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62
제462화. 운명의 주인
한편, 트웰러는 부하가 건네주는 갑옷을 어깨에 걸치며 복도를 내달렸다.
갑작스러운 소집령이었으나, 전력이 모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재 외국의 사절단이 종전 협상을 위해 황궁에 들어선 상황이었으니까. 서로 간의 안전과 평화로운 대화를 위하여, 황궁 병사들은 준전시에 해당하는 무장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전시실이 총 세 곳인데, 정확한 위치는?”
“제일 큰 중앙 전시실입니다.”
“장관님! 2황궁으로 들어서는 정원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외상이 역력한지라, 침입자의 소행으로 판단됩니다!”
트웰러가 걸음을 멈췄다. 제2황궁은 소란의 근원지인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침입자가 당도했다니? 깊은 한숨과 함께, 궐련의 연기가 어지러이 흩어졌다.
“이미 그쪽까지 이동했다면, 침입 시점으로부터 꽤 시간이 지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경로도 마찬가지지요. 폭발음이 이곳에서 들린 것과 별개로, 놈들은 다른 곳을 통해 침입했을 수도 있습니다. 2황궁 정원을 중심으로, 아니 나아가 황궁 전체를 수색하심이 옳습니다.”
“로만드로의 전언에 따르면, 러더포드는 이곳에 있다. 병력을 분산시킬 수는 없어. 2황궁에는 마법부가 있으니 당직 서는 자들에게 지원을 요청-”
마법부가 거론되자, 트웰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인물. 다몬 런크비스.
“다몬 왕이 지금 마법부에 구금되어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마법부에서 심문을 담당하기에…….”
“아!”
다몬의 배후에 러더포드가 있음은 이미 종전 협상에서 밝혀진 사안이었다. 버고스의 사절단 역시 국가적인 소임을 배제하고 러더포드의 명을 받았노라 공언하지 않았나?
패전하고 왕위가 비어버린 버고스.
그리고 그곳에서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러더포드.
“…이는 다몬 왕을 탈취하기 위함이다. 서둘러 마법부에 전달하여 경계를 강화하라!”
“버고스 사절단 역시 목표일 수 있습니다.”
“다몬 왕은 마법부에 묶어두고, 버고스 사절단을 최대한 반대되는 곳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서둘러 움직여!”
타닥타닥!
장교들이 사방으로 나뉘어 달려가자, 트웰러는 현장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나섰다.
전시실로 들어서는 거대한 아치형 통로 앞. 병사들이 검을 든 채 어수선히 서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인해 곤란하다는 듯이 말이다. 트웰러가 다가가자, 그들이 난감한 투로 보고했다.
“자, 장관님!”
“진입이 불가하나?”
“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보호막인 것 같은데…….”
지이잉. 지잉.
트웰러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허공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접촉을 금하는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손바닥에 날카로운 열기를 남겼다.
마법이다. 마법사가 건물 전체에 보호막을 친 것이라. 문제는 이것이 마법부의 것인지, 아니면 러더포드 일당의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장관님. 황궁 마법사라면 병사들의 진입을 막을 리 없습니다. 이안 경이 로만드로 님을 보낸 것은 사태를 알림과 동시에 지원 요청하기 위함 아닙니까?”
“동의합니다. 제국방위부에 할당된 마력봉인석을 사용해 부수는 게 어떠신지요.”
“고립되어 이득을 보는 건 러더포드 일당입니다. 서둘러 결단을 내리심이, 안쪽 마법사들에게도 안전한 일일 것입니다.”
“이 건물을 사수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혹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이 안에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한시라도 이르게 정리해야 합니다.”
“트웰러 장관님! 결단을!”
“아니면 마력봉인석을 먼저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
모두가 한뜻으로 트웰러를 설득했다. 상황적으로 보았을 때, 황궁 병사들의 진입을 막는 건 러더포드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를 견제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중요성 또한 잘 알고 있었기에 장교들의 재촉이 유독 촉박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망나니의 외침.
“여!”
짧디짧지만, 누구의 부름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베릭 님 오셨다! 다들 여기서 왜 어기적거려?”
그 뒤로 바르사베도 보였다.
