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02
제502화. 장관의 자질
대회의장 옆 정원이 소란스러웠다. 정장 차림으로 바쁘게 오가는 관료들과 끝없는 궐련 연기, 그리고 속닥속닥 잇새로 중얼거리는 말소리들로 인하여.
정장 겉옷을 팔에 걸친 남자가 입구로 들어서자, 동료들이 손짓하여 인사했다.
“어서 오시게. 이쪽일세.”
“다들 빠르십니다. 모여계셨네요.”
“어찌나 놀랐는지 술이 확 깨더이다. 옷 갈아입을 것도 없이 바로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소. 아마 한 시간 내로 대회의가 시작될 것 같은데, 흐음. 그쪽들 반응은 어떻소?”
치익.
여기저기서 궐련을 태우는 불빛이 반짝거렸다. 남자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다.
“맨 처음에는 믿지도 않던데요. 사라졌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가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고 하니, 저보고 술 취했으면 어서 들어가라 하더군요.”
“나도 그 소리 들었지. 젠장.”
“행정부 사람들은 안 보이네요.”
“안 오는 게 서로에게 편하지. 회의 시간 맞춰서 나타날 것이네. 황태자 전하께서 마법부 장관을 신임하지 않으신가? 입장 따위, 간 볼 것도 없어.”
“행정부 출신인 로만드로가 마법부에 있는 것부터 그러했습니다.”
“로만드로가 마법부로 넘어간 건 이안 장관의 제의 때문이었다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좀 의아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마법부 장관을 반기시는지요? 물론 마법부가 제대로 돌아가면 바리엘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잘 굴러오지 않았습니까? 마법부를 거의 행정부 직속처럼 부리곤 하였는데, 장관이 돌아오면 그게 힘들어지지 않나요?”
새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관료였다.
내막을 알고 있는 자들은 조심스레 어둠 속에서 정원을 탐색했다. 사법부와 입법부는 느티나무 아래에 몰려 앉아 대화하는 중이었고, 문화부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서로를 기민하게 살피는 시선이 어지럽게 맞물렸다.
“사실상 후계 5순위였던 전하를 황태자 자리로 올렸던 게 마법부 장관이거든. 크흠.”
“하, 말도 안 됩니다. 풋내기 소년이던데.”
“겉모습만 보고서 방심해서는 안 돼. 황궁에 칼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자였다.”
“자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장관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행정부와 마법부를 중심으로 황궁 권력이 결집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당연히 자연스레 우리의 발언권이 없어질 것이고요.”
바리엘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발언권을 권리이자 의무라 여기고 있었다. 각자 속내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의적인 명분은 적당히 고고한 셈이다.
“안 그래도 황제 폐하 장례로 진 전하가 틈을 노리고 계시는 것 같은데, 어허.”
“그것만이 아닙니다. 장관직이 공백이었던 터라, 사실상 마법부 전체를 공공재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것이 불가해지니 운용 또한 어려울 겁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마법부의 것을 조금씩 끌어다 썼다. 어차피 마법부는 축소되었고, 결집하여 진행하는 사업도 없으니, 융통성 있게 예산을 빼 쓴다고 한들 강력하게 반발할 책임자가 없었다. 다음 예산을 배정받으면 돌려준다고 하며 떼어간 부서가 한둘이 아니었다.
“거참, 갑자기 이게 뭔 사달인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적어도 두어 달 정도는 더 필요했는데.”
인력 또한 마찬가지. 모자라면 쉽게 마법사를 갔다 썼다. 현장에서는 어지간한 인력 수십보다 훨씬 큰일을 해내는 자들이었다.
황궁 대업이라는 명목 아래, 지금껏 장관들이 협조를 요청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로만드로는 장관의 대리인이지, 장관이 아니었기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마법부를 해체할 걸 그랬습니다. 사실 장관직이 십 년 가까이 공석인 게 말이나 됩니까? 쯧, 이제 전하도 성인이시고 곧 즉위식을 앞두고 있으니, 완전히 물 건너갔지요.”
“이안 히엘로를 장관직에서 물리는 게 최선이지만, 아무래도 황태자 전하와 마법부의 신임이 굳건하니,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간을 버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좋겠어요.”
“흐음. 그래요.”
한 남자가 품에서 곱게 접힌 서류를 꺼냈다. 이안 히엘로가 사라지면서 흐지부지됐던 각종 의혹들이 일목요연하게 적힌 보고서였다. 그리고 추가로, 그에게 적용할 수 있는 ‘죄목’들도.
“좋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다른 부서는 어떨 것 같습니까?”
“법무부랑 사법부는 내부에서 파가 갈릴 것 같고, 문화부는 마법부와 이안 히엘로에 반대하는 쪽입니다. 그때, 그 사달로 인하여 황궁 보물을 분실하지 않았습니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다졌다. 이어서 황궁 직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게 보였으니,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는 시간이었다.
