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34
제434화. 필리아의 노래
“비비안나!”
로만드로는 거의 구르다시피하여 저택으로 들어섰다. 정원에서 이미 한번 넘어졌는지, 그의 웃옷이 흙으로 엉망이었다.
전사들이 조용히 하라며 신호 주었지만, 로만드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뵈는 게 없었으니까. 그가 곧장 비비안나 방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전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붙잡았다.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아기 곧 나온다고 산파들이 계속 호흡 도와주고 있어요.”
“예. 마음은 알겠지만, 방해되지 않게 여기 앉아계십시오. 게다가 땀이랑 흙투성이네요. 아기와의 첫 만남, 이리 해도 되시겠습니까?”
“황궁에서 밭을 매다 오셨나. 가서 간단히 씻고 옷이라도 갈아입으시지요.”
“우, 우리 비비안나는? 응? 괜찮은가?”
“아아아악!”
로만드로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비안나의 고통 섞인 비명이 들려왔다. 찢어질 듯, 짐승과 같이 울부짖는 울음. 로만도르는 깜짝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이어서 다시금 눈물이 퐁퐁 솟아올랐지만.
“아이고, 우리 여보 죽네! 비비! 나 여기 있어!”
“조용히 좀 하라니까.”
“흐어어엉! 비비! 조금만 힘내! 제발!”
“기절시켜드려요? 예? 가만있기 힘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전사들의 경고에 로만드로는 입술을 꾹 깨물며 울음을 삼켜댔다. 눈물, 콧물, 입에서는 침까지 줄줄 흐르는 것이 가관이다.
전사들은 팔짱을 낀 채 근엄한 낯으로 신께 기도를 올렸고, 로만드로는 분마다 시계를 보며 고통스러운 지금이 서둘러 흘러가길 바랐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비비안나의 비명이 잦아드는 시점, 로만드로와 전사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낯선 울음이 들려왔다.
“아!”
아기의 울음소리다. 갓 태어난 것이 삶을 시작하겠노라 이르는 작은 노래.
산파들은 무엇이 그리 웃기는지 깔깔대며 웃어댔고, 로만드로는 방문에 딱 붙어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어서, 누가 이 문 좀 열어주오. 제발.
끼이익.
“로만드로 님!”
“피, 필리아 님. 비비는 괜찮습니까? 우리 아이는요? 손가락 발가락 열 개씩 무사하고요?”
“예예. 비비안나 님을 쏙 빼닮은 아가씨네요. 축하드려요. 아버지로서의 인생을 사시게 되었습니다.”
“와아아아!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비비안나! 들려? 내 목소리 들려? 고생했고, 정말 고마워! 비비! 사랑해! 앞으로 정말 잘할게!”
“비비안나는 아기 안아보고서 바로 기절했어요. 이쪽으로 오셔요. 조금 있으면 산파께서 아기 보여주실 겁니다.”
“축하합니다. 로만드로 님. 형수님 닮은 아기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래서 산파들이 웃었나?”
“축하합니다. 예쁜 따님 얻으셨군요!”
“으아, 고맙네. 고마워!”
전사들이 로만드로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동안, 필리아는 세면대로 가서 축축한 손과 팔뚝을 씻어댔다. 긴장과 열기로 가득한 방 안인지라,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필리아는 그사이 초췌해진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며, 문득 이안을 떠올렸다.
“로만드로 님, 이안이는요?”
“예? 이안이요?”
“네. 베릭 통하여 말 들었습니다. 황궁에서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것 같던데, 괜찮은가요?”
“아아. 안 그래도 지금쯤 그것에 대한 대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황실과 관련 있다니, 말도 안 되지요.”
“그러면 문제없다는 것이지요?”
“예에. 뭐. 진 황태자 전하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의견 충돌이라니요?”
필리아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되물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마법부에 들르셨는데, 굉장히 화나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될 것입니다. 대회의 끝나고 보고서 받으면, 필리아 님께서 어찌하면 좋을지도 가락이 잡힐 것입니다. 이제 슬슬 더 더워지기 전에 변경으로 내려가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가면 배도 불러올 터인데.”
