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498
제498화. 이안의 귀환
“로만드로 님.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방금 진동 말하는 게지? 나도 느꼈네.”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응? 잠깐만. 여기서 그럴 게 아니라, 나가서. 나가서 듣자고. 마법사들 모두 모이라 그래.”
황태자의 성인식이 막 물오르려던 참인데 의문의 진동이라니? 로만드로는 연회장 곳곳에 주둔해있던 마법사들이 입구로 몰려드는 걸 확인했고, 이내 그들과 대연회장을 나섰다.
주위가 한산해지자마자 마법사들은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 잇새로 중얼거렸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힘을 느낀 게다.
“방금 진동, 마력입니다.”
“마력? 무슨 마력?”
“너무 순식간이라 자세히 인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뜻밖의 말에 로만드로가 기함하며 멈칫거렸다. 기껏 해봤자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이거나, 사용인의 실수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마력이라니! 그것도 황궁 한가운데서? 10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외부 침입자를 막지 못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던, 그 악몽.
로만드로가 희게 질린 낯으로 마법사들에게 지시했다.
“우선 대연회장에 보호막을 설치하고, 나머지는 인근을 수색하도록 하지. 수상한 점이 있다면 바로 황궁에 알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보호막 담당은 자네가 해! 다들 다치지 말고, 몸 사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여기서 우리, 더 흩어질 수는 없다.”
“로만드로 님. 병사들을 동원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시아오시 경이 따로 움직일 것이라. 병사는 그쪽에 맡기자고. 성인식이 막 시작되었어. 섣부르게 소란을 일으켰다간 되레 우리 손으로 식을 망치는 꼴이지. 다들 움직임을 신중히 합세.”
로만드로의 충고에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아코렐라는 어디에 있나? 또 연구실인가?
로만드로가 이마를 짚으려는 순간,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아코렐라. 로브를 휘날리며 마법사들 앞을 휭 스쳐 지나갔다.
“대, 대장?”
“뭣들 하고 자빠져있어? 빨리 안 따라와?”
“여, 역시 대장은 대장이군요! 그동안 날로 처먹는다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넌 나중에 뒤졌다.”
“대장! 같이 가요!”
보호막을 담당하기로 한 마법사를 제외하고, 마법부 모두가 아코렐라와 같은 방향으로 내달렸다. 마력이 느껴졌던 대연회장 안쪽 정원이다.
로만드로 역시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그들의 뒤를 함께했다. 혹여 이번에도 러더포드의 소행이라면, 내 가만두지 않으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의 황궁을 온전히 지켜내리! 갑자기 아내와 딸이 사무치게 그리워졌지만, 로만드로는 이를 앙다물었다.
타닥타닥!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울창한 수풀이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있을 뿐.
마법사들은 그중에서도 유독 움직임이 수상한 수풀을 감지했다. 하여, 자세를 바짝 낮추며 그쪽으로 다가갔고, 아코렐라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크게 소리쳤다.
“헤일!”
“예?”
헤일 대장을 갑자기 왜 찾으시나요? 마법사들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동시에 수풀 안에서 손 두 개가 솟아났다. 놀란 로만드로가 아코렐라의 옷깃을 붙잡으며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느아아악!”
“아아악! 뭐, 뭔데!”
덩달아 놀란 마법사들도 뒤로 벌러덩.
아코렐라만이 절뚝거리며 다가가 그 손을 잡아당겨 줬다. 그러자 마법사들이 엉킨 채로 줄줄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모두 북쪽으로 파견 나갔던 자들이다.
촤아악!
“푸하!”
“아고고, 허리!”
“씨발, 그러니까 내가 포탈 제대로 열라 했지?”
“포탈은 제대로 열렸어! 높이 계산에 착오가 있어서 그랬지. 하여간 마력 하나 보태지 않은 놈이 쨍알쨍알, 제일 시끄러워. 안 그렇습니까?”
“보태지 말라며! 쓰잘머리 없다고!”
“누가 쓸데없대? 필요 없다고 했지!”
“다들 닥쳐! 골 울린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람? 로만드로가 눈을 크게 뜨고 주춤거리는 것도 잠시, 상스러운 말의 주인이 베릭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베릭? 베릭이 여기 있다면, 필시-
“역시 무리였나 보군.”