타닥타닥!
“마법부가 도착했습니다.”
“…왔군.”
“크흠. 갑시다!”
관료들이 궐련을 하나둘씩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저 멀리 대회의장 앞으로 몰려드는 마차를 발견했다. 마법부의 인장을 단, 오늘 회의의 주인공이다.
* * *
히이잉!
끼익.
“도착했습니다. 이안 님.”
마법사가 마차 문을 열자, 이안이 고개를 틀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모습인가?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채 정복을 차려입고, 오가는 와중에도 서류를 읽어내리던 이안.
마법사들의 낯이 몽글몽글하게 꽃피우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로만드로가 손을 탁탁 튕기며 자중하라 일렀다.
“울 기세군. 이봐. 여기 마법부 아니거든?”
“로만드로 님은 콧물까지 흘리셨으면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저 안 울거든요? 감동 조금 받아서 그런 거거든요?”
“이안, 쟤들 두고 와도 된다니까.”
로만드로가 꿍얼거리자, 이안은 마차에서 내려 서류를 옆구리에 끼웠다. 밤중의 대회의라.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긴급 소집이 내려진 게 언제였더라? 이안에게는 그리 먼 과거가 아닌데, 어쩐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대낮처럼 주위를 밝히며 어수선하게 계단을 오가는 각 부서의 직원들. 이안이 고개를 까딱이며 먼저 계단을 올랐다.
“가자.”
“예, 이안 님!”
이안을 선두로 하여, 일제히 대회의실 계단을 오르는 마법사들. 모두 손에 보고서 한 뭉치씩 들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주위가 일순 조용해지며, 사람들이 입가를 가리곤 소곤거렸다.
“…진짜 어린애로군.”
“정말 저자가 이안 히엘로 맞는답니까?”
“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서 홀로 저런지, 원.”
“마법사들도 꽤 돌아왔습니다. 아직 남쪽에서는 도착하지 않은 것 같지만요.”
“마법부가 저리 단체로 모여있는 거, 처음 봅니다.”
대회의실 안쪽은 더욱 심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던 자들이, 동시에 이안을 돌아보더니 침묵하는 게 아닌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이안은 무심한 투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을 가로막는 한 여인.
“이안 경.”
“오, 퀸타나 님.”
“세상에, 세상에!”
과거 행정부의 재정 담당이자, 현재는 장관직에 오른 퀸타나였다. 조금 변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한 모습. 그녀는 충격받았는지, 무례하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안을 위아래로 살폈다. 한참이나 생각을 곱씹던 그녀가 겨우 입을 떼었다.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앉으시지요.”
황태자가 도착했는지 시종들이 분주했다. 이안은 퀸타나에게 앉으라 손짓했고, 이내 제국방위부 장관 맥심 트웰러와 제이럿 대장이 들어섰다. 그들 역시 이안과 시선을 맞추고는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내비쳤다.
“진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처억.
모두 기립하여 황궁 예법으로 진을 맞이했다. 자연스럽게 각 부처 장관들 앞에 군림하는 진의 모습을 보자, 이안은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가 없는 사이, 진에게 정말 10년이라는 세월이 있었구나 싶어서. 모퉁이에 모르던 것을 새겨넣어 주었던 그때의 어린 황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모두 모였군. 앉으시오. 오늘 긴급 소집은 다들 들었다시피,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의 복귀를 알리기 위해서요. 단순히 오랫동안 공백이었던 장관직 문제가 아니라, 당시 이안 경과 함께 사라졌던 러더포드의 재등장에 관한 걸 논할 것이오.”
뜻밖의 사안에 회의장이 다시금 소란에 휩싸였다. 러더포드와 관련된 정보는 제국방위부에서 진에게 직접 올렸었고, 곧바로 베릭을 파견했기 때문에 그간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은 게다.
마법사들이 각 부처의 장관과 고위 관료들에게 준비한 보고서를 분배했다.
사락.
여기저기서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분주하게 들려왔다. 이안은 읽으면서 들으라는 듯, 조심스럽게 발언을 첨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입니다. 방금 나눠드린 보고서에는 공개 가능한 정보 위주로, 심연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기재한 것입니다.”
비공개 정보가 또 있다는 것이로군. 관료들은 보고서 내용을 파악한 다음, 자세를 바로 하며 진을 쳐다봤다. 이안에게 질문하고 싶다는 뜻이다.
진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며 침묵한 채 고개만 까딱였다.
“이안 경. 우선 바리엘로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나를 기억하시겠소?”
“그럼요. 하만나 부장관.”
“이제는 장관입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심연과 이쪽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 그대의 모습이 그렇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증명이라 하면 무엇을요?”
