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95
제495화. 이제 황궁
그리 멀지 않은 산의 정상. 구름이 발아래 있는 것처럼 높이가 아득했다.
마법사들은 적당한 평지를 골라 돗자리를 깔았고, 이내 소풍 바구니에 담아온 것들을 차곡차곡 꺼냈다. 샌드위치, 예쁜 그릇과 찻잔, 양산 등등.
마법사들이 신중하게 찻잎을 우려내는 동안, 이안은 적당한 곳에 앉아 바람을 만끽했다.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하고 아름답다. 균열로 혼란스러운 북쪽이라 한들, 바리엘은 바리엘이라는 것이겠지.
“이안 님, 따뜻한 차 드십시오. 몸은 좀 어떠십니까? 회복제가 효과 있으십니까?”
“음, 있는 것 같긴 해.”
“근데 크게 차이는 없지요? 자주 먹으면 더 그렇습니다. 샌드위치도 같이 드릴까요?”
“아니, 되었어. 이미 아침을 많이 먹어서.”
“그래도 뭐 좀 드십시오. 아니면 사탕이라도……?”
조심스럽게 권하는 마법사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제발 하나만이라도 드시어달라는 의도가 간절하여, 이안은 웃으며 사탕을 받았다. 달콤한 딸기 맛이다.
이안이 사탕을 볼 안쪽으로 굴리며 망원경을 집어 들자, 마법사들이 몸을 낮추어 방향을 일러주었다. 손끝을 따라 이안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저쪽, 유독 잎사귀가 푸른 나무 보이시지요?”
“색이 특이하여 잘 보인다.”
“그래서 정했습니다. 저길 기준으로 헤일 대장과 애들이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멀리 헤일과 마법사들이 보였다. 베릭을 아탄족의 근거지까지 데려다주고 왔나 보다. 그들은 이안을 발견했는지,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이안 역시 화답하여, 손을 작게 흔들었다.
“한데, 이안 님. 베릭이 잘 해낼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릭이라서 변수가 걱정됩니다. 당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인지라.”
“괜찮다. 아주 적합한 임무를 주었으니, 잘 해낼 것이라. 베릭은 뭐랄까, 음. 과정은 엉망이어도 임무는 어쨌거나 해내는 편이라서.”
예기치 못한 문제란 베릭이라서 생기는 게 아니라, 그저 원래부터 일어날 일들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종의 사고처럼 말이지.
그리고 혹여 그런 게 생긴다 한들, 뭐 어떤가? 수습하면 될 일. 얼마든지 가능하고, 자신 있었다. 지금껏 해 왔던 게 그런 일이었으니까.
“어? 헤일 대장이 신호 보냈습니다.”
마법사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다시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헤일이 팔을 크게 뻗으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아탄족의 근거지가 보이는 듯한데, 이쪽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콰아앙!
퍼엉!
이어서 희미하게 들리는 폭발음.
시작이로구나. 이안은 사탕을 볼 한가득 문 채 집중하여 상황을 살폈다. 대지가 흔들리고, 산이 울리는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콰지지직!
콰아앙!
“와씨, 베릭 괜찮은가?”
“소리 살벌하다, 살벌해. 몸싸움만 대충 하라니까.”
“걔 성격에 그게 되나? 일 제대로 벌인 듯.”
마법사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베릭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느아아하핫!”
촤아아악!
어디선가 호쾌하게 울리는 베릭의 웃음소리.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틀자, 주시하고 있던 곳이 아닌 엉뚱한 방향의 수풀 속에서 베릭이 뛰쳐나왔다.
“나 잡아봐라, 등신들아!”
헤일과 약속한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온 게다.
마법사들이 환장하겠다는 듯 이마를 탁, 쳐댔고 헤일은 다급하게 부하들을 이끌어 베릭 쪽으로 내달렸다.
베릭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풀떼기를 잔뜩 뒤집어쓴 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어서 그를 뒤쫓는 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 잡아아!”
“죽여, 족쳐!”
“으아아악!”
촤아아악!
베릭을 따라 수풀에서 뛰어나오는 수십 명의 전사들. 아탄족이다. 그 선두를 달리고 있던 건 에프디람의 오른팔인 베노. 그는 마력을 개방하여 회오리치듯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등을 보이며 뛰던 베릭이 기척을 감지하여 바로 몸을 틀었고, 두 사람의 검이 거칠게 맞부딪쳤다.
