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황궁 회의
-마리브 1황자 저하, 저는 데르가 브라츠 백작입니다. 급하여 길게 쓰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서자의 입적 결정을 위해 수도에서 내려왔던 행정부 소속 몰린 경이 제게 게일 2황자 저하의 의중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저하와 귀족 간의 동맹조합이 있는데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요. 저는 황궁을 위해 사는 자로서, 이것이 마리브 황자 저하께 부담되는 것을 알고, 거절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황궁으로 돌아간 몰린과 서자가 저를 음해하여 탈세 혐의를 썼습니다. 억울합니다. 브라츠가 멸문된다면, 필시 황궁에서는 이곳을 다스리기 위해 사람을 보내겠지요. 그리고 높은 확률로 브라츠를 방문한 적 있는 몰린과 그의 측근들이 지배하게 될 겁니다.
이는 마리브 저하께 분명 해가 될 것입니다. 부디 수 대째 변경에서 야만족을 막아낸 브라츠 가문을 가엽게 여겨주소서.
사락.
마리브는 서신을 읽고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안경테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지도 못 한 내용이었다. 보좌관 역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연신 바깥 기척을 주시하는 중이다. 황궁에서는 작은 숨소리조차 시끄럽게 떠도는 법인지라.
“보좌관, 자네도 읽어보게.”
서신을 건네받아 읽은 보좌관의 얼굴 역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네는 이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라 생각하는가?”
“너무 적절히 섞여 있어 가리기 어렵습니다.”
“우선, 하나씩 짚어보지. 게일이 지방 귀족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은 확실해. 명명하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모임이 있는 것도 맞아.”
중앙과 지방은 서로 견제하는 관계.
1황자는 차기 황제였기에 당연히 귀족을 누르려는 입장이었고, 2황자는 후계에서 밀려났기에 더욱 자유로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브라츠 백작이 나를 위해 거절했다는 건 믿을 수 없군. 우리가 뭐 그리 특별한 사이라고.”
“저도 그러합니다. 백작 입장이라면 게일 저하의 제안을 반기는 게 자연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결국에는 거절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게일과 거리를 두고 싶은 이유가 있다 봐야 할 거야. 탈세 혐의로 밀고가 들어왔고, 조사단이 내려갔으니 아마 그 문제 때문이라 보는 게 맞겠다.”
조용히 중얼거리며 정리하는 것이 참으로 영민했다. 앉은 자리에서, 한정된 정보와 서신만으로 멀리 떨어진 브라츠 영지의 속사정을 꿰뚫은 것이다.
“그렇다면 억울하다는 말은 기각하는 게 맞고, 브라츠가 멸문하면 그쪽 담당이었던 몰린 경이 주도하여 뒤처리하는 것도 맞다. 조사단장이 누구지?”
마리브의 질문에 보좌관이 잠시 멈칫거렸다. 황궁에서 하루에 거론되는 이름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그런 자들을 일일이 어찌 기억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을 내놓았다.
“…에리카라는 자입니다.”
“관계는?”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몰린 경의 친척 중 불법 토지 개발 건으로 고발된 자가 있었는데, 그때 무죄 증언을 해준 것이 에리카였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확인해 보겠습니다.”
“됐네. 중요한 건 아니니.”
“…하면 게일 저하께서 반역을 모의하고 있음도 신빙성이 있다는 거군요.”
몰린은 게일의 사람이 맞으니까.
보좌관의 말에 마리브가 어깨를 장난스레 으쓱거렸다. 그것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애매할 때는 미리 손을 써두는 것이 나았다.
한 수 한 수가 어지럽게 얽혀가는 황궁에서, 아주 작은 실수는 곧 밑바닥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내일, 아니지. 오늘 오전인가? 장관 총회의에 나도 참석한다 전해라.”
마리브는 안경을 쓰며 나지막이 지시했다. 오전 중으로 신하들끼리 안건을 정하고 표결하는 국무회의였다. 마리브는 오후에 황제와 함께 그 보고를 듣는 역할이었기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침에 소식 들으면 놀라서 뒤집어질 터다.
“네. 저하.”
“그리고 다시 돌아온 김에, 일 처리 좀 하지.”
“…각오하고 왔습니다.”
“고맙네.”
밤중에 출근한 보좌관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리브는 데르가의 서신을 서랍에 잘 넣어둔 다음, 지시했다.
“최근에 올라온 브라츠 영지 관련한 자료를 모두 가져오게. 특히 몰린 경이 제출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네. 저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끼이익.
천천히 닫히는 문. 마리브는 다시 보던 서류에 집중했다. 하지만 서랍 속에 넣어둔 데르가의 편지가 영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일….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리고 해가 떠올라 오전, 황궁 대회의실.
각 부처의 장관들이 하나둘씩 모여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새로운 자리가 마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오늘 누가 오시는가?”
“1황자 저하께서 참석하신다 하십니다.”
“마리브 저하께서?”
“못 들으셨습니까?”
“아아니! 왜 나는 안 알려주는가?”
“아침에 하인을 보냈습니다만.”
장관 총회의는 매일 오전마다 열리는 자리였다. 마리브가 올 수도 있는 자리지만, 황제에게 안건을 올리기 전 신하들끼리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기에 영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일인지 아시는 분 있소?”
“글쎄요. 저도 들은 게 없어서…….”
마리브와 긴밀한 관계인 자들도 의아해서 고개를 내저었다. 하물며 게일의 편으로 돌아선 자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속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게일 저하에게 연락을 넣어볼까 했지만, 회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미치겠군. 벌써부터 체하는 기분일세.”
“저도 그럽니다. 오늘 안건이 대체 뭐기에 직접 오신단 말입니까? 어차피 오후 되면 또 볼 것을.”
