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14
제414화. 마법사들이 보는 방향
“이안 님, 진정하십시오!”
“이봐, 뭐 해? 말리지 않고?”
거친 소리에 마법사들이 달려와 이안을 붙잡았다. 제아무리 포로 신세라 하지만, 적국의 왕이 아닌가. 적정 수준의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 국제적인 정세에 있어 올바를 것이다.
이안은 부하들의 만류에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몬의 머리채를 놓았다. 턱이 울렁이는 것이 깊은 분노를 짐작하게 했다.
“위대한 마법사들아.”
“그쪽은 조용히 하십시오. 이안 님, 손 안 다치셨어요? 왜 거친 일을 직접 하려 하십니까?”
“아직 마법 부작용이 덜 가신 듯합니다.”
“예. 이런 건 클리포포드에 맡기십시오. 저희가 개입해서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아시면서.”
“진정하시고, 이안 님. 저희 식사해요. 베릭 놈이 다 먹기 전에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마법사들은 이안의 손등을 툭툭 쳐주며 걱정스러운 말을 덧붙였다. 무거운 족쇄에 힘없이 주저앉은 다몬에게는 그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헤일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헤일은 다몬의 위아래를 훑으며 혹여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아무리 바리엘이 현 전쟁에 있어서 막대한 공을 세웠다고 한들, 이는 클리포포드와 버고스의 전쟁. 휴전 중 포로 신분인 왕인지라, 혹여 문제가 생기면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황궁에서 저들을 견제하기 위해 눈 부라리는 자들 말이다.
“마법부 소문이 버고스 끝까지 닿더만, 허상이 아니었나 보군. 이안 경, 변경에서 나고 자란 천한 출신임에도 아주 훌륭히 자리 잡았어. 솔직히 핏줄은 무시 못 하는 법인데 말이지.”
“다몬 왕. 조용히 하라 일렀소.”
“아니면, 원래 그리 타고 났나?”
다몬이 히죽히죽 웃으며 제 옷깃을 털었다. 손짓에 따라 잘그락거리는 족쇄. 헤일은 저자의 입에서 불손한 발언이 나올 것을 짐작하고, 마법사들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소리보다 따른 행동이 있던가? 다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확히는 반쯤 오류로 만들어진 이안의 비밀을 폭로했다.
“황족의 피가 흐르는 터라, 제자리를 찾은 것인가?”
마법사들의 고개가 순간 움찔했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귀끝. 지금 다몬 왕이 무슨 말을 했는지, 머릿속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라.
이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다몬을 내려다보기만 하였고, 그는 연신 고개를 까딱거리며 웃었다.
“무어라 말을 해보거라, 이안!”
“이안 님, 미, 미, 미친놈 같습니다. 버고스 왕이 제정신 아니네요. 하하.”
“아무리 그래도 황가의 핏줄을 입에 올리다니. 이건 불경죄 중에서도 중죄입니다. 본보기를 보이시는 게 좋겠는데요.”
“예. 진 전하의 명 없이도 충분히 이행 가능합니다. 자를까요? 잘라서 기절시키는 게 낫겠습니다.”
마법사들은 당황하여 속된 말을 뱉어냈다. 그럴수록 다몬은 폭주하여 헛된 소리를 내었지만 말이다. 이안이 황실의 핏줄을 잇고 있다는.
“의심스러운 자는 바리엘로 돌아가 검증해보거라. 내 저놈이 황실 핏줄임을, 모든 걸 걸고 맹세하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 그대들은 대체 누구를 따르고 있나? 그대들이 아는 이안이 정녕 이안이 맞을까? 응?”
날 선 고함에 마법사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헤일은 바로 재갈을 가져와 다몬 입을 틀어막았고, 이내 병사들을 쳐다봤다.
아무리 철저히 단속한다 한들, 저들은 바리엘인이 아니라 클리포포드인인지라. 노아 왕자가 듣고자 한다면 들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최대한 근본 없고, 근거 없는 적군의 포효처럼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안 님. 다몬 왕에게 취조하실 것이 있어 보였는데요. 아코렐라를 들라 할까요? 아직 효과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실담물약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안 님이 원하시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인지하는 순간 사랑이 되고, 문제 역시 인지하는 순간 문제가 된다. 헤일이 아무런 반응 없이 다몬의 발악을 넘기자, 마법사들 역시 동요하던 것을 천천히 멈추었다.
