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03
제503화. 질의응답
뜨겁던 회의장 분위기가 단박에 식어버렸다.
관록 있는 자들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아예 시선을 돌렸고, 문화부를 제외한 다른 부서 관료들은 펜대만 붙잡은 채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꼬투리를 잡은 줄 알았는데, 뱀 대가리를 잡은 것이라. 잘해도 피를 볼 것이고, 재수가 없다면 끝장이다. 진은 계속해서 냉랭한 눈빛으로 다프 론티네를 주시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듯.
“아, 저기, 그 뜻이 아닙니다. 전하.”
“그 뜻이 아니다? 송구하여 내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말뜻 하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황태자라니, 그간 내 밑에서 어찌 일하셨소? 답답하여.”
혀끝에 칼이 서려 있는 비아냥이다.
적당히 넘어가길 바랐던 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문화부 전체로 독기가 퍼질 기세라, 미안하지만, 잘라내는 게 좋겠다. 발언자의 앞에 앉아있던 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화부 장관 델마입니다. 전하, 다프의 실언을 상급 자로서 책임지고 문책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고정하여 주십시오. 고귀한 태생이신 전하와 변경 출신 마법부 장관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안 히엘로 경, 동의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모두가 어린 시절을 겪는다. 하지만 어리다고 하여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여길 수는 없는 노릇.
델마의 반문에, 이안이 웃음으로 답했다.
“물론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전하와 저를 같은 기준에 둘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저를 여러분이, 음. 정확히는 다프 론티네 경이 기준으로 삼는 ‘아이’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마법사이니까요.”
황궁 내 모든 부처 중 오로지 마법부만이, 장관 후보를 자체적으로 선출하여 올린다. 그 뜻은, 부원들의 신임과 믿음 그리고 존중이 장관 자격을 평가하는 데 최우선시된다는 것이고, 나아가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는 의미다
이안은 다프 론티네의 이름에 밑줄을 쭉 그으며 되물었다.
“어려서 문제라 하셨던 다프 론티네 경, 어떠십니까? 이제는 이해가 좀 됩니까?”
“예예, 이, 이견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문화부 델마 장관님께서 발언하셨으니, 문화부와 관련된 사안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안이 손짓하자, 뒤에 서 있던 마법사가 이안의 손에 새로운 보고서를 올려주었다. 무엇이 적혀있나, 관료들이 시선을 집중했지만, 이안은 느긋하게 종이를 착착 넘기며 짚었다.
“우선, 당시 러더포드 침입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황궁 보안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마법부 실책이 맞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당시 책임자였던 제가 분명히 인정하며, 황궁과 제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시일이 오래 지났다 한들 사건이 너무나 명백했다. 이제 막 돌아온 자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저리 머리 숙여 납작 엎드리는 게 우선이지. 몇몇 관료들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눈빛을 나누었고, 고갯짓을 까딱거리며 더욱 몰아붙이자는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안은 문화부 델마 장관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한데 말입니다. 황궁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마법부에게만 할당된 역할이 아닙니다. 직접적으로는 제국방위부와 황궁친위대가 연관되어 있고, 간접적으로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해낼 필요가 있지요. 당시, 책임자를 모두 경질하여 위상을 바로 세웠다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델마 장관이 트웰러 장관을 쳐다봤다. 갑자기 제국방위부와 황궁친위대가 들먹여지고 있지 않나?
하지만 트웰러 장관은 별반 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이는, 그가 미리 언질을 받았다는 걸 짐작게 했다.
관료들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서로 숨죽이며 속삭였다.
“지금 제국방위부와 황궁친위대도 책임자가 그대로인데, 어찌하여 마법부만 잡고 늘어지는지를 묻는 것이지요?”
“마법부 잡으려면 제국방위부와 황궁친위대도 함께 묶을 각오 하라는 것인데, 그리하면 사실상 황태자 전하께 맞선다는 뜻 아닙니까?”
“이 무슨…. 어린것이 혀 밑에 칼을 숨겼답니까?”
“쉿. 조용. 어리다는 말, 하지 마십시오.”
