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36
제436화. 반격
집무실 문을 열고 나온 필리아가 힘없이 등을 기댔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안이 그 노래를 알지 못한다니, 세상에.
어릴 적, 아이의 하루는 언제나 그 노래로 채워져 있었다. 은근한 햇살 냄새와 같이 아이의 곁을 떠도는 흥얼거림. 원래 아이들은 어릴 적 기억을 자주 잊는다지만, 이안은 데르가에게 붙들려가기 전날에도 자신에게 저 노래를 불러달라 하였다. 고작 일 년도 되지 않은 시간인데…….
“필리아 님, 이안 님 보셨어요?”
“뭐라고 하세요? 특별한 말은 없으셨어요?”
“그, 필리아 님 보고 언질하신 부분은 없나요? 이게 수상한 게 아니라요, 저희들 입장에서는 너무 궁금하고 중요한 거거든요. 괜찮으시면 있었던 걸 모두… 어라? 필리아 님? 괜찮으세요?”
“아아, 네에.”
복도 끝 모퉁이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마법사들이 필리아를 촘촘하게 둘러싸며 한마디씩 던져댔다. 그녀의 안색이 너무 파리한 나머지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저, 저기 마법사님들.”
“예? 왜 그러십니까?”
“혹시 마법 부작용 중에 기억을 잃는 증상도 존재하나요? 이안이 전장에서 많이 아팠다고 들었어요.”
“기억과 관련한 부작용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이안 님이 그러세요?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그럴 줄 알았다! 정신에 문제가 있으시네! 그렇지 않고서 균열로 들어가겠다는 말씀은 못 하시지. 이제 성인도 안 된 분이 장관직을 내려놓는 건 또 무슨 경우람? 인생 개시하자마자 영업 종료도 아니고.”
“저기, 헤일 대장님은 어디 계실까요?”
“헤일 대장이요? 황궁친위대 쪽으로 지원 나갔는데요. 그쪽 마검사들 마력 채워주려고요. 이안 님이 보내셨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의논, 의논할 분이 필요해요. 로만드로 님은 저택에 계시니 무리고, 헤, 헤일 대장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잠깐만요. 필리아 님, 마법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전언 있지 않으셨습니까? 마부가 그러던데요.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헤일 대장에게 전언하겠습니다.”
“아아, 네. 서둘러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필리아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배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놀란 마법사들이 덩달아 그녀를 따라 앉았으며,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울상지었다.
그때, 뒤에서 나타나는 베릭.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체 다들 무엇 하는지 궁금하다는 시선이다.
“뭣들하고 있나 했더니, 바닥에서 놀고 있네.”
“이게 노는 것으로 보여?”
“아님, 일하고 있는 건가? 하아암. 됐고, 이안이는?”
“이안 님 집무실 안에 있는데, 들어가지 말거라. 오늘 이안 님 상태가 안 좋아.”
“뭐? 왜? 아파?”
태평하게 배를 긁적거리던 베릭이 멈칫했다. 지하 심문실에서 봤을 때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 졸라 멀쩡해서 다몬 대가리 터지는 것도 막아내지 않았나?
베릭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깜빡이자, 마법사 한 명이 한숨 쉬며 상황을 전해줬다. 균열 조사와 장관직 사임. 그리고 이것들의 원인인 황실 연관 의혹과 이드갈.
“아아. 소문은 알지. 그래서, 이안이가 균열 간다고?”
“…어찌 즐거워 보인다?”
“앗싸! 개꿀! 존나 좋고요!”
베릭은 허공에 주먹을 찔러 넣으며 진심으로 환호했다. 얼이 나간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법사들. 미친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낯이다. 지금 베릭은 사태의 심각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법사 한 명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너, 너, 이해는 제대로 했지?”
“어. 제대로 했는데? 균열은 마물 구덩이라며. 거기 조사하는 거면 시바, 맛나고 바삭바삭한 애들 졸라 많겠네. 아, 벌써부터 침 고여. 황궁은 밥 맛있는 거 말곤 별거 없잖아. 뭘 썰 수가 없어서 아쉬웠거든. 냐호! 가서 신나게 놀아야지!”
그렇군. 저 새끼,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대가리 기능이 떨어지는군. 마법사들은 동시에 같은 진리를 깨우치며 한숨을 뱉어댔다.
