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41
제441화. 루스웨나의 마법사들
“살벌하네.”
노아는 셔츠를 갈아입으며 중얼거렸다. 회의는 일단락되었지만, 진과 이안 사이에서 느꼈던 낯선 기류 탓에 온몸이 빳빳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여실히 체감한 것이라.
노아가 피곤하다는 듯 소파에 드러눕자, 메이가 그 뒷정리를 하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장관이 저리 사임하겠다 버티고 황태자는 적극적으로 말리다니, 흔한 일은 아니지요. 물론 저라도 진 황태자처럼 했을 터지만요.”
“하지만 결국에는 시간문제. 본인의 의지가 저리 확고하니 진 황태자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을 게다.”
“흐음.”
메이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언행을 삼갔다. 사실 황태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방법은 많았으니까. 그것이 이안에게는 불행을, 클리포포드에는 불운을 가져오기에 언급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안 경이 자진 사임할 정도의 문제라면, 황실에서 되려 그걸 이용해 꼬투리 잡으면 되지 않나? 질책하여 장관직에서 파면 후, 평민 이하로 강등. 그리하면 이안 경에 대한 구속력을 쉬이 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도덕적이라 한들,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 앞에서는 통하지 않을 말이었다. 이 세계는 이미 많은 부분 그런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노아와 메이는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메이가 옷가지를 바로 개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똑똑.
“실례합니다. 왕자님?”
“들라. 무슨 일이지?”
바리엘의 시종이 문밖에서 나지막하게 일렀다. 노아와 메이의 방문 외, 다른 손님들이 황궁에 당도한 것이었다.
“루스웨나 측에서도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루스웨나? 예상보다 조금 이른데. 피해자인 척, 상황 모면할 생각에 정신이 없나 보군.”
버고스만큼은 아니지만, 루스웨나 역시 이번 전쟁을 통하여 완벽하게 클리포포드와 적대 관계에 접어들었다. 그 잘나신 에리포니 왕을 직접 보겠노라고 노아가 몸을 일으켰지만, 시종은 고개를 조아렸다.
“루스웨나 왕께서는 현재 오는 중이고, 마법사들이 먼저 입궁하였습니다.”
“마법사들?”
노아가 멈칫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루스웨나의 어린 마법사, 자이라를 비롯하여 인상 깊은 자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법사들은 왕보다 먼저 왔을까? 클리포포드처럼 균열이 실시간으로 번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급하지 않을 터인데.
“혹시 지금 전언하는 것, 이안 경이 직접 명했나?”
“그렇습니다.”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단체로 망명한 것이다.
마법부는 이것을 대외에 공식적으로 알려, 현 마법부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현재 황궁에서 파업하는 마법사들 외 새로운 인력이 도착하였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도. 그리고 클리포포드에는 루스웨나에서 저만큼의 마법사가 빠졌으니 잘 생각해보라는 전언이었다.
진이 제안하는 마법 지원은 쓸모가 없을 것이며, 자신을 돕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재난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얼마나 망명했다고 하던가?”
“인원수는 정확히 일러주지 않으셨지만, 황궁 안으로 마차가 열두 대 들어왔습니다. 거대한 짐마차는 따로 다섯 대고요.”
루스웨나 측 마법사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실로 대부분이 바리엘로 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타국 마법사는 버고스 측이나 북쪽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거, 원.”
이안이 클리포포드로 들어오려면, 진 황태자의 분노를 클리포포드가 감수하거나 적어도 시선을 잡아채어 입국에 문제가 없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중앙으로 들어오시면, 진 황태자와의 계약이 진행된다. 그러면 필시 이안 경의 도움을 받아낼 수 없게 돼. 메이. 이런 경우에는 어쩌면 좋지?”
“잠시만요. 흐음.”
메이는 턱을 손끝으로 괸 채 침실을 어슬렁거리며 고민했다. 명분. 지금 이안 경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 아닐까? 클리포포드만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명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임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클리포포드 사절인 두 사람에게 알릴 리 없다.
“이안 경이 직접 전언하기 힘든 방법이라 그런 것이겠죠? 아니었으면 아까 홍차를 마셨을 때 직접적으로 요청을 해왔을 것입니다.”