“실례합니다. 장관님. 진 전하께서 이안 경과 마법부의 안위를 심려하여 친위대원 두 명을 차출하여 보내셨습니다. 러더포드의 체포와는 무관하게, 저희는 이안 경이 무사하신지를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망아지와는 다르게, 바르사베는 아주 공손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밝혔다.
트웰러는 한 발자국 물러나며 길을 터 주었다.
“전하의 명이라면 응당.”
“감사합니다.”
“다만, 보호막이 쳐져 있어 시간이 걸릴 것이네.”
“보호막이요?”
바르사베가 소매를 걷으며 다가오자, 트웰러가 멈칫거렸다. 그렇지. 저 망아지 때문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황궁친위대는 대부분 마력을 지닌 마검사들. 범인(凡人)과 다르게, 마력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들이었다.
바르사베는 조심스럽게 보호막에 손을 올렸고,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낯선 기운입니까? 역시 러더포드 일당의 짓이지요?”
“그렇담 서둘러 파훼하심이-!”
“아니요.”
바르사베는 장교들의 말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이거, 마법부의 것입니다.”
* * *
러더포드는 고개 숙인 이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이해지는 적막.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터라, 그의 미간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어떠한 대답이라도 들려오는 게 자연스럽거늘. 이 천한 아이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이, 이안 님?”
“세상에,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미, 미친, 네놈! 이안 님에게 감히 무슨 짓을-!”
그리고 원치 않는 인기척.
러더포드는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차림새로 보아 황궁의 마법사들이다. 머리에 두른 붉은 띠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멍청해 보이는 게 참 우습다.
러더포드는 보란 듯이 손가락 끝으로 이안의 뒤통수를 토닥거렸다. 모두가 장관이라 부르며 경외하는 소년이, 그의 손아귀에선 어떤 존재인지 보라며. 그러는 동안에도 이안은 미동조차 없었다.
“바리엘의 자랑스러운 마법사들이시군.”
“무례하다! 당장 이안 님 곁에서 물러서!”
“하하하. 이안 님이라.”
“뭐, 뭘 쪼개고 지랄…….”
“그대들은 아무것도 몰라. 이안이 얼마나 더럽고, 말랐으며,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지.”
“뭐, 뭐라는-”
러더포드는 천천히 이안을 지나쳐 걸었다. 느릿한 걸음 하나하나마다 마법사들의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그’ 이안이 반항조차 못 하고 무릎 꿇었다. 마법인지 아니면 눈속임인지 파악조차 불가한 지금, 자신들이 과연 저놈을 상대할 수 있을까? 러더포드 혼자라면 또 모르겠지만, 반쯤 열린 전시실 틈으로 보이는 작당의 수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멈춰라! 움직이지 마!”
“나를 잡고자 하는 자들이, 어찌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해.”
“이안 님에게 무슨 짓을 했어? 이, 이, 개새끼야!”
“그저 오랜만에 인사를 나눈 것이다. 문제가 있나?”
이안은 자세를 낮췄고, 침묵했다. 그것이 다였다. 자신들이 이안을 경외하듯, 이안 역시 러더포드를 경외하는 것처럼 무릎 꿇었다.
그걸 깨닫자, 마법사들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저자는 이드갈을 만든 러더포드. 그리고 거기에 일조했다 고백한 이안. 잘 맞물린 톱니바퀴가 굴러가듯, 진실이 움직여 모습을 보인 것 같았다.
마법사들은 뒤로 물러서면서 이안을 부르짖었다.
“이안 님!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말씀을 못 하시겠습니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젠장! 어떻게 된 일인지 저희도 좀 압시다!”
“제발 일러주십시오, 이안 님!”
하지만 대답이 없다.
러더포드는 기다란 담뱃대를 가볍게 휘두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침묵은 용납할 수 없었으나, 상대를 내치는 이 침묵은 마음에 들어서.
“어디 보자. 마법사 수를 좀 줄여놓기는 해야 하는데. 아, 미안하지만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 모두 신의 뜻 아래 이루어질 하나의 계획이라.”
후우. 러더포드는 뿌연 연기를 뱉어내며 그리 중얼거렸다. 죽일까, 아니면 살릴까. 살릴까, 아니면 사용할까. 자신이 완벽한 포식자임을 인지한 태도다.
마법사들은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당혹스러움으로 점철되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바닥 짚은 이안의 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안 님, 손.”
