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30
제430화. 혀 조각
“이안에게 황실과의 연관성이 제기되었다고?”
필리아는 그것이 당최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저도 모르게 나오는 웃음. 어이없음에 절로 나오는 실소였다. 당황과 황당함이 아주 뚜렷하게 공존하는.
베릭은 설탕 과자 한 움큼을 집어먹으며 이를 지켜봤다. 반응으로 보아, 역시 헛소문이 맞는 것이라.
“아니죠?”
“나는, 왜,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어.”
“이안이가 너무 잘나서 그런 듯요.”
“이, 이안이는 벽안이 아니라 녹안이고, 무엇보다 나와 똑 닮았는데? 화친의 대가로 대사막에 가기 전, 데르가가 이안의 핏줄을 검사했었어. 입적과 관련하여, 황실의 승인을 받는다는 말도 기억나.”
“그랬대요? 뚱땡이 영감탱, 준비 많이 했네.”
“그럼. 얼마나 철저한 자였는데. 처음에는 내가 이안이를 꼭꼭 숨겼거든. 데르가의 자식이 아니라고, 어디서 무엇을 잘못 들은 거라고.”
“핏줄 검사한 거, 그거 어디 있어요?”
“대사막에 있는 천려족이 보관하고 있을 것 같은데. 네르사른 님께 알려야겠다. 동질의 가족에게만 반응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나 또한 검사하면 핏줄에 관한 의혹은 없어지겠지.”
“음. 아니요. 딱히? 이안이랑 필리아 님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외모가 보증해주고 있잖아요. 로만드로 님이 걱정하는 문제는…….”
와그작와그작. 베릭은 혀끝으로 녹아내리는 설탕 과자를 씹어대며 중얼거렸다.
“필리아 님이잖아요.”
“나? 내가 왜?”
“데르가는 귀족이니까 핏줄에 대해서는 확실하고, 알고 보니 필리아 님 부모님이나 그 윗세대가 황실 사람이면 어떡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필리아가 눈썹을 까딱이며 진심인지 되물었다. 고아와 다름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희고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으며, 언제나 걱정 어린 한숨을 짓던 부모님. 가진 것이 없으면 있는 듯 없는 듯 바람과 같이 살아가는 게 좋은데, 금빛과 같은 머리칼을 남겨주어 미안하다던 부모님.
한겨울, 먹을 걸 찾아 나섰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다음 해 봄, 녹은 호수에 어머니는 빠져 죽었다. 이후 필리아의 삶 대부분은 혼자였으나, 그 유년기의 기억만은 그녀의 가슴에 또렷이 남아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라믄 됐고요. 로만드로 님이 그러데요, 일상을 유지하고 있되 무슨 일 생겨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베릭은 남은 과자를 모조리 털어먹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질 뭐시기 기록 황궁에 남아있겠네. 그거 전달해줄게요. 배 따땃하게 하고 잘 있어요.”
“잠깐만, 나도,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에엥? 방금 전달했는데요? 일상 유지하라고.”
“이안이가 보고 싶어. 전장에서 돌아오고 나서 바로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 같아. 황궁이 원래 그런 곳이라지만… 나, 베릭을 안아준 것처럼 이안이를 안고 싶어.”
필리아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자, 베릭이 ‘윽’ 소리와 함께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재빠르게 주위 확인. 네르사른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라.
베릭이 아는 한, 필리아의 눈물만큼 세상 귀찮고 강력한 것이 없었다. 그 네르사른과, 그 이안을 설탕처럼 사르르 녹이는 것이었으니까. 감히 자신이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베릭은 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우왕좌왕 돌아다녔다.
“아, 안 되는데. 진짜.”
“가서 얼굴만 잠깐 보고 나오면 되잖아. 베릭.”
“이안이 졸라 바쁘다고요.”
“멀리서만 봐도 괜찮아. 아들이 죽음을 견디고 돌아왔는데, 어찌 어미된 자로서 가만있을 수 있을까?”
