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7
제407화. 아탄
아탄.
북쪽에서 서식하는 발현(發現) 종족. 날것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여, 호전적이며 마물을 주식으로 하는 특이 존재.
사실상 종족이라기보다 정체성에 가깝다는 게 맞을 것이라. 내면에 숨겨져 있던 본능을 깨우친 자에게 부여되는 호칭이었으니.
콰아아앙!
고막이 찢길 것 같은 굉음에 모두가 엎드리며 제 귀를 틀어막았다. 오감에 과부화가 온 것 같았다. 귀는 웅웅 울리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누런 안개와 같은 먼지. 그리고 피 냄새.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인간의 선을 아득히 넘은 자들이 존재하는 전장에서, 자신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역사에 한 줄 남기 위해 치르는 대가치고는 너무 과한 듯했다.
버고스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 다몬 왕의 앞을 막아선 자가 있다.
“아하. 안녕안녕.”
“…….”
지이잉. 지잉.
아프로(Afro) 머리를 한 여인. 그녀는 흑검으로 이안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금빛 눈. 영락없는 마법사였다. 여인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검을 이안에게 휘둘렀다.
“고놈 참 얼굴 잘생겼다! 바리엘 앞잡이신가? 응?”
채앵! 챙!
퍼엉! 촤아아악!
이안이 검을 올려 치며 뒤로 물러섰다. 시야가 확보되자, 다몬 인근의 병사들이 이드갈 창을 단번에 휘둘러 쑤셔댔다.
동시에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을 잡을 때나 사용되는 포획망이 터져 오른 것이다. 하늘을 덮은 포획망 곳곳이 호박색으로 반짝였다. 이안을 잡기 위해 이드갈을 저며 만든 듯했다.
다몬이 왜 눈에 잘 띄는 백마를 타고, 토미에게 고통을 가해 자극했는지, 그 연유를 알 것 같았다.
이안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아탄족 여인 또한 옆으로 구르며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어허! 다몬 왕! 이러면 곤란하지!”
“그대가 나설 줄은 몰랐다.”
“우리 친구 맺었잖아. 응? 그러면 서로 감각적으로다가 배려하는 게 맞지 않나?”
여인이 검을 어깨에 받치자, 야생마와 같은 근육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현재 아탄족을 이끄는 족장인 듯싶다.
“반갑다! 나 말고 마법사를 본 건 오랜만이네. 내 이름은 에프디람. 악수도 하고 싶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
“우와아아아!”
“아탄이다! 아탄족이 합류했다!”
“버고스군은 진격하라! 앞으로! 뒤로 밀려날 생각 따위 죽어서 하라!”
“물러서는 자들에게는 왕의 지엄한 벌이 있을 게다!”
“죽여라! 죽여어어!”
여기저기서 아탄족의 등장을 알리는 고함이 터졌다. 적군의 사기를 잘라 먹여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이다. 잠시 주춤했던 양측 병사들은, 버고스군의 사기충천한 고함과 함께 다시금 피 튀기는 전투를 이어갔다.
다몬은 토미의 머리채를 붙잡은 뒤,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멈칫거리는 이안. 간간이 이안을 노리는 병사들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창공에서 뒤를 봐주는 마법사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퍼어엉! 퍼엉!
“이안, 내 다시 한번 이른다. 이대로 모두를 데리고 바리엘로 돌아가. 군사 결정권을 쥔 지금이 너에게도 적기일 것 아닌가? 물러선다면 내 그대들의 마법사들은 아주 친절히, 돌려보내 주겠다.”
에프디람은 저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고, 이안은 피식 웃었다.
다몬은 오해하고 있었다. 이안이 품은 비밀의 실체를 말이다. 이안은 현 황가의 숨겨진 일원일 것이라고, 그러니 군사권을 쥔 지금 바리엘로 돌아가 열 살 먹은 황태자 따위 단숨에 끌어내리라고 조언을 하고 있는 게다.
이안은 웃는 채 다시금 마력을 일깨웠고, 그러자 다몬 또한 질세라 토미의 목 깊이 검을 들이밀었다.
“진심이다. 이놈이 죽으면 진영에 있는 다른 마법사 둘도 함께 죽을 것이니. 선택 잘 하는 게 좋아. 마법사들은 하늘이 내려준 자들이라, 그 수가 귀하다 하지 않나? 응? 이안!”
그때, 고통에 쓰러졌던 토미가 정신을 살짝 차렸다. 흰자만 보이는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졌고, 이내 마주한 이안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리엘을 위해서, 전쟁을 위해서, 마법사의 목숨을 우선시 둘 수 없다 선언했던 이안의 마음가짐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찰나였고, 이안의 내면은 너무 깊어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안과 눈 마주한 토미는 살짝 웃어 보였다. 피로 범벅된 치아가 훤히 보이도록 점점 환해지는 웃음. 토미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리더니, 이내 제 혀를 깨물었다.
