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80
제480화. 까앙
그러니까 시벌거, 이거는 글러 먹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마지막으로 본 그 할아범한테 길을 안 물어서 그런가?
아니지. 그 이전에 새 마력증폭제 연구에 취해있던 아코렐라가 주사를 두 번 연달아 처맞은 게 제일 클 것이다. 바리엘 외곽에 떨어트려 준다더니, 국경선이 아니라 허허벌판 오지에다 자신을 던져놨다. 장난해? 표지판이 있어도 길 잃는데, 이게 말이 되냐?
음음. 더 생각해보니까, 또 아니다. 아코렐라가 마력증폭제 맞은 건 마법부에 인력이 부족해서니까, 근본적으로는 북쪽과 남쪽으로 찢어진 마법사들 탓이다.
에엥? 그렇게 치면 시발, 결국에는 이안이가 문제네. 이안이 사라지고부터 마법부가 그리됐으니. 게다가 자신도 지금 이안이를 찾으러 나선 거잖아?
“맞네! 이안이 때문이네! 이 짜식!”
베릭은 자신이 길 잃어버린 게 모두 이안이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분노에 휩싸여 가장 가까운 나무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콰앙!
거대한 울림과 함께 검은 나뭇잎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조용하던 숲에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베릭은 주위를 다시 둘러봤다.
‘…X 됐다.’
잠시 서서 생각이란 걸 했더니,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었는지조차 헷갈렸다.
이놈의 숲은 특이하게도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동쪽과 서쪽을 구분하기 힘들었으며, 사람도 거의 들지 않는지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았다.
베릭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우선 주저앉은 다음, 말린 고기를 꺼내 물었다.
“여기만 나가면 잘 찾을 것 같은데, 쉽지 않네.”
토올룬 정도는 금방 다녀올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쳐 놨는데 시작부터 이런 꼴이라니. 차라리 혼자 온 게 다행이었다. 혹여 어금니라도 옆에 있었더라면, 온갖 놀림과 잔소리에 화딱지가 터졌을 거다.
베릭은 벌러덩 누워 나뭇잎 사이로 찬찬히 비치는 햇빛을 올려다봤다. 다행인 것은, 아직 낮이라는 것.
‘그래도 곧 있으면 이안이 보니까, 이것만 먹고 움직이자.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한 곳만 정해서 내려가야겠다. 그나저나 로엘이었나? 미친. 이안이랑 존똑. 이안이랑 대사막 갔을 때 생각나네. 그때는 진짜 걔나 나나 X밥이었는데.’
콧노래까지 흥얼흥얼, 베릭은 발끝을 까딱거리며 잠시 휴식을 가졌다. 로만드로의 충고 때문이었는데, 길을 잃어버리면 흥분하지 말고 일단 멈춰서 진정해보라는 게다.
뭐, 효과는 꽤 좋은 것 같았다.
바스락.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인기척도 느낄 수 있었으니.
베릭은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뒤로 휙, 꺾었다. 남루한 차림새의 남자가 거꾸로 보였다. 단검인지 뭔지 모를 쇠붙이를 양손에 각각 들고 있었는데, 베릭은 그자가 그저 놀란 탓에 그러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사람이네. 반갑쓰.”
“예예, 아, 바, 반갑네요.”
“이 근처 살아요?”
사내는 베릭을 예의주시했다. 누워있을 때는 크게 몰랐는데, 막상 몸을 일으키니 그 체구가 거대했다.
그리고 옆구리에 찬 흑색 검은 또 무엇인가? 옷은 그저 그런 검은색 천을 두르고 있었는데, 배낭이 빵빵한 것이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운도 좋지. 숲에 올 때마다 외지인을 만나다니.’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오? 처음 보는데.”
“처음 볼 만하지. 지나가던 사람인데 길 잃었어요. 도움 좀 받읍시다. 내가 능력에 비해 박봉이라 가진 건 없고, 동전 한 닢 정도로 보답할게요.”
“도, 동화?”
“……? 뭐래? 금화.”
“예?!”
사내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저 가방 안에 금화가 있다. 그것도 말하는 눈치로 보아 아주 많이!
주인인 랑드뢰 밑에서 개같이 일한 지 한평생, 그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황금빛의 찬란한 동전들이 그득할 것이라.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요. 대신 앞장 좀 서 주십시오. 제가 눈이 어두워 발걸음이 느리거든요.”
“그러면서 잘도 숲에 들었네.”
“왼쪽 길로 들어서면 됩니다.”
“오호. 오케이.”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베릭은 흔쾌히 앞장서서 걸었고, 사내는 그 뒷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고민했다.