이안의 외형 자체가 그 증거이거늘, 대체 어떻게, 더? 마법사들이 동시 세모눈을 뜨며 노려보았고, 진은 말없이 서류 끝만 톡톡 두드렸다.
“그대가 이안 히엘로, 사라졌던 그 장관이 맞는지를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는 되는데,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균열 아래는 마물이 득실거리는 곳이고, 그대는 상식 밖의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지, 이해하시지요? 그대가 정녕 이안 히엘로라면.”
아르센 사태를 기억하는가? 황궁으로 숨어든 마물로 인해 바리엘이 안에서부터 무너질 뻔했다. 그대가 정녕 이안 히엘로라면, 인두겁을 뒤집어쓴 마물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라는 게다.
이안은 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러더포드 또한 시간선이 비틀렸을 것이니, 세월과 무관한 외관을 하고 있을 터입니다. 잡아내어 확인해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황궁에서는 제 어머니인 필리아 부인께서 들어와 계시지요. 동질물약을 사용하여 피가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겠습니다.”
이안은 차분하지만,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신전에 성수나 신탁의 빛을 요청해도 되겠군요. 이해하시지요? 지난 과거를 기억하고 계신다면.”
마물이라면 성수에 녹아내릴 것이고, 신탁의 빛 앞에서 그림자를 보일 수 없을 것이다. 다들 직접 보았지 않나?
“그래도 부족하다 하시면, 직접 심연에 다녀오심도 추천 드립니다. 마법부에서는 증명을 위하여 무엇이든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원한다면 보내주마. 이안의 경고성 짙은 면박에, 남자는 펜만 머쓱하게 놀려댔다. 이어서 그 옆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필리아 부인이 언급되어 말씀드립니다. 이안 히엘로 경. 그대에게 지난 과거, 의혹이 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 황실의 핏줄이라는 것이요.”
“필리아 부인을 증인으로 세워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실담물약을 쓰셔도 좋습니다. 대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제 출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신다면, 이는 제 어머니와 나아가 황실에 대한 모독으로 알고 그에 알맞게 대응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줄 터이니, 결과 나오면 입 다물고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며 질문이 쏟아졌다.
“이드갈을 만든 건 여전히 인정하시고요?”
“그렇습니다. 시일이 지나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드갈을 제조했던 것은, 이제 이안의 치부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변모했다. 실제로 지금 그가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지만.
“러더포드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명하실 것입니까?”
“마법이었습니다. 제 의지와는 무관한.”
이안이 그리 이르자, 관료들의 눈빛이 일순 반짝였다.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말이다.
“마법이요? 그렇다면 러더포드를 막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네요?”
“이안 경은 당시 마법부 장관으로 황궁을 수호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능력 부족으로 외부에서 상단 무리가 침입하는 것조차 막지 못했고, 방금 시인한 것처럼 마법으로 러더포드를 당해내지도 못했습니다. 모진 말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자질이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까?”
“당시 러더포드의 난동으로 소실된 황궁 보물만 수십 점입니다. 차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마법부의 실책이니, 이거, 책임지시는 게 맞지 않습니까?”
“당시 황궁 관련자들은 모두 경질하여 위상을 바로 세웠습니다. 이안 경. 그대가 뛰어난 마법사였다고 하나, 먼 과거의 일 아닙니까? 그때와 지금, 마법사들의 실력이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세상이 발전했으니까요.”
“혹 같다 한들 그것도 좀 문제겠네요. 마법부가 고여있다는 뜻이니. 크흠.”
“이안 경이 마법부 장관으로 복직하려면, 그에 맞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시간선이 달랐어도 너무 어리시어, 아랫사람들이 이전의 위엄을 느낄지…….”
사각사각. 이안은 표정 변화 없이 관료들의 말을 모두 기록했다. 뒤에서 마법사들이 세모눈을 떠나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았지만, 관료들은 애써 무시하며 헛기침만 해댔다.
마침내 투욱, 펜을 내려놓은 이안이 하나씩 답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어리다는 게 문제라 발언하신 분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예? 아, 저는 문화부 소속 다프 론티네입니다.”
“론티네 경께서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셨습니까?”
“…아니요. 올해로 오 년 차입니다만.”
“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진 전하께서 황궁을 어찌 이끄셨는지,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오늘 막 성인식을 맞은 진이었다. 그전까지는 미성년의 자격으로 황궁을 이끌었으니, 여기서 이안이 어리다고 지적하는 것은 곧 진에게도 통용되는 공격이었다.
이안이 싱긋 웃으며 진을 쳐다보자, 진 역시 턱을 괸 채로 덤덤히 대꾸했다.
“그러게. 오 년이나 함께했는데, 모르는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