 싶었으나, 현재 동원 가능한 마법사가 몇 없었고 자신의 상태 또한 적절치 않아 조절이 필요했다. 우선 고비를 넘긴 것에 의의를 두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저기, 이안 님.”
이안이 살짝 몸을 떼자, 쟝이 급하게 그의 옷가지를 잡았다.
“루, 루스웨나 마법사들 말입니다. 생각보다 왕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아 보였습니다. 반 기절 상태라 제대로 들은 건 아니지만요, 어찌 잘 꼬드기면 와해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쟝 대장. 늦었어.”
“어?”
“늦었다고. 이안 님이 알아서 다 하실 거니까, 대장은 장벽 안에서 잠이나 자고 있어. 이안 님. 이제 옮겨도 되겠습니까?”
“엥? 어어?”
이거 꽤 고급 정보인데?! 쟝이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마법사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보였다. 쟝은 자이라에 대한 사안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병사 넷이 쟝을 들것에 실어 옮겨갔고, 쟝은 그러는 와중에도 이안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안 님. 이거 끝까지 들으셔야 할 텐데요? 어어?”
“그래도 루스웨나에서 군의관 하나는 착실히 붙여줬던 것 같습니다. 마력 넣으니 바로 살아나는 것 보세요. 애초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나봐요.”
“그러게. 다행이네. 장벽 안에 있는 마법사들 좀 시끄럽겠는데? 쟝 대장 나대는 거 좋아하잖아.”
차기 마법부 장관은 자신이 될 것이라며, 이안이 등장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자였으니. 누군가의 농담에 다들 피식 웃으며 옷매무시를 다잡았다.
해가 완연히 떠올라 아침이 됐다. 새로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빛이었으나, 분위기는 엄숙했다. 달리 말하면, 인질로 잡혀있는 자들이 지옥 같은 나날을 한 번 더 맞이했다는 뜻 아니겠나.
“자, 모두 몇 명이지?”
“열둘입니다. 이안 님 제외하고.”
열둘. 시간이 갈수록 마력을 되찾는 자들이 있겠지만, 그건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이 열 두 명만이 전부라 생각하고 움직이는 수밖에.
이안이 장갑을 바로 끼자, 마법사들 역시 주머니에서 장갑을 빼 들었다.
“좋다. 클리포포드.”
“예. 이안 님.”
“노아 왕자께 출전을 전언해라.”
처억.
병사가 경례한 후, 말을 타고 장벽으로 내달렸다.
마검사들과 함께 편성한 병력이 성문 안쪽에서 대기 중이었다. 노아의 명을 가장한 이안의 명이 떨어지면, 그들은 폭포와 같이 쏟아져 버고스를 밀어내리라.
“장벽 문 열리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오래 안 걸리지. 한 삼십 분?”
“마검사들이 포진되어 있으니, 지상전은 문제없겠네요. 베릭만 잘하면 됩니다. 베릭만.”
“아, 나 걔 걱정돼. 아코렐라 대장이 이상한 거 먹여서. 갑자기 급발진하면 곤란한데.”
“괜찮아. 아코렐라 대장이 베릭 옆에 딱 붙어서 지켜본다니까. 그리고, 평소랑 다를 거 없던데?”
“평소랑 다를 게 없어서 문제지.”
“뭐야. 그럼 다 문제네.”
드넓은 대지. 이안을 제외한 마법사 열두 명만이 서서 바람을 맞이하였으니. 헤일은 동료들에게 궐련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안 님도 한 대 태워보시겠습니까? 바람이 시원하긴 합니다만, 가끔은 이것도 괜찮습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전시 중엔 언제나 모든 것이 그러했다. 지금 이처럼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나아가 바람을 쐬는 것까지도.
이안이 궐련을 받아들려고 하자, 마법사들이 ‘으아아’ 하며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안에게 닿기 전, 먼저 가로채진 궐련. 마법사들이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헤일에게 따져댔다.
“헤일 대장. 이안 님께 좋은 거 알려드립니다, 예?”
“…아니, 나는 그냥 권해드린 건데.”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요. 그 막돼먹은 아코렐라 대장도 몸에 안 좋은 건 이안 님 안 먹인단 말입니다. 이거이거, 아코렐라 대장한테 다 일러야겠네요.”
