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49
제449화. 구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
순간 이안과 진이 멈칫거렸다.
클리포포드 왕실에 깃든 저주라 하면, 수인화를 말하는 것일 터인데. 이미 그것은 균열 전부터 내려온 것 아니던가? 그것도 왕실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저주라 하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클리포포드의 왕이시여.”
“저, 저주를 지닌 자가 황궁에 들어서도 되는 것입니까? 혹여 황실로 옮겨가면 어찌하려구요?”
“전염성이 없는 것이겠지요. 왕실에 저주가 깃들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에 국한된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그걸 어찌 압니까? 균열이 열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참나, 이거 회의 첫날부터 아주 시끌벅적하구만. 버고스는 버고스대로, 클리포포드는 클리포포드대로! 이거 완전 바리엘을 물로 보는 처사 아닙니까? 여기가 시장 골목 흥정하는 자리도 아니고, 왜 이리 이렇게 잡음이 많아요?”
“어허, 언성을 낮추십시오. 전하께서 자리하고 계십니다.”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답답해서! 에효!”
“클리포포드의 왕이시여, 물음에 답해주십시오. 어떠한 저주를 말씀하십니까? 혹여, 황실에 해될 만한 사안은 아니겠지요? 그리하면 곤란합니다.”
표현은 정중했지만, 버고스로 갈 병력이 반으로 나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클리포포드 왕은 발언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무거운 입을 뗐다.
“전하께 아뢰옵니다. 황실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클리포포드에는 큰 문제입니다. 모두 함께 뭉쳐 나아감에도 모자란 시간이건만, 주축이 될 왕실에 재앙이 덮쳤으니, 이 통탄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르시오.”
“제게는 많은 자식이 있습니다. 모두가 왕비에게서 난 적자(嫡子)이며, 제일 어린 것은 이제 갓 걸음마를 떼었지요. 균열이 일고 나서, 왕궁의 모두가 억겁의 세월 동안 터전으로 삼았던 곳을 버리고 떠나왔습니다. 그러자, 문제가 생기더이다.”
진이 팔짱을 끼며 흥미롭게 클리포포드 왕을 주시했다. 지금 저자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감이 온다는 표정이었다.
가만 듣고 있던 베릭 역시 마찬가지. 맨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싶다가, 곰곰이 머리를 굴려 답을 찾아냈다. 아하! 귀 뽕, 꼬리 뽕?
“수인화(獸人化)입니다.”
“수인화? 우리가 아는 그 수인화 말인가?”
“제가 방금 제대로 들었습니까? 짐승의 형태를 하는 그것이요? 클리포포드 왕실 사람들이?”
“아니요, 정확히는 아직 제일 어린 막내에게서만 발현하였습니다. 생존이 힘든 존재라 최대한 보호하였으나, 운명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클리포포드 왕가의 제일 어린 자식에게 수인화의 저주가 깃들었다!
이에 진과 이안이 시선을 잠시 맞췄다. 사실 저것은 왕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저주였으나, 그것은 꼭꼭 숨긴 채 일부분만 밝힌 것이다.
‘왕궁 밖으로 나오니 저주를 조절하기 어려운가?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없는 막내를 제물 삼아, 미리 그림을 그려두려는 게다.’
혹여 국민에게 왕실의 저주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균열 탓이요, 나아가 버고스의 탓이라 돌릴 수 있다. 강한 증오는 나라를 재건하고 굳게 뭉치는 데 더욱 큰 도움 줄 터이니, 언젠가 들통날 사안을 미리 풀어헤치며 자신들의 입지에 유리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여 청하건대, 이안 장관을 클리포포드 조사단으로 차출하여 주십시오. 마법부 장관은 제국에서도 제일가는 마법사라, 저주의 실마리를 푸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안을 클리포포드로 공식 초청하는 것이 그들의 진짜 의도였다.
이런 대외적인 자리에서 수인화라는 저주를 일부 밝혔다. 이는 왕실 차원에서 홀로 해결할 수 없고, 심히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인정한 것이니. 마법부 장관이 직접 방문하여 저주를 확인해봄직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는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라. 균열이 잡히지 않으면 어차피 왕가는 그대로 소멸되는 수순이었다. 막내를 내어주고서라도 이안을 조사단에 포함시키려는 강한 의지였다.
