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91
제491화. 합류
“이상하지?”
“네. 이상해요.”
이드갈을 앞에 두고 헤일 대장만 노려보는 나키나. 그리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또 다른 마법사, 토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같은 내용을 중얼거렸다.
“요즘 들어 더 그래.”
“맞아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확실히 뭔가 이상해졌어요.”
“아무래도 궐련 끊으라 하는 게 좋겠지?”
“예. 궐련을… 왜요?”
“엥?”
“넹?”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만 끔뻑였다. 이런 걸 두고 동상이몽이라 하는 건가? 서로 같은 얘기를 하는 줄 알았건만, 아니었나 보다.
토미가 볼펜 뒤쪽으로 볼을 긁어대며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아니, 헤일 대장 좀 봐봐. 요즘 들어 멍하니 정신도 못 차리고. 몸이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좀 불편해 보여서.”
나키나의 턱짓에, 토미 또한 헤일 대장을 쳐다봤다. 그는 지금 이드갈 관리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궐련 한 대 물었다가 혼쭐나는 중이었다. 여느 때랑 다름없는데? 토미는 괜한 걱정이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중앙에서 나온 지 꽤 됐으니까, 지칠 만도 하죠. 우리 이렇게 오래 나와 있는 건 처음이잖아요. 제일 가까운 주점은 술에 물 타서 파니, 취하는 낙도 없을 테고.”
“그런가? 이제 봄이라서 계절 타는 것도 있겠지?”
“정 걱정되면 선배 사비 털어서 술 좀 사세요.”
“시꺼. 월급은 헤일 대장이 더 많은데 내가 왜. 그나저나, 넌 뭐 말하는 거였는데? 이드갈?”
“음. 아무래도 마력이 한 번 튀었던 것 같은데요.”
“그게 뭔 소리래?”
토미는 수기로 적어낸 보고서를 나키나에게 넘겨주었다. 구석구석 어지럽게 적혀있는 숫자들. 마력이상장치와 함께 설치된 이드갈의 변화 수치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원래 이드갈 하나가 가져가는 균열 조절 기간은 보름 내외잖아요. 근데 일주일 만에 마력을 최대치로 흡수했어요. 일괄적으로요. 마력이상장치 기록도 정상 범위 밖이고요.”
“균열 아래에서 변화가 있었다?”
“짐작하기로는요.”
2지대, 클리포포드에서도 같은 현상이 보고되었지만, 북쪽과 남쪽은 끝과 끝이었다. 게다가 황궁을 중심으로 보고서가 올라가고 공유되기 때문에, 그쪽에서 연락을 주지 않는 이상 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턱을 매만지던 나키나가 헤일을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대장!”
퍼어엉! 퍼엉!
하늘을 수놓은 작은 불꽃. 마법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놀라서 달려오는 병사 탓에 티 낼 수도 없었다.
타닥타닥!
“마법사님들! 마법사님들!”
“예예. 방금 신호 봤습니다. 이번에는 어딥니까?”
“북쪽 산 큰돌무덤 인근입니다. 수, 수가 좀 많습니다. 아주 벼르고 온 것 같아요! 아탄족 족장도 보였다 합니다.”
“죽지도 않고 살아왔네, 시벌거. 대장!”
나키나가 붉은 천으로 손목과 손가락 사이를 칭칭 감으며 헤일 대장을 불렀다. 아탄족의 습격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균열을 확장하기 위해 소란 피운다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누가 베릭 종족 아니랄까 봐. 처먹기는 더럽게 많이 처먹지. 오늘은 다 같이 가는 게 어때요?”
“그래. 아탄족 족장이 왔다고 하니 그게 낫겠어.”
“예예.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가서 꼭 두엇 죽여놓읍시다. 가만두니까 몸집만 자꾸 불어나잖아요. 이대로 뒀다가는 나중에 감당 못 해요.”
헤일은 일정 부분 동감한다는 뜻으로 궐련을 바싹 깨물었다. 두엇 죽이자, 참으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 아닌가?
지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탄족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바리엘 인근 균열이 하나 더 생긴 탓도 있겠지만, 그들을 집중하여 견제할 만한 세력이 없는 게 제일 컸다.
‘마법부?’
마법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균열을 조사하고, 확장을 막아내는 것. 아탄족을 저지하는 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전력으로 막아섰다간 의도치 않게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황궁과 밖으로 찢어지고, 다시 북쪽과 남쪽으로 찢어졌다. 아탄족과의 전투로 마법사들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이는 차마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일 터.’
“검 챙길까요? 날 짱짱하게 잘 드는 거로.”
“…아니. 단검만.”
“으아악! 또! 또또! 단검으로 누구 등 긁어주려고!?”
