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72
제472화. 시간의 간극
회의는 중단되었다.
수군덕대는 관료들을 뒤로한 채, 진은 시아오시를 찾아 고개를 까딱였다. 중간에 알리기로 지시한 황제의 죽음을 잠시 미루자는 신호다. 시아오시는 서신을 품에 잘 넣은 다음, 앞장서 문을 열어주었다.
타닥타닥!
시아오시는 달음박질하는 진에게 체통을 지키시라 이를 수 없었다.
장장 10년이었다. 봄이 열 번 지나가는 동안, 사라졌던 두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던, 그래서 외롭고 의문스러웠으며 한 날의 꿈처럼 느껴졌던 세월. 진은 지금, 그 세월을 거슬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트웰러 장관은?”
“황궁친위대와 합동군사훈련을 마무리하고 궁에 들어서는 중이라 하였습니다. 입궁하는 즉시 집무실로 온다 하였으니,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로만드로와 베릭 또한 함께 오라 이르라.”
“예, 전하.”
“헤일은 지금 궁에 없지?”
“북쪽 마물 지대 쪽으로 조사차 파견 나갔습니다.”
“아코렐라를 들여.”
시아오시는 알겠노라 짤막하게 답하곤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그 명령에 세 갈래로 갈라지는 인파. 진은 집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막 마차를 타고 들어서는 트웰러와 마주쳤다.
“전하.”
“하아, 하아…….”
진이 청년으로 자라는 동안, 트웰러에게 그 시간은 연속된 삶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머리카락 한 올, 주름 하나 변한 것 없이 정정한 노장의 모습 그대로다.
트웰러는 조금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허리 굽혀 인사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제가 늙어 몸이 굼떠졌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제국방위부에서 그대만큼이나 날랜 자가 없다. 안으로 들라.”
진은 트웰러 옆구리에 들린 서류 더미에서 겨우 시선을 거두었다. 러더포드 이름을 쓰는 자가 나타났다니.
사칭일까? 아니면 정말 그때 그놈? 이안 경과 함께 균열로 떨어진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라면? 이안 경은? 이안 경도 돌아오지 않았을까? 돌아왔다면 황궁으로 올 것인데?
스윽.
“버고스에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반(反)왕당파가 새로이 접선하는 물자 지원 세력이 있는데, 그 물자의 뿌리를 알아냈다고 합니다. 불확실하지만, 지금으로는 토올룬이 유력합니다.”
“토올룬?”
“과거 러더포드 일당이 거점으로 삼았던 곳과 인접합니다. 왕당파가 파악하기로는, 보름 전, 군수 물품이 북쪽 경계 지역을 넘어 상대측 진영으로 들어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았나 보군. 보름 전 사안이 지금 내게 들려온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보고서로 올리기에는 정확성에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그락.
트웰러가 진의 책상에 아주 익숙한 보석 한 덩이를 내려놓았다. 누군가의 피로 점철된 호박빛의 이드갈이었다.
진이 멈칫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드갈이로다.”
“감정을 맡겨봐야 하겠지만, 10년 전 러더포드 일당이 유통했던 그것과 동일한 재질로 추정됩니다.”
진은 보석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마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워낙 오랫동안 만지고 지켜보았던 것이기에 대충 식별이 가능했다.
“이드갈이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 토올룬이 아니라 다른 나라일 가능성은?”
“현재 바리엘, 클리포포드, 루스웨나에 러더포드가 유통했던 이드갈은 하나도 빠짐없이 균열 억제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드갈은 바리엘이 루스웨나에 청구한 피해 배상 항목 중 하나였다. 클리포포드 균열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니, 루스웨나가 소지한 이드갈을 모조리 헌납할 것.
하나 루스웨나 왕궁은 계속해서 조금씩 이드갈을 빼돌리려 했고, 바리엘은 거기에 대응하여 정기적으로 감찰을 보냈다.
“혹시 모르지. 루스웨나 왕궁이 뒤에서 소유하고 있던 것이 흘러들어 갔을지도. 바리엘이 버고스를 흡수하면, 버고스 다음으로 난감한 자들이 바로 루스웨나 아닌가?”
특히 진의 성인식이 다가올수록, 버고스와 루스웨나는 정세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버고스에 힘을 실어주는 데 제일 효과적인 ‘이드갈 지원’ 카드를 쓸 수밖에. 이드갈은 마력을 제한할 수 있는 데다, 바리엘이 파악하기 힘든 재원(財源)이니까.
