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9
제429화. 각자의 반응
“베릭.”
“예?”
로만드로는 안쪽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베릭의 팔을 잡아끌었다.
별생각 없이 뱃가죽만 만지작거리던 베릭이 로만드로 쪽으로 귀를 내어주었다.
“왜요? 뭐 먹자고요?”
“아니, 이놈아. 너는 어찌 머릿속에 든 게 그것밖에 없어? 황궁 돌아가는 게 눈에 안 보인단 말이냐?”
“방금 막 도착한 사람한테 뭘 바라요. 나 전쟁터에서 구르고 어? 또 구르다가 이제 막 돌아왔는데.”
“당장 저택으로 가서 필리아 님과 접선해 보거라. 가서 황궁에서 이안의 출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걸 알려. 홀몸도 아닌데, 그편이 훨씬 나을 터. 대신 은신은 섣불리 하지 마시라 이르고, 혹여 지금이라도 말씀하실 것이 있다면 내게만 작은 종이로 알려달라 전해라.”
“내가 해요? 여기 놀고먹는 경비병들 많구만.”
따악!
“아악!”
“이놈아, 중대 사안이니 믿을 만한 자가 가는 게 맞지! 혹여 필리아 님의 전언이 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 믿을 만한 사람. 내가?”
“…길치인 게 흠이긴 하다만, 마차를 내어주면 될 일이지.”
로만드로에게 꿀밤을 얻어맞은 베릭이 히죽 웃으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귀찮은 와중에도 저 좋은 소리는 절대 놓치지 않고 들은 게다.
로만드로는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베릭을 데리고 마법부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마부에게 손짓하여 개인 마차를 가져오라 이르기까지, 베릭은 연신 생글생글해대며 로만드로의 주위를 맴돌았다.
“제가 믿을 만해요? 역시 사람 볼 줄 아네. 나랏밥 꽁으로 먹은 건 아닌 거 같아 다행.”
“나랏밥 꽁으로 처먹고 있는 건 너잖아, 베릭.”
“어허, 무슨 소리! 전쟁 때문에 내 배에 구멍이 몇 개나 뚫렸는데!”
“베릭. 브라츠에서 내가 이안과 만나기 전, 너희 둘은 이미 인연이 있었지? 뭐 이상한 것 없었어?”
“무슨 소리예요?”
로만드로는 마차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지켜보며, 베릭을 추궁했다.
서자 이안의 밑바닥 가까운 순간부터 보았다고 여기던 로만드로였다. 중앙군과 데르가군의 격돌로 인해 피폐했던 영지에서 천려를 등에 업고 있던 소년이 아니었던가.
로만드로는 궁에서 그의 출신에 대해 헛소문이 떠돌 때마다 어이없는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는 ‘이안 히엘로’ 이전의 ‘서자 이안’을 보았던, 몇 안 되는 자들 중 하나였으니까. 황궁에서 장관직을 맡아 권력을 평정한 이안이 아니라, 변경에서 구르던 이안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인지하고 보니 확실히 이상한 점은 존재했다.
‘처음 중앙에 올라왔을 때, 상업지구와 같은 행정 업무 용어를 썼던 것도 그렇고, 오래된 황궁 예법도 그렇고. 아무리 영특하다고는 하나 관료인 나조차도 모르는 것들을 수두룩하게 알고 있었다.’
지난 반년간, 차마 손에 꼽을 수 없이 많은 사례가 있었다. 당시에는 로만드로도 별 의문 없이 지나갔지만, 이토록 반복되어 제기되는 의혹 속에서 쉬이 넘길 수는 없었다.
“걔 원래 그랬는데. 왜들 이제 와서 난리지?”
“그래?”
“아는 거 오지게 많고, 잘난 척도 좀 하고. 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끔은 재수 없기도 한데, 그래도 밥 잘 주고.”
“…가라. 가서 필리아 님에게 이안이 안부도 전해주고. 밥은 먹지 말고 와. 비비안나 곧 출산이라, 정말 움직이면 안 돼. 미니도 비비안나 돌본다고 정신없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에엑? 밥도 안 주고 일을 시켜요? 이거 황궁노동법에 위반되는 거 아닙니까?”
“어디서 주워들은 거 아는 척하고 있네. 황궁노동법이라는 게 어디 있냐?”
“들켰네. 없으면 말고요.”
타닥타닥!
베릭은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 마차로 몸을 쏙 숨겼다. 곧 창문으로 이마를 떡하니 붙이며 인사하는 베릭. 로만드로는 어서 조심히 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고, 이내 뒤에서 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콰앙!
“어이고.”
