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66
제466화. 그림을 사이에 두고
제2황궁, 마법부에 남아있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멈칫거렸다. 여섯 번째 감각으로 이어져 있는 자들이라, 황궁 어디선가 일어나는 폭풍의 소용돌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마법사들은 천천히 펜을 내려놓았고, 불만스레 헤일을 돌아봤다.
“대장.”
러더포드가 황궁에 침입했다. 이드갈을 제조하여 마법사를 위협하는 존재. 나아가 바리엘의 근간을 좀먹고, 이안을 황궁에서 떠나게 하는 원인.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현장에 나가 그 악한 것들을 잡아들이고 싶었다. 러더포드를 귀하신 분 앞에 무릎 꿇려, 영원한 바리엘의 평화를 얻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제국방위부의 요청으로 인해 그들은 마법부를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마법부에 구금 중인 다몬 왕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대기해. 흔들리지 말고.”
“방금 느꼈잖아요? 이거, 예삿일 아닙니다.”
“황궁에 침입자가 들었는데 당연히 예삿일이 아니지. 허튼소리 할 시간에 보고서나 마저 작성해.”
“헤일 대장! 차라리 다몬 왕을 제국방위부로 넘기고 저희도 지원 나갑시다! 버고스 측 사절단도 데려간 마당에, 다몬 왕도 담당하라 하고요!”
“네. 맞아요. 이 정도로 울림이 깊은 건 이안 님 마력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유대할 때 더욱 시너지 난다는 건, 대장이 더 잘 알잖아요? 현장에서 뛰니까!”
“이드갈 외 마법사를 속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마법사지만, 트웰러 장관은 전사다. 전투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깊이 생각하시는 분이니 존중하여 따르도록 한다.”
“아오, 진짜! 대장!”
“닥쳐, 인마. 나도 여기 있는 게 편한 줄 알아?”
“그러면 가자고요! 언제부터 대장이 윗사람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헤일은 궐련을 잘근잘근 씹으며 한숨 쉬었다. 건너편, 구금실 창문으로 다몬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오래도록 꼼짝도 않고 저리 서 있는 게 영 신경 쓰였다.
그는 마법사들에게 닥치고 일이나 하라며 고갯짓했고, 이내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마법사들의 보호막으로 인하여 저곳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똑똑.
헤일이 창문을 두드리자, 다몬이 고개를 돌렸다. 무심하다 못해 평온한 표정. 그는 헤일의 뒤쪽을 살펴보더니, 별일 없다는 걸 확인하고 어깨만 으쓱거렸다.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끄덕. 다몬이 고개를 작게 움직였다. 혀가 잘린 탓이다. 헤일은 고민하더니, 창문에 기대서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쪽은, 러더포드가 황궁에 침입할 줄 예상하셨습니까?”
“…….”
“심문이니 답하십시오. 러더포드든 그 할애비든, 침입자가 있다고 하여 달라질 건 없습니다. 이곳은 황궁이고, 놈들은 바리엘을 무너트리지 못하니까요.”
다몬은 헤일의 말이 참으로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이어서 창문 가까이 붙어 입김을 불어대니, 그 안쪽으로 잘린 혀 단면이 생생히 보였다.
스윽.
-우리는 너희에게 없는 기회가 있다.
입김 위에 쓰인 짤막한 글귀. 누군가는 저주라 여기고, 누군가는 기회라 여기는 그것. 죽음 이후 다음이 있는 삶.
인정하기 싫지만, 다몬은 ‘현재’ 패배했다. 하지만 죽지 않는 이상 그 패배는 진정한 결말이 아니지 않나? 세 번째 인생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뒤에는 신과 세상을 조율하는 러더포드가 있기에 두려울 게 없었다.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걸 믿고 있는데, 대체 그 무엇이 자신을 흔든단 말인가?
다몬의 환생에 대해서는 이안과 진만이 알고 있었기에, 헤일은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 인상만 찌푸렸다.
지이잉!
그때, 뒷목을 울리는 아주 강력한 힘. 헤일과 마법사들이 다시금 반응했다. 기이하게도 익숙하면서 낯선 것이 동시에 섞여들었다. 이는 두 가지 힘을 뜻했다.