“저주가 어찌 마법과 관련이 있어?”
“그야 ‘균열로 인한’ 저주이니, 이는 마력으로 인한 저주. 마법부 장관이라면 필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걸어봅니다.”
“클리포포드의 왕이시여. 지금-”
“송구하오나, 전하. 지금 클리포포드는 바리엘의 도움 하나하나에 답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안 경을 포함하여 마법사들의 조사, 그리고 재건에 대한 지원을 허락해 주신다면, 클리포포드가 버고스와 루스웨나 측에서 받아낼 피해 배상금 전부에 대한 권한을 바리엘로 넘겨드리겠나이다.”
클리포포드 왕은 무엄하게 진의 말을 끊어내며 일렀다. 이미 바리엘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클리포포드의 권한을 흡수하여, 루스웨나와 버고스를 지배하고자 하는 바리엘의 의도를.
바리엘 관료들이 서류로 입가를 가린 채 저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클리포포드 왕이 먼저 저리 언급하였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게 넘어갑니다.”
“재건에 대한 지원이란 건, 대금을 미리 내어달라는 뜻이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마법부가 끼어있긴 하지만, 이것도 어차피 저희 측에서는 예상한 바라.”
“저쪽에서도 나쁠 것 없고, 우리 쪽에서도 나쁠 것 없습니다. 바리엘이 권한을 통합한다 마음먹었으니, 클리포포드는 어찌하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괜히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의결 내리는 게 좋겠습니다. 루스웨나와 버고스의 지도자들이 모인 지금이 적기입니다. 그리고 뭐, 그 뭐더라?”
“러더포드.”
“예예. 러더포드. 뭔지 모르겠지만, 그 장사치가 개입하기 전에 일부 선에서 정리를 해두는 게 옳습니다.”
“러더포드랑 이안 경이랑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정리가 되겠습니까?”
“그럴수록 더더욱 정리해야지요. 내란과 얽혀있는 자를 이안 경이 따른다 하면, 황궁에 남아있게 할 수 없습니다.”
“이안 경이 그자를 따르는 건지, 아니면 그자가 이안 경을 따르는 건지…….”
“상식적으로, 대제국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주인이 일개 상단주라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러더포드가 이안 경의 수하라 여기는 게 자연스럽지요.”
“잠깐만. 발언을 조심합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요?”
내란, 전쟁, 그리고 마법부의 존속. 모든 위기에 이안이 개입하여 주도하였다는 뜻이 된다. 실언한 관료는 자신의 잘못을 금방 깨닫고 입을 톡톡 쳐 보였다.
“전하.”
옆에서 관료들의 의견을 모아 듣던 수상이 진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안의 클리포포드행은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가고 싶어 하고, 그 틈에 클리포포드는 바리엘에 성의를 표하겠다 하였으며, 무엇보다 진 전하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이안과 한 걸음 떨어져 정세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이안이 정녕 황가와 연관된 게 맞는지. 그리고 러더포드와의 관계는 어찌 된 것인지 등등 말이다.
모두 버고스 측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게 좀 걸리지만, 바리엘의 유일 황태자로서 잡음이 나는 쪽은 밟고 가는 게 맞았다. 진이 꺾이면, 바리엘의 황실 정통성이 꺾이는 것이니.
“우선 클리포포드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바리엘을 위하여 말입니다. 이안 경이 클리포포드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문서로써 명시하면 될 일. 마법부 저자들도 파업이니 뭐니 하며 나름 소란을 피웠지만, 보십시오. 하나 달라진 것 없지 않습니까?”
수상이 진을 설득하는 사이, 루스웨나 측도 바빠졌다. 전쟁 배상금에 대한 구상권(求償權)이 바리엘로 넘어가면, 합의점을 찾기 더더욱 어려워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 쓰러져가는 클리포포드에게 재촉받는 것과, 가이아의 중심인 바리엘에게 재촉받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클리포포드와 바리엘이 구상권을 주고받으려 하는데, 우리로는 방법이 없나? 엘더트.”