“아닙니다, 이안 님. 아주 조그만 실수였어요.”
“하핫, 괘, 괜찮으세요?”
“내가 밑에서 깔아줬으니 괜찮지, 등신들아! 아니었으면 이안이 다쳤어!”
“알았다고! 잘못했다고! 근데 왜 네가 지랄이야? 이안 님이 질책하는 거면 몰라도!”
이안. 이안이다. 수풀을 헤치며 천천히 모습을 보이는, 금발의 녹안 아이.
로만드로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 어찌 자랐을까를 수십, 수백 번씩 그려보곤 하였는데. 그 모든 게 단박에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변한 게 하나 없는,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였으니.
“아, 로만드로 님.”
“…이, 이안? 정말 이안이야?”
머리칼에 붙은 이파리를 떼어내며, 이안이 웃었다. 만나서 반갑다며 손까지 뻗어오는 터라, 로만드로는 저도 모르게 이안에게 뛰어들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래? 응? 모습이 어찌하여 그때와 같아? 잘 지냈고?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이안,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네!”
로만드로는 가냘픈 이안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트렸고, 이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어깨만 토닥였다. 이내 상황을 파악한 황궁의 마법사들 역시 로만드로의 뒤를 따라 달려들었다.
타앗!
“이안 님!”
“세상에, 진짜 이안 님이다!”
“저 기억하십니까?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이것들 좀 보소! 덩치 생각해! 이안이 깔려 죽겠다!”
로만드로와 마법사들이 이안을 꽁꽁 싸맨 채 꼼짝하지 않자, 베릭이 옷깃을 잡아당기며 떼어내려 했다. 그 탓에 힘이 반대로 움직이며, 이안이 풀숲으로 풀썩 넘어지고 말았지만.
사람들에게 깔려 누운 이안은 그저 희게 웃을 뿐이다.
스윽.
그런 이안의 얼굴을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는 아코렐라. 이에 이안 또한 마주 보았다. 거꾸로 뒤집혀있긴 했지만, 주황빛 눈동자에 담겨있는 놀라움과 반가움은 그대로 느껴졌다.
아코렐라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살아있으니 보는 날이 오네요.”
“잘 지냈는가, 아코렐라?”
“그럼요! 황궁에서 마력석 물고 빨면서 아주 잘 지냈습니다. 이안 님은요? 밥 잘 챙겨 먹었어요?”
“음. 그럭저럭.”
이안이 사람들 좀 치워달라 눈짓하자, 아코렐라가 발길질로 마법사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다들 일어나! 바닥에 누워서 뭣들 하는 짓이야?”
“아오, 아파요!”
“헤일, 왜 여기로 떨어졌대? 마법부로 오지.”
“그러려고 했는데,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문제?”
헤일 역시 옷깃을 탁탁 잡아당기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자잘한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마력이었다. 이안에게 힘을 거의 다 넘겨준 탓에, 포탈이 불안정했던 게다. 타기 전부터 베릭이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는지, 원.
“아니, 이안이가 만든 건 졸라 크고 또 검은색이라 기깔났는데, 얘들이 만든 건 무슨 개구멍처럼 좁고 상태가 영 이상한 거. 타기 전부터 걱정했는데. 이럴 줄 알았지! 허리 아파!”
“닥쳐. 잘 왔으면 된 거니까.”
“그리고 애초에 일부러 이리 계산한 거거든? 제국민들이 포탈이라 하면 얼마나 지긋지긋해하는지 알아? 눈에 안 띄게 하려면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네네. 변명 잘 들었고요-.”
베릭은 이안을 일으켜 세우고는 들으라는 듯 비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로만드로가 눈물을 머금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살다 보니 이걸 다시 보는 날이 오는구나! 로만드로는 베릭를 껴안으며 자랑스럽다는 듯 칭찬했다.
“으이구, 사고뭉치 같으니라고. 한 건 했어!”
“아 왜 이래요, 징그럽게. 이거 놔요.”
“이안, 진 전하는 언제 뵐 것인가? 마침 지금 대연회장에서 귀족들의 알현을 맞이하고 계셔. 바로 인사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성인식입니까?”
