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33
제433화. 벨벳 거미
“다른 연유라 하시면, 어떤?”
한껏 부드럽고 여유로운 이안의 목소리. 관료들은 당황했는지 이안의 낯빛을 살피며 서로를 힐끔거렸다.
익히 알려진 마법부 장관이라면 절대 저리 반응하지 않았을 게다. 서릿발과 같은 음성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단칼에 잘라내었을 터인데, 지금은 틈을 보이다 못해 어서 들어오라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새로운 전략인가? 막상 날 세우는 것이 없자, 관료들은 되레 당황하여 서류만 뒤적거렸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이안이 직접 언급했지만 말이다.
“제가 황실과 연관 있다는 괴소문 말씀이십니까?”
“이안 경!”
진이 제발 입 좀 다물어 달라는 듯 소리쳤다. 그만 좀 뒤로 물러나라고, 더 이상 멀어질 필요가 없다는 신호였으나-
관료들은 진의 외침을 다르게 해석했다. 대회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그것도 황태자 앞에서 황실 핏줄 운운이라. 모욕과 불경 그리고 불손 그 자체가 아닌가.
“불경합니다! 괴소문을 전하 앞에서!”
“예, 이안 경. 말씀을 삼가십시오.”
“함부로 입에 올리실 사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까? 다들 그걸 궁금해하시는 듯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덮어둔다고 하여 덮어질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히 직접 언급하고 나설 일이라 생각하였는데요. 그것이 진 황태자 전하께 제가 보일 수 있는 충성이고요.”
이안이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경례하자, 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운함 조금과 분노로 점철된 반응이었다.
가까이 있는 수상만이 그 변화를 눈치채었고, 진이 격정적으로 변하기 전, 봉을 내리쳐 대회의장 분위기를 쇄신했다.
따앙! 땅땅!
“다들 자중하시오. 이안 경. 그대가 그리 나온다면 우리도 쉬쉬할 연유가 없긴 하지. 전 중앙 귀족이었던 하이만과, 버고스 국왕 다몬이 그대의 핏줄에 관하여 언급했다. 이것을 우연으로 볼 수 있는가? 대체 어찌하여 그자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할 수 있는 한 상세히 소명하라.”
“…소명할 거리는 사실 없습니다. 제 육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분명하니까요. 히엘로가 브라츠였던 시절, 저는 데르가 백작과의 동질 물약에서 친자 반응을 확실히 보였고, 어머니인 필리아와는 부정할 수 없게 닮아있습니다.”
“그렇다면 필리아를 증인으로 신청해도 되겠나? 그대의 출생이 확실하다면, 필리아의 출생에 문제의 실마리가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
“오, 그것은 거절하겠습니다.”
이안은 눈썹을 까딱거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술렁이는 대회의장. 황실과의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않는 이안의 태도가 수상하다 느낀 것이다.
“어째서?”
“단순히 묻고 끝날 사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어머니는 현재 동생을 품고 계십니다. 그 어떤 형태의 심문이라 하더라도 몸에 무리가 갈 것은 자명한 터라.”
“이안 경.”
대체 왜 그래? 수상 역시 안경을 벗으며 이안을 지그시 불렀다. 어찌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인가?
아니라고, 모두 헛된 증언이며 괴소문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해도 모자랄 판에, 증인 신청 거부와 함께 은근히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모두에게 보이고 있지 않은가.
“사실 말씀드릴 것은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다니?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 있다고?”
“이드갈에 관한 것입니다.”
“이아아안 님! 안 돼요! 안 된다고요! 왜 그래, 정말?! 으아아아! 누가 우리 장관님 주둥이, 아니, 입 좀 막아주세요!”
“아코렐라 대장! 소란 피우면 퇴장이라 일렀을 터인데? 지금 당장 대회의장을 나가시오.”
타앙! 탕탕!
이안이 이드갈을 언급하자, 아코렐라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수상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녀에게 퇴장을 명령했고, 이내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아코렐라를 부축하며 끌어냈다.
빳빳한 자세로 질질 끌려가면서도 아코렐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어차피 쫓겨나는 거, 말이라도 다 하고 가야 하지 않겠나?
“이안 님, 제발 좋게 좋게 갑시다? 응? 쉽게 좀 가자고요! 우리 아까 클리포포드에서 막 올라왔다! 로만드로 님 데리고와아아! 이안 님! 제발!”
끼이익! 쿠웅!
문이 닫히면서 그녀의 소란이 뚝 하고 끊어졌다. 마법사들은 혹여 자신들도 아코렐라와 같이 쫓겨날까 봐, 일부러 입을 틀어막은 채 이안만 쳐다봤다.
