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81
제481화. 피 냄새
“앞으로 좀 가!”
“가고 있잖아. 밀지 말라니까?”
“어허, 처진다, 처져.”
손도끼를 쥔 랑드뢰의 부하들이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하나같이 미적거리는 발걸음인지라 속도가 굉장히 더뎠지만 말이다.
랑드뢰는 부하들의 엉덩이를 연신 걷어차며 서두르라 재촉했다. 이랬다가는 수확 없이 내려갈 판이다.
“주인님. 얼마나 더 들어가면 됩니까?”
“온 만큼만 가면 된다. 드라이어드가 보일 것이니 눈 크게 뜨고 살펴라. 그리고 더는 묻지 마! 힘들어.”
두툼한 랑드뢰의 턱밑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계치다, 한계치. 걷는 것만으로도 고역인 몸집으로 여기까지 함께한 게 대단할 지경이다.
부하 한 명이 그런 주인을 보고서 옆 사람에게 속닥거렸다.
“근데 드라이어드 나무가 뭐 어떤 건데 저러셔?”
저리 열 내며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 꽤 값어치 나가는 물건 같은데, 창고에 묶여있는 걸 보았을 때는 일반적인 다른 장작과 다를 게 하등 없었다.
“몰랐어? 그거 태우면 두어 달은 족히 가.”
“뭐? 두어 달? 그럼 안 탄다는 거야?”
“타긴 타는데, 아주 천천히 타지. 겨울에는 그거 세 묶음만 있어도 충분할 정도거든. 그래서 시장 사람들은 나뭇가지 하나만 얻게 해 달라 난리고, 가끔 오가는 상단들도 값을 넉넉히 쳐주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약제사들도 관심 있어 하는 걸로 봐선, 그쪽으로도 곧잘 쓰이나 봐.”
“어허, 신기하네.”
그래서 그랬구나. 안 그랬으면 주인이 저 고생하며 산에 오를 일 없었을 게다. 혹여 나뭇가지 하나라도 빼돌릴까 봐 감시하려는 것일 터.
“베기 쉬울까? 도끼로 찍을 때마다 고막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던데.”
“어. 그래서 귀머거리 된 사람도 몇 있어.”
부하는 랑드뢰를 힐끔 뒤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귓구멍에 허연 천 뭉치가 쑤셔져 있다.
“근데 두더지족이 땅굴에서 나온 직후면 괜찮아.”
“왜?”
“몇 달에 한 번씩 걔들이 드라이어드 열매를 따 가거든. 드라이어드는 열매를 따 가려고 할 때만 소리 질러. 지킬 게 없으면 잠든 듯 조용하지. 그래서 딱 그때 베어내려고 저러시는 거야.”
“어허. 그렇군.”
안 그랬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 드라이어드를 베어내겠다 설쳤을 것이다. 돈이라면 환장하는 주인께서 노다지를 가만둘 리 없지 않나?
그때, 앞서 걷던 누군가가 손을 흔들어댔다.
“주인님! 흔적이 있습니다!”
“흔적? 무슨 흔적?”
“족적입니다! 수풀도 조금 누워있습니다. 이쪽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에, 두 사람이요.”
“두더지족은 아니고?”
“아닙니다. 사람의 것입니다. 발볼이 적당해요.”
땀을 훔치던 랑드뢰의 눈동자가 욕심으로 번뜩였다. 아침에 나갔다가 실종된 홋이랑 외지인인가? 아니면 외지인 둘? 랑드뢰는 서둘러 추적하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바스락.
타닥타닥!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들은 깊게 파인 구덩이 함정과 널브러져 있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홋과 붉은 머리의 낯선 사내였다.
“홋! 괜찮아?”
“아이고, 이게 다 무슨 일이람?”
“누구지? 홋, 정신 좀 차려봐.”
부하들이 홋을 흔들어 깨우는 사이, 랑드뢰는 두툼한 배낭을 열어젖혔다.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말린 고기. 그는 자연스럽게 하나를 빼 먹으며 내용물을 뒤적거렸다. 외지인이 분명해 보이는데, 옷가지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음?”
두툼한 주머니! 랑드뢰는 본능적으로 묵직함을 느꼈고, 이내 안쪽에서 반짝거리는 금색 동전들을 보곤 숨이 멎는 걸 느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너무 기쁜 나머지 혼절하려는 것도 잠시, 그는 배낭 바닥에 깔려 있는 신분증서를 발견했다.
