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8
제428화. 이안의 거짓말
시종들의 손길이 진의 머리칼과 옷깃을 세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푸른색이 좋을까, 녹색이 좋을까. 천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덧대며 대회의 의상을 준비하는 와중이었다.
진은 거울 속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온 신경이 마법부 쪽으로 집중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안 경이 돌아왔다! 가출했던 마법사들을 데리고서!
이제는 이전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자신은 이안에게 모르는 것을 묻고, 이안은 친절하게 일러주며, 하루하루 해가 뜨고 질 때마다 황제의 자리에 가까워지는 나날 말이다.
진이 살포시 웃는 순간, 시아오시가 바깥의 인기척을 느끼고 기별했다.
“전하. 마법부로 지원 나갔던 서기장입니다.”
“들라 하라.”
진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울 속 문을 바라봤다.
문이 열리고, 서기장이 진 쪽으로 발걸음 했다. 다급해 보였다. 그녀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무릎 꿇으며, 아이의 뒤쪽에서 시선을 주고받았다.
“무슨 일인가? 다몬 왕의 심문이 벌써 끝난 것인가?”
“아닙니다, 전하. 왕의 심문이 이안 장관님의 요청으로 잠시 멈추었습니다.”
사락.
서기장은 진에게 종이를 건네주며 속삭였다.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챈 시종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 귀를 닫았다.
“다몬 왕의 증언 중, 문제 되는 것이 나왔습니다.”
“무슨?”
“이안 장관이 황실과 연관 있는 자라 합니다.”
“뭐?”
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종이를 재빠르게 훑어내렸다. 바쁘게 받아 적느라 필체가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 내용만큼은 확실했다.
“다몬 왕과 이안 경이 일전에 비밀을 나누었는데, 그때 주고받은 것이라 합니다. 실담물약을 앞에 두고도 물러섬이 없으니, 다몬 왕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주관적으로 진실입니다.”
주관적으로 진실이다. 적어도, 이안이 다몬에게 이와 관련된 것을 언급한 것만큼은 사실이라는 걸 뜻했다.
진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하이만 공작이 궁지에 몰렸을 때,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하지 않았던가? 이안이 어찌하여 존재감 없던 자신을 도와주는 것인지를 말이다.
하이만이 내놓은 답은, 이안이 황족의 비밀을 품고 있는지라 자신의 뒤에 자연스레 존재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 하였다.
“허황하다.”
“하지만 전하. 대회의에서 다몬 왕은 필시 이것을 공론화하려 할 것입니다. 기세가 심상치 않아요. 이안 경에 대한 질문을 준비해두심이 좋겠습니다.”
“…….”
말로는 허황하다 하였지만, 벌서 두 번이나 발언되었다. 그것도 거리의 출처 없는 소문 따위가 아니라, 하이만과 다몬처럼 모든 걸 지닌 자들이 궁지에 몰려서 털어놓는 비장의 무기와 같이 이용되었다.
과연 허황된 것일까?
실로 허황한 걸까?
정녕… 허황할까?
“전하.”
진의 안색이 파리해지자, 시아오시가 걱정스레 불렀다. 서기장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무릎걸음으로 일어났고, 이내 속삭였다.
“이안 장관과 아코렐라 대장의 반응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심문을 멈추게 한 것부터가 그 증거이지요. 전하.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실담물약 제조는 마법부에서 모든 걸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안 경에게, 위대한 어린 마법사에게 그것이 효과적으로 통하리라 믿기에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알고 있다. 진은 믿을지언정 다른 관료들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라 소리치겠지. 어찌 마법부에서 만들 물약으로 장관의 진실을 가리겠느냐며.
“…심문은?”
“곧 재개될 것 같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자리를 지켜 소임을 다하라. 대회의 들어가기 전 다시금 보고하고, 다른 관료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하라.”
“단단히 따르겠습니다만, 이미 늦으신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서기들의 문제가 아니라, 마법부 내에서 말이 많더라고요.”
가까운 자일수록 어쩔 수 없이 말을 붙이게 되는 법이다. 자신들이 따르는 이안이 대체 누구인가에 관하여, 마법사들은 서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이드갈 펜던트의 반응을 직접 본 터라, 그 열기가 더더욱 심했다.
진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고, 서기장은 재빠르게 인사한 뒤 방을 빠져나갔다.
“시아오시.”
