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9
제409화. 펜던트
다몬은 목덜미의 서늘한 칼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 생, 그러니까 다몬 왕이 아닌 왕자로서의 삶을 살고 거기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느꼈던, 그 마지막 감각.
그는 주위의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과 병사들 그리고 계속해서 터지는 굉음이 천천히 늘어져 그의 기억을 헤집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이제는 안 되겠습니다.
-잠깐만, 잠깐!
-버고스 왕국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부디 편히 눈감으십시오.
-너만이 나라를 위한 왕자인 줄 아는가! 나 또한 버고스의 왕자인데, 어찌!
-모든 것이 신의 뜻입니다.
-웃기지 마! 항상 그랬다. 너는 항상 그랬어. 동생인 주제에 내 모든 것을 앗아가고, 그걸로 만족해하는 법이 없었어. 내가, 내가 대체 무엇을 어찌하길 바라는지 모르겠다! 신? 그래. 신께 가서 물어보자. 우리 함께 물어보아, 버고스를 위한 진정한 선택이 무엇인지 물어보자고!
다몬은 울부짖으며 검을 꺼내 들었다. 동생, 다온을 지지하는 자들이 맞서기 위해 앞으로 나섰으나, 다몬의 동생은 어리석고 신의 있게 그들을 저지했다.
왕궁 한가운데서 서로의 숨을 앗기 위해 수십 번의 합이 오갔고, 결국 죽었다. 다몬도, 다온도.
다몬은 다온의 피가 대리석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걸 보며 킥킥댔다. 멍청한 것이, 나서지만 않았어도 온전한 승리를 가져갔을 터인데!
-왕자님!
모두가 다온에게 달려가는 동안, 다몬은 혼자 죽어가며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리고 사막화로 인한 누런 하늘을 보며 다짐했다. 다시 태어나리라. 다음 생에서는 온전한 1왕자의 위엄으로 버고스를 새롭게 만들 것이라.
신의 뜻이라 하였던 동생의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자신은 그리하여 두 번째 삶을 얻었고, 나아가 그다음 또한 기약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되었는데, 이리 죽을 수는 없지. 여기서 다시 멈출 수는 없지.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물었나?”
다몬은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검날이 깊게 위협하고 있는 터라, 다몬의 목울대가 움직일 때마다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상황과 맞지 않은 웃음. 이안은 그를 내려다보며 함께 웃었다. 피로 절은 금빛 머리칼이 아래로 떨어지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나는 죽지 않아. 다시 세 번째 삶을 살 거니까.”
소란 중, 이안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 이안의 낯이 살짝 변했다. 두 번째 기회 이후, 세 번째를 확신하는 말투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대체 무엇을 믿고?
“죽여라. 내 다음번에는 네가 있겠지. 이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내 알고 있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네가 나와 같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갈 터다.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하지. 죽음으로서,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다몬의 머리채를 쥔 이안의 손아귀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버고스 측의 장군과 병사들이 움찔거리며 이안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였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사태다. 이안이 조금이라도 팔을 틀기만 한다면, 버고스 왕의 머리통이 대지를 구르게 될 것이니. 이는 패전이요, 나아가 자신들의 죽음을 의미했다.
“세 번째 삶?”
“……!”
꽈아악.
이안의 거친 손길에 다몬이 인상을 찌푸렸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다몬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과거로 온 자신. 결은 다르지만, 그 근본이 같지 않나?
이것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다면, 자신의 상황에 관해서도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게다. 다시금 황제 이안의 몸으로, 백 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서 자신의 바리엘로, 나아가 실패하기 전 모든 걸 붙잡을 수 있는 어떠한 지점으로 말이다.
“상세히 일러.”
“왜? 그대도 두 번 살고 싶은가? 어째서? 그대는 제국의 마법사요, 모두가 우러러보는 어린 장관인데. 무엇이 모자란다고?”
“시답잖은 소리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군. 지금 이러는 와중에도 많은 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죽은 뒤 세 번째 삶?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하나, 쉽진 않을 것이다.”