스흡! 로만드로는 연신 콧물을 훔쳐먹으며 그리 일렀다. 필리아가 다정하게 수건을 건네주자, 천천히 열리는 문. 늙은 산파가 깨끗한 천에 싼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모습을 보였다.
“애기 아빠 왔소?”
“여기요! 제가 애기 아빠입니다!”
“오, 그래. 제때 왔군. 자, 여기. 귀여운 아가씨라.”
로만드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포대기 안쪽을 천천히 살폈다. 희고 부드러운 피부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상상하였거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왜, 왜 이렇게 불어있죠?”
“원래 막 태어난 아기는 다 그래. 그래도 이만하면 아주 예쁜 아가씨라고. 어머니만 똑 닮아서리.”
조금 낯을 가리던 로만드로가 아기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너무 가볍고, 너무 연약하여 눈물이 왈칵 터졌다. 막 태어난 작은 생명체를 보고 있자니, 로만드로의 가슴에서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죽으면 안 되겠다.’
그저 살아있어서 살아왔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결심이 섰다.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 때까지, 아비가 버팀목이 되어 곁을 지켜주마.
로만드로는 코를 훌쩍이며 아이에게 인사했다.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부족한 아비지만, 너에게만큼은 완벽한 아비가 되도록 할게. 만나서 너무 반갑고…. 나는 이 순간을 너무 기다렸나 봐.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너무 아프다.”
전사들 또한 옹기종기 뒤로 모여 로만드로 어깨 너머로 아기를 살펴봤다. 새 생명이다. 가이아에 내려온 신성한 존재.
산파는 수건으로 손등을 닦더니, 아이의 이름을 물었다.
“비비안나가 그러던데, 이름을 아직 못 정했다고.”
“아, 예예. 같이 정하기로 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요. 생각해둔 건 있으니, 비비가 깨어나면 정하겠습니다.”
“그래. 무엇이든 이름은 빨리 지어주는 것이 좋지. 불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산파는 로만드로에게서 아기를 돌려받은 다음, 아기 방으로 몸을 돌렸다. 로만드로가 반사적으로 그 뒤를 따르려는 순간이었다. 필리아가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로만드로 님. 저, 황궁에 잠시 다녀올게요.”
“예? 하지만-”
“사실 아까 가보려고 했는데, 비비안나가 산통을 느껴서 못 갔어요. 전장에서 죽다 살아온 아들이 황궁에 있는데, 제가 어찌 여기서 가만있겠습니까? 잠시 얼굴만 보아도 좋으니, 로만드로 님. 마차를 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로만드로는 난감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안의 의중과 앞으로의 전략에 대하여 공유받지 못한 지금, 필리아가 황궁으로 들어서면 어떤 반응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조용히 다녀오십시오. 제 마차를 타고 마법부로 가서 이안을 만나야 합니다. 혹 이안이 다른 건물에 있다 한들, 필리아 님은 움직이지 마시고 집무실에서 기다리셔야 해요. 마법부 외, 다른 곳은 여러모로 위험합니다.”
로만드로는 아이를 품에 안음으로써 막 부모가 되었다. 자식이 전장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는데, 어찌 먼 곳에서 기다리고만 있겠는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로만드로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필리아는 로만드로를 가볍게 끌어안은 다음, 웃옷을 챙기며 외출 준비에 서둘렀다.
“베릭은요?”
“마부 교체되는 동안 마차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 녀석 성격상 안에 들였다가 정신없어질까 봐요.”
입이 댓 발로 나와 있는 베릭이 절로 그려졌다. 필리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네르사른에게 볼 키스를 남기고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끼이익!
타닥타닥!
“베릭!”
“필리아 님! 아기는요? 나왔어요?”
마부석에 반쯤 누워 마부의 무릎을 베고 있던 베릭. 필리아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응. 비비안나 님이랑 아기 모두 건강하고 무사해. 자, 미안하지만, 우리는 다시 황궁으로 가자. 로만드로 님한테 정식으로 허락받았으니, 걱정할 것 없어.”
“아아. 나 애기 보고 싶은데!”
“다녀와서. 자, 서둘러주렴.”
필리아가 마차에 올라타자, 베릭은 기지개를 쭉 켜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부를 재촉하여 말머리를 황궁 쪽으로 틀었다.
* * *
해가 어둑해지는 시간.