“…이드갈은 러더포드 상단에서 제조, 유통하는 마력봉인석 계열의 물질 아닌가? 그것이 왜?”
수상은 목을 가다듬으며 관련 내용이 보고서로 올라왔는지를 살폈다.
“이드갈의 제조에 제가 관여한 것 같습니다.”
“……!”
“……!”
관료들은 물론, 수상의 입마저 속절없이 벌어지고 말았다.
진은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고, 마법사들은 심장이 떨어져 내렸는지 가슴팍만을 붙잡은 채 굳어버렸다. 이는 회의 내용을 기록하던 서기들도 마찬가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억이 없습니다. 너무 어릴 때 있었던 일 같아서요. 확신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심증과 물증이 있습니다. 이드갈의 현존에 ‘서자 이안’의 영향이 분명히 있노라. 그리 판단합니다.”
“잠깐, 잠깐! 자네, 마법부 장관인 걸 잊었나?”
“예. 그래서 더더욱 숨길 수 없겠습니다. 저를 따르는 마법사들에게 못할 짓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습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제 의지와는 반하는 과거였습니다. 가능하다면 그것을 올바르게 붙잡고 싶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수상은 봉을 허공에 든 채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안이 연달아서 두 개의 폭탄을 던져댔다. 이것이 과연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잠깐, 휴식을 요청합니다. 전하.”
“그리하지.”
“삼십 분간 쉬었다가 재개하겠소.”
콰앙!
수상은 봉을 두드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를 따르는 관료들이 우르르 일어나 뒤따랐고, 회의장은 금새 텅 비어버렸다. 수상과 연이 없는 자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이안과 함께 회의장에 남아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자리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이안을 노려보는 진. 분위기가 살벌한 것이, 괜히 어슬렁거렸다가 불똥 튈 게 분명했다.
“수상, 이게, 이게 갑자기 무슨 사달입니까?”
“마법부 장관이, 마법사들을 견제하는 물질을 만들었다? 자격 박탈 아닙니까?”
“기억이 없다고 하지 않소. 취임하기 전, 아니, 입궁도 하기 전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 무마할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기억이 없다는 걸 믿소? 무엇보다, 이안 경이 지금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니 무마할 방도 따위는 개나 줘버린 것입니다.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미인데, 이게 무얼 뜻하는지 아십니까?”
“아, 세상에. 어찌 전쟁터보다 이곳이 더 어지러워?”
“황실 핏줄을 먼저 언급하고, 확실히 부정하지 않는 게 바로 그 밑밥이었습니다. 미치고 팔짝 뛰겠군요!”
일종의 균형이었다.
마법부 장관으로서는 이안의 입지가 상당히 흔들릴 게 분명했지만, 황실의 핏줄이라는 의혹이 남아있는 이상 그에게 새로운 힘이 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열댓 살의 입지 없는 어린 황자보다는, 천재 마법사라는 수식을 지닌 마법부 장관 출신인 자가 바리엘을 이끌기에는 더욱 적합하지 않겠는가?
마리브와 게일처럼, 세력이 분산될 분기점이었다. 몇몇 관료들은 이안의 의중과 진실을 가늠하기 위해 의견을 쥐어 짜냈다.
“이안 경 성격상 그리 민감한 사안을 아무런 의도 없이 발언했을 리는 없습니다.”
“진실로 황실의 핏줄이라는 말입니까? 아니, 그러면 그의 어머니라는 필리아가 연관 있다는 것인데요?”
“제국방위부 평정하였으니 당분간은 평화롭겠다 싶었는데, 이거 원. 바로 마법부 쪽에 폭풍이 일겠군요.”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법사들은 제국 내에서도 신뢰도가 상당해요. 게다가 이번 전쟁 승리의 주력들이니, 클리포포드와의 연계나 타국에 대한 지배력이 상당할 것입니다.”
“아니, 그래서 뭐 어쩌자고요?”
관료 한 명이 짜증스럽게 말을 잘라먹었다. 결론만 말하라 이거다. 결론만.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지. 들어가서 이안 경을 어찌 대하면 될지 말이다.
“중립. 진 전하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이전에 듣기에는 이안 경을 친형제처럼 잘 따르고 아낀다 하였는데, 최근 좀 소홀한 면이 있긴 했었지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진 전하가 어찌 반응할지가 중요합니다.”
“당연히 견제할 수밖에 없지요. 황태자 자리가 위태롭게 생겼는데. 반응이 딱히 없다? 그것은 싸우기도 전에 물러나는 것이니, 관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진 전하는 이안 경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마법사들이 문밖으로 우르르 나오더니, 이내 대회의장 안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콰앙!