“루스웨나를 압박해 보겠습니다.”
시아오시가 진의 뜻을 파악하고 서신 작성 준비에 들어섰다.
트웰러 역시 속단은 할 수 없는 일. 왕당파가 친(親)바리엘 입장을 지니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버고스인이었다. 보고서로 올라오는 종이 쪼가리만 믿을 수는 없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버고스의 이드갈일 경우…. 루스웨나 왕궁이 몰래 지원하는 경우…. 그리고-”
경우의 수를 헤아리던 진이 멈칫거렸다.
“…러더포드가 토올룬 쪽에서 새로이 이드갈을 제조했을 경우.”
제발, 제발 다시 눈앞에 나타나라. 그리하여 친히 수모를 갚게 해 다오. 이안 경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내 낱낱이 이르도록 해 주마.
모든 해답을 듣고 나서는, 탑에 갇혀 세월만 헤아리는 저 왕과 같이, 혀를 도륙 내어 버리겠다.
똑똑! 콰앙!
그때, 밖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들어오라 이르기가 무섭게 베릭과 로만드로, 아코렐라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제일 앞장선 것은 땀을 흠뻑 뒤집어쓴 베릭이다. 그는 트웰러 장관에게 삿대질하며 짜증을 부려댔다.
“이런, 씨. 이런 일 있으면 같이 갈 것이지. 지 혼자 마차를 타고 가? 나 뛰어왔잖아!”
“…황태자 전하께서 찾으실 줄 몰랐다. 베릭, 훈련은 마무리했는가?”
“그래, 덕분에 졸라 힘들었습니다.”
“어허, 베릭 이놈아. 전하 앞이다. 예의 좀 차리거라!”
“전하. 이드갈이 새로 들어왔다던데요? 새것 맞습니까? 아오, 클리포포드 쪽으로 죄다 돌아가서 이거 원, 표본 모자라 죽겠습니다.”
“아코렐라, 그대도 자중 좀 해!”
자신만큼이나 고대하고 고대하는 자들이라, 이안의 존재를. 진은 트웰러가 건네준 보고서를 톡톡 두드리며 일렀다.
“러더포드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예? 러, 러더포드요?”
“버고스에 새로이 공급되는 이드갈의 흔적 끝에서, 그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는군. 사칭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베릭은 멈칫하곤 그대로 굳어버렸고, 아코렐라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먼저 입을 뗀 것은 로만드로. 그는 생각을 빠르게 하려는 듯, 연신 수염을 쓸어내렸다.
“10년 만에 갑자기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흩어졌던 자신의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입니다만.”
“그렇지? 그래서 버고스엔 제국방위부를 보내어 사건을 조사토록 할 것이다. 그리고, 토올룬에도 사람을 보내고자 하는데.”
스윽.
진이 이드갈을 집자, 그것을 아코렐라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었다. 한때는 너무 흔하게 퍼져서 마법사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이었거늘, 지금은 죄다 균열로 때려 박는 중이라 귀하신 몸이었다.
이드갈의 안전을 확인한 아코렐라가 콧김을 내며 거절했다.
“저는 못 갑니다. 다리가 성치 않아요. 요즘 들어 더 쿡쿡 쑤시는 게, 어우. 토올룬, 너무 멉니다.”
“웃기시네. 평소에는 잘만 뛰어다니면서. 걍 연구하고 싶다고 해. 하여간, 입만 열면 구라.”
“엉. 맞아. 이거 연구해서 베릭 대가리에 박아 넣어야지. 그러면 뚫린 주둥이가 좀 막히려나?”
“어허어허! 다들!”
로만드로가 기함하며 소리쳤고, 이내 손을 슬쩍 들어 올리며 웃었다.
“전하. 그, 저는-”
‘이제 겨우 열 살 난 딸아이가 집에 있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쉬이 나오지 않았다. 황태자 앞에서, 어찌 대업과 가족사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진은 다 안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임자는 정해져 있었다.
“베릭. 그대가 가거라. 가서, 내려오는 길에 아탄족도 만나고, 헤일 대장과 합류하여 돌아와.”
아코렐라와 로만드로가 동시에 베릭을 쳐다봤다. 황궁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자였다. 언제고 이안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러더포드가 있다면, 이안 역시 거기 있을 가능성이 커.”
