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13
제413화. 묻는 말에 대답해
타닥타닥!
전령은 말 움직이는 것에 맞춰 유연하게 몸을 맡겼다. 손은 가벼워졌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졌다. 전달할 소식이 많아진 탓이다.
하나 전령은 날아갈 것처럼 가뿐했다. 잠 한숨 못 잔 상태이긴 했으나, 바리엘의 승전보를 직접 제 손으로 황태자 전하께 전할 수 있다니. 이는 진정으로 큰 영광이라.
말 역시 클리포포드가 신경 써서 내어준 티가 났다. 이 정도 속도라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당도할 수 있을 터.
전령은 이안과 마법사들이 무사하다는 것 역시 첨언하여 진에게 전달하겠노라, 사념에 잠긴 채 반사적으로 고삐를 잡아 흔들었다.
그런데 저 멀리, 군단의 모습이 보였다.
“워워.”
하나밖에 없는 길. 버고스나 루스웨나 등 다른 나라로 통할 수 있긴 하지만, 바리엘과 클리포포드의 주된 무역로로 쓰는 길이었다. 따라서 저것이 적군일 리는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안 경이 그러지 않았나? 버고스 측의 왕을 생포하였다고. 전쟁에 있어 우두머리의 존재는 승패를 가르는 핵심과 다를 바 없었다.
전령은 망원경을 들어 천천히 초점을 맞췄다.
“음?”
앞장서는 자들의 깃발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휘날리는 바리엘 제국기.
추가 지원군이 오고 있는 겐가? 전령은 품에서 똑같은 바리엘 제국기를 꺼내 흔들며 그쪽으로 말을 몰았다. 전령의 존재를 알아챈 군단의 선두가 서서히 속도 줄이는 게 눈에 보였다.
“이보십시오!”
“누구신가?”
“제가 물을 말입니다. 바리엘에서 오는 추가 지원군입니까?”
세르오는 코를 훌쩍이며 뒤를 힐끗거렸다.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모은 용병들이다. 같은 갑옷만 입었지 타국인이 섞인 것은 당연지사요, 무엇보다 황궁의 정규군이라 하기에는 그 위엄이 한참 바닥이다.
세르오가 겸연쩍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자, 그 뒤쪽 마차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한껏 가벼운 옷차림의 알레나라였다. 머리를 단단히 묶고 셔츠와 바지를 입은 레이디라. 아마 사교계에서 저 모습을 보았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
하지만 알레나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분기점을 통하여 자신과 가문이 죽든 루스웨나로 망명하든, 둘 중 하나로 이어질 테니까.
“누구신데 바리엘의 지원군 앞길을 막나요? 전령이십니까?”
전령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허리춤의 단검을 잡았다. 여차했다가는 제 숨통을 스스로 끊어버리기 위함이었다.
“하여간 질린다니까. 뭘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여요? 그저 물은 것뿐이잖아요. 저희는 세르오 가문의 자식들입니다. 황실의 허락을 받아, 클리포포드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보탬 되기 위해 내려가는 길이지요.”
“아, 세르오요.”
세르오, 이름을 들으니 깃대를 알아보겠다. 전령은 안도의 숨과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황궁에서 내려보내신 것입니까?”
“어, 그게…….”
“귀족 된 자로서 어찌 전쟁 통에 가만 보고만 있겠습니까? 도움에 있어서 그 허락이 필요한 부분인가요? 그리고 그대는 아직도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어요. 이 부분, 참으로 문제 삼을 만한데요.”
세르오가 머뭇거리자 알레나라가 날쌔게 말을 잡아챘다.
사실 황태자 진의 직접적인 출전 명령은 없었다. 다만, 말마따나 귀족 된 자가 직접 사병과 사금을 차출하여 나선다고 하니 말릴 명분도 없는 것이라.
아마 그들이 중앙을 떠나온 걸 황태자는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제국방위부나 수상 선에서 보고‧정리된 사안일 가능성이 있으니.
“저는 황궁 전령입니다. 지원하신 그 마음은 크게 존경합니다만,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네? 왜요? 징집령 소문도 들었는데.”
“바리엘이 승리했습니다.”
“뭐라고요?”
알레나라가 놀란 낯으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말들이 흥분하여 고개를 쳐들었지만, 알레나라는 당황하여 두려운 기색 하나 없었다.
