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60
제460화. 러더포드
“돌아갈 수는 있는 건가요?”
멜라니아가 손끝을 걱정스레 매만지며 뒤돌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금화와 각종 보석. 그리고 그 사이사이, 차마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역사의 귀중품들로 가득한 이곳.
멜라니아는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드넓은 대지 위에 서서 몸을 내던졌더니, 황궁의 창고 안이라.
사실 바깥을 보기 전까지는 이곳이 황궁인지 아닌지 속단할 수 없었다. 상대는 러더포드가 아닌가? 다만, 이쪽으로 넘어오자마자 만난 자가 주황빛 눈동자를 가진 마법사란 것이 어느 정도 증표가 되어 주었다.
“영애.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 걱정되는 마음은 아는데,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네요. 손끝이 비어있으면 여기 바닥에 뒹구는 금화라도 줍든가요.”
대지와 달이 그려진 거대한 그림. 그리고 그 가운데 상처가 난 것처럼 짙게 그어진 붉은 선.
러더포드의 마법사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멜라니아에게 한 소리 해댔다. 자신들의 동료들은 도착하여 황궁 곳곳으로 뻗어갔는데,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를 영애 하나가 부산스럽게 굴어대니. 신경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으윽…….”
“야, 야야. 일어나 봐.”
“미치겠네. 대체 뭘 처바른 건데!”
러더포드의 마법사는 아코렐라의 머리통을 잘근잘근 밟아가며 윽박질러댔다.
무려 마력석으로 만든 그림이다. 어지간한 오염으로는 그 기능에 문제가 없으나, 이 황실 마법사가 그어놓은 것은 단순한 물감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 마력석 간의 오류를 일으켜, 돌아갈 통로가 제대로 열리지 않게 되어버린 거다.
한 마법사가 아코렐라의 머리채를 단숨에 붙잡아 홱 뒤로 젖혔다.
“입 열지 않으면 저기 나뒹굴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겠어.”
“아…….”
마법사가 가리킨 것은 시종장이었다. 아코렐라를 안내하여 안으로 들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깔끔하게 절단된 목의 단면에서 피가 끝없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는 경비 셋이, 그리고 또 그 옆에는 물건을 옮기던 시종 다섯이. 어둠 속에서도 시체의 형태는 확연했다. 아코렐라는 흐릿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더니, 이내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히, 히히, 히…….”
“웃어?”
“아, 씨바. 내가 뭘 처발랐는지도 모르는 X밥 새끼들이, 머릿수로 처바르니까 좋냐?”
“이게 돌았나!?”
“네들만 친구 있어? 나도 친구 있다. 시발거…….”
“제대로 미쳤네. 미쳤어.”
“카틀로이느 40그램, 루론 25그램, 타피아로그 120그램, 달론 70그램…….”
“뭐?”
마법사는 시끄럽다는 듯 아코렐라의 목덜미를 발로 지그시 눌렀다. 피가 몰리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아코렐라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봐봐. 커헉, 알, 알려줘도 못 알아 처, 처먹잖아.”
“이거 죽일까요? 어차피 황궁 마법사 수, 줄여놓기는 해야 하잖습니까.”
마법사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며 러더포드에게 물었다. 하나 러더포드는 소란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천천히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황실의 보물을 살펴볼 뿐이다. 세월의 흔적이 깊은 것일수록 그의 눈빛을 오래 받아냈다. 러더포드는 휙 뒤돌며 방긋 웃었다.
“아니. 되었다. 문은 너희가 연다. 애들 돌아오기 전까지 해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너희가 죽어.”
목숨을 담보로 허튼 말 하는 주인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거대한 액자에 매달려 통로를 열기 위해 집중했다.
그 틈을 타서 엉금엉금, 문쪽으로 걸어가는 아코렐라. 서둘러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했다. 회의장에서 떠들던 그 이름, 러더포드가 황실에 침입했노라고. 하여 황실의 사람들을 해치고, 버고스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황궁 곳곳에 그림자처럼 숨어들었노라고…….
“으윽…….”
“마법사. 보니까 눈에 빛이 있어.”
“이거 놔-!”
“칭찬해. 그런데 가만히 좀 있을까?”