“…되었다. 그건 부작용이 너무 많아.”
진 황태자 전하께서 다몬이 무릎 꿇고 목 베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시어, 제국의 위엄을 만천하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 또한 저자의 잘린 목을 셀레나가 보는 방향으로 효시하여, 그녀가 가는 저승길을 위로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버고스를 비롯한 주변국에게 칼날 같은 경고장이 될 터.
그러니, 다몬에게 즉석에서 만든 실담물약을 먹일 수는 없었다. 최대한 서둘러 바리엘로 돌아가, 마법부에서 보관중인 완성품을 먹이는 게 맞을 터라. 어차피 마법부 장관은 이안이었기에, 누구의 방해 없이 다몬의 진실된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게다.
이안은 땀방울을 훔쳐내며 헤일의 손을 가볍게 쳐냈다.
“단단히 묶어 두어라. 재갈 역시 식음 외에는 물려두고. 진영이 정리되는 즉시 바리엘로 돌아간다.”
바리엘로 돌아간다!
마법사들은 기쁨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서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클리포포드가 비록 아름다운 땅이긴 하지만, 어찌 고향과 비견할 수 있을까.
원래 바리엘을 떠나온 이유 자체가 이안을 데려오는 것이었기에, 마법사들은 임무를 완벽히 완수했노라 자부할 수도 있었다.
“예. 돌아갑시다. 아니면 이안 님 먼저 돌아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마법사나 마검사들은 기동력이 좋으니, 늦게 출발하여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안 님이 다몬 왕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시면, 저희가 금방 뒤따르겠습니다.”
“예. 차출하여 반으로 나누시지요.”
“우선 마력이 돌아온 자들부터 확인해볼까요? 일단 저. 힘이 반쯤 들어옵니다. 저녁 중이면 온전한 회복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안을 먼저 황궁으로 보내자.
마법사들은 모두 그리 생각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곳에는 로만드로도 있고, 진 전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안이 사랑하는 황궁이 있었다. 이곳에서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 그를 먼저 올려보내는 게 여러모로 나은 선택인 듯 싶었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러면 당장 내일 아침.”
“예. 내일 아침! 클리포포드 측에 일러두겠습니다.”
“트웰러 장관께도 전달하시지요. 제국방위부 내에서 호위를 겸한 병력을 내어줄 것입니다. 황궁친위대는 베릭이랑 바르사베가 있고요.”
마법사들은 이안을 부축하며 뒤를 힐끔거렸다. 다몬의 형형한 눈빛이 여전히 그들을 쫓고 있었으니, 그들은 괜히 그 시선을 피하며 이안에게 집중했다. 이안은 다몬의 근본 없는 말에 별 동요가 없어 보였다.
이것이 정상인가? 워낙에 개소리라 반응할 가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안의 평소 성격상 황실을 모독하는 자는 필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였는데, 상대 역시 왕인지라 넘어간 것인가?
헤일이 재빠르게 갈무리 했지만, 마법사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타앗.
마법사들은 헤일이 이안을 부축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 누군가 중얼거렸다.
“얘들아.”
“어?”
“혹시 말이다. 혹시. 조온나 혹시.”
“뭔데 서두를 그딴 식으로 깔아.”
“이안 님이 황실의 숨겨진 핏줄이고, 이드갈을 만든 거라면. 너희는 어떡할래?”
“개소리 옮았네.”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졌으나, 입을 떼었던 자는 사뭇 진지하게 가설을 이어갔다. 만약 이안이 공식적으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황실의 핏줄이라면?
황궁에서도 워낙 말이 많았잖은가. 어린 황태자 진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황실이 마법사를 제어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가 마력봉인석이었다.
무엇인지 확실히 가늠할 수는 없으나, 황실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이드갈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그렇다면, 다몬 왕의 펜던트와 반응했던 이안의 추쇄 마법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단편적인 단서만 두고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딱 하나는 분명했다.
‘그대들이 아는 이안이 정녕 이안이 맞을까?’
