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8
제408화. 전쟁의 균형
혼란 속의 질서. 질서 속의 전쟁.
기이한 일이었다. 세 나라와 수많은 종족 그리고 심지어는 마물 껍데기까지 얽혀든 상태였으나, 그들은 각자의 위치를 인지하여 전쟁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병사들은 병사들끼리 방패 되기를 자처했고, 아탄족의 등장을 확인한 마검사들은 일제히 뛰어올라 검이 되었다. 창공의 마법사들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물 사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를 저쪽으로!”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하샤가 소리쳤다. 자신이 다루던 합성 마물은 진즉 핵이 터져 대지로 돌아갔다. 그 말인즉슨 자신에게 연결된 사체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 아탄족 사령술사들이 새로운 것을 움직이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 전에 선점하여 이쪽으로 가져오자. 하샤의 뜻을 알아챈 마법사 둘이 그를 잡아 올려주었다.
채앵! 챙!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야 합니까?”
“손에 닿으면 제일 좋긴 한데, 우선은 최대한 가까이 가봅시다. 아탄족이 무슨 마물을 가져왔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니. 혹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면 큰일 아니겠소?”
촤아아악!
퍼엉!
하샤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틀었다. 버고스 수뇌를 향해 내달리는 잔상이 보였다.
이안이다. 그는 다른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망설임 없이 중심부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수십, 나아가 수백의 병사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이안의 공격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이안의 머리칼과 볼 그리고 목덜미를 잔뜩 적신 적군의 피가 선명히 보였다.
“으아아악!”
“…하아, 하아.”
병사의 두 팔이 잘려 나가 피 분수가 솟구쳤다.
이안은 몸을 낮춘 채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체력이 모자랄 것 같다 싶으면 마력으로, 마력을 아껴야겠다 싶으면 다시금 체력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운 것치고는 공격의 균형 분배가 완벽하다시피 했다.
-이안 숙부. 그리하시면 안 되지요. 몸을 더 낮추십시오. 안 그러면 상대에게 옆구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반격할 때 반동을 이용하기도 어렵지요.
-조금 어렵습니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네요.
-연습하시면 됩니다. 다들 처음에는 그러합니다. 그래도 소질이 좀 있으십니다. 다음부터 속이 답답하고 마음 속 무언가를 터트리고 싶을 때는, 이리 검을 잡으십시오. 다시 한번 사용인에게 마력을 보였다가는 정말 큰일 나십니다. 천민굴로 쫓겨나요. 그건 싫으시지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크로니, 제 마력을 본 사용인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자, 다시 해볼까요? 검 잡아보십시오.
꽈악. 이안은 어릴 적, 크로니의 저택 뒤뜰에서 처음 목검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다정하게 자세를 봐주고, 칭찬해주던 것이 생생했다.
가끔은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냈으니, 버릴 수도 없는 기억이라.
촤아아악!
토미가 병사들 틈으로 조금씩 묻혀갔다.
마음 한 틈을 내어주면, 언제고 시간에 빛바래는 것이 관계였다. 각자의 운명을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는 등을 보이고, 누군가는 얼굴을 보이고, 또 누군가는 바람처럼 사라지기 마련.
이안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토미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거친 숨과 함께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다시, 관계의 폭풍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구나. 이렇게 다시, 사람을 가까이 두어 운명을 어지럽게 만들어.
“막아라! 서서히 지쳐가는 것이 보인다!”
“으, 으아아아악!”
“빠, 빨리 앞장서!”
이안이 손등으로 턱을 훔쳐냈다. 물기 섞인 피가 후드득 떨어져 나왔다.
다몬은 토미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로 계속 뒤쪽으로 물러섰고, 이내 다른 마법사들을 데려오라 명했다. 토미의 몸이 자꾸만 축 늘어지는 게, 인질로 삼기에는 영 부적격했다.
“서둘러! 어서!”
“마법사 둘을 더 데려와라!”
“이안! 계속 이리 오면 세 놈의 목을 동시에 베겠다! 그리고 경고하건대,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채앵! 챙!
이안은 다몬의 악을 한 귀로 흘러버리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무어라 속삭여도, 자신은 오로지 바리엘만을 위해 피를 뒤집어쓸 것이라.
이안의 검 끝으로 스쳐 가는 수많은 삶. 그가 대지를 디디며 뛰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취이이익!