콰아앙!
다시금 일어나는 강한 폭발. 마법사들이 소매로 얼굴을 가렸고, 이안은 양산을 가볍게 내려 후폭풍을 막아냈다.
“빠갈대가리 부하라 그런가, 눈이 맛 갔네.”
“난 예전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구뤠? 나돈데! 우리 시발, 통하는 데가 있었네!”
채앵! 챙!
지이이잉! 퍼엉!
찰나 주고받은 합의 여파가 엄청났다. 대지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힘이지만, 눈으로 좇기에는 무리일 정도의 속도라. 이안은 그 모습을 구경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베릭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 같군.”
“이, 망아지-! 새꺄아아!”
에프디람의 포효다. 그녀의 풍성한 곱슬머리 반쪽이 불에 탄 것처럼 뜯겨져 있었다. 씩씩대는 낯에 분노가 여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베노를 막아내면서 에프디람 쪽을 힐끔거렸다.
“역시 밸런스가 안 맞지? 반대쪽도 깎아줘?”
“죽여버리겠다! 진짜로!”
“에엥? 무셔-”
지이잉! 지잉!
에프디람이 금안을 개방했다. 나뭇잎들이 마력을 따라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내며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뜻을 알아챈 베노가 검을 물린 다음 베릭에게서 떨어졌다. 찢길 시간이다.
「교열(咬裂)」.
“개새끼야아아!”
바람이 늑대 형상으로 변모하여 베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먹잇감을 단번에 찢어놓겠노라, 주둥아리를 쩌억 벌린 채 말이다.
베릭은 검을 다잡으며 날아드는 마법체에 대적할 자세를 취했다. 이내 늑대들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촤아악!
헤일이 달려들어 그 목을 베어냈다. 형상을 잃은 바람이 파훼되며 헤일의 볼에 자잘한 상처를 남겼으나, 그뿐이다. 헤일을 따라나선 마법사들도 각자 전담하여 늑대를 하나씩 처치했다.
“와, 늦다. 늦어. 졸라 뒤질 뻔.”
“이게 진짜, 장난해?”
네가 다른 길로 왔잖아! 베릭의 꿍얼거림에, 열 뻗친 마법사들이 동시에 그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그걸 황당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아탄족. 에프디람은 반쯤 잘린 머리칼을 넘기며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너희 지금 뭐 하냐?”
대체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그러자 헤일이 궐련을 물고서 작은 마력석을 꺼내 들었다. 녹음 기능이 있는 하급 마력석이다.
“아탄족이 황궁친위대를 공격하여, 인근에서 주둔하던 마법부가 지원 나온 것이다. 무기를 내리고 투항하라. 어제만 하더라도 바리엘을 떠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에프디람.”
“누가 누굴 공격해? 저 새끼가 먼저 시작했어!”
“쟤들이 바리엘 말고 버고스에 붙는다고 하니까, 예, 싹 자르는 심정으로다가 먼저 조졌습니다. 쟤들, 버고스랑 짝짜꿍해서 바리엘 말아먹는다네요. 내가 그걸 듣고 가만있으면, 예? 이게 말이나 되나?”
죄다 녹음할 테니 마력석 좀 가져와보란 듯 베릭이 손짓하자, 에프디람의 눈썹이 휘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거 설마, 아탄족을 제압하기 위해 바리엘이 판을 깐 것인가?
“에프디람 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쉿. 저 새끼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어.”
갈등을 빌미로 멸족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전투로 손실될 황궁 마법사가 아쉬울 터고, 무엇보다 인근에 도사리고 있는 균열이 문제였다.
그뿐인가? 아탄족은 발현 종족. 지금 절멸시킨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또 세상에 등장할 것이다.
‘단기 이득에 불과해. 아탄족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언젠가 다음 세대가 등장한다면 그때는 깊은 적대감 속에서 역사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거국적인 선택이 아니다. 바리엘답지 않은 처사란 말이다. 에프디람은 아탄족에게 뒤로 물러서라 손짓했고, 이어 헤일을 쳐다봤다.
“한바탕 제대로 해보자는 건가?”
“말을 제대로 안 듣는군.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하지 않아. 균열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모든 걸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뉘앙스였다.
