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38
제438화. 이안 파와 반(反)이안 파
“이안 님 일어났나 보다.”
잔디밭에 앉아 나무 판자때기를 손질하는 헤일과 그런 그를 맞은편에서 구경하는 아코렐라.
그녀는 궐련을 껄렁하게 질겅이며 창문 쪽을 살폈다.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법부 어중이떠중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뭐, 할 말 있어?”
“있지. 어제 필리아 님이 말한 거 있잖아. 이안 님 기억상실 증상.”
콰직!
아코렐라가 ‘기억상실 증상’을 언급하자마자 판자때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안쪽이 시커멓게 썩어있던 탓이다. 헤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일러보라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봤는데, 이안 님이 겪었던 마법 부작용 중에는 기억상실과 연관 지을 만한 게 없어. 제일 심하게 겪었던 게 고하(苦河)잖아? 그런데 오히려 이건 부작용이 명명백백하고 덧붙일 게 없어. 그 마법 자체가 목적이고, 부작용이니까.”
“그러면 필리아 님이 무언가 착각하셨다?”
“에이, 그렇다고 모성애를 물로 보면 안 되지. 촉이라는 게 증명할 수는 없어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거라. 필리아 님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난 기저에 무언가 있었다고 보는 편.”
필리아는 헤일에게 이안의 기억상실증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무리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어찌 그 노래를 기억 못 하는지 모르겠다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말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을 정도라, 필리아는 그것이 단순한 노래가 아님을 단단히 덧붙였다.
“그래서?”
“마법의 부작용이 아니라, 다른 데서 온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네가 만든 것들?”
“별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반박 졸라게 하고 싶지만, 그게 제일 합리적인 의심이니까 주둥이 다물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기억나? 나 드래곤 각린 때문에 죽을 뻔했던 적.”
“왜 기억이 안 날까.”
“그때 마력증폭제 부작용이랑 맞물려서 내 증상 중 하나가 기억 끊어지는 거였거든? 아무래도 연관이 있다면 그쪽을 검사해보는 게 맞지 않나 싶어. 솔직히 워낙 이전 일이고, 중간에 부작용 제거한 것도 시음한 적이 있으니 난 가능성 낮다고 보지만.”
“이안 님께 어찌 말을 건넬지가 문제군.”
“그래서 부작용 있는 걸 토대로 기억력과 관련한 연관성 연구를 해볼까 해. 저 오합지졸들이 이안 님한테 까부는 건 좋은데, 우리 애들 몇은 좀 내려 보내주라. 나 혼자서는 좀 힘들어. 손이 필요해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근데 그자들이 갈지는 모르겠는데.”
“까라면 까야지. 지들이 어쩔 겨?”
아코렐라는 궐련에 불을 붙인 다음, 연기를 깊게 마셔댔다.
아직 필리아의 주장으로만 접한 것이라 그런가? 이안이 부분적 기억상실을 앓고 있다는데, 실감 나지 않았다. 사실 살아가면서 그깟 노래 한 두 개 잊어버리는 게 무슨 문제가 될까 싶기도 하고. 업무와 일상에 지장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코렐라가 끄응, 신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엥?”
본관을 유유히 걸어 나오는 이안. 그리고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붙는 베릭. 아코렐라가 무언가 잘못 보았다는 듯 눈을 비벼댔다.
“뭐지? 이안 님이 왜 나오셨지? 아니, 어떻게 나왔지?”
“이안 님이 나왔어?”
“봐봐, 저 멍청이들. 제대로 하는 게 없지.”
한가로이 있던 마부들은 이안이 나타나자마자 허겁지겁 말고삐를 잡았고, 다소 허망하게 마법부를 빠져나갔다.
아코렐라는 기다란 나뭇조각을 하나 골라잡은 다음 바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것들이 정신 똑바로 안 차리는 것 같으니,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야! 이안 님 나가셨-”
“아코렐라 대장!”
“도와주십시오! 이거, 어떻게 풉니까?”
“해제하는 술식이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자세가 이래서 영 쓸 수가 없습니다. 으악.”
“좀! 내가 평소에 씻으라고 했지? 거 냄새 한번 독하네, 정말. 저리 좀 치워!”
“못 움직이는 걸 어떻게?”
“시바, 시늉이라도 하든가!”
아코렐라는 나무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팔짱을 낀 채로 돌돌 말려 갇혀있는 마법사들. 이안의 결속 마법에 속절없이 당한 모습이었다.
