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94
제494화. 아탄의 갈림길
마물을 찾아 떠도는 인생.
아탄족이 지닌 짐은 단 두 가지였다.
살과 뼈를 발라내는 검과 피를 받아둘 병.
바람이 싣고 오는 마물 냄새를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다른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려두게 된 것이다.
바리엘 북쪽 경계선에 거의 맞닿은 어딘가. 에프디람은 기지개를 쭉 켜며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밥 먹자아아!”
“일어나자마자 밥 찾으십니까? 아주 옳습니다.”
“어제 먹다 남은 고기 있지? 얼마나 남았어?”
“밤중에 애들이 조금씩 처먹어서 반절이요.”
“그럴 줄 알았다. 그만 좀 훔쳐 먹으라고 해!”
“말로 해서 듣나요. 야밤에 처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불 피울게요. 어이! 가서 나무 좀 그러모아 와라!”
부하의 외침에, 부족원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물을 먹는다는 걸 제외하면, 여느 다른 공동체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계속, 끊임없이 씹어야 하고, 어지간해서는 포만감을 못 느낀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에프디람 님. 북쪽 예상 경로입니다.”
“안 잤어?”
부족장 격인 마검사, 베노였다. 그는 대답 없이 지도를 내밀었고, 에프디람은 마른고기를 질겅거리며 찬찬히 살폈다.
“버고스에서는 마물을 수급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북쪽, 바리엘 국경 너머 완전히 벌어진 균열 지대를 들렀다 가는 게 좋겠습니다.”
“좋아. 애들한테도 그렇게 일러.”
“예, 그리고-”
스윽.
에프디람과 베노가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낯선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두 사람은 수풀 속을 가만 노려보다가, 이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에프디람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까딱, 베노는 검을 다잡은 것이다.
“망아지 새끼, 오랜만이라서 못 알아볼 뻔했다.”
“대가리 뽀글거리는 건 여전하네.”
“나 같으면 예의상 기척이라도 숨길 것 같은데.”
“우리가 예의, 뭐 그런 거 차릴 사이는 아니지 않나?”
“너 길 잃었지?”
“…아닌데.”
“근데 왜 거기서 나와?”
베릭은 우거진 나뭇가지를 헤치며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헤일이 바로 앞까지 데려다줬건만, 조금 헤매고 말았다. 베릭은 코를 쓱 닦으며, 근처 멀쩡히 나 있는 산길을 애써 무시했다.
아탄족도 외부인의 등장을 눈치챘는지, 하나둘씩 무장한 채 에프디람 뒤쪽으로 몰려들었다.
“됐고, 우선 내 소개 한다.”
“지랄. 갑자기?”
베릭은 마력석이 떨어져 나간 신분증을 보여주며 일렀다. 이안이가 하라고 한 그 첫 번째다.
‘베릭. 신분을 밝혀. 네가 황궁 소속이고, 진 황태자 전하의 명으로 아탄족을 만나러 왔다는 걸 일러주는 게 회담의 시작이다.’
처억!
“나 이런 사람이다. 봤지?”
에프디람을 포함한 아탄족 전원이 ‘어쩌라고?’라는 눈빛으로 베릭을 쳐다봤다. 딱히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영 한심하게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분증 반은 어디로 날려 먹었는데?”
“몰라도 돼. 아무튼, 바리엘 진 황태자 전하님 명 때문에 왔다. 빠갈 족장은 나랑 얘기 좀 하자.”
“…뽀글에서 빠갈로 바뀌었네. 흐음.”
농담기 짙은 중얼거림과는 달리, 에프디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것 봐라? 성인식과 즉위식을 앞둔 진 황태자가 아탄족에 사람을 보냈네? 그것도 아탄족의 피가 흐르는 황궁친위대 멍멍이를?
그녀는 바위에 걸터앉으며, 베릭에게 의아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다시피, 우린 뭐, 아무것도 없거든.”
“바라지도 않았어.”
“그래서, 위대하신 제국의 황태자 전하께서 무슨 연유로 개새끼를 보내셨나? 네가 이런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지나가던 똥개 새끼도 알 것인데.”
“겸사겸사다.”
“아하. 겸사겸사?”
주어진 임무가 더 있다는 거네?
에프디람의 눈에, 베릭은 완전히 노다지였다. 살살 캐기만 하면 황궁 정보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노다지 말이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은 다음 웃어 보였다. 이 귀엽고 싸가지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그래서, 전달할 내용은?”
“아탄족은 북쪽에서 그만 지랄하고, 마법사들 일하는데 괴롭히지 마라. 안 그러면 쓸어버린다.”