“예. 전하.”
“어찌 생각하는가?”
“…이안 경의 출신에 관해서 말씀이십니까?”
“응. 나는 솔직히 헛소문이라 생각하는데, 두 번이나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있기는 한 것 같아. 출신이 아니라, 존재에 관해서.”
출신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외모가 똑 닮은 그의 생모, 필리아가 중앙에 있었으니까.
“의문을 품은 자들은 이안 경을 파헤치기보다, 필리아 쪽을 잡고 늘어질 것이다. 여기서 갑자기 그녀가 모습을 감추는 것도 의아한 일이지. 어쩔 수 없이 단상에 서게 될 터인데, 나는 그것이 걱정된다.”
“필리아 님은 강인하신 분입니다.”
“이안에 한해서만 강해. 하나 지금은 이안의 동생까지 품고 있지 않나. 혹여 무리하면 모두가 불편해진다.”
이안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진 자신 역시 달갑지 않을 것이다. 기꺼워하는 자 하나 없이 피해만 남게 되겠지.
진은 치장하는 시종들에게 가볍게 눈짓하며 재촉했다.
“서둘러라. 아무리 생각해도 서기에게 건네받는 것보다 내가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빠를 것 같다.”
“예. 전하.”
“마법부로 갈 마차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래.”
차라리 이안을 만나, 함께 이 사안에 대해 논의한 다음 대회의에 참석하는 게 낫겠다.
그리하면 더 이상 이전과 같이 마법부를 적대적으로 견제하는 세력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황태자인 진이 문제의 당사자인 이안과 직접 대동하여, 근거 없는 소문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그래. 그렇게 하자. 제국방위부가 진의 휘하에 들어온 이상, 이안이 멀어질 이유는 하등 없었다. 바리엘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진은 이안이 더 멀어지지 않게끔 거리를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히이잉!
타닥타닥!
준비를 마친 진이 빠르게 마법부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시종 수십 명이 급하게 움직였으나,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익숙한 길을 밟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딜라이나를 피해 둥지를 틀었던 마법부다. 그때는 계단이 참으로 높아 보였는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험하지는 않구나.
“전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안 경은?”
“지금 집무실에 계실 것입니다.”
“안내하라.”
“아, 예에! 이쪽으로 오십시오!”
진은 마법부 경비병의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로 나아갔다. 건물은 생각보다 한산했는데, 마법사 대부분이 심문을 지켜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켜라. 내 직접 들어가겠다.”
이안의 집무실 앞에 당도한 진은 시종이 인기척을 알리기 전,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 손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어둑하여 먼지 냄새가 짙게 나는 안쪽. 이안은 햇빛을 등진 채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담담한 그의 눈빛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서려 있다. 후, 하고 불어버리면 날아갈 것 같은 백설(白雪). 결의에 찬 것 같으면서도 차갑고, 안쓰러우면서도 냉정해 보이는.
“이안 경.”
진은 자신도 모르게 이안을 불렀고, 눈동자만을 튼 이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 * *
“전하.”
이안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잠시 당황스러운 듯 웃었다. 어찌하여 인기척도 없이 들어오셨냐는 물음이다.
진은 이안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균열에 대한 황궁 기록입니다. 천 년 전, 바리엘 북쪽 인근에서 일어났던 사건인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진은 이안이 들고 있는 서류 표지를 확인했다. 황궁 자료실에서 내오는 것과 다른 것이다.
“법정 기록인 것 같은데?”
“…예. 좀 흥미로운 것이 있어서요.”
“보여주게.”
“하나, 별것 없었습니다.”
“이리 내어줘.”
진은 성큼성큼 나아가 이안 가까이 섰다. 이제는 예전의 진이 아니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했다. 그저 이르는 대로 받아들이던 아이는 자라서 죽었으며, 이제는 모든 것을 제 눈과 귀로 확인하는 황태자만이 살아 있노라 외치는 것 같았다.
이안은 희게 웃으며 어쩔 수 없이 서류를 내어주었다.
차락.
“반도르?”
“균열이 메워지고 난 이후, 스스로를 마법사 반도르라 칭하는 자에 대한 법정 기록입니다.”
정말 별것 아닌가? 아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글자를 읽어내려가던 중, 같은 대목에서 멈칫거렸다.
