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꺼져
“에리카 님!”
부하의 외침에 에리카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곳에 와서 부하의 호들갑으로 좋았던 경우가 거의 없는데…….
“백작 부인 메리와 그 아들 첼이 발견되었습니다!”
“뭐?”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굉장히 뜻밖인 희소식 아닌가! 에리카는 환희로 물든 눈을 반짝였다.
“어디서?!”
“그것이, 북쪽 문입니다. 검문하려던 병사를 제치고 말 두 마리가 도주하였습니다. 모두 네 명이었고, 문을 나서자마자 두 갈래로 찢어졌다 합니다.”
“네 명이라고? 메리와 첼이 맞긴 해?”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자세히는 못 봤지만, 성년 전의 남자아이 머리칼이 붉은 기를 띠고 있다 했습니다. 여인도 중년에, 메리 부인의 인상과 흡사하고요. 말을 몬 자들은 아마 생존한 기사들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에리카는 탁자로 성큼성큼 걸어가 지도를 펼쳤다. 북쪽 성문을 지나서 양 갈래 길로 찢어졌다면, 동쪽과 서쪽으로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메리와 첼이 서로 떨어지려 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추격은?”
“일단 검문 병사들이 뒤쫓고 있긴 합니다만, 서둘러 지원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보고된 위치.”
“현재 이곳까지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잠깐잠깐…….”
에리카는 양손으로 메리와 첼의 흔적을 천천히 짚었다. 둘은 좌우로 갈라지면서 동시에 계속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북쪽? 북쪽이라…. 에리카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메렐로프, 여기는 제외. 얽히지 않으려고 성문까지 걸어 잠갔으니…….”
메렐로프 다음은 상업 도시로 유명한 셰이론이었다. 사실 다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육로로 가면 열흘 이상 걸리는 곳이었지만 말이다.
브라츠에서 중앙까지가 보름인 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이없는 예상 시간이었다. 변경의 기준인 ‘덴바 산맥’을 넘어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셰이론을 거점으로 찍을 것 같은데.”
“셰이론은 어지간한 타 영지로 길이 다 통합니다. 브라츠 백작 부인의 친정인 폰트롤도 말로 달리면 하루 안에 닿을 겁니다.”
“폰트롤, 좋다. 전서구를 날려라.”
“추격대는 얼마나 편성할까요?”
“일단은…….”
에리카는 잠시 멈칫거렸다. 조력자의 등장이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데르가가 지하 감옥에 잡혀 있는 와중, 살아남은 기사가 있다는 게 의아했다. 변방 타지에 관해서는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으니, 혹여 숨겨둔 병력이 따로 있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메리와 첼이 산맥으로 그들을 유인하는 걸 수도 있다.
“일단 스무 명 정도 보낸다.”
에리카는 창밖을 힐끔거리며 명령했다. 쿠실레인지 뭔지, 생소한 짐승 새끼들이 정원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전력을 다 뺀다면 천려족에게 저택 점유율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일단은, 그 정도가 최대다.
“기사라도 여인과 애를 데리고 스무 명을 상대하기에는 힘들 것 아닌가. 혹여 문제가 생긴다면 추격만 계속 붙이고 다시 전서를 날리라 해라.”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살려서, 혹여 불가하다면 시체라도, 아니, 머리통이라도 가져와야 한다. 알고 있겠지?”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에리카의 명을 받은 부하가 서둘러 뛰쳐나갔다. 도망쳤다 한들,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에리카는 지도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메리와 첼만 붙잡으면 성가시게 들러붙은 이안과 천려족을 단번에 눌러버릴 수 있으리라.
이때는 몰랐다.
고작 사흘 가는 웃음이라는 걸.
* * *
“이쪽입니다!”
“이쪽!”
“양쪽으로 나뉘어 달려!”
타닥타닥!
세상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말 두 마리가 달려나갔다. 그 뒤를 맹렬하게 쫓는 중앙군 추격대. 천려족 전사들은 뒤를 도는 여유까지 보이며 유유히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젠장!”
그 모습에 중앙군은 더더욱 그들의 정체를 데르가의 기사들이라 여겼다. 초행길인 추격대와 달리 길을 잘 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쉬이이익.
하지만 천려족이 길을 잘 찾을 수 있었던 건, 하늘에서 신호를 계속 주는 매 덕분이었다. 바위와 이끼 온갖 억센 잡풀들로 엉망인 육로와 달리, 하늘은 그 어떤 것도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로웠으니까.
“이쯤 할까?”
“전체 다 해서 스무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휘이익.
전사 한 명이 휘파람을 불며 작전 변경을 알렸다. 그들은 수풀 사이로 말을 보낸 다음, 훌쩍 뛰어내려 착지했다. 실로 인간의 몸놀림이라 볼 수 없을 정도다.
“표적이 멈췄다!”
“멈춰! 포위해!”
히이잉!
울창한 숲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정체 모를 짐승의 울음뿐. 추격대 전원이 활을 겨눈 채 소리쳤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정체를 밝혀라, 얼굴을 드러내!”
하지만 두 사내의 대답은 검을 꺼내는 것. 전투 의사 표시를 보이자, 추격대는 마른 침을 삼키며 활시위를 더욱 세게 당겼다.
“여기서 대장이 누구지?”
“뭐, 뭐라고?”
“대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추격대가 잠시 멈칫거렸다. 말투가 좀 어눌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추격 대장이 앞서 나오며 검을 빼 들자, 잴 것 없이 달려드는 두 사내 때문에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도망가는 놈은 다 죽인다!”
“쏴, 쏴라! 화살을 쏴!”
“맞서 싸우는 놈 중 딱 한 놈만 살려주겠어!”
“네 이노오옴!”
챙! 채앵!