-황궁친위대 소속, 마검사 베릭.
“……!”
“주인님.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쉿! 쉿쉿!”
부하 중 한 명이 베릭의 머리칼을 잡고서 가볍게 흔들자, 랑드뢰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저 미친놈이!
“그 손, 안 놔?”
“예? 아, 예예.”
황궁친위대는 황제를 옆에서 모시는 최정예부대라 하지 않았나? 게다가 마검사? 검 한 번 휘두르면 대지가 갈리고, 두 번 휘두르면 하늘이 찢어진다는 그 마검사?
랑드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침착하게 상황을 둘러봤다. 이제는 금화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를 저의 생사 여부 탓에 손이 떨리고 있었다.
‘홋이 마검사를 우연히 마주했고, 정체를 모르는 채로 감아 먹으려다 되레 당한 것 같지? 그런데 대체 마검사는 왜 누워있는 거지? 그것도 황궁 소속인 자가 이곳에? 이해가 안 가네.’
“주인님?”
“…죽인다.”
“아, 예. 알겠습니다.”
랑드뢰의 중얼거림에 부하가 손도끼를 다잡았다.
“아니, 그쪽 말고! 홋 말이야.”
“예? 홋을요?”
“뭐 해? 죽여. 안 그러면 우리가 죽어. 이놈, 황궁 소속 마검사란 말이다.”
일종의 꼬리 자르기였다. 홋을 죽여서, 마검사를 감아 먹으려던 자가 자신들과 연관 없다는 걸 보일 필요가 있었다.
마검사는 정체 모를 자에게 골탕 먹어 당한 것이요, 랑드뢰와 부하들은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그를 발견하여 도와준 것이라. 그래. 그것이 제일 적당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자는 저택으로 옮긴다.”
“내려갑니까? 드라이어드는요?”
“장난해? 지금 이놈 몸값만 얼만데. 철수해!”
배낭은 어떡하지? 주위에 없었다고 거짓말할까? 아니다. 상대는 마검사. 어떤 능력이 있을지 모른다. 섣부른 거짓말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일단은 조심하자. 랑드뢰는 비통한 심경으로 금화 주머니를 다시 배낭 안에 넣었고, 단단히 묶어 부하에게 건네주었다.
“하산!”
“하, 하산…….”
“너희는 홋 뒤처리 제대로 하고 내려와.”
“예. 주인님.”
쩝. 어제만 하더라도 같이 먹고 자던 식솔을 제 손으로 죽이려 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노예라는 것이 다 그렇지. 내킴 없이 살다가, 내킴 없이 죽는 것이 저들의 운명이었다.
부하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서, 홋의 머리통을 발로 단단히 고정했다.
* * *
“배고파.”
베릭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눈떴다. 대충 배를 매만지니 홀쭉한 것이, 밥때가 꽤 지난 것이라. 베릭은 낯선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긴 어디지?
…아! 두더지족 놈한테 망치로 얻어맞았지? 완전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자, 베릭은 크게 소리치며 이불을 걷어냈다.
“개새들! 뒤졌다!”
다른 건 몰라도 얻어맞은 건 꼭 갚아주는 게 도리 아닌가? 베릭이 방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흑검을 집어 드는 순간-
벌컥!
“일어나셨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시종들이 들이닥쳤다. 정갈한 새 옷과 쟁반 한가득 식사를 담아 든 채로.
“엥?”
“몸은 좀 괜찮으시고요?”
“뭐, 뭐여?”
“정신 잃으신 것을 주인님이 발견하여 모셔왔습니다. 숲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신분 확인 차원에서 배낭을 열어보았는데, 너무 기분 나빠 하진 말아주세요. 아, 아니지. 우선 식사부터 하시지요. 모셔온 지 꼬박 이틀이 지났습니다.”
“뭐? 정말?”
“네. 정말이고 말고요.”
자신이 이틀이나 기절해 있었다고? 베릭은 아직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얻어맞은 망치가 떠오른 거다. 겉으로 봤을 때는 평범한 망치처럼 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물건임이 틀림없다. 뭐였을까?
아, 모르겠다. 베릭은 자연스럽게 쟁반을 받아 든 다음, 밥그릇을 움켜쥐었다. 어떠한 의심도 없이, 눈앞의 고깃국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식사하고 계십시오. 주인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야. 잠만.”
“네?”
“밥 더 줘.”
“……?”
