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3
제423화. 미래를 건지다
새로운 해가 떴다.
대제국 바리엘의 단단한 받침이자 자랑인 마법사들이, 전쟁에서 승기를 거머쥔 채 귀국하는 날의 해다.
바-리엘!
신께서 품고 있는 광영의 시작이라-
비 내리면 금빛으로 물드는 가이아의 심장이라.
높게 높게 고개 들라. 그리하면 보이리니-
저기 높은 곳의 빛이, 바리엘의 등불이라-
끝날 만하면 다시 누군가 ‘바-리엘!’을 외쳤고, 그리하면 응당 누군가는 흔쾌히 뒤쪽 가사를 받아주었다. 덕분에 바리엘 찬가는 몇 시간째 끊임없이 이어졌다.
“더, 더 크게 불러봐! 저 멀리 있는 마법사님들이 들을 수 있게!”
“이번에 그쪽 아들이 제국방위부 소속으로 출정하였다면서요? 축하합니다. 영웅을 기르셨어요.”
“아닙니다. 부인. 모두 제국의 축복 덕분이지요. 얼마 전에 편지를 받았는데, 클리포포드 뒷수습에 자원하였다고 하네요.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조금 늦어지겠지만, 마법사님들이 닦아놓으셨으니 힘들지 않을 겝니다.”
“대견합니다! 이봐요! 여기 맥주 한 잔 더!”
“이건 내 서비스로 주는 겁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기분 제대로 내야지요! 자자! 빈 잔들 갖고 오세요!”
“짠돌이가 웬일이래?”
“몰랐어? 사장 아들이 징집 대상이잖아. 전쟁 나고서부터 얼마나 신경질이었다고. 그런데 마법부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니, 얼마나 안심되겠어? 아무리 바리엘 제국기를 가슴에 단다지만, 그런다고 창이 비껴가나, 검이 비껴가나? 전쟁터 안 보내는 게 최선이지.”
“그랬군. 주인! 사양하지 않겠어! 거품 빼고 시원하게 채워주게!”
“거품이 몸에 좋아, 이 사람아.”
“어? 저기! 장벽에서 깃발이 흔들린다!”
“다들 왔나봅니다! 이런! 서둘러 일어납시다!”
타닥타닥!
마치 황태자 임명식을 연상하게 하는 소란이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는 마법사들의 힘 덕분에 온 세상이 반짝였다는 것.
하나 지금은 오롯이 제국민들의 환호와 함성으로만 가득 찼다. 그들은 흰색 풍선을 띄우거나 흰색 꽃잎 따위를 이리저리 뿌려대며, 마법사들의 무사 귀환과 전쟁의 승리를 축하했다.
일찍이 발 빠른 자들이 중앙 도로 쪽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바리엘 제국기. 피가 얼룩덜룩 묻어있었으나, 그로서 더욱 완벽해 보이는 깃발이었다.
“이안 님! 마법사님들!”
“와아아아! 오셨다! 드디어 마법부가 돌아왔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여기 봐주세요! 여기!”
“제국방위부! 그리고 황궁친위대! 잊지 않습니다! 훌륭히 바리엘의 역사를 지켜내었소!”
인파가 몰려들자, 황궁 병사들이 몸으로 막아서며 질서를 지켜냈다.
틈틈이 쏟아지는 손길. 그리고 그 손길을 따라 던져지는 흰색 꽃. 하늘에는 흰색 풍선이 계속해서 피어올랐으며, 여기저기 웃음소리와 함께 악단의 소란이 들려왔다.
이안은 열린 창문 틈으로 얼굴을 보여주며 웃었고, 베릭은 몸을 반쯤 빼낸 채 제국민들과 손바닥을 연신 부딪쳐댔다.
“오! 뭔데, 뭔데. 나 인기 졸라 많아졌다!”
“베릭, 네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쏟아지는 환대다. 하하하! 고맙소. 아이고, 뭘.”
마법사들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으나, 열성적으로 쏟아지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씰룩쌜룩, 조금씩 올라가는 광대와 함께 그들은 완전히 무장 해제되어 제국민의 선물을 손에 닿는 대로 거두어 들었다.
“이안 님! 황궁이 보입니다!”
“그래. 보인다.”
마법사들은 가까워지는 황궁을 보며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대체 얼마 만에 돌아오는 것인가. 황궁에서 먹고 자고 할 때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은 일터였는데, 이리 멀리서 보니 집과 다름없다.
몇몇 마법사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감회에 젖어 들었고, 다른 자들은 멈추지 않고 제국민들의 인사를 받았다.
“이안 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베릭! 너도 어디 잘린 곳 없지? 잘 왔다!”
“문이나 열어! 나 배고파아아!”
“하하하! 녀석, 그대로군!”
황궁의 경비병들이 장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웃어댔다.