“저기, 이안 님. 뭐라 말씀 좀 해주십시오.”
궁지에 몰린 헤일이 이안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의 시선은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먼 거리라 아주 작게 들리는 소리. 장벽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끼이익.
“자, 우리도 가자.”
지이잉. 지잉.
이안이 창공으로 날아오르자, 헤일이 남은 궐련을 비벼 끄며 뒤따랐다. 아주 잘 되었다는 듯이. 이내 저 대장 잡으라며, 마법사들도 줄지어 이륙했다.
이안은 장벽에서 제일 먼저 나온 자가 노아 왕자라는 걸 확인했다. 무장을 단단히 하여 깃발 든 병사와 함께 앞서는 클리포포드의 왕자.
그를 선두로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모래알처럼 쏟아졌다. 저 속에는 바리엘의 마검사와 제국방위부도 섞여 있을 게다.
쿠웅! 쿠우웅!
클리포포드의 움직임을 본 버고스 측 진영에서 거대한 북소리가 울렸다. 적이 오고 있으니 모두 채비하여 대열을 갖추라는 명이었다.
클리포포드가 앞장서서 나서는 동안, 이안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후방 우측에서 루스웨나의 움직임이 없는지를 경계했다.
“루스웨나에서는 아직 반응 없습니다!”
“방금 포로를 교환해갔으니 정신없을 게다. 후미를 계속 경계하며 우리도 버고스로 간다.”
“예. 이안 님!”
이안과 마법사들은 하늘을 조각내어 각자 정찰할 곳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이라가 에리포니에게 균열에 대한 걸 언급해준다면, 루스웨나 측은 생각이 많아질 터였다. 당장 전투가 일어난다고 해도 성급히 참전할 수 없으리란 게 이안의 계산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승기를 이끌어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추가 병력을 투입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할 것이다. 에리포니에게는 자이라의 보고가 진실인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두두두두!
쿠웅! 쿠웅!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대지를 울리며 뛰어나갔다. 천지가 흔들리는 거대한 발걸음이, 창공까지 울리는 듯했다.
이안은 그들을 따라 천천히 버고스 진영으로 움직였다. 저 멀리, 버고스 병사들 또한 순식간에 대열 갖춘 모습을 보였다.
부우우-
곧 장거리 공격 사정권에 서로의 발이 들여졌다.
버고스 측 장군이 앞으로 나옴과 동시에 깃발이 크게 흔들렸고, 그에 맞서듯 클리포포드 깃발 역시 힘차게 휘날렸다.
“바리엘 마법사 세 명을 데리고 있나!?”
노아 왕자의 외침이었다. 장군은 대답 대신 고개만 쳐든 채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버고스의 왕, 다몬은 들으라! 당장 바리엘 마법사들을 풀어주고, 클리포포드 땅에서 나가라! 기름진 대지를 파괴하고, 우리의 일상을 짓밟은 대가에 대해서는 상세히 문제 삼아 잘잘못을 따질 것이니!”
“감히 왕자 따위가 어딜 함부로 전하의 이름을 칭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사신을 돌려받으러 왔고, 이에 대해 응하지 않은 것은 클리포포드다. 자국의 사신은 전하의 뜻을 지니고 간 전하의 분신이니. 그대들이 해하였다면 이는 전하를 해한 것이고, 나아가 버고스에 대한 도발! 책임은 너희 클리포포드가 물게 될 것이다!”
끼이익.
두 진영이 서로를 향하여 활시위를 겨누었다. 누군가 시작을 끊기만 한다면 하늘은 다시금 화살로 뒤덮일 것이라.
버고스군 장군은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세상 모두가 듣길 바라는 것처럼 일렀다. 쩌렁쩌렁, 바로 옆에 있던 버고스 병사가 움찔거릴 정도였다,
“클리포포드는 당장 사신 신변에 대해 해명하고, 길을 터서 우리를 귀한 손님으로 받들라! 그렇지 않으면 다몬 왕께서는 친히 장벽을 허물고, 그대들을 베어 수도까지 진격할 것이니. 그때 되면 클리포포드에서는 곡소리만이 울려 퍼지리라!”