“…로만드로 님이 뭐라 하면 필리아 님이 우겼다고 할 거예요.”
“물론. 모두 내가 베릭을 졸라서 한 거지.”
“외투 챙겨요. 가자요.”
“고마워.”
쪽! 필리아가 베릭의 볼에 감사 인사를 남기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째앵!
“꺄아아! 마님!”
우당탕탕! 콰앙!
안쪽 방에서 미니의 비명이 들려왔다. 놀란 필리아가 몸을 재빨리 틀었고, 베릭 역시 반사적으로 검을 집어 든 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뒤뜰에서 수련하던 네르사른과 천려족들도 마찬가지. 미니의 작은 비명에 모두가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이 저택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했으니까.
“무슨 일인데? 왜!?”
“베릭!”
먼저 안쪽 상황을 알아챈 필리아가 몸을 돌려 베릭 앞을 막아섰다. 끙끙 앓는 비비안나의 신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저기, 산파. 산파가 필요해.”
“…그게 뭔데?”
“아기가 나오니까, 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옆집에 산파였던 할머니가 계셔. 네르사른 님!”
“그래, 필리아! 내가 다녀오지!”
“로만드로 님께도 알려야겠습니다.”
“베릭이 궁으로 들어가려던 것 아닌가? 서둘러 들어가 로만드로 님을 모시고 와. 어서!”
놀라서 오도카니 서 있는 베릭과 달리 전사들은 상당히 유연하게 움직였다. 부족 내의 아이가 모두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베릭은 전사들의 재촉에 필리아를 돌아봤다.
“필리아 님! 이안이 보러 간다며?”
“비비안나 님을 두고 어찌 그리해? 로만드로 님이 들어오고, 궁으로 돌아가실 때 함께할게. 베릭! 서둘러 로만드로 님께 알려줘! 최대한 빠르게!”
“아, 으, 진짜. 이게 무슨 일이람.”
베릭은 머리를 탈탈 털어대며 마차 쪽으로 달려나갔다. 태평하게 꾸벅꾸벅 졸던 마부가 저택 안의 소란스러움을 눈치채고 입가의 침을 닦아댔다.
그러기 무섭게 올라타는 베릭. 마부 쪽 창문을 열고서 옷깃을 세차게 흔들어댔다.
“달려! 애기 나온다!”
“애, 애기요?”
“어서!”
“아, 예예. 알겠습니다.”
히이잉!
타닥타닥!
마차는 급하게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들은 한 노파를 업은 채 저택으로 뛰어 들어왔다.
* * *
“이, 이안.”
로만드로는 가볍게 떨리는 손을 뻗으며 이안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다몬의 머리채. 끈적이는 피가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곧 죽는다 하여도 별로 이상해보일 것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내저으며 로만드로의 접근을 제지했다.
“오지 마십시오.”
“이, 이안. 왜 그러는가? 응? 다몬 왕은 아직 공식적으로 버고스의 왕이고, 상대국과의 협상에 있어서 중요한 볼모라. 무엇보다 곧 있을 대회의에서 증인으로 세워야 하는데, 그, 그리 피떡으로 만들면 어찌해.”
심문 과정에 있어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고의든 아니든, 이안이 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건 책임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는 걸 뜻했고.
서기들은 작성한 서류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벽에 단단히 붙어섰다. 희고 파랗게 질린 낯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충격이 대단했나 보다.
“이안. 일단 그 머리채를 내려놓자. 응? 곧 있으면 마법사들도 내려올 터인데,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은가. 서기들도 잠시 진정하시고, 숨을 쉬시오. 무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안 경이 그, 그랬습니다!”
“무, 무엇을?”
“다몬 왕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 갑자기 일어나서 저자에게 덤벼들었다고요! 동시에 폭발이 터졌으니, 이, 이는 이안 경이 마법을 쓴 것 아닙니까?”
서기들은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모여서 항변하듯 소리쳤다. 그 모습에 이안은 말없이 가만 서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아니, 우리 이안이 모르십니까? 감정적으로 나설 자가 아닙니다.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 자리에 없으셨잖아요. 못 보셨으면서 어찌 그리 속단하십니까? 저, 저희는 모두 보았습니다!”
