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6
제426화. 폭로
“전쟁의 서막입니다. 버고스에서 클리포포드로 사신을 보낸 사실이 확인됩니다. 이는 당시 궁에 있었던 나와 부하들이 증명할 수 있으니 진실과 거짓을 가릴 게 없습니다. 의문인 것이 하나 있는데, 사신의 죽음으로 버고스 측에 신호를 보내려 했음이 사실입니까?”
“클리포포드 측에서는 사신이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였는데, 그대는 죽었다 단정한 채 질문하는군.”
“죽었다고 단정한 것은 버고스고, 또 그러한 입장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에 맞게끔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사신들의 죽음은, 바리엘과 클리포포드의 과실이 아닙니다.”
“말을 아주 제멋대로 오렸다 붙였다 하는군. 역사 속에 살아가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자가 할 만한 짓은 아닌데.”
“역사가 무엇인데요? 기록된 것을 후손이 읽어내리는 것이 역사입니다. 바리엘은 전쟁에 참여했던 명분을 바탕으로 모든 걸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대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바탕으로 이리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역사라 이를 수 있겠지요.”
이안은 서류를 넘겨대며 서기 쪽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온다고, 그녀의 펜대가 아주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사신의 죽음으로 신호를 보내려 시도한 사실이 있습니까?”
“…….”
다몬은 혀가 잘린 것처럼 입을 꾹 다문 채 이안만 올려다봤다.
서류를 소리 나게 닫은 이안이 아코렐라 쪽으로 손을 까딱거렸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달려와 다몬의 턱을 거칠게 그러쥐었다.
“무엄하다!”
다몬이 묶인 손으로 아코렐라를 쳐내려 했으나, 그녀는 아주 여유롭게 그걸 잡아냈다. 아코렐라는 광기 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한껏 휘는 눈매가 저리도 무서울 수 있나? 마법사들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댔다.
“으응. 무엄하지 않습니다. 아, 하세요. 아.”
“감히-”
“아니면 더 볼품없이 먹게 될 것입니다. 다몬 왕이시여. 줄줄 흘려가며 눈물 콧물 쏟아볼래요? 아니면 개처럼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싶습니까?”
거침없는 발언에 다몬이 멈칫거렸고, 아코렐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약물을 흘려 넣었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약 먹이는 꼴이다.
아코렐라는 거칠게 다몬 왕의 입을 틀어막으며 뱉어내려는 것을 막았고, 이내 실담물약이 그의 목을 타고 아래로 흘러들어갔다.
“다시 묻겠습니다. 시작부터 이러면, 물배 차서 오늘 저녁은 안 드셔도 되겠어요. 사신의 죽음으로 신호를 보내려 하심이 맞습니까?”
“커헉! 그, 그렇다.”
“흠.”
다몬이 각혈과 함께 진실을 토했다. 갑자기 튀어 오른 피에 이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아코렐라를 쳐다봤다. 초기, 부작용으로 인하여 논란되었던 그것 아닌가?
“절반 정도 섞여 있습니다. 이게 만드는 건 더 빨라서요. 각혈하는 것 외에는 문제없습니다. 아시잖아요? 그리고 물배 좀 차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피 토해서 균형 맞춰주는 거죠. 자자, 다음은요?”
아코렐라는 수북하게 쌓인 실담물약을 흔들어 보이며 이안을 재촉했고, 서기 역시 펜대로 관자놀이를 긁어대며 동의하는 뜻을 보였다. 패전국의 왕이 피 좀 토한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나?
이안은 손수건을 그에게 내어주며 서류를 넘겼다.
“다음은…….”
이안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다몬의 웃옷은 선명하게 젖어만 갔다. 고집 한번 대단하시어, 단 한 번만이라도 협조적으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안은 어지러워 휘청거리는 다몬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비린내가 가히 역하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시선을 아래로만 고정한 채, 계속해서 침 섞인 피를 흘려댔다. 저 머릿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을까?
“많이 힘드신가?”
“…….”
“아코렐라, 이제부터는 부작용 없는 것 위주로 내놓아라. 갈 길이 먼데 왕께서 벌써 지치셨다.”
“뭐, 먹을 것 좀 줄까요?”
“무엄…….”
“무엄하다고요?”
“꺼…….”
“꺼지라고요?”
