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4
제424화. 돌아온 마법부
이안의 선보고를 전해 들은 진의 낯이 굳어졌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라는 승리의 빛 뒤쪽, 균열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라.
진은 무너지듯 이마를 두 손으로 짚고서 중얼거렸다.
“마물의 범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예상하는 게 좋을끼?”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법부가 일찍이 돌아온 것이지요. 황궁 안, 자료실에 분명히 길라잡이가 있을 터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북쪽의 힘이 남쪽으로 이동한다는 게 생각보다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 녹아들어 사는 존재요, 애석하게도 자연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여 이를 인지하지 못하니. 언제든지 불행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생태계가 바뀌고, 그로 인하여 가이아의 정세와 균형이 뒤틀릴 것이다.
모든 중심에는 바리엘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오롯이 서서 걸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거꾸로 매달려 두 팔로 걷는다 한들, 역사 속에 사는 자신들은 세상이 뒤집힌 것을 알아채기 어려우니까.
여파는 후손들이 가져갈 터다. 꾸역꾸역 걸어가던 도중,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쓰러지는 그 순간. 그 순간은 미래에 분명히 존재했다.
“오늘은 우선 전하께 이리 보고하고, 마법부로 돌아가 자료 조사와 다몬 왕의 심문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리하여, 오후 느지막이 있을 대회의에서 살을 덧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 알아낼 수 있는가?”
“어렵겠지만, 불가능은 아닙니다. 불가능이 아니라 함은, 해내야 한다는 걸 뜻하고요. 전하. 그게 저와 마법부의 소임 아니겠습니까.”
이안이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금빛 머리칼이 아래로 흐트러졌다. 걱정을 깔끔하게 잘라내는 단언이다.
진은 알겠노라 살포시 웃었고, 이어서 베릭을 힐끔거렸다. 베릭은 시아오시 옆에 딱 붙어 앉은 채, 연신 그를 낯설게 노려봤다. 무언가 불만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탄족의 족장은 언제쯤 황궁에 당도할 것 같은가? 워낙에 바람과 같은 자들이라, 초대장이 가닿긴 할는지 모르겠다.”
“그자들은 여러모로 빠릅니다. 무엇을 하든 간에, 알맞은 시각에 맞게끔 올 터. 전하께서 에리포니 왕에게 날짜를 선고하시면, 귀신같이 알고 함께할 것입니다.”
“베릭. 아탄족을 만나니 어떠했니?”
“에프디람? 빠갈머리요?”
“빠갈?”
비속어인가, 아니면 말실수인가?
진이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베릭의 시선은 시아오시 곁에 머문 채 떨어지질 않았다. 이 자리에서 작위 없는 것은 본인밖에 없다는 걸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했다.
한평생 황궁 자문관으로 일한 평민 로만드로가 옆에 버젓이 서 있거늘. 베릭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재수 없던데요.”
“그래?”
“예. 자꾸 이안이한테 저 팔라 그래서 솔직히 식겁하긴 했죠. 그런데 전하. 저도 작위 주세요.”
“푸흡-!”
갑작스러운 발언에 로만드로가 입안의 차를 뿜었다. 작위를 내려달라 요청하는 작태를 감히 상상해본 적도 없건만,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보고 만 것이다.
로만드로는 손등으로 찻물을 훔쳐내며 베릭을 강경하게 꾸짖었다.
“이놈아! 사리 분별 못 하면 가만히나 있으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송구합니다. 전하.”
“아니. 괜찮다. 베릭이잖나.”
“베릭, 잘 들어. 황실에 작위를 직접 요청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이다. 황실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는 전적으로 황실의 의지, 나아가 폐하와 전하의 의지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신성한 치하. 외부 압박이 들어가는 순간, 황권이 흔들렸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베릭.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조심 좀 하자. 응? 전하께서 관대하신 것과 이곳에 우리밖에 없음을 천운으로 여겨. 그렇지 않으면 괜히 꼬투리 잡혀 궁 밖으로 퇴출당했을 것이니!”
“나도 내란 때 시아오시랑 같이 싸웠는데! 나는 그때 배에 빵꾸 졸라 큰 거 나서 몇 날 며칠 누워있었고! 이번에는 전쟁도 직접 나갔다고!”
“자리 줘도 못 먹을 놈이 갑자기 왜 이래?”
베릭은 로만드로의 시선을 멀리하며 콧노래를 흥얼댔다. 누가 보아도 불만 가득하여 딴청 피우는 표정이다.
다른 자도 아니고, 친하게 지냈던 시아오시의 출세가 부러울 수도 있겠지. 진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먹을 것을 베릭 앞으로 밀어주며 설명했다.