무슨 일이람? 로만드로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중문을 제 손으로 손수 밀어 나서는 진을 발견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인지, 눈가와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황태자께서 분노하시는 걸 처음 보는 터라, 로만드로는 본능적으로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행정부에서 지내면서 저절로 습득한 처세술이었다. 상관이 기분 나빠 보일 때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전하. 걸음을 천천히 하십시오.”
“못되었어. 이안 경은 참으로 못되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시아오시 역시 진이 화내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투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이는 입술을 세게 깨물며 조용한 집무실 쪽을 노려보았다.
“이안 경 혼자만 바리엘을 생각하는 게 아니거늘.”
“전하?”
“가자. 대회의 전까지 침실에 있겠다.”
“…예, 모시겠습니다.”
시아오시는 빠르게 앞서가며 마차를 대기시키며, 진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일을 만들지 않았다.
황태자의 마차가 마법부를 벗어나자,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시종들. 로만드로는 기둥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혀를 끌끌 찼다.
‘대체 이안이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러신담? 뭔지 몰라도, 이안이 잘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에구, 우리 전하. 마음이 많이 상하셨나 보네.’
이안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로만드로가 그리 생각하며 몸을 트는 순간이었다.
이안이 겉옷을 대충 걸친 채로 복도를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서류철 두어 개. 이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몬을 심문 중인 지하실로 들어섰고, 이내 아코렐라를 비롯한 모든 마법사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이봐들, 왜 나와?”
“아, 로만드로 님. 이안 님이 마법부 소속은 모두 나가라고 하셔서요.”
“으잉? 황실 소속 서기는 계속 안에 있는데?”
“예. 저희만 나가라 하셨습니다.”
보통은 반대이지 않나?
제 소속인 마법부를 곁에 두려 하고, 다른 소속인 자들을 내보내는 것이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마법부 소속인 자들’로 한정하여 나가라 지시했다.
어차피 서기들은 황실 소속이라, 이안도 어찌할 권한은 없겠지만.
“그런데 로만드로 님, 뭐 들으신 것 없습니까?”
“듣긴 뭘 들어?”
마법사 두어 명이 로만드로 곁으로 몰려들며, 은근히 속삭여댔다. 다른 자들도 못 들은 척하고 있지만, 귀를 쫑긋거리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로만드로가 저리 가라며, 치대 오는 몸을 떼어내자, 마법사가 슬쩍 웃으며 물었다.
“왜요. 아시잖아요. 그, 이안 님 출신.”
“이안 님 출신은 전 브라츠, 현 히엘로. 이것 외에는 가타부타 덧붙일 것이 없다. 그리고 다들, 적군의 수장이었던 자가 하는 말을 믿어?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말이야, 이렇게 분별력이 없어서리, 원. 일을 믿고 맡기겠어!?”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왜 갑자기 발끈하세요?”
“진정진정. 워워. 로만드로 님. 숨 쉬고 얘기합시다.”
“속닥대는 거 다 부질없네. 로만드로 님. 목청 좀만 낮춰요? 예? 황실 소속 사람들 오가다 들을 수도 있으니까.”
로만드로는 혹여 마법사들이 딴마음을 품을까 봐 일부러 큰 소리를 내어가며 정신을 흩트려놓았다.
“다들 알잖아? 이안 님이 뭐, 흑심 품으실 만한 분인가? 내란부터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황궁을 지키신 분인데. 거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 그러니까. 저희는 그거 관심 없구요.”
“맞아요. 솔직히 이안 님이 황실 출신이라고 해도 조금 놀랄 뿐이지. 안 믿기지는 않는데요? 충분히… 뭐랄까.”
“황실 사람 같아요.”
“그치그치, 바로 그거지. 기품 있고, 우아하고. 태어났을 때 울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문제는 이드갈이거든요. 로만드로 님, 브라츠에 있으셨을 때, 이드갈 본 적 있어요? 저희는 그게 궁금해요.”
다몬이 은근히 흘렸던 그 말. 그것이 마법사들에게 굉장한 의문을 남겼다. 다몬의 어투로 보았을 때, 이안이 이드갈의 존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데. 당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은 이드갈을 박멸하기 위해 마법부 내에서도 강경한 모습을 보이곤 하였으니까.
아코렐라와 타 마법사들이 이드갈을 조사․분석하여 보고서를 올렸을 때도, 그는 정녕 처음 보는 자료인 듯 대하곤 하였다. 이안이 아무리 철두철미해도, 그런 식으로까지 반응을 보이진 않았으리라.
“이드갈?”
“네. 호박색의 예쁜 보석.”
“…….”
로만드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왜 없겠나? 당연히 있지! 리엔 부인이 주었다는 호박색 보석을, 브라츠에서부터 들고 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마법부로 넘겨져 마리브가 내란에서 썼던 것과 같은 물질임이 밝혀졌다.