익숙한 것이라 하면-
“…달 떴다.”
검은 달. 이안이 불러내어 1황궁 끄트머리로 하강하는, 거대하고 짙은 달.
낯선 것이라 하면-
“침입자! 침입자가 왔습니다!”
러더포드의 부하로, 다몬을 확보하기 위해 접근한 침입자의 기척이다.
헤일은 검을 빼 들었고, 마법사들은 밖으로 뛰쳐나가며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어디지? 어디로 숨어들었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각자 맡은 위치를 사수해!”
“죽여버려! 망할 것들.”
“걸리면 찢어버린다! 네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 하고 있는 줄 알아? 이드갈은 왜 처만들었어!?”
“그래. 그리고 이안 님이랑은 무슨 관계인데?”
“마마연이라고 들어는 봤나? 응?”
마법사들은 허공에 소리치며 어디선가 듣고 있을 침입자를 노려댔다. 그 순간, 번쩍하고 내려찍히는 빛기둥. 헤일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달려들어 마력을 터트렸고, 이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이잉! 퍼어엉!
고작 한 명인가? 헤일이 의문을 갖자마자 뒤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다몬이 구금된 쪽이었다.
마법사들은 마력을 그물처럼 펼쳐 허락받지 못한 자는 단 한 걸음조차 앞설 수 없게끔 벽을 세웠다.
콰아앙! 쾅!
검은 후드의 침입자가 두 명 더 보였다. 마법사들이 손을 크게 뻗어 마법을 일으키려고 하자, 천장에서 또 한 명이 운석처럼 떨어졌다.
합을 주고받을 때마다 환해졌다가 어두워지는 세상. 끝나지 않을 것 같이 팽팽한 싸움에 균열이 간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
침입자들이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일순 동시에 멈칫거리며 한쪽을 돌아봤다. 검은 달이 뜬, 제1황궁 방향이다. 그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껏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티그모르, 어떡하지?”
“러더포드 님이 돌아가셨나? 우리를 두고?”
“뭐? 러더포드가 뭐 어쨌다고?”
“하아, 하아, 새끼들. 밀릴 것 같으니까 입 털기는.”
“계속 덤벼, 짜식들아아아!”
땀에 흠뻑 젖은 마법사들이 붉은 머리띠를 휘날리며 침입자들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놈들이 이상 기운을 감지한 것처럼, 자신들 또한 멈칫거릴 줄 모르고.
“…어라?”
“왜…….”
왜 1황궁 쪽에서 넘쳐 흐르던 마력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나? 마법사들은 어느새 검은 달이 사라진, 맑은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봤다.
* * *
이안으로서는 너무도 옳은 선택이었다.
자신은 이미 베로시온의 이름으로 죽었고, 그렇기에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시간 선을 함께 달릴 수도 없었다.
러더포드를 처리함과 동시에 심연으로 들어가 나움을 만날 수 있다면, 계속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나움에게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혹여 신께서 허락하시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면 그 어떤 선택이라도 옳을 것이다. 분명히.
지이잉!
“러더포드 님!”
이안의 각혈은 끝도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태운 흔적이다.
러더포드와 마법사들은 이안에게 떨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쳤으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달을 그 누가, 어찌 피하겠나? 모두가 잡아 먹힐 것이다. 모두가 저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균열을 지나, 심연에서 눈뜨게 될 것이다.
「만엽(萬葉)」.
최아아악!
이안의 등지로 세계수가 날개처럼 뻗어났다.
러더포드는 물론, 그의 마법사들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믿을 수 없었다. 계약 마법으로 내장이 찢기고, 심장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런 몸 상태로 혼자 포탈을 여는 것으로도 모자라, 만엽이라니?
포탈은 높은 확률로 클리포포드의 균열과 이어져 있으리라. 북쪽보다는 그쪽이 가까울 터이니.
촤악!
“러더포드 님! 안 되겠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가시지요. 끝이 없습니다!”
마법사들은 끊임없이 세계수를 쳐내고 쳐냈으나, 이안이 죽지 않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음을 직감했다.