우드드득!
“아아아악!”
러더포드는 기어가던 아코렐라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는 조심스럽게 그 발목을 그러쥐었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꺾어버리는 관절.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아코렐라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러더포드 님. 찾았습니다.”
“응. 그래.”
뒤에서 저를 부르는 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쪽 발목 역시 부러졌을 텐데, 생각하며, 러더포드는 부하의 안내에 따라 전시실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허리까지 오는 장식장에 일렬로 놓여있는 색색의 브로치들. 러더포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웃었다.
“흐음. 생각보다 더 많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중앙 일곱 귀족 숙청 이후 물갈이가 한번 되었다고 하더니, 다들 황실 뒤꿈치라도 핥으려 난리였나 봅니다.”
“좋아. 모두 챙겨라. 바리엘의 귀족 나으리들께서 어찌 나올지, 한번 보자고.”
바로 황실에 충성을 맹세했던 바리엘 귀족들의 인장이었다. 인장을 맡긴다는 것은 가문의 모든 걸 내어주었다는 뜻. 충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인데, 그 행위의 증표가 분실되었다면 귀족들이 무엇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찌 행동할지 궁금했다.
“러더포드 님. 금화는 모두 묶었습니다. 통로 열리면 바로 옮길 수 있게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곧 있으면 황궁도 사태를 알아차릴 것 같은데, 저희도 합류할까요?”
부하의 제안에 러더포드가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딸깍딸깍, 시간은 계속 가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 탓에 곤란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딱 두 시간. 두 시간 안에 황궁 창고를 모두 털어버리고, 바니아를 비롯하여 버고스 사절단과 다몬을 데려와야 하는데 말이다.
“아하, 이거 정말 머리 아프네.”
“황궁 밖으로 나갈 다른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러더포드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포탈을 열어서라도 러더포드 님의 안위에는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니…….”
“포탈이 문제가 아니다. 포탈이.”
러더포드의 마법사들이 결의를 다지며 외치자, 그는 피식 웃으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황궁을 급습한 것은 버고스 측에 효과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바리엘에서 빼돌린 자금으로 버고스를 움직인다면 한쪽에서는 손해요, 한쪽에서는 이익이 극대화되지 않겠나?
게다가 버고스 안에서 정통성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서는 다몬의 몸뚱아리가 필요했다. 살아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죽는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터.
러더포드는 검은 머리칼을 천천히 넘기며 중얼거렸다.
“언제 황궁을 탈출해 다시 그 언덕바지 쪽으로 갈 것이며, 어떻게 이만한 포탈을 당장 열 수 있겠나. 너희들이 감당할 일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이곳에 남게 될 우리 애들만 생기겠지.”
“…러더포드 님.”
부하들이 남아서 자신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었으나, 그들은 다르게 오인했는지 꽤 감동한 낯을 보였다.
한쪽 구석에서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는 멜라니아. 클라크는 시체들을 한데 모으며 정리하고 있었고, 바닥을 기는 마법사는 굴하지 않고 계속 문쪽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이게,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 건가?’
바리엘에 하이만이라는 이름을 다시 일으켜세우고 싶다는, 작지만 강한 열망이 그녀를 러더포드 앞까지 인도했다.
하지만 이건 감당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곳이 정녕 황궁이라면, 그리고 저기 기고 있는 마법사가 이안의 사람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멸문당했지만 목숨을 살려준, 이안에게 보답할 행동으로는 많은 부분이 어긋났다. 적어도, 멜라니아 자신의 방식에서는 말이다.
“하아.”
멜라니아는 머리를 쥐어 싸며 주저앉았고, 오가던 러더포드 일당들도 그런 그녀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
끼이익.
아코렐라가 손끝을 바들바들 떨며 겨우 한쪽 문을 열어젖혔다. 한 뼘 정도 열린 문틈으로 바깥의 빛이 환하게 쏟아졌다. 러더포드는 시계를 다시 허리춤에 찬 다음,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발목을 붙잡았다.
“이봐. 어딜가? 네가 일으킨 문제는 해결해줘야지.”
“아, 으, 시발…….”
“오른쪽 다리도 부러지고 싶어? 응?”