전사 둘은 공중으로 날렵하게 뛰어오르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이내 화살이 두 사람에게 쏟아졌고, 그들은 검으로 쳐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전사 중 한 명의 팔뚝에 화살 두 개가 박혔다.
푸우욱!
촤아아악!
“으아아악!”
그와 동시에 나가떨어지는 추격대장의 머리통. 피가 분수처럼 터져 올랐지만, 그 누구도 이 현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저게 인간인가? 짐승인가? 부대장의 머릿속에 그 의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처…….”
촤악!
천려족이냐는 말이 결국 뱉어지지 못했다. 전사들은 마치 닭장에서 뛰노는 늑대와 같았다. 그들은 칼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소매로 닦으며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데르가의 기사들이다.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니, 적어도 백 명은 데리고 오거라.”
“히익!”
촤아아악!
스무 명.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여겼던 전력이 부질없이 흩어졌다. 어느샌가 주변에는 짐승의 울음보다 인간이 죽어가는 소리가 더욱 시끄럽게 가득 찼다.
전사들은 엎드린 채 벌벌 떠는 추격대 한 명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둘은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한 놈은 보내야 한다고 그랬지?’
‘그래. 그래야 2차 추격대가 붙을 것이다.’
휘이익!
“으익! 살려, 살려줘! 살려주시오!”
전사들은 매를 불러 말의 위치를 확인하곤,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패닉에 빠진 병사는 인기척을 느끼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손만 빌어댔다. 나중에 겨우 고개를 들었지만, 사내들은 바람처럼 사라진 지 오래.
“허…….”
괴물도 저런 괴물들이 있나.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주변에 낭자한 동료들의 시체가 아니었다면, 병사는 분명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 * *
“지금 뭐라고 했나?”
에리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흙투성이에 피를 뒤집어쓴 병사는 계속해서 말을 더듬으며 그날의 전투를 묘사했다.
“추, 추격대가 궤멸하였습니다.”
“대체, 어떻게…….”
“데르가의 기사가 맞았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듯 몸놀림이 예사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마검사 계열 같았는데요. 그, 얼굴은 확인 못 했고, 동료들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연신 헛웃음만 흘리며 차로 입술을 축였다. 자그마치 스무 명이었다. 제아무리 상대가 기사라고 한들, 어느 정도의 단서 정도는 얻었어야 하지 않나. 그토록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위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메리와 첼은 확실하고?”
“확실합니다. 추격하는 동안 후드가 두어 번 벗겨졌습니다. 첼이 맞고, 메리가 맞습니다.”
“젠장. 2차 추격대를 편성한다.”
“에리카 님,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편성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전력으로 움직여야 될까 말까 싶어서…….”
병사의 말에 에리카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누가 지금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나? 당연히 한번에 몰아쳐서 잡으면 쉽고 좋지! 하지만 저택을 비울 수 없는 상사들의 사정이란 게 있는 게다.
“죄, 죄송합니다.”
“자네는 그만 나가봐.”
에리카는 병사가 나가자마자 테이블을 쓸어 던져버렸다. 메리와 첼을 발견한 건 다행이다만, 생각보다 난전이 길어지면 곤란했다.
“씨발, 진짜! 중앙에서는 왜 이렇게 답신이 느려?”
“아무래도 육로로 오다 보니…….”
보고와 명령 혹은 간단한 서신 따위는 전서구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황제의 직인이 찍힌 서신은 무조건 담당관이 마차를 타고 전달해야 했다.
하필이면 그중에서도 중요하다는 작위임명장이니, 효율성이라곤 개나 줘버린 금빛 마차로 오겠지.
“이안 무리 말일세. 어떤가?”
“별다르게 수상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마을 재건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개 같은 새끼들. 지들 땅이나 잘 돌볼 것이지.”
메리와 첼의 뒤를 쫓느라 정신없는 중앙군과 달리, 그들은 영지에서 전투의 흔적을 지우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무너진 담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으며, 부상자를 옮기는 것 등등. 천려의 힘은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으며, 영지민들의 호응 역시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랄 맞게도.
에리카는 속으로 이안을 씹어대다 멈칫거렸다. 이상하게 촉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메리와 첼이 말을 타고 성벽을 뚫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그 전에는 어디 있었는데?”
영지를 쥐 잡듯 뒤졌는데도, 그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력자를 등에 업고 도망쳤다? 말은? 다른 짐승이면 몰라도 지금 브라츠에서 말을 운용할 수 있는 자들은 한정되어 있지 않나.
‘…설마.’
이안이 얽혀있는 걸까?
“지금 당장 마구 담당자를 불러라.”
“네. 알겠습니다.”
중앙군이 관리하는 말 외에는 브라츠에서 소유하던 말들이 있었다. 왜 그걸 진작 그걸 확인해 보지 않았을까. 에리카는 자신의 아둔함에 짜증을 부리며 머리를 헝클였다.
똑똑.
“에리카 님.”
하지만 먼저 방에 들어선 것은 마구 담당자가 아니라 이안이었다. 부하가 마구간으로 달려가는 걸 확인하고서 올라온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메리 부인의 방에 널브러진 서류 더미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소품들 아닌가. 이안은 방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메리 부인과 첼의 추격은 진전이 좀 있으십니까?”
“그걸 왜 물어보나?”
이것 좀 보소? 에리카가 등받이에 팔을 비스듬히 걸치며 고개를 쳐들었다. 제 발이 저린 것도 아니고, 이런 타이밍에 저런 질문이라?
“당연히 궁금하지요. 혹여 메리 부인과 첼이 살아남아 기회를 도모한다면, 저 역시 안전하지 못하니까요.”
에리카는 계속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둘 다 생글생글 웃으며 간을 보고 있었는데, 먼저 표정이 굳어버린 것은 에리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