에프디람은 눈매를 가늘게 뜨고서 부하들에게 고갯짓했다. 다들 경계하면서도 손에 든 무기를 허리춤으로 옮겨 넣었다.
“만나서 반갑지는 않았다. 빠갈대가리. 어서 버고스로 가라.”
“버고스로 가라고?”
“엉, 썩 꺼져버려.”
버고스로 가라.
에프디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이 자식들, 아탄족이 버고스로 들어가면, 적대 세력 추격이라는 명분으로 따라 들어오려는 게다.
그걸 알아챈 베노 역시 에프디람에게 속삭였다.
“버고스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확실히 매듭을 짓고 들어가는 게 깔끔할 것 같은데요.”
“매듭짓는 법은 하나다. 바리엘이나 우리, 둘 중 하나가 균열을 포기하는 것이지.”
“그러면, 아예 잘라버리고 갑시다.”
어차피 버고스로 가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면, 여기서 전투를 하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바리엘의 전력을 잘라놓고, 덤으로 균열까지 활성화시킨 다음 바리엘을 떠나는 게다.
마침 눈앞에는 마법사 셋과 마검사 하나가 다였다. 조금 버겁겠지만,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이게 단가?’
또 다른 전력은? 에프디람이 슬쩍 눈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았고, 어렵지 않게 먼 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로 보아, 장벽 마법사들이 모두 모인 게다.
“불리하다.”
“하면 어쩌지요?”
“우선 버고스로 넘어간 뒤 방법을*
찾는 수밖에. 러더포드가-”
러더포드를 입에 올리는 순간, 에프디람은 마법사들 틈에 섞여 있는 양산 하나를 발견했다.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돌아왔다면, ‘그’ 역시 돌아왔을 거라고.
압도적 재능의 소년 마법사이자 마법사들의 길잡이, 이안 히엘로.
“하.”
제대로 걸려들었다. 어쩐지 미친개가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했어. 에프디람은 베릭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네놈 주인, 참 대단하다. 응?”
“뭔진 모르겠는데, 우리 주인이는 원래 대단해.”
“다음에 만나면 네놈 머리도 똑같이 잘라주마.”
처억.
베릭은 정중하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인사했다.
에프디람은 철수를 명했고, 아탄족은 끝까지 마법사들을 주시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마법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이안 님, 아탄족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정찰 따라붙겠습니다.”
“바리엘을 나가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에프디람 눈치가 계속 이쪽을 힐끔거리던데, 이안 님을 알아챈 것 아닐까요?”
아마 그랬겠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양산이라, 누가 보아도 수상하게 여길 법했다. 이안은 양산을 접으며 괜찮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러더포드가 돌아왔으니, 내가 돌아왔음 또한 연상하는 게 당연한 이치. 하지만 나를 직접 보진 못했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중요하지.”
“어째서요?”
“확신하되, 확언할 수 없으니까.”
“음, 잘 모르겠는데요.”
“금방 알게 될 터다. 서둘러 정찰한 뒤 돌아와.”
툭툭.
이안은 마법사의 등을 두드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당장은 무리고,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새벽쯤이면 포탈 개방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력이 돌아왔으니.”
“앗, 넵넵! 후다닥 다녀오겠습니다!”
타앗!
이안의 말뜻을 알아들은 마법사들이 기뻐하며 창공으로 날아올랐고, 아탄족이 사라진 쪽 하늘길을 가로질렀다. 이안은 알맞게 식은 찻잔을 음미하며 만족스러운 탄성을 머금었다.
“음.”
“이안아아!”
이어서 쩌렁쩌렁 울리는 베릭의 목소리. 이에 마법사들이 제발 닥치라며 그의 입을 틀어막았고, 이내 멱살을 잡아 하늘로 떠올랐다.
사지를 대롱대롱 흔드는 베릭. 그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이안아! 나 잘했지?”
“그래. 많이 얻어맞았니?”
“아니이! 하다 보니까 맞는 게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내가 거의 다 쥐어 팼어.”
“잘했다.”
짧지만 확실한 칭찬에 베릭이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고생했다.”
“아닙니다. 별거 안 했는데요, 뭘.”
“맞아! 내가 다 했지! 캬캬캬!”
“자, 그러면-”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장벽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아이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황궁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