거대한 까마귀가 날아들며 이안을 스쳐 지나갔다. 쩍 벌린 부리에는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들어서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불쾌한 점액으로 가득했다.
아탄족에서 지원해준 마물들이다. 이안이 놈들의 목을 잡아 비틀려고 하자, 마법사들이 대신 막아서며 이안을 보호했다.
“이안 님! 가십시오!”
“하늘은 저희가 보고 있습니다!”
퍼어엉! 퍼엉!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수가 조금 많았지만, 다행인 점은 사령술사들의 능력 한계가 여실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합성 마물과 더불어 하늘을 나는 마물까지 동시에 지배하기에는 무리인 듯싶었다. 공격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져 마법사들은 어렵지 않게 놈들을 쳐낼 수 있었다.
“야! 저기 바리엘 앞잡이 간다!”
“족장!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막아! 저것도 말이라고 지껄이네, 등신 같은 게.”
“바리엘 마법사다! 마법사가 다몬을 노린다!”
지원군 자격으로 온 아탄족이 다몬의 위험을 눈치채고서 서로에게 신호를 전달했다. 하지만-
끼이이익!
“어딜 가, 시발.”
“비켜 봐봐. 다몬 좀 구하고 놀아줄게.”
“뒤질라고, 놀긴 뭘 놀아!”
“어어? 까부네?”
밀릴지언정 물러서지 않는 베릭. 그는 검신에 힘을 실으며 아탄 족장을 붙들어놓았다. 에프디람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고, 그를 따라 베릭 역시 히죽였다.
대사막부터 내란까지, 다른 건 몰라도 몸으로 배운 건 하나 있었다. 이렇게 강한 상대와 맞붙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 자신은 언제나 강해졌다.
그러니 이번도 그러할 것이다. 죽기 전에는 져도 진 것이 아니니까. 베릭은 언제나 승리했고 성장했으며, 웃었다. 지금처럼.
“이안이 방해하면 뒤진다아아아!”
“잠깐만 꺼져봐!”
“흐아아앗!”
“베릭!”
콰아아앙! 쾅!
베릭의 좌우로 날아드는 두 사람. 바르사베와 제이럿이다. 바르사베가 엄호하였고 제이럿은 번개와 같은 검기(劍氣)를 터트렸다.
하지만 에프디람은 보호막을 펼치며 파훼했고, 이어서 짜증스럽게 혀를 차댔다.
“이래서 제국놈들은.”
“에프디람이라 하였나? 나는 황궁친위대 삼대장 제이럿이다.”
“통성명은 개나 주세요! 야! 다몬 왕 챙겨!”
“알겠습니다! 족장님!”
“어딜 감히!”
덤벼들려 하고, 쫓으려 하고, 가로지르고, 막고, 잡는 자들이 개미 떼처럼 섞여들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클리포포드와 버고스의 전쟁이었지만, 가깝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흐름은 이안과 다몬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쉬이이익!
피잉!
그리고 천공(天空)을 지나 이안을 노리는 화살. 이안은 반사적으로 화살을 쳐냈고, 이내 그것이 루스웨나 측에서 날린 것임을 알아챘다.
저 멀리 휘날리는 긴 청록색 머리칼이 보였다. 에리포니다.
‘뜻대로 되고 있나 보군. 자이라.’
바리엘 쪽으로 우회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루스웨나 입장에서는 우선 바리엘을 격퇴하여 클리포포드를 선점하되, 버고스의 뜻대로 균열이 일어나지 않게끔 조치하는 것이 최선일 터였다.
그녀의 화살을 시작으로 수많은 루스웨나 병사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용맹한 함성과 함께 언덕을 구르다시피 돌격해오는 그 모습에, 클리포포드 병사들은 당황하여 멈칫거렸다. 루스웨나가 달려오는 방향이 그들의 뒤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앞뒤가 포위당하여 전세가 어렵게 흘러갈 터였다.
“노아 왕자님! 루스웨나가 참전합니다!”
“뒤에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전력을 분산할 수는 없는데요!”
“장벽 쪽으로 신호를 보내주십시오! 저희도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젠장!”
앞은 버고스, 뒤쪽은 루스웨나. 노아가 다급하게 좌우를 번갈아 보며 군기(軍旗)를 집어 들 때였다.