내막에 관하지 않았던 몇몇 마법사들이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물고 늘어졌고, 아코렐라와 로만드로 그리고 관련 부서의 마법사들은 난감하게 시선만 틀어댔다.
“이안 님이 진짜 이드갈을 만든 거라면-”
마법사의 중얼거림에 로만드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마법사를 옥죄는 물질을 만든 자다. 이는 곧 마법사에 대한 배반이며, 나아가서는 바리엘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 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드갈과 연관되었던 사건은 모두 바리엘의 안전을 위협한 일들이었으니까. 황자들의 내란, 바리엘 남쪽의 클리포포드 붕괴 등등.
“미쳤는데?”
“어?”
“그렇지 않아요? 미쳤어, 진짜. 천재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건 그냥 천재 수준이 아니잖아요.”
“너, 너, 아코렐라 부하니?”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말하는 게 딱 그래 보인다.”
“…나는 솔직히 조금 이해가 안 되긴 해. 천재고 나발이고, 마법사가 그런 걸 대체 왜 만들었을까 싶어.”
“마법부 들어오기 한참 전인데, 이안 님 꼬꼬마 시절 때 얘기 아님? 그러면 이해 안 돼도, 이해하는 척은 해줘야지. 애기가 뭘 알았겠어? 지금이라도 황궁에 들어와서 중심 잡아준 게 다행이지.”
“야, 미친놈들아. 정신 똑바로 차려. 이건 이안 님이라고 해서 쉬이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반대로, 필릭이 이드갈을 만들었다 하면 어떻게 느껴지는데?”
“망할 개새끼지. 어떻게 동족을 위험에 처넣어?!”
“그거라니까. 아, 다들 이안 님한테 홀렸어. 마법사들 공동 서명이라도 내서 잡아 쳐죽여도 모자랄 죄목이라고.”
“말조심해라. 이안 님이다.”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히 갈리는 듯 보였다. 저들끼리 토론을 가장한 말싸움을 주고받으며, 이안이 정녕 이드갈과 연관이 있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구석에서 눈 감은 채 궐련만 씹어대는 아코렐라. 그녀는 이 사태를 어찌 헤쳐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 근데 이 쓸모없는 헤일 빡대가리는 어디서 뭐 하고 있는데에에에!!”
콰앙! 쾅!
퍼어어엉!
헤일의 부재를 깨달음과 동시에 지하에서 터지는 굉음.
마법사들이 동시에 움찔거리며 상체를 낮췄다. 곧이어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에, 그들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안 님,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떻게, 들어가 볼 사람?”
“이안 님이 출입 금지라고 하셨잖아.”
“그러니까, 누가 한 명 나서서 들어가 보자고!”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로만드로에게로 몰렸다.
“…나, 나?”
“보좌관이잖아요!”
“아니, 그게, 으아아악!”
쿵! 쿠웅!
뭐라 거절할 새도 없이, 마법사들의 손길에 떠밀려 아래층으로 내려간 로만드로.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복도가 자욱할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
타닥.
“이, 이안?”
그리고 시야가 서서히 걷히며 보이는 지하실 전경.
서기들이 놀라서 종이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으며, 이안은 기절한 다몬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서 있었다. 입가가 붉은 피로 낭자한 것이, 모르는 자가 보았다면 다몬의 혀가 통으로 잘린 줄 알 것이다.
* * *
“띠잉-! 동! 띵동! 문 열어라! 미니!”
한편, 로만드로의 저택에 도착한 베릭.
그는 입으로 직접 초인종 소리를 내며 소리쳤고, 미니 대신 필리아를 먼저 볼 수 있었다. 문을 여는 필리아의 낯에는 기쁨과 걱정 그리고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베릭!”
“오, 안녕하씨오.”
“세상에, 이리 다시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구나! 전장에서 돌아왔다는 말은 들었어! 어디 다친 데 없니? 이안이는? 무사하고?”
와락, 베릭을 끌어안는 필리아. 베릭은 걱정 말라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소리쳤다.
“물론! 적군 대가리 다 박살 내고 무사 귀환!”
“그래그래. 고생 많았어.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어찌하여 온 거니? 로만드로 님이 서류를 두고 가셨나?”
“아니, 그게 아니라-”
베릭은 이안과 똑 닮은 필리아의 녹안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참, 아무리 봐도 이안이랑 판박이란 말이지.
“그, 황궁에서 문제가 있다네요? 이안이가 친아들 맞죠? 혹시 필리아 님, 황실이랑 연관 있어요? 이안이 아부지가 알고 보니 데르가가 아니었다든가. 뭐, 그런?”
“…뭐?”
순수하면서도 굉장히 무례하고, 거침없는 발언.
필리아는 황당한 낯으로 눈을 크게 떴고, 베릭이 말하는 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기 위해 눈을 굴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