황태자의 전언치고는 굉장히 천박하다. 아마 베릭이 제멋대로 가공한 것이겠지.
뒤에서 듣고 있던 아탄족들은 발끈해서 무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살벌한 눈빛은 덤이다.
“하, 쓸어? 우리가 쓰레기라도 돼? 죽여버릴라!”
“족장, 가죽을 벗겨서 본때를 보입시다!”
“당장 그 말 취소하고 사과해라! 애송이!”
“어어, 거기 입 터는 놈들. 내가 얼굴 딱 기억했다. 얘기 끝나고 봐. 응?”
베릭이 손가락으로 제 눈과 아탄족을 번갈아 짚으며 경고했다.
점점 과열되는 분위기에, 에프디람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네?”
“듣기 좋은 말은 네가 황궁에 와서 직접 들어야지.”
“…뭔가 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마법사들 괴롭힐 의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먹고살려고 했을 뿐. 그 증거로 그쪽과 우리 쪽에서는 어떤 무력 충돌도 없었어. 그리고 당분간 바리엘 떠나있을 거거든? 그러면 황궁에서 원하는 대로 조용해질 터이니, 문제없는 거 아닌가?”
“아니. 하나 더 있다. 러더포드 찾으러 간다며?”
“마법사들한테 들었나?”
“가지 마. 버고스 말고, 바리엘에 붙어.”
에프디람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주 짤막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정보가 너무 확실한 탓이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궐련을 물었다.
“미친. 러더포드가 진짜로 있구나?”
러더포드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황궁 사자가 나타나 이런 식으로 사실 여부를 알려주다니. 세상에.
에프디람은 궐련 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베릭을 질책했다.
“내가 네 상관이었으면, 이걸로 바로 네 눈까리를 지졌어. 알아?”
“응, 까세요. 우리 상관이는 그딴 거 안 펴.”
베릭은 귀를 후비적거리며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곤 이내 떠올리는 이안의 두 번째 지시.
‘세월에 퇴색되지 않았다면, 에프디람은 영민한 자다. 대화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거나 무언가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아. 대신, 그쪽은 그만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 우리는 정보를 흘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러더포드가 버고스에 있다는 걸 알려주라고?’
‘알릴 필요도 없어.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 스스로 알게 될 터이니.’
‘엉, 근데 그걸 알아도 돼? 모르는 편이 우리 쪽으로 붙으라 하기에 유리하지 않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없어질 정보라. 그리고 아탄족에게 러더포드는 많은 의미가 있어.’
‘무슨 뜻인데?’
‘긴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단순히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지.’
따악!
딴생각하는 베릭에게, 에프디람은 집중하라며 손가락을 튕겨댔다. 방금의 대화로 마음을 완전히 굳힌 참이다.
“어이, 러더포드가 진짜 돌아왔다면 더더욱 바리엘에 있을 이유가 없다. 단 한시도.”
“왜?”
“몰라서 물어?”
첫 번째.
바리엘은 균열을 원천 봉쇄하고자 하는 입장이고, 러더포드는 균열을 활성화하려는 입장이었다. 균열의 틈에서 나는 마물이 주식인 아탄족으로서, 당연히 러더포드를 찾아가는 게 맞는 이치 아닌가?
그리고 두 번째.
이드갈은 바리엘, 정확히는 바리엘 마법사들을 견제하여 힘의 균형을 도모했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반쯤 와해된 지금, 본연의 쓰임새는 사라졌고, 현재 이드갈은 균열을 안정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러더포드의 목적이 아직도 균열 활성화에 맞춰져 있는지 확인하고, 혹 아니라면…….
‘이드갈의 원천인 러더포드를 죽일 수밖에.’
중요했다. 러더포드가 어떤 생각을 지녔으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말이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마주하여 보는 게 제일이다.
“바리엘 마물 처리반, 뭐 그런 거는 별로?”
“죽여버린다. 가축처럼 제국이 던져준 먹이나 받아먹으면서 살아가라고? 사냥과 전투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북쪽 지대를 아예 줄 수도 있어.”
“바리엘에 소속된다는 조건으로 말이지.”
“흥미 없나 보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지. 클리포포드 균열이 생성되면서 아탄의 피임을 깨달은 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알아?”
에프디람은 궐련 재를 툭툭 털어버리며 베릭을 훑었다. 특히, 옆구리에 찬 흑검을 말이다. 마물을 불러들이는 검이자, 아탄족이라면 언젠가는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검.