“베릭. 너는 못 가, 등신아.”
“나? 왜?”
“너는 황궁친위대 소속이잖아. 균열 가려면 삼대장 및 황제 폐하의 명이 필요한데, 황실에서 미쳤다고 인력 손실 나게 마검사를 보내겠어?”
“어?”
베릭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잠시 멈추었지만, 그뿐이다. 아주 간단한 해결법이 있었으니까.
“그만두지, 뭐! 어차피 황궁친위대 하면 할수록 돈 까여서 거지였어. 황궁 나가는 게 내 지갑 사정에는 이득이다! 음하하하!”
“황궁친위대가 아니면, 이안 님이 너를 균열 조사단에 끼워줄까? 그 위험한 곳에 너같이 천방지축인 놈을? 응?”
“당연하지! 이안이 가는 곳은 나도 가. 원래 그랬어. 그리고 시바, 나는 이안이 일 그만두는 거 대찬성이다! 잠자는 시간도 없이 종이 쪼가리만 들여다보는 게, 저게 할 짓임? 밥 먹을 시간도 없구만.”
“…그 밥, 네가 하루에 수 킬로그램씩 처먹는 그 밥. 누가 돈 내주고 있게?”
마법사가 현실을 짚어주자, 베릭이 코를 살짝 훔쳤다. 분위기가 생각과 달리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음, 시바. 이런 거 딱 질색인데.
“이안이는 일 안 해도 돈 많아서 괜춘.”
“균열로 너 데리고 간다는 거, 진짜 확신할 수 있어?”
마법사들에게 언질 없이, 대회의에서 거하게 사고 치셨다. 아니, 그들이 문제인가? 헤일 대장도, 아코렐라 대장도, 심지어는 보좌관인 로만드로도, 황실의 중심인 진 황태자도 속되게 표현하여 뒤통수 맞았다. 그런데 베릭이 과연?
베릭은 슬금슬금 집무실 쪽으로 뒷걸음질하더니, 이내 몸서리치며 소리쳤다.
“이안아아아아아!”
“야, 잡아!”
“으아아악! 이안아아아아! 이게 먼 소리다냐!”
“자, 잡아야 하는 거 맞나? 차라리 베릭을 풀어서 이안 님 혼을 쏙 빼놓는 게 어때? 정신없는 개 한 마리 정도는 괜찮잖아. 해볼 만하다!”
“누가 개라는 건데에에에! 이안아앍!”
“너, 너 이 새꺄. 아오, 힘이 뭐 이리 세?!”
“원래 짐승들이 체구에 비해 힘이 세다. 헤일 대장 올 때까지는 이안 님 자극하지 마! 지금도 예측 안 되는데 베릭 놈 때문에 더 이상해지실라!”
필리아는 마법사들과 베릭이 한데 엉켜 복도를 뒹구는 걸 가만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란이 일어나고 있건만, 집무실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마치 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다들 무슨 일이지?”
그때, 소음을 가볍게 지워버리는 중저음의 인기척. 마법사들과 필리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로브를 대충 두른 헤일이 마른 궐련을 문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장? 왜 여기 있어요? 지금 모시러 가려 했는데.”
“마법사가 마법부에 있는 게 이상한가?”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도 주위에서 수군대는 것이 심하여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헤일은 궐련 끄트머리를 이로 깨물며 그리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저질 괴소문이라 여겼던 것들이, 대회의가 진행되는 시각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진 황태자의 움직임에 황궁친위대가 즉각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헤일 역시 자연스럽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것이다. 그는 필리아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부인. 바닥이 찹니다.”
“저기, 헤일 님. 저 의논드릴 게 있어요.”
“혹 제 예상이 맞는다면, 이안 님이 균열 조사에 나서지 않게 해달라는 말씀이지요?”
“예?”
헤일은 필리아의 옷깃을 무심하게 챙겨주며 중얼거렸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자꾸 자기가 할 일 저한테 넘기려 하시는데, 저는 순순히 받을 생각이 없거든요.”
무던한 평소와 달리, 헤일의 말투에 날이 조금 서 있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안에게 불만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마법사들을 돌아보며 일렀다.
“다들, 지금 이안 님이 이상하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예. 괜히 바리엘로 돌아왔나 싶기도 합니다. 정말.”