손등의 뼈가 희게 튀어나올 만큼 꽉 쥔 주먹. 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늘, 한 줌의 지푸라기라도 찾는 것처럼 떨림이 절박해 보였다.
잠시 멍하니 그걸 내려다보던 마법사들은, 뒷걸음질 치는 걸 멈췄다.
투욱.
하나둘씩 로브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는 마법사들. 혹여 온몸이 불타버리더라도, 로브로 인해 자신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세상에 남아있길 바라는 의식이다. 이는 곧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이었으니.
‘몸이 이안 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다.’
‘이안 님을 도울 수 있는 건 지금 우리밖에 없어.’
‘맞설 수밖에 없다. 맞서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져.’
그것이 황궁이든, 바리엘이든, 나아가 이안이라는 존재 자체이든.
지잉!
마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마력을 발동하여 거대한 보호막으로 건물을 덮었다. 러더포드 일당을 묶어두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혹여 황궁의 누군가가 이안의 모습을 볼까 우려한 마음도 있었다.
지이잉!
찬란한 금발과 싱그러운 녹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년.
신의 힘에 가까운 자들 중 누구보다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자.
여섯 번째 감각으로 이어져 있는 자신들의 길잡이.
지이이잉!
촤아악!
그런 이안이 무릎 꿇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바리엘밖에 없다.
마법사들로 인해 뻗어나간 힘이 순식간에 사위를 가득 채웠다. 그걸 흥미롭게 지켜보는 러더포드. 이런 것 또한 예상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부질없는데.”
그들의 비밀 통로는 그림이었으니, 건물을 봉쇄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가 담뱃대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신의 뜻 아래 이루어질 하나의 계획이라고, 말했잖아.”
타앗!
잿가루가 날리자, 그림자처럼 숨어있던 자들이 러더포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끝에서 일렁이는 푸른빛. 마법사다.
황궁의 마법사와 러더포드의 마법사가 정면으로 대치한 채 서로를 경계했다.
“…이곳은 황궁. 순순히 투항하라. 들어올 때는 운이 좋았지만, 나갈 때는 마음처럼 되지 않을 게다.”
“운? 그렇게 작고 희미한 것에 기댄 적 없다. 여기까지 온 건, 온전한 우리의 의지 덕분이니.”
“이드갈을 제조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
“마법사의 목숨 줄을 저자에게 쥐여준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러더포드를 지원하는가?”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 거지?”
러더포드의 마법사들이 자세를 낮췄다.
“신의 뜻 아래.”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푸른빛.
그에 대항하여 황궁 마법사들 역시 노란빛을 깊게 그려냈다. 서로의 숨통을 노리는 시선들이 첨예하게 맞물리는 순간.
“…그만.”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지만 그 누구도 흘려보낼 수 없는 울림. 이안이었다.
러더포드를 포함하여, 그 자리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벽을 짚은 채로 비틀거리며 서 있는 아이. 금빛 머리칼이 축 늘어져 있는 탓에 얼굴이 보이진 않았다.
“이안 님! 괜찮으세요?”
“정신이 좀 드십니까?”
“……!”
기뻐하는 마법사들과 달리, 러더포드는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이다. 어째서 서 있을 수 있지? 자신이 명령하지 않았는데? 러더포드는 몸을 아예 돌려 이안 쪽으로 걸어갔다.
“이안. 대장 놀음이 꽤나 재밌었나 보구나.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움직이다니.”
“…지?”
“뭐?”
이안이 숨을 헐떡이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터라, 러더포드는 친히 상체를 기울여주었다.
그러자, 반쯤 벌어진 그의 옷깃을 확 잡아끄는 이안.
꽈악.
“……!”
“신의 뜻 아래, 이루어질 하나의 계획?”
이안의 입가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악을 쓴 탓에 입 안쪽이 터진 탓이었다.
“궁금하네. 그 계획에 이런 것도 있었는지.”
지이이잉! 지잉!
이안의 머리칼 틈으로 보이던 녹안이 순식간에 금안으로 물들었다. 찰나의 순간, 너무 가까이 붙었다는 걸 인지한 러더포드가 물러서려 했으나 이안의 손아귀를 뿌리칠 순 없었다.
“있었다면, 그 운명의 주인은 나인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