저것을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아탄임을 증명하는 것이거늘, 어찌 황궁이라는 우리에 갇혀 가축으로 지내는 것인가?
“균열은 곧 아탄의 힘이자 원천이다. 울타리를 치면 안전하게 먹고살 수는 있겠지. 하지만 자라날 수가 없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그래서, 결국 러더포드에 붙겠다?”
“뭐, 당장은 아니고. 바리엘이 균열 확장에 긍정적이라면 다시 생각해보지.”
“허파 뒤집어지는 소리하고 있네.”
‘아탄은 무조건적으로 러더포드를 만날 필요가 있고, 그걸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그들이 만났을 때 우리 쪽으로 상황을 끌어오는 게 중요해. 베릭, 이제부터가 진짜 핵심이다.’
베릭은 이안의 당부를 상기하며 일어났다. 볼일 다 봤다는 분위기가 역력하자, 아탄족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아무튼, 그럼 그렇게 전한다. 바리엘 까고, 버고스에 붙는다고.”
“아탄의 목적은 바리엘의 몰락이 아니라, 균열의 활성화다. 그걸 정확히 해주었으면 하는데.”
“그게 그거지, 븅. 나 분명히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서로 진짜 갈 길 가는 거야. 알아들었어?”
베릭이 어깨를 풀자, 에프디람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미친놈이 중간을 몰라. 저리 흑과 백처럼 관계를 분절하여 나누려는 태도가 영 미심쩍었다. 외교사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인데, 주체가 베릭이다 보니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 순간, 흑검을 잡고서 마력을 개방하는 베릭.
지이잉! 지잉!
“…너!”
“뭐? 이것도 명이거든.”
바리엘에 위협되는 자를 살려 보낼 수 없다는 의지의 발산이었다. 팽배하는 살기에, 에프디람과 베노 그리고 아탄족들도 동시에 검을 빼 들었다.
“멍청아! 죽고 싶어?”
“아니! 죽이고 싶어!”
촤아아악!
아무리 황궁친위대라 하더라도, 여기서 베릭이 이길 승산은 없다. 에프디람은 잔뼈 굵은 마법사였고, 베노를 비롯한 마검사들도 여럿 있었다. 아직 솜씨는 미숙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베릭의 행동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퍼어엉! 퍼엉!
‘적대를 넘어서, 그들이 바리엘을 위협했다는 정황이 필요해. 진 전하께서 전쟁 명분을 따로 세워두셨겠지만, 명분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거든. 아탄이 버고스로 들어가면, 바리엘 또한 버고스로 들어설 수 있다. 바리엘 위협 요소 추격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을 수 있으니.’
‘버고스가 거절하면?’
‘전쟁이지. 그리고 혹 받아들여져서 바리엘군이 버고스로 진입했다고 치자. 왕당파가 바리엘과 한패니까, 그쪽에서는 전력을 얻었다고 좋아할 게다. 그렇다면, 반대로 싫어할 세력은 누구일까?’
‘반대파겠지. 반(反)왕당파.’
‘맞아. 그럼 반왕당파는 누구와 한패일까.’
‘오, 러더포드?’
‘정확해. 따라서 러더포드는 아탄을 짊어지기 부담스러울 것이고, 자연스럽게 이해관계 또한 일그러지게 될 거다. 아탄족 입장에선 버고스에 들어서는 순간 힘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리되면, 다시 바리엘과 대화하고 싶은 순간이 올 터.’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베릭, 너는 황궁친위대이자 전하께서 직접 파견한 외교사절이니 바리엘을 대표한다. 그럼 아탄족과 바리엘이 적대적인 관계로 정립하려면, 넌 뭘 하면 좋을까?’
‘글쎄. 싸우는 거?’
‘맞아. 잘했어.’
이안은 베릭의 어깨를 토탁이며 웃었다.
‘아탄족에게 가 한바탕하고서 적당할 때 빠져. 마법사들이 인근에 경계선을 그어놓고 기다리고 있을 게다. 마법사들까지 개입하면 발뺌할 수 없는 분쟁이 될 테니, 아탄족은 끝까지 쫓지 못하고 몸을 돌려 바리엘을 떠날 것이다.’
‘아, 그러니까 쥐어 터지고 와라?’
‘너무 아프지는 말고.’
베릭은 이안의 지시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이런 건 내 전문이지! 그의 검이 거대한 궤를 그리며 허공을 갈랐고, 이내 커다란 폭발음이 울렸다.
촤아아악!
퍼어엉!
‘이안아! 시발, 나 좀 잘하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