“본인 입으로 먼저 언급하기 꺼려지는 사안이겠지.”
“혹은 훗날 곤란해질 것을 우려하여 자제하거나요. 어쨌거나, 이안 경이 클리포포드와의 관계에 있어 우위를 점하려는 것은 맞아 보입니다. 지금 도움이 절실한 건, 저희니까요.”
“뭘 어떻게 하면 데리고 올 수 있으려나.”
“음…….”
톡톡.
메이가 소파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가볍게 긁는 순간이었다. 노아 왕자의 머리에서 오른쪽 귀가 뽕, 하고 솟아올랐다.
“왕자님.”
“응?”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는 턱 끝을 매만지며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도 슬며시 올라오는 여우 귀.
메이가 자신의 이마를 거칠게 탁, 치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 쉬었다. 제정신 멀쩡할 때도 어려운 황궁인데, 저주가 발현하면 답도 없다.
“메이. 왜 그래?”
“아.”
노아가 귀를 팔랑팔랑 흔들자, 메이는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 * *
한편, 그 시각.
루스웨나에서 망명한 마법사들은 정문 안쪽, 검문실로 들어서서 황궁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버고스 측에 서서, 바리엘과 클리포포드에 공격을 퍼부었던 입장 아닌가. 종전 협의를 빌미로 루스웨나에서 보낸 첩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상 황궁의 대부분이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끼이익.
“이상 없습니다.”
“다음, 두 번째 마차. 바퀴 안쪽까지 다 손 넣어서 확인해봐. 말들은 반대쪽으로 옮겨놓고.”
“여기 판자를 떼어낼 필요가 있겠는데요. 장비 좀 넘겨주십시오!”
“이거! 이걸 써! 를프사(社)에서 만든 마차는 의자 아래에도 공간이 있다. 꼼꼼하게 확인하도록! 손이 닿지 않으면 바퀴 아래로 누워 들어가 밑을 두드려보면 된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마법사님들은 이쪽으로 일렬로 서주십시오. 각자 루스웨나에서 가져온 신분증을 꺼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신분증이 없으면요?”
“없어요? 아, 그러면 마법사님들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시겠어요? 어차피 마력이 신분증 아니겠습니까? 자, 팔 높이 들어주십시오. 수색이 있겠습니다. 짐은 모두 내어주셨지요? 혹여 나중에 발견되는 것이 있으면 실수 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황실에 보고됩니다.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예.”
경비병들은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밀수한 것이 있는지, 혹은 바리엘 황궁에 위협될 만한 수상한 낌새가 있는지 따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마법사들 또한 예상했는지, 모두 거리낌 없이 웃옷을 벗으며 병사들에게 협조했다.
끼이익.
“날이 아무리 따뜻하다 한들, 다들 너무 가볍게 입은 것 아닌가?”
“이안 님. 오셨습니까?”
“어어어! 꼬맹이! 오랜만이다!”
그때, 검문실로 모습을 보이는 이안. 베릭이 그 옆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자이라는 무덤덤한 낯으로 들고 있던 옷을 다시 걸쳐 입었다.
“왔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길이 험하지는 않았니?”
이안은 마법사들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이안과 눈이 마주치는 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며 경의의 뜻을 보였다. 자이라의 말이 맞았다.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는 그들의 귀환을 호의적으로 반기고 있었다.
“조금요. 워낙 머니까.”
마법사들은 희미하게 웃으며 함께 온 제 가족들의 손을 붙잡았다.
매일 순간순간이 참으로 고단했었다. 왕궁에 잡혀있는 가족들을 모두 구해냄과 동시에, 보금자리인 마법사의 숲에서 필요 자료를 옮겨야 했고, 더하여 추격하듯 쫓는 루스웨나 병사들을 따돌려야 했으니.
그들은 각자 세 갈래로 흩어져 루스웨나 대지를 가로질렀고, 이렇게 바리엘로 넘어온 다음 마력석까지 조금 팔고 나서야 마차와 말을 구할 수 있었다.