하여, 참으로 기이한 동거가 이어졌다. 서로 적당한 이해관계 속에서 몰아내고, 물러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탄족은 성장했고, 마법부는 정체되었지만.
헤일은 궐련에 불을 붙이며 부하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큰 무력 충돌 없이 북쪽 산에서 아탄족을 몰아내는 게 목표다.”
“대장. 놈들 선 넘는 빈도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황궁에서는 아직 답 없나요?”
팽팽하게 균형 잡히던 서로 간의 대치가 조금씩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황궁에 사안을 전달하여, 아탄족을 담당할 만한 인력을 보내달라 요청하긴 했는데, 글쎄다. 진 황태자의 성인식을 앞둔 터라 이쪽까지 신경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마법사 외 아탄족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황궁에 몇이나 있겠나? 마검사들 정도가 유일할 터. 하나 버고스와의 전쟁 소문이 떠도는 지금, 황궁친위대 인원을 쉽게 내어줄 리 없다.
“…곧 올 것이다.”
“없네, 없어.”
“됐고, 갑시다! 갔다 와서 밥이나 먹자!”
“북쪽 산 다녀오면 오늘 일정은 마무리하시죠? 주점 가서 술이나 먹읍시다. 여기는 술 없으면 시간이 너무 안 가. 쯧쯧.”
“경비대장은 장벽 관리나 잘 하고 계십시오.”
“앗, 옙옙! 다녀오십시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신호탄 쏘고.”
“걱정 마십시오!”
처억!
헤일은 수고하라는 뜻으로 경비대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경비대장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보초 서고 있던 자들이 모두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주 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다. 저들과 다를 것 없던 자들이, 신의 뜻을 받았다는 걸 실감케 하는 순간이었으니.
지이잉! 지잉!
타닥타닥!
촤아악!
마법사들이 동시에 금안을 개방하여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순간적으로 터지는 마력에 이드갈이 잠시 반짝였지만, 그뿐이다. 마법사들이 재빠르게 대지와 멀어진 덕에, 바로 일정 수준의 빛을 되찾았다.
“어허, 참. 볼 때마다 놀랍지.”
“그러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궐련이랑 술 달고 사는 한량 친구들 같은데, 하하.”
“장벽 걸어 잠그세! 혹시 모르니 인근 주민들 통행금지시키고!”
“다들 뭐라 하겠네요. 또 시작이라면서.”
경비대원들은 금빛 호박밭을 연상하게 하는 균열 지대를 힐끔거리며 장벽 위로 올라갔다.
어스름하고 자욱한 연기 사이로, 은근히 빛나는 이드갈이 장관처럼 펼쳐졌다.
촤아악!
한편, 헤일을 선두로 날아오르던 마법사들은 저 먼 북쪽 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확인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잿빛이 아니라 푸른빛을 띤 연기라는 것.
이는 아탄족의 족장, 에프디람의 마법 흔적이었다.
“대장, 저기 있습니다.”
“천천히 접근하도록 한다.”
헤일의 고갯짓에 나키나와 토미가 좌우로 찢어졌고, 마법사들 역시 그들의 뒤를 쫓아 날아갔다. 에프디람의 마력에 감응이라도 하듯, 틈틈이 벌어진 균열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오, 왔네. 제국의 마법사들.”
“오늘은 좀 빠릅니다.”
“그러게. 밥을 안 먹었나. 몸이 가볍네.”
기척을 느낀 에프디람이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하늘로 손을 뻗었다. 아무리 보아도 적이라기보다 오래된 친우를 맞이하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들끼리 붙으면 그 여파로 균열이 더욱 크게 흔들린다. 따라서 마법사들은 마력을 최소화하여 대응해야 하고, 아탄족은 제국 소속 마법사들인지라 쉽게 덤벼들지 못한다.
주기적으로 맞서지만, 서로에게 손해는 없는 관계. 이게 친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나?
“어이, 여기다!”
“여기다 같은 소리하고 있네! 썩 꺼져!”
“오랜만에 봤는데, 왜 그래?”
“며칠 전에도 왔잖아. 바리엘 국경 밖에서 지지고 볶으라니까? 왜 자꾸 여기로 기어들어 와서 사람 귀찮게 해?”
“우리 애들이 왔지, 나는 안 왔었는데? 아아.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좀 내려와 봐.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에프디람이 손짓하며 대화를 요청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반응에, 나키나와 토미가 헤일 쪽을 힐끔거렸다.
헤일은 마법사들에게 경계 태세를 지시한 뒤, 홀로 에프디람 가까이 착지했다. 마물의 진득한 피 냄새가 훅 끼쳐 오는 것이, 속이 울렁거릴 정도다. 에프디람을 포함하여 아탄족 대부분이 마른 피를 온몸에 묻힌 채였다. 어디서 마물이라도 잡아먹고 왔나 보다.
