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멸문의 밤
“영주 자리가 비어있으면 혼란이 가중될 것인데요.”
수상의 조심스러운 반박에 마리브가 대안을 내놓았다.
“대신 임시직으로 자문관을 파견하면 됩니다. 성과를 보면서 민심을 챙기고, 후에 영주를 세움이 마땅합니다.”
“이미 에리카 조사단장이 가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수습을 진행하고 있을 겁니다.”
웨슬리의 의견에 마리브가 웃음을 터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노골적인 무시에 웨슬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사단장은 영지민 처지에서 그들 가족을 죽인 자입니다. 게다가 고작 세 명 잡아들이는데 두 명은 파악도 못 하고 있지요.”
타악.
그는 서류를 던지며 조사단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걸 애써 숨기지 않았다. 반박할 거리 없이 모든 게 사실이었으니까. 장관들은 고개만 주억거리며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황명으로 일어난 일이니, 제국 차원에서 빠른 수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황제이신 제 아버지와 바리엘의 명예이겠지요.”
“…이견 없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구구절절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브라츠 영지는 타지와 비교하면 생산량이 월등하게 떨어졌다. 수도에서는 좀 먼가? 뒷생각이 없는 장관들은 그런 곳을 누가 다스리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럼 자문관을 파견한 후 경과를 지켜보겠습니다. 영주 임명은 그 후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지요.”
“브라츠는 거리가 머니 회의가 끝나는 즉시 서신을 먼저 내려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게끔, 전서구를 날립시다.”
“동의합니다.”
마리브는 혹여 게일이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은 합리적인 제안이었으니, 수상은 안건을 확정 짓기 위해 봉을 들었다.
웨슬리의 발언에 허공에서 멈추었지만.
“재건을 위한 자문관이라 하신다면-”
그녀는 재빨리 끼어들며 물었다.
“누구를 생각하시는지요?”
“글쎄요. 아무래도 로만드로가 제일 적임자겠지요. 그자는 얼마 전 백색 신전 근처의 지진 피해 지역에서도 활약을 보여줬으니.”
“하면 몰린 경도 함께 내려보내겠습니다.”
“몰린 경을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끈덕진 의도였다. 마리브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몰린 경은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요.”
“하지만 황궁에서 그 영지에 관해 제일 잘 아는 것은 확실하지요. 본인에게 물어, 괜찮다면 같이 파견함이 마땅합니다.”
웨슬리의 시선에 장관들이 서로를 힐끗거렸다. 이게 이렇게 길게 갈 문제인가? 돌봐야 할 국정 문제는 산더미다. 분위기를 읽은 수상은 봉을 내려치며 대답했다.
“이견 없습니다.”
땅땅땅!
“자, 다음 안건은…….”
“블라스터해로 통하는 뱃길이…….”
‘젠장. 뭐지?’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서류로 시선을 내렸으나,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진 못했다. 오전 회의까지 참석해서 저럴 정도면 분명 마리브의 의중이 따로 있을 것이다.
‘일단 자문관 혼자 보내는 건 막았다만…….’
웨슬리가 힐끔 쳐다보자, 마리브는 눈썹만 까딱거리며 웃었다. 문제는, 그가 웃으면 꼭 저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거다.
“…하면 오늘 총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소.”
“수고하셨습니다.”
“오후에 폐하와 뵙겠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마리브는 미련 없이 회의장을 나섰다.
그의 뒤로 허리를 숙이는 장관들. 혹여 차라도 해야 하나 싶어서 긴장하던 차이다. 마리브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하에게 조용히 지시했다.
“로만드로를 불러라.”
“로만드로요?”
부하는 살짝 난감해하며 되물었다. 로만드로는 백색 신전을 수습하고 겨우 중앙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깨가 잔뜩 쏟아질 신혼에, 벌써 두어 달째 아내와 생이별을 시켜놓았거늘. 다시금 마리브가 부른다는 걸 알면 사표를 낼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왜 그리 보고 서 있나?”