네놈, 셀레나의 목을 잘랐지. 똑같이 해주마. 다만, 원하는 죽음 대신 죽음 문턱까지 갈 정도만 허락하겠노라. 이안은 다몬의 왼손을 잡아 뒤로 비틀었고, 이내 힘차게 반대로 꺾었다.
우드득!
“으아아악!”
침착하고 차가운 이안과 달리, 다몬은 갑작스러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모두가 움찔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다몬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 누른 채 제압한 이안이 그들에게 고갯짓했다.
“정신머리들이 나갔군. 아직도 무기를 들고 있는가?”
투항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그대들의 왕이 죽는다. 이안의 경고에 장군이 슬쩍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우르르 앞으로 내던져지는 검과 창. 병사들은 무릎 꿇은 채 두 손을 들어 올렸고, 이내 넙죽 엎드려 항복을 맹세했다.
촤아아악!
콰아앙! 퍼엉!
그 순간, 이안에게 날아드는 공격.
마력을 생생히 담고 있어 붉고 어둡게 허공을 가르는 화살이었다. 에리포니 쪽에서 날아온 건가 싶었는데, 방향이 정반대였다. 아탄족이 내려온 경사 쪽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이안은 반사적으로 왼손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공격을 파훼했다. 장발의 한 사내가 빛으로 이루어진 활과 화살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마검사와 같이 마력을 무기로 치환할 수 있는 자다.
“썩 괜찮은 지원군을 데리고 왔군. 다몬.”
“젠장!”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공격. 전의를 상실한 버고스군과 달리, 아탄족은 여전히 전장을 활개 치며 내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클리포포드에 균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니,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버고스’라. 당연하고 단순하게 귀결되었다.
“새끼들이 빠져서는! 왕 뒤진다고 뭐가 달라져?”
“달라지긴 달라지지.”
“다음 왕 있잖아. 다들 무기 쳐들고 싸워! 우리가 북쪽에서 어떻게 내려왔는데!?”
“원래 적군 수장이 잡히면 전쟁 끝난다 하더라.”
“지랄들. 전쟁은 모두 죽어야 끝나는 거지.”
“무기 안 든 놈들은 적으로 간주해서 같이 베어버린다! 우리 경고했다?”
“불러서 판 벌였는데 이딴 식으로 마무리하면 섭하지! 피 맛 제대로 좀 보자!”
촤아악!
아탄족들이 짜증스럽게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진행하지 않을 시, 적으로 간주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클리포포드 병사와 함께 버고스 병사 몇이 그들의 공격 아래 나뒹굴었다.
이안이 소란스러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찰나. 장군은 다몬이 계속 한쪽 손을 뻗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무엇 때문에 저러는 것인가? 찬찬히 살펴보니, 작은 이드갈 목걸이가 그 끝에 널브러져 있다. 장군이 잽싸게 그걸 집어 다몬 쪽으로 내던졌다.
“전하!”
타앗!
무엇이지? 다몬이 있는 힘껏 손을 뻗었으나, 이안이 먼저였다. 이안은 줄 달린 펜던트를 한 손으로 잡아냈고, 이내 그와 접촉한 이드갈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잉!
손 틈으로 새어나오는 수많은 동심원의 마법진. 이리저리 얽힌 것들이 수식과 함께 이안을 휘감았다. 이안은 당황하였으나, 그 마력의 기운이 낯설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이안의 것이다.’
정확히는 서자 이안의 것. 서자 이안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어떠한 마법.
창공에 있던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오려 했지만, 이안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온몸의 모래가 기울어져 한쪽으로 쏟아지는 느낌이다.
타앗!
이안은 재빨리 펜던트를 내던졌지만, 그를 감싸는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봉인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발하며 이안을 감쌌다. 그의 주위가 온통 빛으로 감돌았다. 금발의 머리칼이 백색으로 보일 정도로.
그 환한 빛에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자, 창공의 마법사들이 소리쳤다.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시죠?”