무언가 떨어졌나? 아니면 박살? 다들 깜짝 놀란 채 굳게 닫힌 회의장 쪽을 바라봤다.
삽시간에 고요함만 감도는 복도. 수상은 이마를 짚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휴게 시간을 너무 길게 잡은 것 같다.
* * *
“이안 님! 거짓말이시죠? 이안 님이 이드갈을 만들었다니, 거짓말도 그럴듯한 걸로 하십시오!”
“어,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기억이 전혀 안 나세요?”
“너, 이 개새, 아코렐라 님 부하지?”
“아니. 솔직히 궁금하지 않냐? 마법사가 마력봉인석을 만든 거나 마찬가진데. 나무꾼이 삼림보호법 발의하자고 시위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 아님?”
“이안 님. 지금 하시는 발언과 행동들. 솔직히 그 의중을 모르겠습니다. 정녕 저희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부디 그만하시고 먼저-”
“너희들도 모두 나가거라.”
이안은 뒤를 살짝 돌아보며 그리 일렀다. 정면에서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는 진이 있었으니까.
아이는 씩씩거리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법사들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눈치채고 슬쩍 뒤로 물러났다.
“이안 님. 저희끼리 꼭 얘기해요. 아셨죠?”
“나, 나가서 바람 좀 쐬겠습니다. 크흠.”
끼이익! 쿵!
대회의장에 이안과 진 그리고 시아오시만 남았다. 진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고, 그 때문에 뒤로 밀려난 의자가 쾅, 넘어가고 말았다.
“이안!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네!”
“진정하십시오, 전하.”
“진정? 지금 진정이라 하였어? 어찌, 어찌 그래? 내가 분명히 부탁했잖은가? 의문을 적극적으로 부정해도 모자랄 판에, 그 모호한 태도는 무엇이고, 이드갈에 대한 자백은 또 무엇인가? 나를 농락하려 하는 게야? 아니면, 구석에서 수군거리던 자들과 같이 이 자리를 노리는 것인가?!”
아이가 절규하듯 소리치자, 이안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진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무릎 꿇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전하. 서운합니다.”
“서운함은 내가 할 말일세! 그대 눈에는 내가 황태자로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리하여 계속해서 견제 세력을 만들려고 그래? 기둥이 무엇인데? 그 잘난 기둥이 무엇인데, 어찌 계속…….”
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급히 훔쳐내긴 했으나, 그 자국이 선명하다.
“어찌, 계속 이리 나와 멀어지려고 하는가…….”
“전하. 저는 진심으로 전하께서 바리엘의 주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거짓말.”
“진심입니다. 전하께서 훌륭히 제국방위부를 평정하긴 하셨으나,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그 힘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곧 있으면 클리포포드의 균열을 조사하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기록으로 보았을 때는 반도르가 균열로 들어서서 대지가 매워지기까지 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십 년이라 하면 황궁에 있어서 결코 짧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긴 세월. 그로 인한 빈자리가 다른 존재로 대체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그대를 클리포포드 쪽으로 보내길 원하는 게지. 조사단을 가장한, 유배로.”
“감히, 원합니다. 전하. 황실의 핏줄과 연관되어 있다는 괴소문이 이미 퍼질 대로 퍼졌습니다. 곧 있으면 민간으로 넘어갈 터인데, 그때가 되면 솔직히 저 또한 여론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괘념치 마시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세요.”
미리 곪은 상처를 터트리듯, 이안에게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진이 미리 이안을 제압하는 것.
그리하면 진은 황실의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으며, 마법부 장관을 숙청하였다는 위엄으로 보다 단단히 황태자 자리에 설 수 있을 게다.
“…벨벳 거미라는 게 있습니다. 사막에서 사는 놈인데, 제 새끼에게 자신을 먹이로 주는 거미이지요. 어차피 죽을 몸, 새끼에게 영양분이 되도록 기꺼이 육신을 내어놓는답니다. 그 누가 어미 거미에게 바보 같은 짓이라 손가락질할 수 있겠습니까?”
“이안 경.”
“저를 그리 이용하십시오. 저를 밟고 올라 더 높은 곳에 이르시고, 더 먼 곳까지 바라보십시오.”
“대체 왜 균열로 들어가려는 것인가? 거기에 무엇이 있기에 그래? 안 가면 안 되겠어? 혹 이드갈로 인한 죄책감인가? 그런 것은 하등 문제가 안 되니-”
“심연이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심연, 마법사들의 지옥이라 불리는 곳.
이안은 조심스레 진의 손을 맞잡으며 웃었다.
“심연에서 만날 자가 있으니, 저는 제 모든 걸 내어놓고서라도 그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