쿵쿵! 쿠쿵!
버고스 병사들과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동시에 창대를 세워 땅을 내려쳤다. 지지한다는 뜻과 절대로 받들 수 없다는 뜻이 동시에 아우러진 울림이었다.
스윽.
노아가 허리춤의 검을 붙잡았다. 역시 대화가 통하는 자들이 아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클리포포드의 몰락이요, 그로 인한 버고스의 부흥이니. 만약 다른 게 있었다면 전령을 보냈을 때 마법사의 머리 따위 절대 보내지 않았을 터.
일언반구, 서신 한 장 없었을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노아는 다시금 깨달았다. 버고스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그저 무찌르고, 나아가며 파괴할 대상이라는 것.
“잠깐.”
그때, 버고스 측 장군의 뒤로 백마를 탄 다몬이 모습을 보였다. 온통 검은색투성이인 버고스 진영에서, 그의 등장은 유독 도드라졌다.
저번에는 백마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노아가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다몬이 한 손을 들었다.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수신호였다. 그건 노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창공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이안에게도 건네는 인사였다.
“노아 왕자. 오랜만이로군. 잘 지내셨나?”
“누구 덕분에 아주 잘.”
“말한 대로, 바리엘 마법사 셋은 우리가 데리고 있다. 이는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의 전쟁. 타국의 개입은 굳이 필요 없어 보여 내 하나 제안하지. 지금 당장 바리엘 병력들을 물리면, 마법사들은 살려서 돌려보내 주겠다. 듣고 있나? 이안?”
다몬이 손을 든 채 허공을 좌우로 훑었다. 하지만 이안의 모습을 쉬이 발견할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바리엘은 퇴각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내 새벽에 보냈던 상자와 비슷한 크기의 것들을 더 준비해야 해.”
듣지 않는다면 효시하여 마법사를 죽이겠다. 다몬은 그리 협박하였으나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손을 튕겼고, 이내 안쪽에서 피떡이 된 토미가 끌려 나왔다. 노아는 공격하지 말라는 뜻으로 주먹을 꽉 쥐었고, 다몬은 공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손을 펴서 내렸다.
“바리엘의 마법사가 여기 있다! 전쟁에서 빠지지 않으면, 이자의 목 역시 날아갈 것이다. 괜찮겠어? 응?”
촤아악!
“으아아악!”
다몬은 토미의 허벅지를 베어내며 웃었고, 그 피를 뒤집어쓴 검날이 반짝 빛났다.
이드갈로 만든 검이었다. 피가 뚝뚝 흐르는 날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이것 보라고, 버고스군은 얼마든지 ‘그’ 마법사를 이리 베어낼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쉬이이익!
촤아악!
하지만 그때, 눈 깜짝할 사이 내려치는 빛줄기. 그것은 다몬의 검을 두 동강 내버렸고, 이내 금발의 녹안인 한 사내가 왕과 얼굴을 가까이했다.
순식간이었다. 기척은 물론이요, 다가오는 것조자 보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 둘의 시선이 찰나의 순간 동안 맞물렸고, 다몬의 보랏빛 동공엔 놀라움이 담겼다.
“이-!”
퍼엉! 콰아앙!
콰지직!
다몬이 동강 난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병사들이 이드갈 검과 창 따위로 밀고 들어왔다.
이안은 마력을 터트리며 다몬의 목 쪽으로 손을 뻗었다.
…죽인다. 죽인다.
처참하게 죽인다.
“지금이다!”
“전진하라! 버고스군을 모두 쓸어버려라!”
“우와아아! 죽여라! 죽여!”
노아가 병사들에게 전진을 명했고, 순식간에 사위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몬은 이안의 손아귀에서 마력이 빛나는 걸 보았고,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콰아아앙!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주변이 흙먼지로 뒤덮였다. 그 힘은 이안을 밀어냄과 함께 다몬을 보호했는데, 힘이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남달랐다.
이안은 그 근원 쪽을 바라봤다. 저 먼 언덕, 북쪽에서 온 버고스의 지원군이 바글바글하게 서 있었으니. 그 앞을 자청하여 서 있는 자들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아탄.”
다몬은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고, 이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금 다몬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