“아닙니다. 그, 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로만드로를 설득하여 데려오는 것도 부하의 능력. 마리브는 부하의 새까만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웨슬리 쪽을 힐끔거리며 등을 돌렸다.
* * *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가 없어도.”
“내 걱정일랑 말고 서둘러 출발하시오.”
에리카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중앙군 대장을 안심시켰다. 저택에 남아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전력 중, 에리카가 포함된 것이다.
“짐승 소굴에 두고 가는 기분입니다.”
“조사단을 해하면 중앙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이안이라는 놈이 재수는 없어도 계산은 빠릿빠릿하니, 서투르게 험한 짓을 하진 않을 겁니다.”
에리카를 포함해서 정예 다섯 명만 저택에 남기로 했다. 이름 모를 말단 백 명보다 에리카 한 명이 지키고 서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
실제 전투에서는 그리 중심되는 실력자도 아니어서, 이것이 최선인 전략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병력은 메리와 첼의 뒤를 쫓아 브라츠를 떠날 참이다.
“그럼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
“꼭, 꼭 시체라도 회수해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출발한다!”
“출발!”
병사들은 대열을 정리하며 저택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이 구경 삼아 길거리를 뛰어다녔고, 영지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중앙군의 철수 아닌 철수를 입방아에 올렸다.
“마님과 첼 도련님 찾으러 간다지? 얼마 전에 살아서 성문을 나갔다는 소문이 진짜였나 봐.”
“이 사람아, 말조심해. 반역자들 아닌가.”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다! 가서 영원히 오지 마시구려! 그대~로 중앙, 너네 집까지 가버려!”
“가버려! 다시는 오지 마!”
“썩 꺼져!”
전투에 휘말려 가족과 터를 잃은 영지민들이 돌멩이 따위를 던지며 소란을 피워댔으나, 중앙군 병사들은 언짢게 쳐다만 볼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들 사이사이에 버티고 서 있는 천려족들 때문이다.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저놈들 나가면 성문에 쇳물을 부어버리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나가나, 이 사람아.”
“밥이나 축내고, 개쌍놈의 새끼들.”
“어허, 듣겠어.”
출정하자마자, 그것도 영지를 벗어나기 전에 물의를 빚을 순 없었다. 주둔하는 동안 영지민들의 식량을 털어낸 것도 사실이긴 했다.
흥분한 자들과 달리 순수하게 기뻐하며 내달리는 자도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이다.
“와아아! 중앙군이 돌아간다!”
“엄마, 엄마! 병사들이 다 돌아간대요!”
패전한 이국의 병사들 같다. 전투로 인한 영지민들의 인식이 그러했고, 현실이 그러했다. 거리상으로 따지면 중앙보다 천려족이나 하완 왕국이 훨씬 더 가깝지 않나.
“다들 신났군.”
에리카는 저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차댔다. 그녀는 일단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문으로 돌아섰다. 하나, 그 앞을 가로막은 천려의 전사들.
“뭐, 뭐야?”
“본관은 앞으로 우리가 쓰겠소. 그대들은 인원수도 적으니, 앞으로는 천막을 이용하도록 하시오.”
“이것들이 미쳤나! 지금 누구보고!”
“불만이 있다면 카칸티르에게 고하시오.”
에리카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아직 중앙군이 영지를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척을 지겠다고?
한 시각 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드나들던 본채인데, 이게 대체 무슨 처지인지 모르겠다.
“그래, 한번 보자. 네놈 대장. 내 따져야겠다.”
“…따라오시오.”
에리카는 전사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로 들어섰다. 카칸티르와 이안이 함께 있었다.
콰앙!
“장난 까나? 엉?”
“무슨 일 있습니까? 중앙군은 떠났고요?”
“닥쳐. 네 알 바 아니니까. 본관을 네놈들이 쓰겠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네놈들이야말로 밖에서 천막 치며 사는 놈들 아니냐?”