다몬의 마지막 말. 자신들이 아는 이안 외, 그에게는 더 깊고 은밀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마법사의 낯이 어두워지자, 누군가가 그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어?”
“이안 님이 황실 핏줄이면 어쩔 거고, 이드갈 만들었으면 어쩔 거냐고.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 중에, 이안 님 입으로 직접 들은 거 있어? 다 상대측 얘기만 들은 거잖아. 장관께서 별말씀 없으신데, 왜 우리가 그런 걱정을 사서 하고 있지?”
“그래. 전쟁 통에 별별 헛소문 나는 건 자연스럽잖아. 그리고 뭐가 되었든, 난 이안 님이 바리엘에 해되는 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란 당시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직접 지켜봐오지 않았던가. 몸을 내던저 진 황태자를 구하고, 셀레나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으며, 버고스 진영의 수뇌를 향해 저 홀로 뛰어들었다. 뒤에 어떠한 의문이 있다 한들, 이안의 행동들이 귀감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안 님이니까, 사정이 있더라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켜보고 싶어.”
“나도. 언젠가는 말씀해 주시겠지.”
이안을 만나고자 황궁의 명까지 저버리고 이 먼 클리포포드로 뚝 떨어졌다. 그런 그들에게, 바라보고 걸어갈 길이라 하면 이안밖에 더 있나?
“…그, 있지. 솔직히 이안 님 아니었으면 나는 마법부 진작 나갔을 것 같아.”
많은 풍파가 있었다. 마법사들은 그 풍파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특히 이전에는 웨슬리로 인하여 부서 내부에서도 대립이 팽팽했다.
그런데 지금을 보라. 이안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그들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신께서 온전히 하나이듯, 그에게 제일 가까운 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비로소 정체성을 찾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저 황궁의 부서라는 단위로 저들을 묶을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유대 관계.
“이안 님이 가는 곳이면 난 어디든 간다. 이안 님이 하는 것이라면 난 뭐든지 지지해. 그러니까, 혹시 반대하는 사람 있으면 내 앞에서 말하지 말아줘. 듣고 싶지 않으니까.”
“지만 잘났지. 나도거든?”
“그래. 우리가 뭘 알겠냐? 이안 님 믿고 기다리자. 황궁 돌아가면 이드갈 관련해서도 조사가 진행될 거니까.”
마법사들은 괜히 서로의 어깨를 치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했다.
그때, 장벽 위에서 망 보던 병사의 의뭉스러운 탄성.
“어?”
“왜 그러나?”
“저기, 바리엘 국기가 보입니다. 추가 지원군인 것 같은데요.”
추가 지원군?
장벽 책임자가 망원경을 건네 받았고, 마법사들의 시선 역시 단숨에 그쪽으로 옮겨졌다. 전쟁 다 끝났는데, 지원군은 무슨 지원군?
그리고 무엇보다 맥심 트웰러 장관에게서 전달받은 사안이 없었다. 제국방위부는 이번 전쟁에서 공 세우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아마 그의 세력이 아닌 자가 따로 차출되었을 리는 없다. 황궁에 남아있는 친 트웰러 파가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까.
“마법사님들. 잠시 와서 보시겠습니까? 바리엘 국기는 맞는데, 그 뒤에 또 다른 문양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귀족인 것 같은데요.”
“귀족이요? 클리포포드와 접한 변경백이 있었나?”
“기억으로는 없는데. 네가 한번 봐봐.”
한 마법사가 가볍게 장벽 위로 뛰어올라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댔다. 익숙한 문양. 마법사는 저절로 그 이름을 불렀다.
“세르오가인데?”
“세르오? 그 머저리?”
“쉿! 그거 모독죄다.”
“괜찮아. 여기 클리포포드 땅이니까, 벌 안 받음.”
“아, 그래? 똥머저리가 여긴 왜 왔대?”
“몰라. 우선 내가 마중 나가볼게. 뒷북 거하게 치는 것 같은데.”
장벽 위의 마법사가 동료들에게 그리 알린 다음, 날아오르기 위해 마력을 개방하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솨아악.
발바닥을 통해 아주 희미하게 울리는 진동.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벽 바닥에 귀를 바짝 붙였고, 이내 확실히 울리는 땅울림을 들었다.
지진 전조 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