“균열 아래 심연이 있다? 심연이라 하면, 금기의 마법을 쓴 마법사들이 떨어진다는 곳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발 딛고 있는 이곳 아래, 그들만의 세상이 있노라.’…….”
“반도르는 혐의를 인정받아 감옥형에 처해졌습니다. 옥살이를 하던 도중 의문사하여, 그 기록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지금 그들이 시급하게 알아낼 것이 무언지는 분명했다. 어찌하면 균열을 저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아가 이전과 같이 닫을 방법이 있는지 등등.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보를 찾는 게 우선이지, 신원 모를 자의 법정 기록 따위는 뒷전으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웠다. 진이 아는 이안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리 나온다는 것은, 분명 이 내용 중 이안의 시선을 잡아채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리라.
“반도르는 균열이 처음 일어났을 때, 마법사들을 이끌고 그 틈으로 뛰어든 마법사입니다. 혹 연관된 게 있나 하여 본 것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틈으로 뛰어들었다니? 그게 사실인가?”
“기록에 문제가 없다면요. 마법사들이 균열로 진입하고서 10년 후, 대지가 다시 틈을 메웠습니다.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잠깐!”
진은 화들짝 놀라며 이안의 말을 잘라먹었다. 이 말인즉, 그 틈으로 마법사를 진입시키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클리포포드를 위해, 바리엘의 마법사를 희생시키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찌 마법사를 보내겠다는 것인가? 불구덩이로 산 사람을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달라?”
“균열 아래에는 분명 가이아 외 다른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마물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조사를 위해 인력을 파견할 필요는 있습니다.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리엘에는 균열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고 보면 될 정도니까요. 그리고 전문성을 따진다면, 마법사들이 빠질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천 년 전, 반도르가 마법사들을 이끌고 균열 안으로 들어갔던 상황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의 반도르 역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사명감을 지닌 채 뛰어들었을 터.
“당시는 바리엘 북동쪽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은 클리포포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간다면 클리포포드인이 가는 게 맞지.”
“클리포포드에서도 인력을 차출하긴 할 겁니다. 대신, 마법사가 없는 터라 자연스럽게 인근으로 지원을 요청하겠지요. 바리엘만이 아니라, 루스웨나나 북쪽 지역을 떠도는 자들이 그 부름을 들을 것이니-”
“이안 경!”
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도 모르게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안이 말하는 뉘앙스가 꼭…….
“이안 경. 갈 생각은 아니지?”
직접 균열로 몸을 내던질 것만 같았기에.
진이 이안의 소매를 잡으며 재차 물었다.
“아니 된다. 내가 허락하지 않겠어. 이안 경뿐만 아니다. 바리엘의 마법사는 단 한 명도 그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일 수 없다. 그대들은 마법사이기 전에 내 국민이라.”
“…훌륭하시어, 마법사들이 들으면 감읍할 것입니다.”
“이안!”
이안은 진정하라는 듯이 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를 아시지 않습니까? 무모한 자가 아닙니다.”
“정보에 신빙성이 더해지면 가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런. 그러셨습니까?”
“이안 경은 언제나 그렇지.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으니, 답을 그려내는 것은 늘 내 몫이다.”
진이 인상을 찡그리자, 이안은 더더욱 환히 웃었다. 어찌하여 그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냐는 듯.
“전하. 서기장에게 들으셨지요?”
“서기장? 아아. 그래. 내 황당하여 이리 직접-”
“다몬 왕은 대회의에서 같은 발언을 할 것입니다. 제가 황실과 연관이 있는 자라고요.”
“발언권을 없애버리는 게 낫겠군.”
“그럴 수는 없지요. 포로이긴 하나, 아직까지는 버고스의 공식적인 왕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다몬 왕이 발언하면 관료들 중 누군가는 분명 제 어머니를 소환하려 할 것입니다.”
“응. 나도 그 생각은 하였네.”
“하지만 저는 어머니에게 실담물약을 내어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마시는 것과 어머니가 마시는 것이 무엇 다르겠습니까?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임신부가 음용했을 때의 문제는 아코렐라가 검증해낸 바가 없으니.”
진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그러면, 어찌하겠다고?
“전하. 저는 이 논란에 관해서 해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안의 낯을 천천히 살피던 아이는 툭, 하고 말을 뱉어냈다. 이안의 소매를 꽉 붙든 채였다.
“…거짓말. 할 생각이 없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