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86
제486화. 소식
똑똑.
“전하.”
시아오시의 부름에, 진이 고개를 돌렸다. 단추를 잠그던 손길은 멈추지 않은 채 말이다.
진은 무슨 일인지 묻는 대신, 보고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오시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가 꽤 두툼한 것이 대회의에서 다룰 안건이 오늘따라 유독 많은 것 같았다.
참으로 의아한 일이지. 대회의는 거의 매일 열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처리할 것이 저리도 많다니. 진은 다시 정면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아버지 국장(國葬) 건을 빼고서 그 정도인가?”
“예, 전하. 국장에 관해서는 관료들이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관례를 따르되, 전하의 성인식과 즉위식 상황을 고려하여 최소한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게 중론입니다.”
“국고 사정을 다 봐주니,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는군.”
냉소적인 진의 중얼거림에 시아오시가 잠시 말을 멈췄다.
성인식으로 인해 지출 예정인 황궁 예산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황제께서 승하하셨으니, 진의 즉위식 또한 연달아 거행되어야 할 터. 이렇듯 올해 지출 예정인 행사가 많으니, 국장만큼은 규모를 축소하자는 게다.
명분은 좋았다. 하나,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황권의 존엄을 한층 깎아 먹는 작태였다.
엄연히 시대를 군림했던 황제의 죽음이다. 지난 10년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누워있던 터라 존재감이 희미해지긴 하였지만,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바리엘을 통치했던 황제가 아니던가?
“전하, 혹 마음이 쓰이시면 지금이라도 안건을 다시 올리라 하겠습니다.”
그런 황제의 국장을 간소하게 치르자는 것은, 황제 자리에 오를 진에겐 불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하나를 내어주면 다른 하나를 취하게 되는 것이 황궁의 법칙. 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제국민의 여론 또한 그리 뜨겁지 않으니, 그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겠지.”
수상, 제이럿 그리고 이안과 진. 이 네 사람을 제외하고 황제를 알현한 사람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황궁에서 일하는 관료들조차 그 죽음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제국민들은 어떠하겠는가? 연달아 진행되는 국가적 행사에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성인식에 기대어 국장 축소 명분을 주었으니, 즉위식과 그 이후의 결정 사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번 건으로, 그들은 이후 황실에서 주관하는 여러 행사에 관여할 수 없을 것이다.
황제의 장례식를 축소하면서까지 국고를 보존하였건만, 그런데도 예산에 차질이 생겨 황실의 결정에 토를 단다면, 이는 각 부처에 귀책이 있음을 시사하지 않겠나?
예산 삭감 명분이다. 삭감당하고 싶지 않은 부서는 앞으로 진이 주관하는 어떠한 결정에도 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이라.
“그래. 국장 건을 제외하고 그 정도라니, 오늘도 제시간에 식사하기는 글렀구나. 읊어 보아라.”
“먼저 올라온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이 손을 딱딱 튕기자,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가까이 다가와 황태자의 치장을 마무리했다.
소파 등받이에 기댄 진은 문득 창문으로 쏟아지는 화사한 햇살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오늘따라 유독 날씨가 좋은 것 같았다.
차락.
“먼저, 다몬 왕의 탑으로 의사들이 올라갔습니다.”
“오래도록 안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그 난리인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햇살에 녹아들던 진의 미간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첫 안건부터 아주 유쾌하지 못한 내용을 들은 탓이다.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 포로로 감금된 왕, 다몬 런크비스. 내란으로 혼란스러운 버고스에 적통이라 할 만한 지도자가 없으니, 사실상 아직 다몬이 버고스의 왕이라 할 수 있다.
“생명엔 문제없습니다.”
“그럴수록 버고스에 짐이 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인데. 하여간, 쯧.”
다몬 런크비스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그리고 죽음으로써 세 번째 삶을 노리고 있다는 이안 경의 언질은 어느 정도 신빙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몬은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 차 하루가 멀다고 제 숨을 끊어내려 했으니까.
‘사실 여부를 떠나, 포로 된 것이 사태를 돌파하고자 발버둥 치는 게 불경스럽다.’
진은 다시금 고개를 뒤로 꺾은 다음 중얼거렸다.
