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39
제439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오랜만입니다, 왕자님. 그리고 메이 사절도요.”
이안은 홍차를 손수 내려주며 두 사람에게 앉으라 손짓했다. 진의 황태자 취임식 때문에 궁에서 며칠간 보내긴 했다만, 마법부 안쪽까지 깊이 들어온 것은 처음인 두 사람이었다.
상앗빛 건물과 금빛의 장식 무늬가 생각보다 더욱 장엄하고 높다란 위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어수선한 분위기 또한 인상 깊었지만.
“놀랐네. 내가 생각했던 황궁과는 모습이 조금 달라서.”
“저도 낯섭니다. 아마 황궁 내의 모두가 그리 여기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제가 왕자님을 직접 마중 나가고 이리 차까지 내려 대접할 수 있으니, 이는 이 나름의 운치라 보는 게 맞겠지요?”
“그렇게 볼 수 있겠나? 저 창밖의 마법사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노아는 이안이 내준 홍차를 홀짝거리며 창밖을 돌아봤다. 훤히 보이는 마법부의 뒤쪽 정원에 몇몇 마법사들이 나무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일종의 시위였는데, 그들 손에 들린 나무 팻말에 이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대외적으로 큰일도 지나갔겠다, 모두 휴가 갈 시간에 황궁을 지키고 있으니 저로서는 환영할 따름입니다.”
전쟁도 끝났겠다, 여론은 마법사들을 칭송했고, 황궁 내부에서도 마법부를 규탄할 자들이 없었다. 진 황태자가 바로 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견제를 위한 견제 따위 할 필요가 없으니, 황궁 내부에서는 마법사들의 일탈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저들 역시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여, 파업이라고 한들 제 할 일을 적당히 해내고 있었으니. 그 누구도 불만 갖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게다.
“저번에는 임금 인상에 관심 없다 하였으니, 다음 해에는 다들 협상 없이 갈 것 같습니다. 마법사 한 명에 들어가는 세금이 골치라 행정부에서 노래를 불러댔는데. 잘된 일이지요.”
“흐음.”
노아 왕자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차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절대다수가 뭉쳐서 파업을 외치고 있건만, 이안에게는 타격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굳이 보자면, ‘불편하다’ 정도?
“베릭. 오른쪽 상자에 든 것을 행정부로 넘겨다오.”
“또? 뭔 놈의 종이가 자꾸 왔다 갔다 해?”
“가면 다시 답신을 줄 것이니 바로 받아 와.”
“아아아. 오전부터 똑같은 길을 몇 번이나 오가는 건지, 원. 이러다가 황궁 길 다 외우겠다!”
“원래 그만큼 다녔으면 외우는 게 정상이다.”
“또 뭐 하면 돼? 나간 김에 일 처리 싹 하는 게 낫지!”
“음, 담요를 새것으로 갈고, 잉크통도 가득 채워둬.”
정확히는, 수발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드는 베릭이 불편해진 것이라.
메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마법사들과 이안의 업무를 방해 아닌 방해하는 것은 잘 알겠는데, 로만드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몸짓의 뜻을 알아챈 이안이 싱긋 웃었다.
“로만드로가 며칠 전에 득녀하였습니다. 휴가를 길게 보내었으니, 당분간은 궁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축하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별개로, 이안 경께서는 일 처리가 더 힘드시겠네요.”
“예. 이참에 더욱 깨달았습니다. 제 일 처리를 위해 꽤 많은 자가 애쓰고 있었다는 걸요. 마법사들이 시종들까지 모두 회유하는 바람에, 이리되었네요.”
이안이 장난스레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딸깍,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진에게 노아 왕자의 도착이 전해졌을 터. 많이 늦어지면 잡음이 들려올 수 있다. 황태자보다 먼저 손님을 보았다는 등의. 불손함을 일깨우려면 그 무슨 꼬투리를 잡지 못할까.
“황태자 전하께 인사 올리러 가셔야 하니, 본론만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황궁은 건재하고 일상의 궤를 탈 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마법부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제외하면 말이지요.”
“이안 경에게도 소란이 있었다 들었는데.”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상세한 것은 나누기 곤란하나, 저는 장관직을 내려놓고 클리포포드로 들어가 균열 조사 및 복구에 힘쓸 생각이었습니다.”