다몬은 분노와 피로감에 눌려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쓰러져 가쁜 숨만 내쉬어댔다. 각혈로 온몸이 더러워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안은 종이 끄트러미를 가볍게 매만지며 천천히 질문을 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신에게, 나아가 바리엘에게 중요히 다가올 존재.
“다음은 러더포드 상단에 관한 질문입니다. 바리엘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번 사태 이전부터 꽤 오랜 시일 그쪽과 거래를 해왔다고 짐작됩니다. 이드갈 확보 및 유통에 있어서 러더포드 상단이 버고스 측에 도움 준 것이 사실입니까?”
다몬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만 내리깔았다.
어차피 실담물약이 들어가면 진실을 말해버리고 말 터인데, 어찌하여 저리 망설인단 말인가? 마법사들은 모두 의아하게 소곤거렸으나, 이안은 그 진실을 알고 있었다.
저자는 세 번째 삶을 노리는 자였다. 그 말인즉, 이미 두 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요, 그런 자신의 가장 거대한 비밀이 러더포드와 연관되어 있으니. 당연지사 입이 안 떨어질 수밖에.
“다몬.”
이안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지금 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을지 알 만했다. 황궁에서 심문 거부로 죽는다면, 자신에게 다시금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까 고민하는 것이겠지.
이안은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작게 속삭였다.
“네가 다음 생을 새로이 시작한다 한들 개의치 않는다. 너는 여기서 죽겠지만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어차피 너의 세 번째 삶에도 내가 있지 않겠나?”
서자 이안이든 황제 이안이든 말이다.
다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곳의 나 또한, 네가 세 번을 살아왔든 네 번을 살아왔든 상관없이 다시금 이런 자리를 만들 것이다. 하나 기억해. 너에게는 새로운 시작이겠지만, 현재 이곳의 모두는 그렇지 않다는 걸. 버고스의 국민은 분명히 존재하고 모두가 너의 죽음을 바라보아,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죽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지만, 무책임하게 죽음으로 상황을 모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새로운 세계로 간다고 한들, 이 세상은 계속해서 이어져가지 않겠나?
왕의 자리에 올랐던 자라면, 그걸 분명히 기억하여 국민들을 포기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이는 적대국의 장관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황실의 인원이었던 자로서 하는 조언이다.
“왜? 보기 좀 그런가? 누구는 황가의 핏줄을 지니고도 장관 자리에서 빌빌거리는데, 누구는 왕으로서 모든 걸 가지고도 포기하는 것 같아서.”
멈칫. 서기의 펜대가 잠깐 멈추었다. 방금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안경을 바로 세우며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다.
마법사들은 저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허튼소리.”
“아니, 전혀. 맞는 말 아닌가? 이안 경. 모두가 주위에서 자네를 부러워하겠지만, 실로는 참으로 안타까운 자 중 하나이니. 닿고자 하는 곳이 머나먼 저 위에 있지만, 갈 수가 없음이라.”
“이안 님. 잠시 심문을 멈출까요?”
“멈추면 그것 또한 기록됩니다.”
“서기 양반. 좀 융통성 있게 합시다. 예?”
“무슨 소리 하십니까? 저는 마법부 소속이 아니라 황실 소속인데요.”
서기가 불쾌하다는 듯 일갈하자, 아코렐라는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벙긋거렸다. 동요하는 이들과 달리, 이안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심문을 이어갔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요? 러더포드와 버고스 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합니까?”
“그대가 황실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걸 인정한다면.”
“저저, 노망난! 아코렐라 대장! 실담물약 부작용, 또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헛소리를 저렇게 해대요?”
“아니, 부작용은 각혈밖에 없어!”
“다들 조용.”
이안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다몬의 기세는 쉬이 꺾이지 않았다. 그는 아코렐라 손에 든 실담물약을 제 손으로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내 손등으로 입가를 훔쳐내자, 그는 오롯이 진실만을 말하는 인형처럼 이안과의 대화를 되풀이했다.
“이안 경. 그대가 나에게, 내가 그대에게 비밀을 주었잖은가. 그대는 분명 황실의 핏줄이라. 내 그날 단단히 기억 속에 새겼다.”
막힘없이 내뱉는 게, 진실이다.
아코렐라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며 입을 틀어막았고, 마법사들 틈엔 경악에 찬 적막만 가득했다. 오로지 서기의 펜대 움직이는 소리만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사실이 진실은 아니지.”
이안은 피식 웃으며 다몬을 쳐다봤다. 이안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 다몬에게는 사실일 순 있어도, 그것이 진실인가는 다른 문제라는 게다.