고기 말린 것, 자신도 먹고 싶다. 어떡하지? 바로 목덜미를 찌를까? 아니,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실패할 수 있다. 상태를 보아하니 떠돌이 용병인 것 같은데, 정면으로 나섰다가는 낭패다.
그렇다면 절벽에서 밀어? 그건 더더욱 안 되지! 저 가방도 같이 떨어질 것인데! 어쩌지? 어쩌지?
“이봐.”
“…예?!”
사내가 중얼중얼 혼자 고민하는 동안, 베릭이 무언가를 감지하고 멈춰 섰다. 혹여 속내를 들켰나? 사내가 등 뒤로 단검을 슬며시 꺼내 들었고, 베릭은 그를 빤히 응시했다.
“숲에 거주민이 있나?”
“여, 여기요?”
“계속 이상하게 시선이 느껴지네.”
“아…….”
아, 자신의 얘기가 아니구나. 사내는 다시금 단검을 뒤춤에 넣곤 웃었다.
“두더지족이 살고 있긴 합니다요.”
“두더지족? 바리엘에 그런 것도 있었나?”
“외지인들은 잘 모르지요. 인근에 사는 저희도 자주 보는 놈들은 아닌지라. 땅굴에 처박혀서 온종일 뭘 두드리고, 쪼이고, 자르고… 어후. 사실 뭣들 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가다 쓸 만한 게 있으면 주워오는 게 다고요.”
주워오는 게 아니라 훔쳐 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사내는 헛기침을 하며 베릭에게 계속 걸어가라 일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베릭이 또 무언가 궁금하다는 듯 등을 돌리자, 뜻밖의 일이 생겨났다.
타앗!
“히익!”
“엥?”
사내가 베릭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버리는 게 아닌가?
의문인 것도 잠시. 베릭은 바닥이 꺼지는 걸 느꼈고, 순식간에 수 미터에 달하는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쿠웅!
“하, 하하하! 아하!”
“야이, 씨. 아오. 궁둥이 터지겠네.”
“어, 어디서 온 누군지 모르겠지만, 운이 안 좋았어. 구덩이에서 썩어 죽고 싶지 않으면 가방 올려. 그, 그러면 내가 판자때기 하나 정도는 내려주지.”
베릭은 엉덩이를 연신 비벼대며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저게 뭐라 씨불이는 거지? 나 지금 함정에 당한 거? 이렇게 조잡한 구덩이로?
“하여간 나만큼 멍청한 새끼가 또 있었네.”
“뭐, 뭐? 안 들려!”
“안 들리면 뭐, 어쩌라고 시발아!”
“여기는 나 말고 오가는 사람 거의 없어. 죽고 싶지 않으면 하라는 대로 해. 보아하니, 배낭 하나 없어도 괜찮겠구먼.”
“그걸 왜 네가 정하고 자빠졌어?”
“알겠다. 그러면 너 죽고 나서 다시 오마.”
일단은 이렇게 방심시키고, 내일쯤 준비를 철저히 해서 다시 와야겠다. 저놈이 다 처먹기 전에 배낭 안의 식량을 빼앗아야 하니까 말이다. 뜨거운 기름, 날카로운 창, 화살, 뭐가 좋을까? 사내가 키득대며 몸을 돌리는 순간.
슈우욱!
구덩이에서 베릭이 아주 가볍게 날아올랐다. 땅을 넘어서, 저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닿을 정도로.
사내는 순간 새가 날아들었나 싶었지만, 이내 허공에서 어른거리는 베릭의 붉은 머리칼을 보곤 숨을 헉, 들이쉬었다.
부웅!
“누가 운이 안 좋아?”
“히익!”
빠악!
검을 쓸 가치도 없다. 베릭은 무릎으로 사내의 정수리를 내려찍었고, 단 한 방에 상대를 기절시킬 수 있었다.
사내가 고꾸라지며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자, 베릭은 끝까지 따라가며 발길질을 해댔다.
“이게 감히 내 고기를 노려?”
퍼억!
“너 오늘 뒤졌다, 개새. 안 그래도 길 잃어버려서 심심했는데, 즐겁고 좋네.”
순간, 이제 진짜 길을 잃어버리게 됐음을 걸 깨달았지만, 알게 무어란 말인가? 상대는 자신을 죽이려 했고, 이어서 기절했다. 이용 가치가 하등 없다는 게다. 차라리 신명 나게 두들겨 패고 스트레스라도 푸는 게 낫지.
발길질에 이어서, 주먹질하기 위해 베릭이 소매를 걷어 올릴 때였다.