“수인화 저주를 기점으로 전개된 대화이니, 그걸 저희 쪽에서 지원하겠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무마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시다시피, 루스웨나의 마법사들은 모두 내란을 일으키고 바리엘로 도피한 상태이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막막해진 에리포니는 문틈으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조국에서 군림하던 왕궁 사람들이 어쩌고 있는지 궁금하여 찾아온 자이라였다.
에리포니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아주 천천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저-!”
살다 살다 처음이다. 저렇게 저속하고 노골적인 모욕을 받은 것이. 에리포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회의장 모두의 시선을 받아냈다. 자이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세를 바로 하여 말똥말똥한 눈빛만 빛내고 있었다.
“루스웨나의 에리포니 왕. 문제 있소?”
“…아닙니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는 중요 결정을 앞둔 상태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괜한 소란은 거절한다는 듯, 수상이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엘더트.”
“예. 전하.”
에리포니는 울컥울컥 치솟는 분노를 한숨으로 짓이겼다. 그리고 이내 눈빛으로 엘더트에게 버고스 측을 가리켰다.
버고스와 루스웨나. 두 나라는 바리엘로 구상권이 넘어가면 곤란한 처지가 된다. 특히나 버고스는 러더포드를 빌미로 군사적·경제적 제재와 압박을 더욱 심하게 받을 터였다.
“버고스 측에서 나름 다몬 왕의 처형을 피하려고 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 그건 불가능하다. 왕이 죽으면 공백이 생겨. 바리엘이 버고스를 집어삼키는 데 아주 적기란 말이지.”
“동의합니다. 전하.”
“저 사절단들도 지금 저들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음을 알 것이다.”
엘더트는 에리포니가 하는 말뜻을 이해했다. 진과 이안을 죽이는 데 있어, 버고스만큼이나 적합한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둘을 죽이지 않으면 버고스가 지도에서 지워질 판이니, 목숨 내놓고 암살을 감행할 명분은 충분했다.
“이미 저들도 그리하려고 마음먹었을지도.”
그렇다면 루스웨나가 아주 작은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에리포니의 의중을 알아챈 엘더트가 뒤쪽의 사절단에게 눈짓했다. 왕과 보좌관의 움직임은 모두의 시야에 들어오지만, 뒤에 선 사절단들은 워낙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터라 비교적 자유로웠다.
스윽.
루스웨나 사절단 중 한 명이 은밀히 움직여 버고스 쪽으로 접근했다.
“이보시오.”
“…….”
“구상권이 바리엘로 넘어가면 그쪽이나 우리나 곤란해지는데. 어찌, 생각해 둔 바가 있소?”
“…….”
하지만 버고스 측 사절단은 힐끗 쳐다만 볼 뿐 아무 답도 없었다. 루스웨나 사절단이 재차 속삭였다.
“우선 잠시 휴정을 신청하고, 그쪽 대표와 에리포니 전하가 접선하여 돌파구를 도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전쟁에서는 조금 삐거덕거림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동맹을 맺었던 사이지 않소. 적의 적은 아군이라. 구상권 넘어가는 것만 좀 저지해봅시다.”
“전달은 하겠습니다만, 기대하진 마십시오.”
“기대하지 말라니?”
버고스 사절은 입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복화술 부리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다몬 왕의 처형식을 미루러 온 것이지, 버고스를 구원하고자 온 게 아니오. 가망이 없어.”
이게 뭔…….
루스웨나 사절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의중을 헤아리고자 하였지만, 버고스 측 사절이 등을 돌려버리는 바람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전언을 마친 사절이 제자리로 복귀해 이를 보고했고, 엘더트가 왕에게 전달했다. 이를 전해 들은 에리포니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은 채 손을 들어 보였다.
스윽.
“루스웨나의 왕이시여. 무슨 일이라도?”
“…바리엘과 클리포포드 간의 이견 조율이 길어지니, 루스웨나는 잠시 휴정하여 서류를 검토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구상권이 넘어가면, 저희 측도 입장이 달라져서요.”
“그대들이 전쟁에 있어서 배상할 절댓값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의견은 받아들이지요.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삼십 분 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타앙! 탕탕!
수상은 봉을 내려친 다음, 아예 진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무언가를 간절히 호소했고, 관료들은 이리저리 얽힌 채 서류를 주고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에리포니. 이안은 회의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내, 자이라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인다.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