고함 지르며 날뛰는 꼴이 가관이었다. 이안은 한숨을 삼키며 에리카를 빤히 쳐다봤다.
카칸티르도 이골이라도 난 것처럼 혀를 차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동거 아닌 동거로 얼굴 맞댄 지 오래지만,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봐. 본관을 쓰고 싶다면 식구 수를 더 줄이지 그러나. 원한다면 너 혼자 정도는 방을 내줄 수 있어. 복도 끝방에 창고가 남아있거든.”
“…이봐, 너…?”
“참고로 식구 수 줄이는 게 힘들다면 도와줄 수 있다. 검이 녹슬 것 같으니, 고깃덩이를 썰 때가 되었거든.”
노골적인 협박질에 에리카의 얼굴이 희게 변했다. 야만족은 확실히 야만족이다. 중앙군 빠져나가자마자 이리 태도가 바뀌는 것으로 보아, 절대 상종하면 안 될 자라는 걸 새삼 깨달은 터다.
이안은 둘 사이에 끼어들며 주제를 환기했다.
“어쨌거나 잘 왔습니다. 조사단이 황궁으로 보낼 보고서와 자료 따위는 묶음으로 정리해서 내놓았으니 들고 가시면 되겠고, 이제 데르가의 처형을 진행하려 하는데요.”
갑자기 훅 들어온 데르가의 처형식. 에리카는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손으로 엑스자를 그렸다.
“모든 건 절차라는 게 있어. 데르가의 처형은 메리와 첼의 신병 확보 이후에 진행될 것이다.”
“메리와 첼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는다면요? 언제고 여기서 눌러앉아 있을 겁니까?”
못을 박으려는 속셈이었다. 일주일이면 일주일, 한 달이면 한 달, 정해진 기간 안에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영지를 확실히 떠나라는 종용.
에리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말이 과하군.”
“죄송합니다. 식충이라는 표현보다는 덜 기분 나빠하실 것 같아서.”
이안의 말에 에리카가 무어라 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카칸티르가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단검을 까딱거렸다.
“일주일. 그 안에 처형식을 진행하지 않으면 데르가의 숨은 우리가 끊어놓을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의도가 담겨있었다.
하나는 황궁에 보내는 천려인들의 입장 표명이다. 조사단과 중앙군과 대적하여 그들을 몰아내긴 했으나, 이는 황명에 반하여 데르가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로 영지를 위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에리카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계속 버틴다면 데르가의 숨과 함께 그대의 숨도 끊어질 것이라는. 그게 어떤 방식이든 말이다.
“하아.”
에리카가 이를 갈며 무어라 받아칠까 고민하던 때였다. 바깥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에리카 님! 에리카 님!”
조사단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노크도 없이 응접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가, 살벌한 기운을 느끼고 움찔거렸다.
“에리카 님, 드디어 도착, 헉!”
“…도착? 무엇이?”
그와 동시에 이안과 카칸티르 역시 고개가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부하에게 집중되었다. 제일 막내인 것 같은데, 상기된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에리카는 저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서 희망이 퐁퐁 솟아나는 걸 느꼈다.
혹시, 설마, 젠장, 드디어?
“…중앙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
“……!”
“이 X발새끼들, 다 죽었다!”
“에리카 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에리카가 쾌재를 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뒤에 버티고 있던 부하들 역시 의기양양하게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호재 중의 호재요, 이안과 천려를 단번에 쫓아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카드!
영주 임명이 진행되면 공식적으로 이곳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저 천박하고 재수 없는 천민 서자와 짐승족을 단번에 눌러버리리라.
“중앙 서신! 어디, 당장 내려가마!”
“아, 네! 내려가실 필요 없습니다. 전서구로 와서.”
그 말에 한껏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파사삭 식는 것 같았다. 중앙 서신이 ‘전서구’로 왔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카칸티르와 조사단 부하만 이 영문 모를 분위기를 헤아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