이안이 황실의 핏줄인 것을 어찌 증명할 것인가? 그저 적국의 포로인 다몬의 증언만으로?
“애쓰는 것은 보기 좋다만, 실담물약을 그런 용도로 쓰면 안 되지. 나는 러더포드에 대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 외적인 것에 사용하는 것은 혈세 낭비라. 세금 한 푼 안 내는 다몬 왕께서 하실 만한 행동은 아닌 것 같소만.”
“러더포드. 그래. 내 그자들과 만난 적이 있고,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았다. 전쟁에서 그대가 만졌던 이드갈 펜던트, 알고 있지?”
다몬은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마법사들 쪽을 일부러 바라보며 소리쳤다.
“당시 전장에 있었던 모두가 보았을 터! 이드갈 펜던트를 만진 이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러더포드의 말대로라면, 그것이 제 주인을 만나면 반응한다 하였는데. 이안, 네가 이드갈의 주인인가?”
아코렐라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그녀와 헤일만큼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안이 어릴 적, 기억이 없을 정도로 아주 어릴 적에 자신도 모르게 이드갈 제조에 가담하였다는 걸, 클리포포드 궁에서 저에게 차기 장관을 맡아달라 부탁하며, 이안이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았나?
그런데 그게 다몬 왕의 입을 통해 다시금 발화될 줄은 몰랐다.
적막에 잠겨있던 마법사들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씩 던져댔고, 서기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그들의 말마저도 기록하라 신호했다.
타닥타닥!
“미친 거 아닙니까, 정말? 우리는 마법사입니다, 다몬 왕이시여! 그런 우리가, 아니, 이안 님이 대체 어찌하여 이드갈의 주인이라는 말인지요?”
“아코렐라 대장! 부작용입니다! 저거 부작용 맞잖아요! 이제는 인정 좀 하십시오!”
“아이씨, 부작용은 아니라고! 다들 딱 조용히 있어!”
“마법부 장관이 무엇 하러 이드갈 따위와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마법사를 옥죄고, 스스로를 옥죄는 일인데. 무엇보다 이안 님이 그러셨을 리 없잖습니까.”
“맞습니다. 다몬 왕은 발언을 철회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철회하는 과정 역시 서기의 손을 걸쳐 적히겠지만, 이대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제 겨우 황궁에서 안정을 되찾으려는 마법부였다. 진의 제국방위부 장악으로 인하여, 마법부에도 새로운 광명이 깃들려는 찰나. 저리 찬물을 끼얹을 수 있나?
서기와 그 동료들은 시끄러운 소란 속 말 한 토씨라도 흘리지 않게끔 귀를 쫑긋거린 채 손을 바삐 놀렸다.
사각사각!
“새로운 펜을 가져오시오!”
“여기 있습니다.”
“다들 자중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작게 조언하자면, 이 자리의 모든 것들이 기록되고 있으니.”
아코렐라가 입술을 잘게 깨물며 이안에게 속닥거렸다.
“어, 어떡하죠. 그냥 실담물약 부작용이라 할까요?”
“되었다. 그리하면 지금껏 한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지 않나. 그리고 아코렐라. 그대는 별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예? 아 물론, 제 완벽한 작품에 흠이라고는 있을 수 없지만, 뭐든지 상황 따라 움직이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지금은 좀…….”
다몬은 이안이 자신에게 주었던 손수건을 도로 던져주며 일렀다.
“이안, 이번에는 네가 물약을 마시고 결백을 증명해보아라. 이드갈과 이안, 둘 사이에 정녕 어떠한 연관도 없는지.”
이안은 축축하게 젖은 손수건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제가 어찌해서 그리해야 합니까?”
“하기 싫으면 관두고, 내 직접 진 전하께 아뢰겠다. 모든 관료들이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혹은 모든 제국민이 지켜볼 내 사형대 앞에서.”
다몬이 고갯짓하며 실담물약을 가리키자, 이안이 잠시 멈칫거렸다. 어찌하면 좋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코렐라가 망설이지 않고 책상 위에 있던 모든 실담물약을 쓸어서 아래로 던져버렸다.
째앵! 챙!
유리 조각과 물기로 바닥이 엉망이 되었다. 아코렐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채로 이안에게 눈짓했다.
“…시발, 다 엎어버렸네. 새로, 새로 만들어 올게요. 이안 님. 잠시 쉬었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