“이-!”
다몬이 재빠르게 자신의 소매를 물렸으나, 피가 새어나오는 게 심상치 않았다.
왕의 고개가 토미 쪽으로 돌아간 지금. 이안은 이것이 그가 선사한 기회임을 알아챘고, 놓치지 않았다.
이안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마력을 터트렸다. 검이 마력을 타고 흐르며 찬란히 빛났고, 이내 수뇌부 쪽으로 뛰어드는 이안의 녹안은 그 잔상만을 남겼다.
콰아앙! 쾅!
“어허! 어딜!”
아탄족의 족장인 에프디람 역시 재빨리 뛰어올랐다. 전광석화 같은 이안의 속도를 가뿐하게 따라잡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그녀의 검이 이안의 목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순간.
채애앵!
“뭐여. 시발. 뉴페이스.”
“어허. 이건 또 뭐야.”
베릭이 에프디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틈을 타서 이안은 다몬 쪽으로 계속 내달렸고, 에프디람은 휘파람을 불어 모든 아탄족이 전쟁에 참여할 것을 명했다.
휘이익!
그러자 언덕바지에서 뛰어오르는 전사들.
클리포포드 대열에 섞여있던 마검사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범인(凡人)인 듯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자들은 심상치 않은 기백을 지니고 있다는 뜻. 스스로 아탄족이라는 걸 깨달은 전사들의 힘이 느껴졌다.
바리엘의 마검사들 또한 동시에 날아올라 각각 한 명씩 아탄족과 대적했다.
콰아앙! 쾅!
“빨간 대가리.”
“왜, 뽀글 대가리.”
에프디람은 베릭과 검을 맞물린 채 의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족을 알아보는 여섯 번째 감각이 꿈틀거린 탓이다. 그녀는 힘든 기색 없이 천천히 검에 힘을 실었다. 베릭의 허리가 조금씩 휘기 시작했다.
“이거 주둥아리 까칠한 것부터 시작해서, 딱 보니까 우리 쪽인데? 바리엘인인가? 나이는?”
“응. 마흔한 살. 시발아.”
“봐봐. 범상치가 않은 개놈이네. 마력이 흐르는 꼴이 마법사는 아니고, 마검사 같은데. 너 이 검은 어디서 났니?”
베릭은 그제야 자신의 흑검과 에프디람의 흑검이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것은 검신이 조금 더 얇았지만, 재질이 확실히 똑같다.
에프디람은 씨익 웃으며 베릭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베릭은 기겁하면서 몸을 뒤로 쭉 뺐지만.
“이것 봐. 아탄의 운명은 거스를 수가 없단 말이지.”
“뭐래? 아까부터 뭐가 자꾸 탄다고 지랄인데!”
“어떤 경위인지는 모르겠는데, 흑검을 가진 것 자체가 네 운명이다. 자석과 같거든. 우리와 이 검의 재질은.”
마물을 불러들이며, 그를 유인하는 흑검. 그리고 유인된 마물의 피로 배를 채우는 아탄. 자연의 섭리와 같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맞물리는 순환이다.
“근데 너, 왜 바리엘 쪽에 있어? 딱 보니까 대가리 안 돌아가게 생기긴 했는데, 사리분별 못 해?”
“뭐? 네 대가리가 더 이상하거든! 뽀글쟁이!”
“클리포포드 아래 거대한 균열이 자리하고 있다. 이게 열리면 마물 천지가 되는데, 등신아.”
“이안이가 그거 싫다잖아!”
채앵! 챙!
베릭이 겨우겨우 에프디람의 공격을 쳐내고 뒤로 굴렀다.
그녀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쪽은 마물이 범람했지만, 그만큼 이해관계에 얽힌 정치적 문제가 시끄러웠다.
마물 좀 잡으려고 날뛰면 여기서 물러나라, 저기서 물러나라.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아탄족까지 득세할까 봐 걱정하는 자들이 자경단을 꾸려 그들과 마물을 미리 퇴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
클리포포드에 새로운 마물 범람지가 생겨나면, 아탄족이 제일 먼저 자리를 틀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리 다몬의 제안을 받고 온 것이라.
“너, 네가 아탄족인 거 몰라?”
“너 나 알아? 언제 봤다고 나보고 자꾸-!”
“등신아, 딱 보면 알지. 족장 괜히 단 줄 아니? 이 새끼 이거 골 때리네. 마검사면서 제 밥그릇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내 밥그릇, 황궁에 있다!”
“아. 왜, 너보고 황궁 전담 경비 하라든?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끼리끼리라는 말 있잖아. 그건 알지? 끼리끼리.”