“곧 있으면 바리엘의 변화에 반응하여 버고스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왕당파가 득세하든 반(反)왕당파가 득세하든, 그 폭풍 한가운데 다몬을 던져둘 것이니, 무조건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하라.”
정통성을 지녔으며, 러더포드와 연관이 있고, 전쟁에서 패함과 동시에 적국에게 사로잡혀 목숨을 부지한 왕.
복잡한 다몬의 정체성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바리엘은 그 혼란을 방패 삼아 앞장세운 다음, 쉽게 버고스에 입성하면 될 일.
진의 명령에, 시아오시가 기꺼이 받들겠다는 뜻으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똑똑.
서류를 넘기려던 시아오시가 인기척이 난 문 쪽을 돌아보았다.
“마법부의 보좌관 로만드로가 알현을 요청했습니다.”
“로만드로가?”
곧 대회의에서 얼굴 볼 사람이,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진은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서둘러 들이라는 손짓에 문이 활짝 열렸고, 진은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로만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전하.”
“그래. 무슨 일인가?”
문제는 문제인데, 대회의에서 언급할 수 없는 마법부의 일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항상 그리고 언제나, 마법과 관련된 문제는 진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무리 황태자라고 한들, 마법사가 아닌 범인(凡人)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자이라에게 연락이 따로 들어왔습니다.”
“자이라? 클리포포드?”
루스웨나 출신의 마법사이자, 지금은 바리엘에 귀화하여 클리포포드 균열을 저지하고 있는 자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마법부의 그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자. 진은 어렵지 않게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균열 정기 보고서인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올라온 것 같은데.”
“아니요. 공식으로 전할 수 없어 대외비로 취급하여 올린다 덧붙여져 있습니다. 정기 보고서에는 따로 기재하지 않을 예정이라 합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직접 보심이 좋겠습니다.”
스윽.
로만드로는 꼬깃꼬깃 접혀있는 종이를 진에게 내밀었다. 그는 시종들을 뒤로 물렸고, 시아오시와 로만드로에게 가까이 앉으라 손짓했다.
-균열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10년 전, 처음 클리포포드에 내려왔을 때와 비교해보면, 균열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였습니다. 이드갈로 그 힘을 흡수하여 조절하는 것이 큰 축이었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 지진이 잦아들며 생기는 자연 현상이라 판단하는 마법사도 있었습니다.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몇몇 생기긴 했어도, 증가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한데……
사락.
진의 눈매에 근심이 드리워졌다. 문맥상 자이라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기에.
-지난 며칠, 균열이 이상합니다. 폭발적으로 마력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가 소지하고 관리하는 이드갈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균열 아래에서 무언가 일이 생겨난 것 같은데, 땅 위에 있는 저희로서는 연구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혹여 유의미한 것이라 하면 ‘3지대 균열’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지대 균열’은 북쪽의 대마물, ‘2지대’는 클리포포드를 명칭했다. 그리고 ‘3지대 균열’은 그다음, 언젠가 일어날 미래를 뜻하는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3지대는 1지대와 2지대를 직선으로 연결한 그 중간 지점이 유력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균열 아래가 이어져 있으면 더더욱 그러하고, 혹 떨어져 있다 한들 마력은 같은 힘끼리 결합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은 벽에 걸린 거대한 바리엘 전도(全圖)를 쳐다봤다.
북서쪽의 마물 지대.
그리고 동남쪽의 클리포포드 수도, 프로드호나.
진은 벌떡 일어나 그 끝과 끝을 일직선으로 이어보았다.
‘일직선에 걸치는 모든 곳이 바리엘에 속해있다. 그리고 그 직선의 중간은-’
“라자산입니다, 전하.”
로만드로가 미리 알아 왔는지, 목을 가다듬으며 일렀다.
라자산. 중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쪽에 우뚝 선 산이다. 자이라는 지금, 다음 균열이 바리엘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경고하고 있는 게다.
“…….”
진은 이마를 짚으며 잠시 침묵했다. 참으로 난감한 사안이로다. 안 그래도 마법사들이 북쪽과 남쪽으로 찢어진 상황에서, 바리엘에 균열이라니.