메이가 소매 속 손가락을 꽉 쥐었다. 이만큼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말이 있었던가? 다른 마법사도 아니고, 이안이 직접 클리포포드를 전면에서 돕는다니. 그것도 바리엘의 장관직을 내려놓고서 말이다.
이만하면 클리포포드 입장에서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와 같았다. 제한적으로나마 이안이 클리포포드에 묶여있을 수 있다면, 마법사 없던 지난 수십 년간의 공백을 단숨에 채울 수도 있을 게다.
“그 ‘복구에 힘쓸 생각이었다’는 표현은, 지금은 좀 문제가 생겼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이안 경.”
“네. 아쉽게도 제가 클리포포드로 들어가는 걸, 베릭 외에는 딱히 반기는 자가 없네요. 로만드로 님은 제 의견을 존중한다 전하셨지만, 아직 실제로 만나질 못해서요. 부인께서 막 출산하셨으니, 세상이 두 쪽 난다 한들 어찌 그 곁을 떠나겠습니까?”
달그락.
노아와 메이가 서로 눈빛을 나누었다. ‘혹시’가 ‘역시’가 되는 순간이다. 지금 이안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 클리포포드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는 것과 같다.
“장관직을 유지한 채로 균열 조사에 임하시는 것은요?”
“메이 사절. 의견은 감사합니다만, 불가합니다. 마법부 장관은 바리엘을 구성하는 주요 요직.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제 작은 욕심 때문에 안고 갈 수는 없지요.”
작은 욕심? 노아는 그것이 결코 작지 않으며, 욕심 또한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충수. 이안을 클리포포드로 내려오게 해야 하는 입장에서, 노아 왕자는 덧붙이는 말 하나하나를 조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이것이야말로 나라의 중대사다. 버고스와 치렀던 전쟁보다 더욱 파급력이 클, 거대한 역사의 갈림길.
“…그러면, 이안 경은 균열 조사를 진행하고 싶다는 의지이신가?”
“그렇습니다.”
“…왜?”
노아가 작게 되물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보였다. 바리엘이라는 안락한 요람 안에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평온과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축복받은 삶이 아니던가.
자국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바리엘의 장관 시각으로 보자면 말이다.
그러니 ‘왜’인지가 중요했다. 이것은 이유를 납득하려는 노아의 목적이기 이전에, 순수한 궁금증이기도 했다. 이안을 강력하게 끌어당겨, 꽉 붙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황궁과 의견 대립이 있다 한들, 이것만 알고 있으면 문제없을 터.
“책임감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책임질 것은 버고스를 국적으로 지닌 자들이지. 버고스의 마법사들을 모두 징집하여도 가이아의 연합군들은 크게 반발하지 못할 걸세. 바리엘은, 그리고 이안 경은 제 역할보다 더한 임무를 해주었는데, 어찌 책임감을 논하지? 이안 경. 미안하지만 나는 베릭이 아니야.”
베릭이 들었다면 길길이 날뛸 발언이었으나, 그는 상자를 옮기느라 문밖으로 나가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이내 얼굴을 쏙 내밀며 집무실 안을 훑어봤다.
“이안아. 나 불렀어?”
“음. 아니.”
“이상하다. 귀가 간지러운데. 할 일 더 없지? 나 진짜 행정부 간다? 갔다 와서 또 가라 하면 나 도망간다?”
“가더라도 고기는 먹고 가라. 곧 있으면 밥때다.”
“시간이 벌써 그래? 오케오케. 딱 기다려.”
쿠웅!
베릭은 상자를 한쪽 어깨에 인 채로 집무실 문을 발로 닫았다. 그가 아무런 소란 없이 사라지자, 노아는 헛기침을 큼큼, 해대며 사과했다.
“말이 지나쳤나?”
“아닙니다. 당사자는 기분 좋아 보이니, 되었지요.”
“아무튼 이안 경, 솔직히 일러주었으면 하는데. 어째서 모든 걸 내려놓고 그리하려는지. 그대는 황태자 전하가 원치 않는다 하면 하지 않을 자라. 필시 중요한 것을 품고 있는 것 같아. 그걸 알면, 내가 더욱 힘 보탤 수 있지 않겠나?”