톡톡.
“엥?”
누군가 베릭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별들.
까앙!
“……?!”
청명한 소리와 함께 베릭의 시야가 흔들렸다. 아래로, 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자신이 죽자고 팬 사내와 얼굴을 마주했다. 옆으로 넘어진 것이다.
맑은 소리랑 다르게, 이 묵직한 공격은 뭐지? 제이럿 영감탱에게 진심으로 뒤통수 까였을 때보다 더 고통스럽다.
“다들 우리 숲에서 뭐 하는 짓이냐!”
베릭은 눈을 천천히 끔뻑거렸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으나,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은 선명했다.
“…아니, 시발. 왜 두더지가 사람 옷을 입고 있지.”
아까 저놈이 말한 두더지족인가?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저렇게 단춧구멍 같은 눈깔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어. 생긴 거 하나 기가 막히네.
서로서로 신기하게 여기는 것도 모르고, 베릭은 헛웃음을 터트려댔다.
“뭐로 때렸냐? 나 어지간해서는 한 방에 안 나가떨어지는데.”
“숲에는 왜 들어왔지?”
“묻잖아, 두더지 새꺄.”
데라족은 노골적인 모욕에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망치를 다잡았다. 특이한 낯짝으로 감히 누가 누구더러 두더지 새끼라 하는 것인지, 원!
그가 힘을 주자, 짧고 통통하던 데라족의 팔에 근육이 솟아올랐다.
“헐, 시발.”
“뭐로 때렸는지 궁금하나 보네, 다시 알려주마.”
스윽.
그리고 있는 힘껏, 베릭의 관자놀이를 망치로 내려쳤다.
까아앙-!
* * *
“오늘따라 늦네, 뭐라도 찾았나?”
“그러게. 저녁 먹기 전에는 꼬박꼬박 들어왔잖아. 이거 못 먹으면 아침까지 굶어야 하니까.”
“이상하다. 내 생각에는 둘 중 하나인 것 같아. 한몫 단단히 챙길 만한 걸 찾아서 튀었거나, 재수 없이 덫에 걸렸거나.”
“그런데 덫 해체는 안 한대? 두더지 그것들 잡은 적이 한 번도 없잖아.”
“해체하는 것 자체로 일이고 고생인데 무슨. 내버려 두면 산짐승이라도 걸리겠지, 뭐.”
식사를 마친 랑드뢰가 마당을 거닐다가 아랫것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홋이 아직도 안 들어왔어?”
“예? 아, 주인님. 그렇습니다.”
“라자산으로 갔나?”
“예예. 일찍이 해 떴을 때 갔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랑드뢰는 턱에 몇 가닥 난 수염을 비비 꼬아댔다.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한데, 찾아 나서는 게 이득일지 아닐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밤중에 산은 위험했다. 두더지족이 언제 습격할지 모른다. 하지만 훗처럼 멍청하되 우직한 노예를 새로이 구하는 건 번거로운 일. 게다가 혹여 놈이 두더지족의 공격으로 변을 당한 것이라면…….
‘당분간 드라이어드 베기가 편하겠는데.’
악명 높은 라자산 탓에, 그 근방 땅은 주인이 없었다. 중앙과 마주 보는 요충지임에도, 길이 통하지 않고 산세가 험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기 어려웠으니.
무엇보다 드라이어드와 데라족의 서식이 악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인근 영주들조차 땅을 차지하려 들지 않았다. 괜히 차지했다가 세금을 낼 바엔, 그저 빈 자리로 두는 게 낫다 판단한 게다.
‘덕분에 나는 좋지.’
아무도 관심 없는 곳에서 부락을 이룬 채 살아갈 수 있으니까. 랑드뢰는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며 부하들에게 일렀다.
“해가 뜨면 다 같이 산으로 간다.”
“예? 산으로요? 저희도요?”
“큰 자루를 준비해.”
나무 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안. 저들의 대화 덕에 자신이 라자산 인근에 있다는 추측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안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건초더미 위에 몸을 뉘었다. 매일같이 먹을 걸 입 안으로 쏟아붓는 베릭이 이해 안 되었는데, 이제는 좀 알겠다. 이런 고통을 항시 달고 있었던 게라. 그러면 그렇게 먹을 만하지.
‘…베릭은 어찌 지내고 있으려나.’
까앙!
“응?”
순간, 청명한 쇠붙이 소리가 나서 이안은 고개를 틀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힘차게 날아가는 까마귀들뿐.
“……?”
아무래도 까마귀 소리를 잘못 들은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