“그러고 보니 하루에 두 번 뵙게 생겼구먼.”
“꿈자리가 안 좋더라니…….”
“마리브 저하 드십니다.”
이리저리 들리지 않게 씹어대던 장관들이 하인의 말에 벌떡 일어서며 예를 갖췄다. 마리브 역시 고개를 꾸벅 숙이며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아침부터 얼굴 보니 반갑습니다들.”
“저하, 어쩐 일로…….”
“그러게요. 어쩐 일일까요? 하하하.”
돌발 행동을 한 것 자체가 의중이 따로 있다는 방증이었다. 돌려 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짜 속내를 보이지도 않았다. 수상은 봉을 두드리며 회의 시작을 알렸다.
땅땅땅!
“크흠. 그러면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먼저 저부터…….”
분명 뜨거운 여름날의 아침인데, 어찌 살얼음 걷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권력 다툼과 관련 없는 몇몇 부서의 장관들이 서둘러 발언을 이어나갔다. 힐끔힐끔, 다들 마리브의 눈치를 보긴 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그는 웃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한창 회의가 무르익을 때.
“아참. 그리고 어제저녁 브라츠에서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에리카 단장이 보낸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의 말에 마리브가 고개를 들었다.
“데르가 브라츠의 탈세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았으며, 저택 재산 중 일부분을 몰수했다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백작의 저항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항이요?”
“조사단 및 중앙지원군과 데르가 사병 및 영지민들간의 전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승리하여 데르가를 구금하였고, 수습 중이라 전했습니다. 다만, 백작의 직계인 부인과 아들은 추적 중입니다.”
“탈세도 모자라 병사로 저항이라니! 참수 중에서도 참수를 적용하는 게 합당합니다.”
“황제께 안건을 올리지요.”
서기들이 장관들의 말을 받아적으며 정신없이 펜을 놀렸다. 마리브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뚝- 멈췄지만.
“…한데요.”
“예. 저하. 말씀하시지요.”
“처형 대상에는 백작과 그 부인, 그리고 아들 하나가 답니까? 이안이라는 서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자는 몰린 경의 보고서로 인해 입적부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천려족과 화친을 맺으면서 이미 국경을 넘은 상태입니다.”
“물론, 엄격하게 따진다면 노예로 강등하는 게 맞겠습니다만, 들어보니 밀고장을 서자가 낸 것이라 하더군요. 정상참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사단장의 보고서에 서자 언급은 없습니까?”
“…아. 있었습니다.”
“보고서를 보여주시죠.”
마리브의 말에 법무부 장관 부하가 서류를 선별하여 앞으로 내밀었다. 마리브가 빠르게 훑어나가자, 장관이 말을 덧붙였다.
“국법에 따르면 멸문하는 성에 부합하는 자만 처형될 것입니다. 서자에게는 노예형이 맞습니다.”
“장관, 저도 장관을 신뢰합니다.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저 확인을 하려 했어요.”
몰린과 서자가 합심하여 데르가를 밀고하였다면, 서자 역시 게일의 선을 탄 것인가? 그러면 천려족과의 관계는 어찌 되는 것일까? 혹여 게일 세력에 야만족까지 끼어들면 곤란한 참인데…….
마리브는 톡톡, 테이블만 두드린 채 침묵했다.
장관들 역시 자연스레 입을 꾹 다물며 눈동자를 굴려댔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리브의 입이 열렸다.
“브라츠를 멸문하면, 그 영지 관리는 어찌할 것입니까? 탈세임이 밝혀졌으니, 브라츠에서 올라오는 조세 양이 늘어날 텐데요.”
“황궁에서 사람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변방은 안 그래도 자치권이 강하여 이웃 영지에 흡수되면 힘이 너무 커질 것입니다.”
“그렇지요. 당연히 황궁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습니다. 그간 걷지 못했던 조세도 내라 하고요.”
“하지만 상황이 이런지라, 밀린 조세는 새 영주가 세워지면 그때 기간을 정하여 내라 하는 게…….”
“행정부의 몰린 행정관이 브라츠를 전담하지 않았나요? 장관께서 그자와 의논하여 적합한 자를 선별하는 게 좋겠소.”
의견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리고 그걸 막아선 것이 마리브의 고갯짓이었다.
“저는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무엇이 그러하신지…….”
“보고서를 보아하니 전투가 꽤 격렬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영지민들까지 합류했다 하지요. 데르가의 죄와는 별개로, 중앙군이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차기 영주가 그쪽 출신이라면 영지민들이 어찌 반응하겠습니까?”
“농민들의 눈치까지 봐야 할 필요가…….”
“눈치가 아니라, 생산량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특히 브라츠는 대사막과 접경하고 있어요. 여기 앉으신 분 중, 브라츠 영지의 특성을 모르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조금 까다롭다. 척박하고, 넓으며, 사막과 접하였지만, 또 제국 쪽 방향으로는 가파른 산이 즐비하지 않나.
“그리고 천려족. 브라츠와 관계를 이어오던 자들입니다. 이곳에서 천려어를 할 줄 아는 분, 계십니까?”
“그것이, 야만족들은 공용어를 곧잘 쓴다 합니다.”
“그러면 주도권이 그쪽으로 가는 겁니다.”
단순히 ‘영주를 새로 세우자’로 의견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이거 파고들다 보니 더 복잡했다.
“그러면, 해결 방도가 무엇 있겠습니까?”
그때,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구석에 앉아있던 마법부 장관, 웨슬리였다. 2황자 게일의 숨겨진 연인이라 소문이 떠도는 여인. 유일하게 이곳에서 마리브의 시선을 받아칠 수 있는 여인.
이에 마리브는 싱긋 웃었다.
“영주 임명을 좀 미룹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