“지랄들을 해라. 지랄들을.”
“도와주세요!”
“이안 님은? 어디로 가셨는데?”
“사절단 얘기하다 가셨으니, 그거 알아보러 가셨겠지요? 행정부 쪽이요!”
“오케이.”
“아, 아코렐라 대장? 저희는?”
“알아서 해. 시간 좀 지나면 옅어질 거다.”
“얼마나요?”
“몇 시간. 아. 이안 님이니까 며칠일 수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이 된 마법사들. 아코렐라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고, 따라 들어오던 헤일을 붙잡아 다시금 계단을 내려갔다.
“왜 그래? 애들은?”
“파업해서 안 돌아갈 바에, 저렇게 묶여있어서 못 돌아가는 게 덜 쪽팔려. 능력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내버려 둬. 응응.”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노아 왕자는 저 멀리 보이는 바리엘의 수도, 중앙 성벽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첫 방문 땐 바리엘과 이런 식으로 엮일 줄 몰랐거늘, 세상일 참으로 알 수 없다.
타닥타닥!
그는 경사진 내리막길에서도 말고삐를 크게 흔들어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진의 친필 서신을 전서구로 받았을 때부터다. 노아 왕자와 메이는 쉼 없이 내달리고 내달려, 단 며칠 만에 수도에 당도한 게다.
다른 자도 아니고, 바리엘의 유일한 황자이자 황태자인 자가 클리포포드 왕가의 방문을 서둘러 달라 이르시니, 어찌 느긋할 수 있겠나?
“왕자님. 중앙으로 들어가서 말(馬)을 바꾸시겠습니까? 녀석들이 좀 지친 듯합니다.”
지친 것은 비단 짐승만이 아닐 터인데, 메이는 노아를 걱정스레 힐끔거리며 소리쳤다.
균열 전방에서 사고 수습에 힘쓰느라 제대로 먹고 자지 못했던 노아였다. 그런데 바리엘에서 호출이 떨어지자마자 이리 내달려 왔으니 그 피로가 엄청날 터.
그리고 무엇보다, 저주의 주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시간 지체할 것 무엇 있어? 계속 달린다!”
“예! 알겠습니다! 왕자님, 몸은 이상 없으시지요?”
“문제없다! 메이, 나보다 너를 먼저 챙겨!”
“되었습니다. 반파된 왕궁에서는 저주 주기를 정확히 계산할 수 없으니, 그 무엇보다 노아 왕자님 스스로 몸 변화를 감지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클리포포드의 존망이 걸려있는 시기이니, 왕가에 대한 믿음이 곧 클리포포드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리엘로 들어갈 때마다 이러는 것 같아!”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렇네요! 오차 범위가 사흘 정도 되니, 혹 문제 생기면 이안 경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안 경에게 도움? 그에게 이해관계를 떠난 도움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부터 의문이로다.”
노아가 호쾌하게 웃으며 대꾸하자, 메이가 덧붙였다.
“이해관계 확실하지요! 그러니 목숨 걸고 클리포포드를 도와준 것 아니겠어요? 바라는 바가 있을 때는 당당히 먼저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입니다.”
“알겠다! 어쨌거나, 내 책잡히지 않게 처신 잘 하겠다!”
“꼭 그리하십시오!”
그것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말을 재촉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미리 언질 받은 중앙 외곽 성벽에서 병사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영한다는 뜻을 보였고, 그들은 이내 멈춤 없이 중앙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황실의 길옆으로 내달리며 단숨에 황궁 가까이 붙었다.
타닥타닥!
히이잉!
“클리포포드에서 온 사절단이십니까?”
“클리포포드의 노아 왕자다. 우리의 왕, 전하께서는 지금 마차로 이동 중에 계시니, 나는 황태자 전하의 명에 따라 먼저 입궁하고자 한다.”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문지기는 서류를 간단히 확인한 다음, 고개를 주억거리며 두 사람의 말을 잡아끌었다. 정문이 아닌, 그 옆의 쪽문 쪽으로 이동하려는 게다.
메이가 당황하여 문지기를 멈춰 세웠다.
“클리포포드의 왕자님이십니다! 어찌하여 그리 작은 문으로 안내하는 겁니까?”
“아, 송구하오나 현재 마법부의 파업으로 인해 정문 여는 기준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상업용 마차 이하 크기는 모두 옆문으로 들 수밖에 없습니다.”
“파업이요?”