너저분해진 옷과 차마 다듬지 못한 머리와 피부 그리고 피곤에 절어있는 눈가를 통해, 그 고된 일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알겠다. 마법사들은 이쪽으로, 일반인들은 저쪽으로 서거라. 헤어지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라. 다들 힘든 길을 왔으니 서둘러 일정을 마무리하고 여독을 푸는 게 좋겠다.”
이안은 그리 말하며 베릭에게 고갯짓했다. 그러고 보니, 베릭은 고풍스러운 나무 함을 들고 있었다. 그 뚜껑을 열자,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마력봉인석이다. 마법부는 마법사들의 귀환을 거리낌 없이 환영하지만, 황궁에는 그대들이 마법사라는 것 이전에 루스웨나 출신이라는 걸 먼저 보는 자들이 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니, 쓰지 않는 손목에 착용하라.”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괜찮을까 싶지만, 어쩌겠나. 방도가 없는 것을.
“조사가 끝나고, 그대들이 진정으로 바리엘에 귀화하고자 하는 게 증명되면 풀어줄 것이다.”
“그러면 얼마 안 걸리겠네요. 에리포니 왕이 황궁으로 오고 있거든요. 우리와 마주쳤을 때 그 반응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왜, 왕궁의 반이라도 날렸니?”
“반까지는 아니고.”
이는 반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날려먹고 왔다는 말이 된다. 베릭은 휘파람을 불며 아이에게 마력봉인석 족쇄를 건네줬다.
“쪼깐한 게, 저번부터 아주 화끈하네?”
“뭐. 어쩌라고.”
“…쪼깐한 게. 그래. 맵다, 매워.”
찰칵.
자이라는 망설임 없이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생각보다 가볍고 움직일 만한지, 아이는 손을 휘휘 내둘러보기까지 했다.
“그래서, 자이라. 여기 있는 자들이 모두 너의 식구니?”
“예. 식구이자, 가족입니다.”
“…그렇구나.”
이안은 그들을 다시금 둘러보며 흰 미소를 지었다.
영민한 아이라도 아이는 아이인 것인가? 아니면 루스웨나 마법사들은 이안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유대로 뭉쳐진 것인가? 저 속에 딴마음 품은 자가 없는지 가려내고 싶었지만, 당장 초면인지라 정보가 너무 없었다. 시간을 좀 두고 확인하는 수밖에.
무엇보다 곧 있으면 에리포니 왕이 당도한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것이라.
우당탕탕!
콰아앙! 콰직!
자이라는 갑자기 들리는 굉음에 몸을 움찔거리며 뒤돌았다.
검문실의 작은 창문으로 옹기종기 보이는 사람의 머리통. 모두 붉은 머리띠을 매고 있었다.
“봐봐. 진짜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왔어?”
“어어. 맞네. 저 꼬마. 눈에 익다.”
“아이씨! 왜 하필이면 지금 온대? 돌아버리겠네.”
“그러지 말고, 저쪽 애들도 살살 꾀어볼까?”
“그게 되겠어? 파업이 무슨, 저기 앞에 장 보러 가는 거냐? 망명 신청하자마자 하게? 여기서 정착하려면 이안 님 도움 필수인데, 그러면 반이안 파로 들어가겠네. 몇 명이지? 하나, 둘, 셋…….”
“X 됐다. 많다.”
저들은 자신들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이라가 건조하게 고갯짓하며 물었다.
“뭐예요? 저 바보들은?”
“보다시피, 바리엘의 마법사.”
“왜 머리에 저런 걸 두르고 있는데요? 단체로 이마가 깨졌나?”
“내 사임을 막기 위해 파업하는 중이라더구나. 믿기지 않게.”
“사임이요? 이안 님이?”
자이라의 눈이 확 커졌다. 이안만 믿고 바리엘로 넘어왔는데, 사임이라니? 적어도 그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때까지는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루스웨나 마법사들이 술렁거리자, 이안이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그대들에게 불이익이 갈 부분은 아니네. 내가 아니어도, 바리엘에 있어 마법사들은 언제나 환영받는 존재니까. 지금은 시기가 안 좋을 뿐, 걱정할 것 하나 없네. 그리고 자이라.”
아이가 이안을 올려다보자, 이안은 허리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너에게 논의할 것이 있단다. 심연에 대한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