“말씀해 주십시오! 제발!”
“토미랑 옌, 칸치 모두 무사히 옮겼습니다. 현재 세 명이 빕니다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명령 내려주세요!”
다몬은 이안의 무릎 아래에서 그 모습을 가까이 지켜봤다.
러더포드가 준 펜던트. 균열이 일어나는 기준을 일러줄 것이며, 문제 발생 시 어떠한 도움이 될 거라 이르긴 하였지만, 이런 장치가 숨겨져 있는 줄은 몰랐다. 정확히, 눈앞에서 보고 있는 지금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안은 다몬의 왼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다몬, 러더포드와 직접 접촉하였나?”
“왜? 궁금해? 뭔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나 봐?”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으드득!
이미 한번 꺾인 다몬의 왼팔이 다시금 반대로 돌아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안의 마력은 계속 흘러내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구멍이라도 생긴 것 같다.
이안이 식은땀을 흘리며 내던진 펜던트를 바라봤다. 타오를 것처럼 금빛으로 빛나는 이드갈.
째앵!
그것은 이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났다. 이 의미를 아는 것은 다몬 밖에 없었으니. 이는 균열을 일으킬 만큼 충분한 힘이 가해졌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라.
고통에 몸부림치던 다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고, 이안은 현기증을 느끼며 잠시 비틀거렸다.
‘기회인가?’
장군과 병사들이 다시금 무기를 잡으려 들었으나, 마법사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퍼엉! 펑!
“모두 움직이지 마.”
가까이 오지 말라는 이안의 명령에도 불구, 조심스럽게 하강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안은 희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짚었다.
두 세력의 수장이 한데 얽혀 쓰러져 있으니,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다몬은 멀쩡한 오른팔로 기어가듯 이안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콰악!
“으아아악!”
이안의 단검이 그의 아킬레스건을 꿰어냈다. 이드갈 펜던트의 작동 그리고 자신의 마력이 새어나가는 것과 별개로, 전쟁은 전쟁. 적군의 수장에게서 피를 보았으니, 그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안 님!”
“다몬부터 잡아놔.”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너무 안 좋습니다.”
“…괜찮다. 조금,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니.”
정신을 차리려고 비틀대던 이안은 무언가 후드득 흘러내리는 걸 알아챘다. 피였다. 전쟁에 있어 자신만큼은 피를 낼 수 없었으나, 다행스럽게도 타인의 피와 섞여 티가 잘 나지 않았다.
“마력을 좀 드릴까요? 또 이러시면 저희 정말…….”
“아니. 지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아.”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진영으로 돌아가서 이르겠다. 우선 버고스 측의 백기를 받아내 드높은 곳에 걸어라. 루스웨나 또한 쉬이 볼 수 있게.”
“그, 루스웨나는 그렇다 쳐도 아탄족들은요? 저것들 완전 말 안 통하게 생겼습니다. 하는 짓거리가 영 낯설지 않아요.”
“베릭이잖아. 베릭.”
“아!”
마법사 둘은 다몬 왕을 포박하여 그대로 창공에 떠올랐고, 나머지는 이안을 부축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서고 있음에도, 확실히 아탄족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고 끝나지 않는 전쟁을 원하는 듯했다.
이안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지그시 누른 채 일렀다.
“에프디람이라는 족장에게 전언해라.”
“수장이 잡히면 전쟁이 끝난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균열에 대해서, 그러니까 마물 수급에 관해서는 이제 다몬보다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있으니 식사하면서 의견을 나눠보자고 전해. 다몬 왕의 생포 또한 인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알리고.”
“예. 알겠습니다. 저, 이안 님. 걸을 수 있으십니까?”
“말을 타야겠는데…….”
“말! 말을 가져와!”
날 수 없을 정도라는 뜻이었으니.
이안은 완전히 박살 나서 가루가 되어버린 이드갈 펜던트를 보며 눈을 감았다. 서자 이안의 족쇄가 시공간을 넘어 자신의 목을 죄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