“아시다시피, 저 큰 문을 여닫는 건 마법사님들의 소관인지라. 정 그러시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노아와 메이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픽 웃었다. 바리엘의 마법사들이 무엇 아쉬워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나아가, 황궁에서? ‘그’ 이안 경이 주도한 것인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것과 달리, 문지기들은 생각보다 현 상황에 익숙한 것 같았다.
“마법사님!”
“어여! 네네!”
“클리포포드 사절 중 노아 왕자님께서 먼저 당도하셨습니다! 가운데 문을 열 수 있을까요?”
문지기가 위쪽으로 고개를 든 채 소리치자, 마법사 두 명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머리에 단단히 매인 붉은 머리띠. 그들은 일면식이 있는 터라, 단번에 서로를 알아봤다.
“아이고, 노아 왕자님 먼저 오셨어요?”
“둘이…. 뭣 하는 거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열 터이니, 큰 문으로 들어오십시오. 대신 이안 님한테는 비밀입니다!”
“뭐?”
끼이익!
쿠구구궁! 쿠웅!
그와 동시에 활짝 열리는 정문. 노아와 메이가 의아하게 문지기를 돌아봤으나, 문지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기만 했다.
“자, 안쪽으로 드시지요.”
“왜들 저러는지 알고 있소?”
“그럼요. 모를 수가 없지요. 이안 님의 장관 사임에 반대하는 행동이라 하시더군요.”
“이안 경이, 사임?”
마법사들의 파업보다 더욱 놀라운 단어의 조합이었다.
이안이 요직에서 내려온다는 건 개인의 인생사에서도 아쉬운 일이겠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굉장히 큰 손실 아니겠는가. 이안이 클리포포드인이었다면 절대, 절대 사표를 처리해주지 않았을 것이라. 노아는 그리 생각했다.
“이안 경도 그리 쉽게 내려올 자로는 안 보였는데.”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가져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 그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보는 게 맞겠지. 이안 경은 자신이 잘난 걸 알아. 본인이 사임할 시 바리엘이 안게 될 손실 비용을 잘 알 터. 분명 이들이 귀국하고 나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라.”
바리엘로 돌아갈 때만 하더라도 이에 관한 언질이 없었다. 아니, 안 해준 것일까? 노아가 고민하며 황궁 안쪽으로 움직이자, 저 멀리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노아아아! 왕자님! 오셨소! 이까!”
“저게 반말인지 존대인지, 원…….”
“메이 사절도 안녕! 하시오!”
“베릭. 오랜만에 보는데도 오랜만 같지가 않군요.”
베릭은 두 사람과 간단히 악수한 다음,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였다. 누군갈 경계하는 것 같은데, 당최 알 수가 없다. 황궁 내부에서 이렇게 주의해야 할 자가 있단 말인가?
“1황궁으로 가기 전에, 이안이 먼저 보실?”
“이안 경을? 언질할 게 있나?”
“나는 모르죠. 이안이가 클리포포드 사절 오면 진 황태자 전하 만나기 전에 잠시 만나는 게 좋겠다, 하던데. 안 그러면 균열지 수습 자기가 못 도와준다고.”
“균열 수습을 이안 경이 안 도우면, 누가 돕는다고? 아까부터 황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베릭. 설명을 좀 간단하게 해다오.”
“에, 그러니까…….”
노아는 베릭이 엉망진창으로 하는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귀국하자마자 치러진 다몬의 심문 과정에서, 이안의 입지가 흔들릴 만한 발언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마법부는 지금 반으로 갈려있어요. 이안 파랑 반(反)이안 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던데.”
“반이안 파는 황태자 측 사람들이겠군.”
“에엥? 그게 그렇게 되나?”
“수는 얼마나 되지?”
“별로 없어요. 나랑 이안이랑 로만드로 님.”
“…음?”
어떻게 하면 반이안 파에 이안이 속한단 말인가?
“이안이 일하는 거 도와주면 반이안 파. 일하는 거 방해하고 협박하면 이안 파!”
“…앞장이나 서거라. 이안 경을 직접 만나는 게 좋겠다.”
“잠깐!”
노아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걸음을 서두르려 하자, 메이가 무엄하게 왕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장난스레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 아래 본질을 깨달은 것이었다. 어찌하여 클리포포드 쪽에 서둘러 입궁을 요청한 것인지 말이다.
“저기, 베릭. 그러면 지금 이안 경은 사임하고 균열지 복구에 참여한다는 쪽이고, 나머지는 사임과 균열지 복구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네? 그리 이해해야 하는 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