필리아는 마법부 앞에 도착하자마자 로브를 뒤집어쓴 채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마법부 안쪽은 이전과 달리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마법사들이 돌아온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로만드로에게 짐을 가져다주기 위해 왔을 때, 폐허와 같은 느낌을 물씬 주곤 하였는데 말이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타닥타닥!
“어? 필리아 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이안이는요?”
“이안 님 지금 집무실에 계십니다. 그런데, 하아. 필리아 님. 마침 잘 오셨어요. 가셔서 이안 님 혼쭐 좀 내주십시오.”
생글생글 웃으며 몸을 틀려던 필리아가 우뚝 멈춰섰다. 아들을 본다는 즐거움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마법사들 사이의 기운이 상당히 침체되어 있었다.
필리아는 무슨 일인가 싶어 로브를 걷어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안이가 무슨 실수라도 하였나요?”
“차라리 실수를 하셨으면 이해라도 하지요. 진짜 미치겠습니다. 대회의에서 아주 사고를 크게 치셨어요. 황태자 전하께서 중간에 자리 박차고 나가실 정도였거든요.”
“예? 전하께서요?”
“바리엘로 온 지 하루 만에 다시 클리포포드로 돌아가서 균열 조사를 직접 한다고 하시니, 이거 속이 터집니다. 그리고-”
황실 핏줄과 이드갈 문제 또한 막막하였는데 필리아 앞에서 언급할 것은 아닌지라, 마법사가 입을 급하게 다물었다.
“규, 균열 조사가 무엇인데요?”
“말 그대로 균열로 들어가 조사하는 것인데, 상당히 위험하고 시일도 오래 걸립니다. 가능하다면 필리아 님이 좀 말려주십시오. 진짜, 이안 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필리아는 놀란 눈빛으로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천천히 몸을 돌려 집무실 쪽으로 움직였다.
똑똑.
집무실 앞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심지어는 문 열어주는 시종조차. 아무래도 이안이 모두 물린 듯했다. 필리아는 손수 인기척을 내고, 문을 천천히 열어 당겼다.
끼이익.
“이안?”
이안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달빛에 물드는 금발만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모습. 자고 있나? 필리아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이안이 물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어머니.”
“이안. 괜찮니? 왜 그래? 어디 아파?”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얼굴을 파묻고서 중얼거리는 이안이다. 필리아는 아들 가까이 다가가 그 어깨를 감쌌다. 그러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잠겨있는 목소리. 그리고 고집스럽게 파묻는 고개. 이안은 낙담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안아. 고개 들어봐. 응? 대회의에서 무슨 일 있었니?”
“…….”
“간단히 전해 듣긴 하였는데, 나는 너를 통하여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제가 겁쟁이라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야? 너만큼 용감한 아이가 어디있다고.”
“결심하였으나, 자꾸 흔들리는 마음이 갈대 같아 시립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제가 가야 할 길인지라 막막해요. 그 끝에 만나고 싶은 자가 있다고 믿지만, 믿음이란 언제고 운명에 배신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필리아는 이안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 이안의 내면에 소용돌이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게다.
필리아는 아이를 꼭 껴안으며 작게 노래했다.
“동산 위의 작은 달, 우리 아이 목덜미를 환히 비추는구나. 아아-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나의 작은 아이야, 눈물 대신 웃음으로 달에게 인사해다오.”
이안과 함께 살았을 때, 거의 매일 밤 불러주었던 노래였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노래하면 이안이 그 뒤를 따라 흥얼거리곤 하였다. 브라츠 저택에 감금되어 있을 때, 이안에게 암호로 이르게 한 노래 역시 이것이었다.
필리아는 이안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고, 이안은 천천히 상체를 들었다. 그러곤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는 필리아에게 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래가 듣기 좋습니다. 어머니.”
그때, 이안의 녹안을 환하게 비추는 달빛. 필리아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찌하여, 이것을 처음 듣는 것처럼 대하는 것인가?
이안이라면, 제 아들 이안이라면 내놓을 수 없는 참으로 묘한 대답이었다. 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이안을 빤히 바라보았고, 이내 중얼거렸다.
“…이안이는 이 노래, 잘 몰라?”
덫과 같은 말을 내어놓는 게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필리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익숙하긴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