어디 저 먼 끝자락의 변경도 아니고, 중앙에서 멀지 않은 곳이 황폐해진다면, 바리엘의 국력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전하, 마법사를 차출하여 라자산 인근을 조사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럴 만한 인력이 없음은 로만드로 그대가 더욱 잘 알 것인데, 황궁 출입을 담당하는 자들까지 보내란 말인가?”
“하오나, 위험성을 알게 된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북쪽이나 남쪽의 마법사들을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어느 쪽이든 쉽게 철수시킬 상황이 아니었다. 북쪽은 마물의 규모가 상당하여 방어선을 구축할 필요가 분명히 있었고, 남쪽
은 클리포포드와 정치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하던 시아오시가 의견을 내놓았다.
“전하. 아무래도 남쪽보다는 북쪽 마법사들을 불러들이는 게 낫겠습니다. 아탄족은 마물을 먹는 자들. 균열 자체의 마력을 제어할 수는 없겠으나, 범람하는 마물을 막아내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회유하여 적절히 이용하심이 어떠십니까?”
“회유가 쉽지 않습니다. 그게 되었다면 헤일 대장이 북쪽으로 갈 필요도 없었지요.”
게다가 그들의 족장인 에프디람은 거시적 관점을 지닌 자였다. 당장 눈앞의 마물을 먹어 치우는 것보다, 균열을 크게 벌려 그들의 미래를 든든히 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바로 그 때문에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에서도 버고스 편에 선 것이었으니. 또 무엇보다 성정 차제가 날것에 가까워, 제국과 뜻을 합친다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아탄족은 클리포포드의 균열 역시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엘에도 그것이 일어난다 하면, 그들에겐 호재 중 호재겠지요. 대치하고 있던 헤일 대장이 바리엘로 철수한다면 에프디람이 눈치챌 가능성이 큽니다. 여간한 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북쪽 마물 지대를 관장해달라는 바리엘의 제안을, 아탄족은 단칼에 거절했다. 한정된 지역에서, 한정된 먹을거리만으로 연명하는 것은 사육되는 가축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는 이안이 있었을 때와 다를 것 없는 입장이었다.
‘…이안 경이 있었더라면-’
10년 전, 아탄족은 이안의 부름에 황궁 앞까지 왔었다. 그때 회담에 참여하였다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졌겠지.
진은 괜한 가정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안 경이 없었고, 바리엘을 이끄는 건 자신이었다. 정신을 바로 할 필요가 있었다.
“변화가 의미 있는 것인지 잠시 지켜보겠다. 자이라에게 보고서를 매일 올리라고 전하라.”
“예, 전하.”
“그리고 베릭에게 전언해야겠어. 시아.”
“준비해 놓겠습니다.”
베릭이 아탄족을 만나는 임무가 더욱 중요해졌다.
시아오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만드로가 물었다.
“베릭이는 아직 보고서가 없습니까?”
“소식이 없군. 계속 달리느라 정신없을 수도 있지.”
“어허. 그러면 다행인데, 이거, 원. 좀 걱정되네요. 전하, 송구하오나 혹시 베릭에게 연락 오면 소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황궁친위대 대장 제이럿을 통하여 보고서가 올라갔겠지만, 이번 임무는 황태자가 직접 하명한 것이었다. 하여, 베릭의 전서구는 진에게 제일 먼저 당도할 터. 진이 걱정하지 말라며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톡. 토도독. 톡.
무언가 작고 간지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무엇이지? 진이 고개를 돌리자, 웬 작고 늙은 비둘기가 힘겹게 창문을 두드리는 게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고장 난 것처럼 상태가 영 엉망이었다. 비둘기는 부리로 창문을 쪼아대더니, 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좌우로 꺾어댔다.
그러자 햇빛을 받고 반짝이는 무언가. 목덜미에 감겨있는 베릭의 마력석이었다. 진은 희미하게 웃었다.
꾸?
“…역시 베릭이다. 제 말 하면 오지.”
“허이고, 저거 상태가 왜 저래? 전서구를 구해도 꼭 저 같은 걸 구해요.”
“전하, 제가 들이겠습니다.”
시아오시가 창문을 열자, 늙은 비둘기가 뒤뚱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