쉬이익! 쉬익!
퍼어억! 퍽!
숲에서부터 근원 모를 화살이 쏟아지며 루스웨나 병사들의 가슴을 꿰었다.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신나서 내달리던 루스웨나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숲, 숲이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쏘아진 각도로 보았을 때 분명했다.
노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숲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고, 이내 서서히 드러나는 푸른색을 보았다.
부우우우-
“바리엘 지원군이다!”
“바리엘에서 본대가 왔다! 모두들 들으라! 바리엘에서 클리포포드를 위해 병사를 보내왔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금실로 하나하나 새겨진 바리엘의 인장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트웰러는 멀리서도 자신의 부하들임을 알아보았고, 눈앞의 적군의 머리통을 도끼로 반쪽 내며 씩 웃었다.
“거참 빨리도 왔다!”
“트웰러 장관님!”
“그래! 내 보았다! 후방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들의 가족이 왔으니, 내 마음 놓고 앞만 보리라!”
촤아아악!
트웰러의 부하들은 그와 함께 전쟁터를 구른 자들이었다. 숲 위에서 상황을 보아하니, 루스웨나의 참전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하고 화살로 그들의 접근을 막아낸 것이다.
“돌격!”
이어서 클리포포드와 버고스가 섞여 있는 곳이 아닌, 루스웨나 쪽으로 명령을 내리는 장군. 장군의 뜻에 따라 병사들이 힘차게 뛰어내렸고, 세상이 불타는 것처럼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젠장.”
푸욱! 다몬은 어쩔 수 없이 토미의 옆구리를 찌른 다음,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이안이 전선에 나선 것도 버거운데 바리엘 본대가 합류하다니. 퇴각할 수밖에 없다. 퇴각하여 다시금 전략을 세우는 게 최선이다.
다몬은 병사 한 명이 마법사를 데리고 오는 걸 보고 재빨리 토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병사들 발치에 치이고 밟혀 각혈하는 토미.
그걸 본 이안은 잠시 멈칫했다. 계속해서 다몬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가서 토미의 손을 잡을 것인가.
“이안 님! 망설이지 마십시오!”
촤아악!
그때, 마법사 한 명이 재빠르게 하강하여 토미의 팔을 잡아끌었다.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터라, 피가 더욱 크게 솟구쳤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다몬의 의도한 바였으니.
토미를 안아 든 마법사가 장벽 쪽으로 사라지자, 이안은 자신의 모든 걸 놓아버리듯 마력을 폭발시켰다.
지이이잉! 지잉!
“이안! 우리에게는 아직 두 명이 남아있다!”
옌과 칸치.
다몬은 옌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그녀의 팔뚝에 검을 꽂아 넣었다. 위협용이자, 혹여 클리포포드로 흡수될 수도 있는 마법사를 불능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드갈이 깊게 박힌 옌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지를 비틀어댔다.
퍼어어엉!
콰아앙!
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속도. 이안의 마력에 병사들이 한꺼번에 나뒹굴었고, 그는 단숨에 다몬 앞까지 당도했다.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 다몬은 기시감을 느끼며 다시금 눈을 크게 떴다. 이안의 금빛 눈동자, 흡사 불꽃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콰앙!
이안은 다몬의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은 채 바닥에 내다 꽂았다. 동시에 다몬의 품에서 작은 목걸이가 흘러나왔고, 엉망으로 흐트러진 제 주인과 같이 바닥을 뒹굴었다.
“…다몬.”
“으윽-!”
이안은 그의 머리를 바닥에 짓누른 채 힘을 실었다. 장군과 병사들이 당황했지만, 그 누구도 꼼짝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왕이 그대로 죽을 것 같아서.
그저 제압하여 내려다보고 있음인데, 이안의 살기가 범상치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라. 이안은 무릎으로 그의 목울대를 꾹 누른 채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다몬. 답해보아라.”
대꾸도 없이, 옴짝달싹 못 하여 흙만 쥐어 잡는 손길이 처절했다. 다몬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드갈 목걸이가 조금씩 빛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균열을 일으키는 마력이 조금씩 더해지고 있는 탓이다.
그걸 잡으려고 다몬이 손을 뻗자, 이안이 가소로이 웃으며 손등을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제 네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