베릭이 중앙으로 들어오는 걸 신기하다 여긴 것처럼, 이안 역시 문득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베로시온의 삶 때 겪었던 황궁과 현재 자신이 겪는 황궁. 모두 한 시간선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고작 백여 년이라는 짤막한 순간도 이만한데, 수백, 수천 년에 이르는 바리엘이란 이름은 얼마나 화사하고 웅장한 것이란 말인가.
끼이익!
타닥타닥!
마부는 익숙하게 길을 틀어 황궁을 가로질렀다. 저 멀리, 제1황궁 본관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손수 앞으로 나와 있는 자들. 그 수를 어림잡아 현재 황궁에 있는 관료들이 모두 모여있는 게 분명했다.
이안은 자연스레 창을 통해 은빛 머리칼부터 찾았다.
“…….”
하지만 어쩐지 눈에 쉬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나오지 않으신 게다. 이안은 마차가 멈추자마자 내려, 수상에게 인사했다.
“이안 경! 세상에나! 초췌해진 것 좀 보아.”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무사히 귀국, 입성하였습니다. 모두에게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 어찌 전쟁 영웅에게 사과를 듣겠나? 그리하면 황궁의 노인들이 면구스러우니, 그만두어주시게.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일세.”
“이아아아안!”
그때, 오른쪽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 마법사들과 베릭 역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눈물 콧물로 얼굴이 젖어있는 로만드로였다. 홀로 마법부를 지키고 있던 게 고되긴 하였는지, 살이 더 찌고 얼굴은 푸석푸석해진 것 같았다.
이안이 싱긋 웃자, 로만드로는 소매로 콧물을 닦으며 터덜터덜 달려왔다. 하찮고 또 하찮지만, 황궁의 중심을 굳건히 지켜주었던 자.
“로만드로 님.”
“아이고, 왜 이제 와아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무리하였다고 보고서에 적혀있던데, 살이 더 빠졌네. 베릭! 베릭! 베릭, 이 똥강아지는?!”
“아, 귀 아파. 뭐여. 로만드로 님은 왜 살이 더 쪘대요? 비비안나보다 배가 더 나오게 생겼어요.”
“말하는 걸로 보아, 네놈도 멀쩡하구나! 이놈! 보고 싶었다, 으이구! 가서 말 잘 들었지? 다친 곳 없고?”
“나는 잘 들었지요. 이안이한테 물어봐요.”
그럴 틈도 없었다. 뒤이어 마차에서 내린 마법사들이 로만드로를 발견하곤 덩실덩실 뛰어왔다.
“우와아아! 로만드로 님!”
“다들! 으허어엉. 보고 싶었어. 왜들 이제 와아잉!”
“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외근증, 다들 내일 중으로 올려줘. 보고서도 같이.”
“아아. 만나자마자 이러면 감동 팍 깨지는데.”
“아니지. 이참에 보고서 너희들끼리 취합해 올려라. 나, 너희들 뒤치다꺼리 계속하다가는 우리 애기 못 보고 먼저 죽겠다.”
“앗! 그러면 안 되는데!”
질색하는 말투와 달리, 로만드로는 마법사들과 어깨동무하며 연신 방방 뛰어다녔다. 반가운 자들과 포옹하고 인사를 나누며, 무탈한지 확인하는 모습.
이내 이안에게도 달려와 스스럼없이 세게 껴안았다. 놀란 이안이 양팔을 어색하게 들었으나, 로만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세게 힘을 주었다.
“이안. 무사히 돌아와서 내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네. 진심으로. 보고 싶었다네.”
“예.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전장에 있는 와중에도 황궁 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어라? 로만드로 님, 우네? 울어요?”
“안 울어, 이놈아!”
“으하하하! 우는데? 나도. 나도 안아줘봐요.”
“으이구, 이놈. 이리 와봐!”
베릭이 장난스럽게 그들의 어깨를 덮치자, 로만드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두 사람을 한꺼번에 품었다.
이안의 코끝으로 익숙한 향기가 스쳐 지나갔다. 필리아의 약혼식이 열렸던, 그 작고 아담한 저택의 향수(鄕愁)였다. 이안은 로만드로를 안은 채 작게 속삭였다.
“…어머니와 새아버지는요?”
“저택 떠날 준비는 애저녁에 했지. 그런데 이안 네가 갑자기 그렇게 되고, 나 역시 저택에 자주 갈 수가 없으니… 비비안나를 위해 조금 더 머물고 있다네. 아들 얼굴 한번 보고 가겠노라, 필리아가 얼마나 고대했는지 몰라.”
“그러셨군요.”
갑작스럽게 계약 마법 부작용으로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리되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로만드로를 떼어냈다.
“전하께 인사드리러 가야겠습니다. 이동하시지요.”
이안의 말에 관료들과 웃고 떠들던 마법사들이 일렬로 서서 대열을 재정비했다. 수상은 시계를 확인하였고, 이내 기다렸다는 듯 앞장서 그들을 황궁 본관 안쪽으로 이끌었다.