“클리포포드에 있을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가, 감금 갑니까?”
“자신 있어? 난 이안 님 못 이겨.”
“나, 나도.”
“이 미친놈들아! 제국의 고급 인력들이 고작 그딴 걸 해결 방법이라고 내놓아?”
“쉬잇.”
헤일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모두에게 침묵을 요구했다. 무언가 방도가 있는 것 같은 제스처에. 마법사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나도 간다.”
“엥?”
“나도 균열 조사에 지원할 것이라고. 지원자에 한하여 인원을 모집하겠다 하셨다며? 그러니 나도 기꺼이 이안 님과 함께하겠다.”
…이런 미친, X 됐다.
마법사들은 모두 동시에 같은 욕설을 떠올렸으나, 곧 헤일의 대응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이안이 떠난다면 차기 장관으로 제일 유력한 것이 헤일이니, 그의 부재는 이안의 계획에 차질을 만들 터.
“…나쁘지 않은데요?”
“그리고 너희들도 ‘모두’ 간다.”
“예에에에?!”
“이안 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지. 바리엘의 안위를 우선시 두고 있다는 것. 그런데 마법사들이 모두 이안 님을 따라 균열로 가겠노라 하면, 뒷일이 어떻게 될까?”
“다, 다시 구멍 생기는 거죠.”
“로만드로 님 불쌍해서 어째?”
일종의 파업. 행동으로써 이안에게 불만을 표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헤일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자연스럽게 돌렸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천천히 마법사들과 눈 마주치며 당부했다.
“이안 님을 이겨먹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다. 다들 그걸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좋아.”
“아, 그럼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무리 이안 님이라도 저희가 단체로 파업하면 별수 있겠습니까?”
“그래그래. 이안 님이 균열에 가신다고 하면, 우리도 다- 간다고 해버리자. 그러면 재고해 주시겠지.”
“오케이. 좋다! 서명문 쓰자!”
마법사들은 이안을 한 방 먹여줄 생각에 흥분하여 눈을 반짝였다. 베릭도 방방 뛰며 동조하는 모습. 괜히 이안이 저를 떼놓고 가기보다, 이리 일상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게다.
필리아는 배를 가볍게 안아 들며 마법사들 사이에 서 있는 헤일을 바라봤다. 헤일은 알고 있을까? 그가 마법사들을 통솔할 때마다 이안의 혜안을 반증하고 있음을.
“헤일 님, 그게 아니에요.”
“아, 네?”
“따로 의논드릴 게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세요.”
필리아는 마법 부작용 중 기억상실에 관한 것을 물어보고자, 헤일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헤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사무실로 그녀를 안내했고, 이내 문을 걸어 잠갔다.
끼이익.
쿠웅!
* * *
“다몬 왕이 회복될 때까지 회의를 연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법사들과 황궁의들이 치료하고 있으니, 이른 시일 내에 의식이 돌아올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그 시기를 맞춰서 루스웨나와 다른 나라 관계자들도 입궁하라 들면 되겠군요. 넉넉잡아 열흘 정도요.”
“클리포포드, 루스웨나, 버고스. 그리고 북쪽의 참전 세력까지. 모두 바리엘의 호출을 기다리고 준비해놨을 터입니다. 열흘까지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예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의 집무실에 모인 수상과 고위 관료들은 다음 대회의 일정을 공유하며 회의 마무리를 이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동공이 진 쪽으로 계속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하? 어떠십니까? 동의하십니까?”
“그, 있잖은가.”
“예?”
회의가 아니라 사념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 아이는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턱 괸 손을 떼며 수상을 돌아봤다.
“균열은 클리포포드 영토 내에서 일어난 것이라, 클리포포드의 허가가 없다면 균열 조사가 불가하다고 여겨지는데, 맞을까?”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클리포포드에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연유가…….”
수상이 허허 웃으며 관료들을 돌아봤다. 지금 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안을 균열지로 보내는 건, 복잡한 현 상황을 타개할 기회였다. 황실의 핏줄이라 의심받는 이안을 꺾어버려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진은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리하면 되겠다.”
진은 볼우물을 깊게 패며 수상에게 일렀다.
“열흘은 너무 길다. 다들 일주일 이내로 황실에 들라 하라. 이번 전쟁과 관련 있고, 책임을 져야 하며, 보상받아야 할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