이안은 눈을 살짝 내리깔며 웃었다. 방금의 발언은 참으로 여우 같았다. 이안이 클리포포드로 가면 제일 환영하고 기뻐할 자가, 마치 그를 돕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나? 게다가 한배를 탈 것이라 살살 꾀는 듯하여.
하나 잘 살펴보면 조심할 부분이 있었다. 이안에게 나랏일을 뒤로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곧 그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리포포드 왕가의 성정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않지만, 예외는 없다.
이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실로 책임감입니다. 그리고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위해서지요. 균열은 존재만으로도 미지의 세계이니, 마법과 마물 그리고 신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라 여깁니다.”
마주 앉아 대화하고 있거늘, 노아는 이안이 쏙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황궁이 들썩들썩하는 걸로 보아, 좀만 틈을 비집으면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노아와 메이가 다시금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사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저리 높은데. 이안은 두 사람이 아니라, 황궁 전체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잘 살펴보는 게 좋겠어. 음음. 노아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자, 이안이 말을 붙였다.
“클리포포드에서는 균열 수습이 어느 정도 되고 있습니까? 자국 내 마법사가 없는 터라, 걱정이 많습니다. 곧 있으면 두고 온 마법사들 또한 귀환하라 명할 것인데요.”
“마법사들을 비롯하여, 도와주는 이가 많아 진실로 감사하고 있소. 하지만 별개로 균열로 인한 피해가 잡히고 있지는 않지. 한번 깨진 그릇은 이어 붙여도 금이 남는 것처럼, 죽어버린 대지는 살아나지 않으니까.”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제가 가서 도움을 드리면 좋으련만, 혹 현 클리포포드의 상황에 짐만 될까 봐 우려되는 면도 있습니다. 제가 장관직을 사임하면, 마법부 측의 새로운 장관이 균열 수습에 대한 새 안건을 내놓을 것인데, 현장에서 이전 장관과 현 장관의 세력이 한데 어울려 힘을 낼지 모르겠어요.”
이안은 은근히 노아를 떠보았다. 근거 있는 자기 비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으니까. 간단히 되물어 ‘가지 말까?’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결과는 빤했다. 단번에 입을 합 다문 노아의 표정만 봐도.
“아니. 마법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건 당연한 소리 아닌가?”
“그렇겠지요? 하면, 노아 왕자님. 이르신 대로 저를 좀 도와주시면 되겠습니다.”
여우인 것 잘 알고 있으니, 여우 같은 화술을 구사하지 말라는 작은 경고였다. 주도권 따위를 잡기 위해서 말이다.
“진 전하께서는 필시 클리포포드에 저의 입국을 불허해달라 이르실 것입니다. 명령에 가깝다고 봐도 되겠지요. 아니면 아예 그쪽 영지의 관할을 바리엘로 일정 기간 위임해, 균열 조사에 대한 권한을 바리엘로 가져오려 하실 것입니다.”
“그대의 사임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이득 중, 그것이 포함되어 있을 뿐.”
“…클리포포드는 곤란해. 황궁 내에 부는 바람을 맞기에, 우리는 너무 지쳤어.”
“하여, 이리 먼저 뵙자고 한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클리포포드는 그 권한을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왕께서 오고 계시지요? 왕께서는 마법부와 함께 계약 마법을 맺으셨어요.”
노아가 짜증스럽게 귀 끝을 간질였다. 고뇌와 스트레스 따위로 저주 발현이 성큼 앞당겨졌으나, 그걸 알아채지는 못했다. 아직 어떠한 증상도 없었기에. 이안만이 노아의 습관 같은 손짓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왕실은 바리엘 외 저에게도 빚이 하나 있으시지요?”
이안의 말을 듣자마자, 노아는 소파 뒤로 고개를 젖히며 한숨 쉬었다. 이놈의 바리엘. 어찌 황궁에 들어오기만 하면 좌우에서 이리 탈탈 털어댄단 말인가.
“뭐, 또, 뭐? 뭐뭐?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겐가?”
노아가 울분에 차 소리치자, 문이 벌컥 열렸다.
끼이익! 콰앙!
“손님이 안 오시어 내 이리 직접 왔소.”
“진 전하.”
“오랜만이네, 노아 왕자.”
시아오시와 시종들을 이끈 채로 행차한 진. 진은 팔짱을 꽉 끼고서 집무실 안을 세모눈으로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