바리엘이 승리해?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버고스의 왕 다몬이 생포되었답니다. 현재 마법부 장관 이안 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뒷수습에 나서는 듯했습니다. 대단하다 싶긴 하였지만, 와, 정말 멋져요. 다들 부상을 입긴 했어도 크게 다친 자 없어 보였는데 말이지요. 어떻게 적군 중심에 있는 다몬 왕을 탁 채온답니까?”
“루, 루, 루스웨나는요?”
“루스웨나요? 흐음. 그 뒷수습 대상 중 하나겠지요.”
“자세히 좀 말해봐요! 오라버니!”
“아, 그래. 이보시게. 잠시 말에서 내려오지.”
“어어…….”
세르오가 전령의 팔을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내려온 전령은 격한 대우에 조금 부담스러웠다. 눈을 번뜩이는 두 귀족 자제와 마주하게 되었으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진정하라 손을 들었다.
그래. 승전보라는 것이 이런 맛이지! 전쟁의 승리를 전했는데, 그 누가 저러지 않겠는가! 전령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버고스에서 동원한 북쪽 부족과 루스웨나를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더군요. 하지만 그 중심축인 버고스 왕이 생포되었으니, 별다른 일 없다면 그대로 정복할 것입니다. 이는 바리엘의 영광이요, 전하의 승리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그러게요! 물이라도 좀 드실래요?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서둘러 승전보를 올리는 게 좋다 하셔서, 물 한잔 못 마시고 장벽을 나섰습니다.”
알레나라는 전령을 따라 웃으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서둘러 승전보를 올리는 게 좋다고? 그 말인즉슨, 전투에 있어서 압도적인 무력 파훼가 없었다는 걸 시사하는 것 같은데…….
‘다몬 왕만 잡혔고, 아직 버고스와 루스웨나의 병력은 건재하다는 건가? 그리되면 에리포니 왕께서도 생각거리가 많아질 터인데. 왕께서 곤란하면 곤란할수록 내게는 기회가 생긴다.’
“저기, 레이디?”
알레나라는 전령에게 건네주는 물통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한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알레나라는 그저 말없이 쳐다볼 뿐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르오가 동생의 손아귀에서 물통을 뺏어 들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동생이 아귀힘이 좋아요.”
“아, 감사합니다.”
“다른 건요?”
“예?”
“저희는 가문의 모든 것을 걸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바리엘이 승리한 것은 그 무엇보다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저희의 충성을 전하께 보일 길이 없어져 아쉽습니다. 정녕 바리엘과 클리포포드가 진정한 승리를 거두었습니까? 저희가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요?”
“음…….”
전령은 턱을 긁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하필이면 이리 맞닥트려서 참으로 난감한 게라. 가문의 모든 걸 걸었다는 사람에게 돌아가라 할 수도 없고, 막상 그렇게 했다가 뒷수습에 있어 일손이 부족하면?
자신이 전하는 것은 정확히 ‘버고스의 왕, 다몬의 생포로 인한 전투 종료’인 것이지, ‘버고스 격파’라든지 ‘종전’이 아니지 않나.
전령은 물통을 다시 건네주며 은근슬쩍 발을 빼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정 신경 쓰이시면 직접 가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얼마 멀지 않았으니까요.”
“이쪽으로 쭉 가면 됩니까? 다른 진영은요?”
“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장벽 나오면서 보니까 루스웨나가 진영을 치고 있더이다. 아마 그쪽으로 갔으면 저도 헛걸음하여 돌았을 것입니다.”
전령은 제 할 말만 남겨둔 채 다시금 말에 올라타 그들을 지나쳐갔다.
그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세르오. 이내 머리를 쥐어 잡으며 알레나라와 전령을 번갈아 봤다.
“알레나라!”
인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모두가 가만있을 때 괜히 나서서 파산하게 생겼다고,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모든 비난과 울부짖음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알레나라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른 채 인상만 찌푸릴 뿐이다.
“조용히 해봐요. 오라버니.”
“항상 그렇게 말하지, 너는! 너는!”
“지금 루스웨나 왕의 입장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까? 중간에 붕 뜨고 말았다고요. 버고스와 동맹하여 바리엘에 무역 제재까지 받으며 참전했건만, 버고스 왕의 생포로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게 생겼어요. 차라리 그러면 낫죠. 전쟁에서 진 나라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우리는 모두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았습니까?”
기회다. 기회.