“예! 이안 경, 이, 이것은 기록하기 이전에 황실로 보고될 것입니다. 대회의에서 다몬 왕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저희들은 보았고 겪였던 그것을 가감 없이 이를 것이고요.”
서기들은 핏대를 올리며 이안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후다닥, 뒷걸음질로 지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앞을 막아서는 로만드로.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들리게끔, 크게 일렀다.
“어허! 이런 식으로 자리를 떠나면 우리 장관님 체면이 어찌 됩니까? 상세히 정보를 나누어, 오해가 있다면 푸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서기들께는 미안하지만, 정황을 제가 파악하기 이전에 이곳을 나갈 수는 없습니다. 밖에 마법사들 또한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요!”
“무, 무슨…! 하!”
“그렇지? 응? 밖에! 들리지?”
그때, 이안은 정신 잃은 다몬의 머리통을 바닥에 내려둔 채, 서기들 가까이로 다가왔다. 흠칫거리며 어깨를 움츠리는 모습.
이안은 덤덤한 얼굴로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가 무엇인가를 집어들었다.
“…이안, 그게 무엇…….”
“치유 마법사와 의사를 부르십시오.”
“허억!”
혀 조각이다. 로만드로가 기겁하며 서기들 쪽으로 몸을 내던졌고, 그들은 서로를 얼싸안은 채 이안을 바라봤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출혈이 심할 것입니다. 로만드로 님.”
“아, 아아! 그-”
“제가 한 것 아닙니다.”
투욱.
이안은 혀 조각을 테이블 위로 가볍게 내던지며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혀 뒤쪽에 알 수 없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마법사들과 동고동락했던 로만드로는, 그것이 마법진과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법진을 숨겨두고 있었군요. 특정한 내용을 언급하면 폭발하는 장치요. 제가 이드갈 펜던트에 반응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뭐, 뭐야. 그러면 이게 다몬의 혀라는 것인가?”
“뼈를 내어주는 것보다 살을 내어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찰나였다. 이안의 질문에 다몬이 답하려는 순간, 낯선 마력이 느껴진 것은.
이안은 반사적으로 폭발을 파훼하기 위해 다몬의 얼굴을 틀어잡았고, 머리통 전체가 날아가는 대신 혓바닥 일부를 대가로 다몬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안은 바닥에 쓰러진 채 움찔거리는 다몬의 어깨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무, 무슨 질문을 했기에 그런가? 마법이 걸려있다는 것은 마법사가 연관되어 있다는 말과 같아.”
“러더포드 곁에는 모든 자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였던 서자 이안을 계약 마법으로만 묶어둔 채 떠나갔음은, 그 당시 당장 마법사의 힘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뜻과 같았다. 즉, 그의 휘하에서 즉시 부릴 수 있는 마법사들이 있다는 것. 그때도 있었는데, 지금이라고 없을 리 없지.
“그래서, 무슨 질문을 했는데?”
“…다몬 왕이 이전에 그랬습니다. 러더포드는 신과 소통하여 세상을 조율하는 자라. 하여, 궁금했습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였기에 다몬 왕이 러퍼포드를 그리 일렀던 것인가?
다몬은 오만하고 교만하며 뼛속까지 왕실의 후손인 자였다. 게다가 두 번째 삶을 사는 자가 아닌가. 그런 자가 러더포드를 가리켜 그리 이르니,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대체로 신과 엮여있는 자들은 신비한 힘을 품고 있는 터라, 혹여 러더포드가 마법사인지를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잘 대답하더군요.”
“대, 대답 잘했어? 그런데 왜 저렇게 됐어?”
“‘마법사였는지’에 대한 것은 상당히 오래 고민하더군요.”
이안의 말에 로만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의미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다몬 왕의 음성으로는 아니었지만, 답만큼은 확실히 들은 것 같습니다. 러더포드는 ‘마법사였던’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