“전하. 마법부의 이안 히엘로 장관이 귀국했습니다.”
“들라.”
끼이익.
짧은 허락이 떨어지자, 시종들이 문을 열어 그들을 반겨주었다.
응접실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진. 그리고 그 뒤를 지키고 있는 시아오시. 조금씩 벌어지는 문틈으로 그들의 시선이 먼저 맞물렸다.
‘아.’
이안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황태자가 어리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인지하지는 못했던 것이라.
진이 성장한 모습을 마주하자니, 과거의 아이가 얼마나 작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키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훌쩍 자라있었다.
한껏 성숙해진 눈빛, 곧은 허리와 어깨, 살짝 길게 자란 머리칼. 그리고 무엇보다 황제라는 이름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위엄까지.
이안은 허리를 숙이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고, 예법에 따라 인사를 올렸다.
“전하. 마법부 이안 히엘로 장관입니다. 클리포포드와 버고스 사이의 전쟁에서 바리엘의 미래를 가져왔나이다. 부디 전하의 마음이 흡족하시어, 오래도록 자리 비운 제 부덕을 용서해주시길.”
“이안 경.”
진이 소매 안으로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당장이라도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싶었으나, 이 자리에는 다른 마법사들을 비롯하여 눈들이 많았다. 진은 천천히 손짓하여 빈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나누고 싶은 것이 많아.”
“예. 전하. 저 또한 드리고 싶은 게 많습니다.”
진은 속에서 물결이 쳐대는 걸 느꼈다. 철썩철썩, 파도가 바위를 내려치는 것과 같이, 기쁨과 환호로 인하여 몸속 어딘가가 연신 시끄러웠다.
편지는 보았어? 자신이 볼브 장관을 숙청했다는 건 당연히 들었겠지? 맥심 트웰러를 실제로 보고, 함께 일한 소감은 어떠한가? 믿을 만한 사람 같은데, 이안 경도 그리 느꼈나? 전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지?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데, 아픈 곳은 있나?
온갖 질문이 혀끝을 맴돌았으나, 진은 차분히 눌러대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바리엘의 미래를 건져왔다는 건, 확실한 것인가?”
“예. 전하.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이를 옆에서 직접 지켜본 자가 있으니, 그를 위한 거처를 마법부에 마련하고자 합니다.”
온갖 사사로운 질문을 뒤로하고, 제일 먼저 나온 것은 국가의 중대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안은 기특하다며, 싱긋 웃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궁금하군. 과연 그대의 손을 통하여 내게 온 미래가 무엇일지.”
무덤덤한 표정을 최대한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시아오시는 아이가 들떠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하여, 시계를 보는 척 다른 자들에게 시간을 상기시켰다.
“오후에 있을 회의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겠습니까?”
“아, 예예. 물론입니다. 시아오시 경.”
“마법부가 직접 전쟁 결과를 보고하는 회의입니다. 경의 말대로, 모든 것이 확신 아래 흘러갔으면 좋겠군요.”
“그러면… 잠시 실례합니다.”
“저도. 크흠.”
시아오시의 뜻을 알아챈 자들이 하나둘씩 슬쩍 자리를 떠났다. 진이 보다 편하게 이안을 맞이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것이라.
시아오시가 관료들 앞에 나서서 손수 일정을 조율하자, 베릭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나 방금 ‘시아오시 경’이란 말 들었는데, 실화인가?”
“베릭. 여전하다.”
“시아! 너-”
“베릭.”
이안이 찻잔을 들어올리며 베릭을 불렀다.
“시아오시 경이라 호칭하라. 나와 같은 자작이시니.”
“진짜? 진짜로 경이라 불러? 시아, 말해봐!”
쉬이.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중하라 이르자, 시아오시는 베릭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놀리기 만만한 이를 놀릴 때의 눈빛이었다.
“경이라 불러다오. 베릭.”
“이, 이, 미친-”
베릭은 입을 떡 벌린 채 뒷걸음질 쳤고, 시아오시는 로만드로와 베릭만을 들인 채 문손잡이를 잡았다.
“소파가 모자라니, 다른 마법사분들은 옆 응접실을 이용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안내해 드리거라.”
“예. 이쪽으로 오시지요.”
끼이익.
자연스럽게 주위를 정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베릭은 눈만 끔뻑거린 채 그런 시아오시를 어색하게 쳐다보았고, 로만드로는 연신 코를 훌쩍이며 진의 곁으로 다가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아이는 저도 모르게 이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매 속에서 연신 꼼지락거리던 그 손이다.
“이안 경.”
그리고 위엄이 한껏 빠진 아이의 목소리. 이안은 싱긋 웃으며 두 손으로 진의 악수를 맞잡았다.
“예. 전하. 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