“베릭. 그대가 황궁에 기여한 사실 역시 충분히 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시아오시에게 작위를 하사한 것은 단순히 그 업적을 치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어. 맥심 트웰러를 장관으로 세우고, 시아오시를 장교로 올림으로써 황궁 내 나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이정표로 삼은 것이라.”
베릭은 슬쩍 과자를 집어 오도독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뾰로통한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숙청에서 대상화되었던 것은 제국방위부. 시아오시의 소속이 그쪽이니, 당연지사 시아오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베릭, 내란과 전쟁에서 공 세운 것을 내 알고 있어. 하지만 조금 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목숨을 내놓은 수많은 사람 틈에서, 내가 베릭 그대의 손을 잡아 올릴 수 있는 명분.”
“…….”
사람을 어르고 달래는 것이, 꽤 그럴듯하고 적당했다. 이안은 차를 홀짝이며 진의 옆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어렸던 그 진 저하는 어디로 가셨나? 아이의 한 해는 다 자란 자의 십 년과 같다 하더니, 실로 눈부신 성장이라. 과거의 어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만 할 수 있는 거요?”
“응. 그게 무엇인지는 우리 함께 찾아보자.”
진이 베릭의 손등을 토닥이자, 베릭이 삐졌다는 듯 반쯤 틀었던 몸을 바로 했다. 나만 할 수 있는 거라……
아탄족. 순간 베릭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한 단어였다. 황궁 내에서 아탄족과 연관 있는 자는 자신밖에 없으니, 그쪽을 노려볼까?
로만드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베릭에게 물었다.
“난 네가 자리 욕심 있는 놈인 줄 몰랐다. 너를 경이라 부를 아랫사람 생각해서라도 작위는 이번 생에서 물 건너갔다 여겨.”
“작위 받으면 봉토도 받잖아요.”
“응? 그렇긴 하지.”
어쭈? 명예만 갖고 싶은 게 아니라 물질적인 것까지? 로만드로가 놀란 눈치를 보였으나, 이내 이어지는 베릭의 말에 모든 것이 와장창 깨졌다.
“나 그럼, 거기서 소 키울 건데.”
“…….”
…더 이상 안 들어도 되겠다. 로만드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수건으로 찻물을 마저 닦아냈다.
이안이 대화 주제를 자연스럽게 틀었다.
“전하. 맥심 트웰러 장관 말씀입니다.”
“오, 그래. 아래에서 보았지. 어떤가? 수상의 추천으로 내 알게 되었는데.”
“오래 겪지는 않았으나 무인의 기품을 그대로 간직한 자입니다. 이전 책임자가 갖지 못한 것을 지녔으니, 바리엘 황궁에 잘 어울린다 볼 수 있겠지요.”
볼브를 잘 숙청하셨다. 그리고 그 과정도 아주 훌륭하셨다. 빈자리를 적합한 인재로 채우고, 부조리한 폐단을 바로 세우려 하신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이안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희미했던 진의 미소가 점점 진해지더니, 이내 활짝 피어올랐다.
‘저리 웃으시니 내가 알던 진 전하가 맞긴 하다.’
“나 역시 이곳에서 전쟁을 치렀네.”
“훌륭하십니다. 전하.”
“하여, 그대가 우리에게 승전보를 가져다준 것과 같이, 나 역시 그대들에게 승전보를 보여주고 싶었어. 이안 경. 이제는 모든 이들이 마법사란 존재의 신성함을 알고, 경외를 품게 될 것이라.”
자신이 황궁의 권력을 장악해가고 있다. 그러니 이안 경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필요도 없고,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볼 필요도 없다. 성장을 위한 견제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신은 잘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전과 같이 잘 부탁하오.”
그러니까, 이전과 같이 자신을 옆에서 도우며 바리엘의 번성에만 힘써주시오. 자신의 성장이 곧 바리엘의 성장이요, 이안과 같은 귀한 인재는 바리엘의 기둥이니.
말투는 강권에 가까울 정도 단단했으나, 시선만큼은 애절했다. 아직 자신에게는, 이안의 가르침이 절실했다.
스윽.
이안은 말없이 고개 숙인 채 인사했다.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는 모습. 이에 진이 다시금 재촉하려는 순간이었다.
똑똑.
“전하.”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물렸던 자들이 아니라 다른 건물에 있던 자들이 새로운 일거리를 들고 온 것이라.
진은 입술을 작게 깨물며 문 쪽과 이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너무 많은데, 바깥의 저자가 오죽하면 직접 인기척을 내었나 싶어서 쉬이 결정 내리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옷을 정갈하게 다듬었다.