그 틈을 타, 굵직한 나무줄기 하나가 러더포드의 발목을 타고 올랐다. 허벅지를 감고, 허리를 지났으며, 순식간에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러더포드는 있는 힘껏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너, 이-!”
이안! 이안! 이안!
러더포드는 속으로 연신 이안의 이름을 부르며 계약 마법의 존엄을 부르짖었다. 가슴 아래 희미한 반응이 오는 것으로 보아, 그 힘은 계속해서 발동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놈은 쓰러지지 않나?
그런데 어째서, 다시금 무릎 꿇지 않나?
“이안 님!”
“시, 심연으로 가신다니…….”
부상 입은 마법사들이 절뚝거리며 이안을 불렀으나, 그는 시선을 조금도 돌리지 않았다. 온몸의 힘을 모조리 끌어와 포탈을 유지하고 만엽을 부리는 데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졌다간,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만큼 이안은 절박하게 무너지는 중이었다. 실낱처럼 아주 작고 연약한 무언가만이 홀로 그를 떠받치고 있는 기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초연함인지, 아니면 바리엘에 대한 사랑일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이안에게는 사치였다.
솨아아악!
“으윽!”
미지의 힘으로 서로가 이어져 있듯, 이안과 러더포드는 세계수로 이어졌다. 검은 달로 끌고 가려는 이안과 버티는 러더포드. 줄기를 뜯어내려는 손끝에 피가 물들었다.
그때, 멍하니 사태를 보던 마법사들 사이로 뻗어나는 손 하나.
꽈악.
아코렐라였다. 그녀는 복도를 기어와 이안의 세계수를 붙잡았다. 말리려나 싶은 것도 잠시. 마법사들은 아코렐라가 자신의 남은 힘을 이안에게 쏟아주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피범벅이 된 얼굴을 벅벅 문질러대며 소리쳤다.
“등신들아, 저쪽은 주인 구하느라 정신없는데, 우리는 구경만 하고 있어?”
“대, 대장! 하지만-”
“하지만 뭐, 하지만 뭐어!?”
“이안 님이 심연으로 간다 하시잖아요…….”
“심연이든, 지옥이든! 이안 님의 판단이고, 결정이다. 누가 상관 결정에 토 달아?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밖에는 진 전하가 계시는데!”
여기서 러더포드를 처리하지 못하여 후환을 남긴다면, 너희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길잡이인 이안이 결정한 사안이니,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게 옳다.
아코렐라는 마력을 넘겨주면서 소리쳤다. 이안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소리만큼을 들을 수 있으리라.
“이안 님! 딴 건 모르겠고, 사십시오!”
“대장, 제발! 이거 정말 안 됩니다!”
“살아 있으면 또 볼 수 있습니다! 루론석 고마웠고요. 그, 하아. 밥 잘 챙겨 먹으십시오.”
“대장, 싫습니다. 저, 못 하겠습니다. 이안 님 심연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아서-”
“이안 님! 돌아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발! 하지 마! 안 돼!”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아코렐라를 도와 남은 마력을 모두 넘겨주는 자와, 차마 그것만큼은 하지 못하겠다는 자.
촤아아악!
마법사들의 힘을 얻은 세계수가 더더욱 맹렬하게 치솟았다. 이안은 오직 러더포드만을 바라본 채, 뒤돌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은 분명 옳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졌을 때, 단 하나의 부족함 없이 옳은 선택이다.
그런데 어째서, 마음 한쪽이 이리도 아픈가. 이안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검은 달로 몸을 내던졌다.
천천히 주위가 지워졌다.
마법사들이, 샹들리에가-
벽에 걸린 그림이…….
‘아.’
거대하여 천장까지 닿는 그림이 유독 이안의 시선에 오래 머물렀다. 천사가 바리엘을 축복하는 그림. 그 벽안의 눈동자가 섬세하여,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 같다. 그에 빠져들던 이안은 문득 깨달았다.
‘저 그림 너머로 진이 있구나.’
참으로 적절하신 대피 장소외다. 황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림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게라.
이안은 설핏 웃으며 세계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고요의 바다로 잠기는 기분. 그 끝에 달려오는 러더포드의 비명 따위는,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