두어 숟갈에 밥그릇을 비워버린 게다. 시종은 지금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는지, 눈을 비벼댔다. 시종이 꼼짝할 생각을 하지 않자, 베릭은 뭔가 깨달은 것처럼 작게 호응했다.
“알지, 알지. 밥 먹으려면 밥값이 필요하지. 자, 받아.”
티잉!
가볍게 튕기는 금화 세 개. 그만하면 본인 기준,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시종은 허겁지겁 금화를 받들더니, 뒷걸음질 치며 문을 나섰다. 사실상 도망치듯 뛰어나갔다는 게 맞을 것이라.
쿵쿵!
“뭔 소리래. 어디 멧돼지가 뛰어오나.”
“아이고, 마검사님. 정신 좀 차리셨습니까?”
“헐. 진짜네.”
베릭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랑드뢰가 허겁지겁 침실로 들이닥쳤다. 두 손은 바짝 모으고, 허리는 완곡하게 굽힌 상태다.
베릭은 텅 빈 밥그릇을 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이 집 주인인가?”
“예예.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어찌 된 일이셔요? 저희가 숲에서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
“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밥이 좀 많이 모자라. 돈 냈으니까 끊지 말고 계속 고기 좀 넣어줘. 소고기면 좋은데, 있나?”
베릭은 사정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구구절절, 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성격도 못 되고, 얼른 배 채운 다음 두더지 잡으러 가야 했으니까.
랑드뢰는 뜻밖의 행동에 멈칫거리는가 싶더니, 실없는 웃음만 지어댔다.
“돈 모자란다는 웃음이네. 그거, 내가 많이 봤지.”
“마주하자마자 이런 말씀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그리 여유있지 않습니다. 한데 마검사님 치료한다고 의사도 쓰고, 약제사도 쓰고… 저, 식솔들은 돌아가며 침실을 돌본다고 일도 못 했지요.”
“아아. 말 기네. 우리 할 말만 딱딱 합시다. 그래서, 얼마?”
“여, 열 개면 알맞겠습니다.”
“시발, 존나 바가지네…….”
베릭은 욕설을 중얼거리면서도 랑드뢰에게 금화를 튕겨주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이미 도움을 받았으니, 그 값을 매기는 건 저쪽에서 할 일이다.
사실 의사나 약제사 따위 오간 적 없었지만, 랑드뢰는 속으로 환호하며 금화를 주워 들었다.
‘이것 봐, 위험하게 가져올 필요 없었지! 황궁 소속이라 역시 씀씀이가 대단하구먼!’
베릭은 고깃국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이키며, 이 집주인이란 자를 유심히 살폈다.
“음?”
이상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랑드뢰의 웃옷. 마치 아이의 옷을 빼앗아 입은 것처럼 꽉 껴서는, 등이 죄다 터져있었다. 그런데…….
“이봐.”
“예?”
“그거. 네 옷인가?”
“아, 예예. 제 것입니다만? 저희는 마검사님 짐에 손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익숙했다. 해지고 얼룩져 본연의 색과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눈에 굉장히 익은 옷이다. 특이한 무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모양새인데 말이다.
“흠. 왜지?”
“왜, 왜 그러십니까?”
“가까이 와 봐.”
랑드뢰는 잠깐 고민하다가 주춤거리며 베릭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질수록 베릭의 미간이 깊게 팼다. 어어? 이것 봐라?
쨍그랑-!
베릭은 쟁반을 휙 던져버리곤 랑드뢰의 상의에 코를 박았다. 킁킁. 노골적인 냄새 맡기에, 랑드뢰가 기겁하며 양손으로 제 몸을 가렸다.
“으악! 뭐, 뭐 하는 짓입니까아아!”
“호들갑 떨기는. 가만있어 봐. 나도 역겹거든? 이게, 냄새가 어디서 많이…….”
“이러시면 안 되거든요!?”
“아이씨, 진짜. 그럼 옷 벗던가.”
“옷을요? 제가요? 왜요?”
베릭은 발버둥 치는 랑드뢰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다음, 얼룩진 부분에 집중했다. 자세히 보니까, 이거 피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피.
“…이안이.”
꽈악.
이안의 것이다.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피 냄새.
베릭은 랑드뢰의 멱살을 단단히 잡고서 읊조렸다.
“커헉! 아이고! 왜, 왜 이러시는지 당최-”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예? 어떤 거요?”
“이 옷! 시발. 네 새끼 때문에 옆구리 다 터진,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