범인(凡人)과 달리, 베릭이라면 마력을 통하여 훨씬 빠르게 기동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탄족 관련 업무에도 적합하고 말이다.
베릭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잠시 고민했다.
“이안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가서 샅샅이 확인하여 보고하라. 러더포드를 발견한다면 생포하되, 죽여도 상관없다. 머리만 가져와도 좋아. 다만, 이안 경을 발견한다면-”
진이 말을 잠시 멈춘 사이, 베릭이 그 뒤를 이었다.
“데리고 올게요.”
“…무조건.”
베릭은 목을 좌우로 풀어대며, 어처구니없어하는 로만드로와 아코렐라 얼굴을 힐끔거렸다. ‘뭘 봐?’ 싶은 표정이다. 트웰러 장관이 보내는 거랑, 진 전하가 보내는 거는 좀 다르지. 암암.
“보고서 쓸 수는 있는데 글씨 개판이라. 상관없죠?”
“물론.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언제 갈까요?”
“지금이라도 당장.”
“예에. 저녁밥 먹고 출발할게요.”
바로 옆 마을 마실 나가는 것도 아니고, 토올룬까지 가는데 무에 이리 서두른단 말인가? 로만드로가 슬쩍 베릭의 옷깃을 잡으며 속닥였다.
“베릭, 곧 있으면 히엘로령에서 손님들이 오시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
“금방 갔다 올 건데요? 나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으라 하든가.”
“너, 너 토올룬이 어딘지 모르지?”
“아는데요? 하샤 나라 위에. 아, 전하. 저 올해 안에는 돌아올게요. 별채 건설 그때 되면 된다고 하던데.”
“베릭! 내가 애들이랑 증폭제 빨고 포탈 열어줄게. 멀리까진 못 가도, 바리엘 북쪽 국경쯤엔 떨어질 거다.”
“오, 웬일로 도움이 좀 되네.”
베릭은 기지개를 쭉 켜며 집무실을 나갔고, 로만드로가 걱정스레 덧붙였다,
“전하, 베릭 저거, 혼자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바르사베라도 붙이심이 어떠신지요?”
“러더포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상, 황궁친위대원을 두 명이나 차출할 수는 없다.”
러더포드는 황궁에 침입한 전적이 있는 놈이었으니. 진은 보고서를 가볍게 덮고서, 나가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베릭 외 다른 자들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돌아올 것이라 가장 강하게 믿는 자가, 결국엔 찾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외, 굳이 다른 자들을 끼워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게다.
로만드로는 아, 하고 잠깐 수긍하곤 군말 없이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 * *
끼이익.
어두운 별실 문이 열리고, 달짝지근한 향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빛 한 줄기가 안으로 들었다.
반왕당파에서 보낸 부하들이 멈칫거리며 안쪽을 살폈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도 좋다 하였지만, 어둠이 짙어 쉬이 범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찬 바람이 들어.”
그때, 안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침대에 기대 누워있는 남자가, 담뱃대를 문 채 이른 것이다.
부하들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었고, 이내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며 한 형상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러, 러더포드 님, 맞으십니까?”
그중, 과거 러더포드와 접선한 적이 있던 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어왔다.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조금도 변함이 없는 외모와 분위기. 심지어는 저를 맞이하는 자세마저도 그때와 똑같았다.
러더포드는 담배 끝을 질겅거리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투욱.
부하들 발치에 던져진 것은 이드갈이다. 러더포드임을 증명하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증거.
“그간 못 피웠던 것을 피우는 중이니, 이해하게.”
“어, 어찌 된 것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규, 균열로 들어가셨다 들었는데요.”
“살아 돌아오신 것입니까? 마법사들은요? 어찌 되었습니까?”
후우, 러더포드는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담배 연기를 음미할 뿐이었다. 균열의 바다에 잠식된 지, 가이아의 시간으로 10년. 하지만 그에게는 고작 열흘이었다. 열흘.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도 함께였다 들었습니다. 그, 그자는요? 처리하신 것입니까?”
“아. 이안?”
치이익.
러더포드가 피식 웃으며 담뱃재를 툭툭 털어냈다. 말도 말라는 듯이 말이다. 이 세상에 억겁의 시간을 뛰어넘는 집념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러더포드는 고개를 잘게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와 같이 깨어났을 것이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금이 기회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