“꺼져, 꺼-”
지이잉! 지잉!
퍼어엉!
아코렐라가 반항하듯 마력을 터트렸다. 잘난 얼굴을 날려버릴 기세로, 그의 안면을 향해 그대로 쏘아 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닷속에서 터진 폭죽처럼 힘없이 사그라들었고, 일순 밝은 빛만 남긴 채 없어졌다.
아코렐라는 눈을 크게 뜬 채 러더포드를 올려다봤다. 이 느낌은…….
“러더포드 님. 자꾸 귀찮게 하는데 죽여버리죠.”
“통로 문제라도 어떻게 하고 죽인다는 말을 해야지. 응? 무책임하게 앞뒤 생각 않고 지를 생각 말고.”
“…죄송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만 잘 해내면 문제없이 돌아간다. 인지해라.”
“예. 러더포드 님.”
러더포드는 엉망이 된 아코렐라의 머리칼을 정돈해준 다음,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마법사들은 통로를 담당하고 있고, 부하들은 버고스 일원을 구출하러 갔다. 그러니, 자신 또한 할 일을 해야지.
끼이익.
이안. 이안을 데려오자. 러더포드가 그리 생각하며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
텅빈 광활한 복도. 금빛 머리칼에 금안인 소년이 홀로 서 있었다. 러더포드의 눈이 조금 커졌고, 이내 입가에 퍼지는 웃음.
“하하하.”
주인의 웃음에 부하들이 시선을 옮겼고, 그들은 이내 마주한 미소년의 정체가 무엇인지 쉬이 유추했다. 그들은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전시실 안에서 제 할 일에 몰두했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제정신이 아닌 게로다.”
서슬 퍼런 음성. 이안은 마력을 뚝뚝 흘리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닌, 바리엘의 황궁 중 최중심지에서 감히 이런 작태라. 러더포드가 신의 대리인이든 무엇이든, 갈갈이 찢어서 존엄을 지키리라.
하지만 러더포드는 그런 이안의 분노가 아무렇지 않은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올 뿐이다.
“이안. 안 그래도 데리러 가려고 했단다.”
“그 자리에서 멈춰라.”
“잘 자라주었구나. 어릴 때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멈추라고 하였다!”
「기속(羈束)」.
지이잉! 지잉!
촤아아악!
이안이 기속 마법을 펼치자, 그의 발치에서 솟아난 빛줄기가 벽과 천장을 타고 떨어졌다.
러더포드를 묶어버릴 생각으로 내려친 것이었으나, 그는 손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으로 이안의 마법을 파훼했다.
째앵!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말이다.
러더포드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무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안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아주 가까운 거리. 흑색의 러더포드 눈동자에 이안의 모습이 일렁였다.
“이안?”
“……!”
타앗!
러더포드가 이안의 턱을 손끝으로 가볍게 치켜들자, 이안은 모욕을 당했다는 듯 그를 거칠게 밀어냈다. 서자 이안과 어떠한 인연이 얽혀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이안. 주인이 왔으면 어서 오십시오, 하고 꼬리나 흔들 것이지. 어디서 눈에 독기를 품어.”
“내 주인은 바리엘이라.”
“어허. 이것 보아?”
이안이 다시금 마력을 손 가득 모아 러더포드에게 터트리려는 순간이었다.
러더포드가 짧게 명령했다.
“꿇어.”
“……!”
쿠웅!
순식간에 이안의 어깨를 짓누르는 중력. 이안은 무언가 잘못되었다 인지하기도 전에, 몸을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이안. 꿇어.”
“이…….”
쿠웅!
당황스러웠다. 마법이라 하기에는 그저 전언이었고,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저자의 말로 인해 세상이 변하는 것인가?
이안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버티자, 러더포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안, 주인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내 얼굴을 잊어버렸니?”
러더포드는 천천히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래로 힘을 주었다. 불가항력적으로 굽혀지는 무릎. 어금니를 꽉 깨문 탓에, 이안의 입가로 피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힘에 굴복하여 무릎 꿇은 이안. 러더포드는 참 잘하였다는 듯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잘했다. 아가. 앞으로도 명심하렴. 이것이 네가 나에게 취할 자세란다.”
1부,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