에리포니 왕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레나라의 도움을 바랄 것이다. 바리엘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있는 작은 가시. 부풀 대로 부풀어 날아오르기 직전인 바리엘이라는 풍선에 이만한 것이 없으리라.
알레나라는 제 오라비의 어깨를 툭 치며 마차로 돌아갔다. 병사들과 용병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반쯤 튼 채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발걸음을 서두릅시다! 갈림길이 나오면 저는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오라버니는 직진하여 클리포포드 장벽 안으로 입성하세요.”
“너 혼자 가겠다고? 루스웨나 쪽으로?”
“에리포니 왕께서는 오라버니 만나는 것보다 저 만나는 걸 더 선호하실 것 같은데요. 됐고, 갑시다. 아까 전령이 하는 말 들었죠? 마법부 측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놓칠 수 없습니다. 움직여요!”
알레나라는 손뼉을 치며 마부들을 재촉했고, 이내 세르오는 다시금 투구를 고쳐 썼다. 숲을 지나고 있어서 그런지 곧 있으면 해가 질 것만 같았다.
전령이 이른 대로, 갈림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고, 알레나라는 마차 하나에 몸을 의탁한 채로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창밖으로 몸을 쭉 빼며 제 오라비에게 단단히 일렀다.
“오라버니! 우선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입성에만 의의를 둔 채, 기다리세요. 그것이 전언이든, 아니면 전쟁의 소란이든.”
타닥타닥!
알레나라는 그리 당부한 다음, 마차 창문을 닫고 딱딱한 소파에 몸을 기댔다.
검이라고 해서 모두 날을 지닐 필요는 없지 않나? 상대를 찔러 그 숨을 가져오는 것만 해내면 될 일.
알레나라는 제 손에 검이 쥐어졌다는 걸 깨닫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그녀 역시 전쟁의 한 부분이 되리라.
* * *
“이안 님! 이안 님!”
“서두르다 다치십니다! 이안 님!”
“인마, 뭐 해! 천천히 모시지 않고?”
“이안아아아! 갑자기 왜 그래? 그쪽 식당 아닌데!”
좀처럼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는 이안이 숨까지 몰아쉬며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몸 상태가 워낙 안 좋으니 그 여파겠지만 말이다.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베릭과 마법사들이 놀라서 그 뒤를 따라붙었고, 이내 다몬이 갇힌 간이 감옥에 당도했다.
“하아, 하아…….”
이안은 서류 뭉텅이를 쥔 채 숨을 골랐다. 그의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땀 한 방울. 이어서 고개를 살짝 틀더니, 눈빛으로 모두에게 물러나라 지시했다.
스윽.
무언가 심상치가 않다. 마법사들은 지하 감옥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이안을 지켜보기만 했다.
“열어.”
처억!
클리포포드 병사는 경례하며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마법사들임을 믿고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달그락, 쇳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림과 동시에 이안이 그 안으로 달려들었다.
갑옷을 벗은 채 전장의 옷차림 그대로인 다몬. 몸수색을 통하여 특별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다음, 손목과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상태였다.
일국의 왕이긴 하나, 그는 어디까지나 전쟁 포로였다. 그 추락의 정도가 깊음을 전시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선전은 없으니, 이러한 처우는 당연했다.
“다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똑바로 하라.”
“…….”
길들여지지 않은 보랏빛 눈동자에서 반항의 빛이 번뜩였다. 그는 대답을 회피하여 고개 숙였고, 머리칼이 흘러내리며 얼굴 반을 덮었다.
“러더포드 상단의 상단주와 직접 만난 적이 있지?”
“…….”
“그쪽에 재화를 지불하고 무엇을 얻었는가?”
“…….”
“금과 은을 내어준 것으로도 모자라, 그대의 반쪽짜리 혈육은 어찌하여 보냈어? 러더포드가 그것을 원하였는가? 그들은 어찌하여 그대에게 혈육이 있다는 걸 알았는가? 왕과 왕비는 죽었고, 이는 버고스 내에서도 쉬쉬할 문제인데.”
“…….”
“러더포드도 알고 있나? 그대의 삶을? 그렇다면 어찌하여 집시에게 비밀을 줄 수 있었지?”
“궁금한 게 많은가 봐. 그런데 어쩌지? 난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묻는다고 해서 말할 의무는 없잖아.”
다몬이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이안이 거칠게 그의 머리칼을 잡아 벽에 짓눌렀다.
터억!
“대답, 똑바로 하라 했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