베릭은 정신없이 공격을 휘몰아쳤으나, 에프디람은 유유히 그것을 받아낼 뿐이었다.
조금은 흥미로운 낯이기도 했다. 그저 새로운 마물 범람지를 개척하기 위해 왔는데, 아탄족을 만나다니. 타지에서 동향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끼리끼리라서 나 이안이랑 붙어있잖아.”
“이안? 누구? 바리엘 앞잡이?”
“흐하아아압!”
전투에 한정하여, 베릭은 영리한 편이었다. 재수 없고 아니꼽긴 하지만, 에프디람의 검술이나 힘은 베릭보다 우위에 있었다. 딱 한 번, 제이럿과 맞붙었을 때의 그 버거움과 비슷했다.
그러니 어쩌겠나? 마력을 최대한 쓰지 말라 하였어도, 개방할 수밖에. 베릭의 주위로 검기(劍氣)가 흘렀고, 이내 그의 붉은 머리칼이 함께 휘날렸다. 에프디람은 흥미롭다는 듯 몸을 낮추고 검을 다잡았다.
“딱 보니까 최상급인데.”
“난 고기 아니거든!”
“썰어 먹기 딱 좋겠다는 뜻이다! 등신아!”
“뽀글 대가리!”
“빨간 대가리!”
“근육쟁이치고 싸움 잘하는 애들 없더라!”
“내가 족장을 꽁으로 쳐 단줄 아나!? 쬐깐한 새끼!”
콰지지직! 콰아아앙!
클리포포드 병사들을 베던 아탄족들이 에프디람 쪽을 보고서 코를 훌쩍였다. 또 시작이네, 싶은 눈빛. 호전적인 자들이 모여 움직이는 집단인지라, 그들은 모두 에프디람과 검을 맞댄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촤아아악!
에프디람의 검이 베릭의 옆구리를 베었다. 아주 정확하고 깔끔하게. 그녀는 검에 묻어난 피를 혀로 할짝이며 웃었다.
“나쁘지 않네.”
“…윽. 변태.”
“마물 피 안 먹어봤지? 각성에는 그게 제일인데. 진짜 달고 맛있어서 눈 돌아가거든.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최상의 맛, 그게 바로 아탄족이 받은 축복이다.”
쓰읍. 베릭은 피가 흘러나오는 옆구리를 쥔 채 침을 뱉어댔다. 제이럿 영감탱 이후로 아주 쓸 만한 대련감이라. 너 오늘 딱 죽었다는 눈빛이 생생했다.
“좋아. 그 눈빛.”
“씨발, 말하는 게 자꾸 변태같아!”
“와라! 제대로 밟아주마! 그것이 아탄족이 서로를 각인하는 방법이라!”
“응, 까세요. 너 죽이고 이안이가 주는 고기 먹을 거다!”
이안, 이안, 이안. 대체 바리엘 앞잡이가 뭐라고 자꾸 저 멍청해 보이는 놈 입에서 이안이라는 이름이 나오는가?
에프디람은 살짝 고개를 틀어 이안 쪽을 바라봤다.
“호오.”
360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과 창 따위를 하나하나 완벽하게 집중하여 피하는 몸짓. 다몬이 이안을 피해 피범벅 된 마법사 인질 하나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갔지만, 그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안이 헤치며 뒤로 보낸 것들은 창공의 마법사가 마무리 짓는 식으로 서로 간의 합도 완벽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다몬의 다급한 손짓에 합성 마물이 움직였다.
“어이, 버고스! 우리가 마물 껍데기 갖고 왔거든요?”
모르나? 에프디람이 머리를 긁적이자, 버고스군이 언덕바지에서 마물 사체를 끌어내리는 게 보였다.
옳지. 바로 그거지. 피를 죄다 뽑아 먹었지만, 사령술사들이 이용하기에는 무리 없을 만큼 온전한 사체다.
촤아아악!
“뭐 해! 어서 막아!”
“마, 막고는 있는데-!”
“한 놈이지 않나? 다들 뭣들 해!”
버고스 측 장군이 답답하다며 제 손으로 검을 직접 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내달려오는 이안.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 불어있었다. 흰 뺨을 잔뜩 적신 적군의 피 또한 그 온도에 맞아 보였고.
장군이 기합을 넣으며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흐아아압!”
촤아아악!
하지만 기합이 무색하게 단숨에 떨어지는 목. 날카롭게 일렁이는 마력이 아주 깔끔하게 투구와 갑옷 사이를 베어냈다. 이안은 그자의 머리통을 들어 올린 다음, 다몬 쪽으로 내던졌다.
“다몬. 네가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는 조금 모자랄 것 같지. 기다려라. 너 또한 이리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