“응응.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다네.”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황실의 성인식은 단순히 열아홉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제껏 영향력을 펼치고 있던 귀족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앞으로 함께할 미래의 귀족 자제들과 만남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치열한 정치를, 이안은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등장하면 진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아무래도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 판단하려는 순간.
로만드로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진 전하가 줄곧 창밖만 바라보시네.”
“…….”
“늙은 비둘기가 또 날아올까, 시선을 거두지 않으심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어. 저 안에, 진 전하만 있는 줄 아시는가? 그대의 어머니인 필리아 부인도 있고, 동생인 로엘도 있다네. 클리포포드의 노아 왕자도 자리했고 말이지. 그대가 죽었다고 함부로 떠들어대던 귀족과 관료들 또한 섞여 있어.”
오래 걸렸으니 이제 더는 기다리게 하지 말아 달라는, 로만드로의 간절함이 전해졌다. 이안은 그의 손등을 토닥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인사 바로 올리도록 하지요.”
“그래, 잘 생각했어. 이쪽으로 오시게! 다들!”
로만드로가 신나서 이안을 안내했고, 복도를 걷는 와중에도 연신 그를 힐끔거렸다. 이안은 대체 어쩌다가 이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지만 헤일 대장을 비롯해 북쪽 마법사들이 별말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일이 모두 끝나고 나서 물어보면 되지!
‘허허, 참.’
한데, 새삼스레 이안이 너무 어리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에게도 열 살 남짓한 딸아이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제국을 수호하고, 황궁을 떠받쳤던 자가 이리도 어린 소년이었나?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니, 모든 게 동화처럼 느껴졌다.
이안은 연회장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로브의 매무새를 확인하였고, 이내 창문 안쪽의 공기가 생각보다 차분하다는 걸 알아챘다.
“마법사들이 자리를 비워서 그런 것입니까?”
“무엇이?”
“연회장이요. 성년식치고는 상당히 조용합니다만.”
“아아, 그게, 아무래도 마법사들 수가 적어진 탓에 운영에 무리가 있었네. 진 전하도 이해는 하셨지만, 어쩔 수 없지.”
로만드로는 이안의 로브 단추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며 그리 일렀다. 자네가 없는 동안 마법부를 제대로 이끌지 못해 미안하다는, 멋쩍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가 이안의 머리칼에 붙은 이파리를 떼는 것으로 옷매무시를 마무리하는 동안, 마법사들 또한 하나둘씩 주머니에서 붉은 천을 꺼냈다. 누군가는 팔뚝에, 누군가는 손목과 손등에 감으며 결연함을 다졌다.
“이제 마법부, 진짜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다. 헤일 대장, 복귀 축하해. 북쪽은 좀 살 만했어? 얘기 들어보니 영 별로던데.”
“그래. 별로였다. 술집 최악이었어.”
“아코렐라 대장은요? 그동안 어찌 지내셨습니까?”
“어땠을 것 같아?”
“꿀 빠신 것 같습니다.”
“딩동댕! 아하하하.”
마법사들이 다시금 몰려들자, 시종들이 당황한 낯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딘가 익숙한 금발의 녹안 소년을 보고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후우…….”
이안은 심호흡하며 천천히 마력을 개방했고, 녹안은 순식간에 금안으로 물들었다.
지이잉! 지잉!
사락, 한 줌씩 떨어지는 꽃비. 마법사들 또한 힘을 보태며 금안을 지닌 채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모두가 모였는데,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끼이익.
문이 열리고, 달콤한 음식 냄새와 풍요로운 음악 선율이 물결처럼 밀려 나왔다. 이안을 선두로, 마법사들은 그 아름다움 속을 단호하게 헤치며 들어섰다. 로브가 시원하게 휘날리고, 그들이 만든 꽃잎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연회장. 이안의 등장을, 그 자리의 모두가 홀린 것처럼 주목했다.
이안이 한쪽 무릎을 꿇자, 뒤따르던 마법사들 역시 동시에 자세를 낮췄다. 자신들이 따르는 자가 누구인지, 모두에게 보여주듯.
“저, 저자, 이안 경 아닙니까?”
“마법부 장관……!”
“누구요? 맨 앞의 아이 말입니까?”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아닌가!?”
“말도 안 됩니다. 무슨 저런 아이가…….”
“변함이 없습니다. 그때와 조금도.”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귀족과 관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서, 이안이 나지막이 인사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