“오, 헤일 대장. 머리 깎았나?”
“용건.”
“빡빡하기는.”
치익.
에프디람은 낄낄 웃으며 궐련에 불을 붙였다. 그러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서 잠시 뜸을 들여댔다. 할 말이 있다는 게 허튼소리는 아니었나 보다.
“다른 건 아니고, 얘기 들었어?”
“무슨.”
“러더포드 돌아왔다는 거.”
“……?!”
황궁에서 전달받은 사안이 하나도 없었다. 헤일은 궐련을 쥐는 척 당황한 표정을 가렸으나, 에프디람은 기민하게 그 변화를 알아챘다.
“못 들었나 보네. 소식이 이렇게 느려서 어떡해?”
“소식인지, 소문인지는 모르는 거지.”
“아아. 뭐,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해. 아무튼, 우리 러더포드랑 접선하러 버고스 쪽으로 넘어갈 거거든? 당분간은 북쪽 지대에서 활동 안 할 예정이야.”
헤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그래서 뭐? 갈 거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지, 왜 소란을 일으켜 마법사들을 오가게 만드는 겐가?
헤일의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에프디람이 어깨를 으쓱였다.
“작별 인사 맞아. 근데, 한편으로는 경고.”
“…뭐?”
“러더포드 만나고서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이렇게 주둥이 터는 거로는 안 끝나. 그간 좋았다고, 미리 인사한다.”
티잉! 에프디람은 궐련을 튕겨 던지고서 헤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쟁의 서막을 누구보다 먼저 감지한 여인이다. 헤일은 그녀가 내민 손을 담담히 쳐다만 볼 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서운하네.”
“러더포드가 돌아왔다면-”
“응?”
에프디람은 헤일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안 들린다는 뜻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안 님도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
“아, 이안. 글쎄. 뭐, 난 잘 모르지. 러더포드 만나서 물어봐줄까?”
“됐다. 꺼져. 그리고 경고는 그쪽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없어. 그때는 균열이고 뭐고, 네놈들을 죽임으로써 다음 소란을 방지하겠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어허. 그만.”
에프디람 뒤에서 듣고 있던 아탄족이 검을 쳐들며 불쾌함을 표했다.
하지만 헤일 대장은 신경 쓰지 않고서 등을 돌렸고, 마법사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러더포드의 귀환이라. 황궁이 이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보고서를 올리는 게 좋겠다.
“대장, 왜 그래요?”
“저것들이 오늘따라 더 시끄럽네.”
“러더포드가-”
러더포드가 돌아온 것 같다고, 그리 이르려는 순간.
잿빛 하늘을 가르는 새 한 마리. 익숙한 놈이다. 황궁과 북쪽 경계를 잇는 전서구였으니. 놈은 하늘을 크게 돌아 헤일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쉬이익!
“서신이다.”
쪽지가 짧다. 헤일은 로만드로의 필체를 알아보았고, 이내 그 내용을 눈에 담았다.
-이안 장관이 베릭과 북쪽으로 가고 있으니 합류하라.
“……!”
“……!”
“대장? 왜 그래요?”
“왜왜? 황궁에서 뭐래?”
“무엄하다! 황궁 서신을 감히!”
“아니, 누가 뭐 어쨌나? 뭐라 적혔는지 궁금해서.”
에프디람이 고개를 들이밀자, 마법사들이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며 소리쳤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비로소 헤일은 깨달았다. 며칠간 계속되었던 낯선 감각과 이상 반응의 이유를.
“…복귀.”
“복귀!”
“씨발, 가자!”
“와아아아!”
촤아아악!
북쪽 장벽으로 들어오는 길은 단 하나.
헤일은 망설임 없이 하늘로 뛰어올랐고, 마법사들 역시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에프디람이 뒤통수에 대고 무어라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헤일 대장! 저기!”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 사이, 드넓은 초원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 무리가 보인다. 말 한 마리와 사람 둘. 붉은 머리칼과 금빛 머리칼이다. 이목구비가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했다.
헤일과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 고도를 낮추며 그쪽으로 내달렸다.
“아!”
촤아아악!
마법사들은 점점 대지 가까이 붙었고, 이내 언덕 비탈길을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십수 명의 마법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오자, 베릭이 기척을 알아채고 손을 흔들었다.
“어이! 어떻게 알고 마중 나왔데!?”
구르고 넘어지던 마법사들은, 완만해지는 경사에 이르러서야 천천히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기억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이안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안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고, 기쁨을 가득 담아서.
“다들, 잘 지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