“전하. 그럼 저는 마법부로 먼저 가 있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아직 처리할 것이 많아서요. 대회의 때 뵙고, 끝난 뒤에도 뵙지요.”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난 다음 회포를 풀자. 부드럽게 달래는 이안의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밖에 서 있는 자는 들라.”
베릭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켰고, 로만드로 역시 이안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바로 이걸 원했다. 이안과 함께 마법부로 돌아가는 이것! 로만드로는 기쁨의 눈물을 톡톡 찍어내며 감격에 겨워했고, 진의 뒤에 굳건히 선 시아오시가 이를 바라보았다.
끼이익.
“그럼, 이만.”
눈빛으로 가볍게 오가는 인사. 이안이 문밖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관료가 보고서를 한 아름 품은 채 그를 스쳐 지나갔다.
이안은 어쩐지 그 모습이 어색해서 고개를 틀었다. 마법부에 있을 때만 해도, 진의 자리는 집무실 소파였다. 그곳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업무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반듯하게 제자리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는 자가 되었구나. 이안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섰고,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을 발견했다.
“이안 님. 애들 절반은 마법부로 먼저 갔습니다. 다들 오랜만이라, 길 잃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래. 우리도 가자. 여독을 풀라 이르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그럴 수 없음을 이해하라.”
“괜찮습니다. 자료실로 간 애들이 균열 관련 문서를 싹 긁어올 것입니다. 승인을 이르게 받으면 좋겠는데요.”
“행정부에는 내가 직접 연락하지.”
“네. 알겠습니다.”
이안이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로만드로가 눈을 반짝이며 서류를 건넸다. 이럴 줄 알고 행정부에 들러 업무협조요청서를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이안은 만족스러운 듯 눈썹을 까딱거리곤, 흔쾌히 서류를 받았다.
사각사각, 오랜만에 듣는 이안의 필기 소리에 로만드로는 행복감을 느꼈다. 아, 자신은 평생 이리 보필할 팔자인가 보다. 상관이 일하는 게 이렇게나 좋을 일인가?
타닥타닥!
히이잉!
마차는 서둘러 달려 마법부에 당도했다. 앞에는 그들이 클리포포드 때부터 타고 왔던 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코렐라의 자료를 마법부 안쪽으로 옮기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코렐라!”
“누가 나 불렀냐아아! 어? 이안 님. 예예. 여기 아코렐라 있슴다.”
“사용 기간 남은 실담물약이 남아있나?”
“아슬아슬한 거 두 병 있습니다. 새로 만들까요?”
“얼마나 걸리지?”
“여기서는 눈 감고도 만들죠. 두어 시간만 주십시오.”
“좋아. 다몬 심문 준비해.”
“꺄아아악! 좋아요! 왕한테 실담물약 쓰는 건 처음인데, 이거 흥분되네요!”
“대장. 이전에 황자가 쓴 적은 있었잖아요.”
“애기는 모르면 빠져. 어른들만 아는 그런 게 있단다.”
이안이 로브를 벗으며 계단을 올랐다. 실로 익숙한 광경 덕에, 시야와 마음이 안정으로 가득 차는 신기한 기분이 든다.
그가 복도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에도, 로만드로와 몇몇 마법사들은 서류를 주고받으며 밀린 업무를 유연하게 처리했다.
달깍.
그리고 드디어 당도한 집무실. 이안은 제 책상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자를 알아보았다.
“티모시?”
티모시. 거대한 덩치는 그대로였으나, 심장 한가운데가 어그러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 티모시는 먼지 쌓인 책상을 가볍게 훑어내린 다음, 이안 쪽으로 돌아섰다.
“허락 없이 들어와 미안합니다. 허락할 만한 자들이 있기 전에 와있었습니다.”
“오랜만이군. 귀화하였다고.”
“예. 덕분에.”
“…안타깝도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안은 티모시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한 것 같았으나,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티모시는 그에 관해서 더 할 말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다몬 왕이 포로로 잡혔다고요.”
“그래. 현재 마법부 지하로 옮겨졌을 것이다.”
“만나게 해주십시오.”
“…….”
가족을, 그리고 자신을 뿌리째 흔들어버린 과거의 수장을 만나기 위한 것.
“부탁입니다. 이안 경. 다몬 왕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이안은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와 먼지를 마저 쓸어냈다. 티모시와 마주치게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다몬의 순수한 말을 얻어냈다. 이리 나온다면 곤란한 것인데.
이안은 고개를 천천히 기울이며 제 의자에 앉았다.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편안함이 온몸을 감쌌다.
“…왜?”
“만나서 꼭 물어볼 것이, 아니, 들을 것이 있으니-”
“아니. 그것이 아니라. 티모시 경.”
이안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왜 그대에게 다몬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