이안은 펜을 사각사각 놀리며 델마 장관을 힐끔거렸다. 질문했건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어찌 답하면 좋을지 궁리하고 있는 게다. 이안은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델마 장관님. 당시 러더포드가 전시실에 있는 그림을 입구 삼아 오갔다는 걸 알고 계실 것입니다. 황궁의 모든 작품은, 문화부의 소관 아닙니까?”
“말은 똑바로 하십시오! 명백한 마법의 영역이었습니다! 문화부 이전에, 마법부에서 대처해야 할 문제였다, 이 말이오!”
“그림에 심어진 마법은 그렇다고 하지만, 그 그림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 그려진 것인지, 어떠한 경로로 황궁으로 흘러들어 왔는지. 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반입 과정이 명확했다면, 러더포드의 손길이 닿아있음을 먼저 아셨을 터인데요. 마법부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문화부에도 책임이 있다 여겨집니다. 이견 있습니까?”
“그래서 전(前) 문화부 장관께서 사임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취임하신 게 델마 장관이신데, 그 뒤로도 사후 조사가 특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직무 유기가 아닙니까?”
이안이 읽어보라는 듯 보고서를 가볍게 내밀자, 델마가 가감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보십시오. 러더포드 작당은 그대와 함께 사라졌고, 동시에 수많은 보물이 소실되었습니다. 문화부는 보물을 찾기 위해 주력한 것이지, 업무를 게을리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얼마나 되찾았습니까. 그 보물.”
너 말 잘했다는 듯, 델마가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이며 으르렁거렸다.
“절반의 절반도 모자라지요. 러더포드의 침입은 논의해볼 여지가 있다 하여도, 보물 소실은 마법부의 실책이 맞습니다. 당시 러더포드와 맞선 것은 마법부밖에 없으니까요. 이를 어찌 책임지실 것입니까? 문화부에서는 이로 인한 손해가 막심합니다.”
“말은 똑바로 하십시오, 델마 장관.”
“뭐, 뭐라고요?”
이안은 델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웃었다.
“문화부의 손해가 아니라, 황실의 손해입니다. 보물의 주인은 황실이니, 그 보상을 청구한다면 황실에서 마법부에 하는 게 맞습니다. 아닙니까?”
“……!”
뜻밖의 지적에 델마가 멈칫거렸다. 사실상 맞는 말이다. 문화부는 황실의 명령에 따라 각종 귀중품을 관리하고, 발굴하는 일을 하는 부서였으니까.
“소실된 보물에 관해서는 제가 황태자 전하께 따로 해결 방안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려면, 마법부 장관으로 복직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잠깐만요.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업무는 문화부에서 주관하였습니다. 갑자기 이러면, 우리는 닭 쫓던 개나 되라 이겁니까?”
관료들이 발언권에 목숨 걸듯, 각 부서는 담당하는 업무에 목숨을 걸었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권한, 그리고 위업을 마쳤을 때 주어지는 권리. 이것들이야말로 부서의 가치이자 존재 의미였으니까.
특히 문화부에게 있어 보물 회수 건은, 절대 놓을 수 없는 중요 업무 중 하나였다. 즉 책임은 마법부가, 업무는 문화부가 지겠다는 태도다.
이안은 당최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하신다면, 하셔도 됩니다.”
이런, 개-
“이안 경!”
“지난 예산을 확인해보니, 마법부 앞으로 할당된 예산과 인력을 꽤 여러 부서에서 나누어 가지셨더군요. 차출의 개념으로 빌려 간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제대로 돌아온 게 없습니다.”
이안은 빼곡하게 쓰여있는 숫자를 읽어내렸다.
“문화부에서는 금화 3천 개를 빌려 가셨습니다. 이자만 해도 얼마인지, 계산해본 적 있으십니까?”
“그, 그건 정당한 절차를 밟았습니다. 행정부의 주관 아래 적법하게 이루어진, 부서 간 거래입니다.”
“저는 이자가 얼마인지를 물었는데요. 혹, 이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시겠지요.”
“모욕 행위입니다!”
콰앙!
델마가 책상을 내려치며 강력하게 항의하자, 이안이 보고서를 가볍게 내던졌다.
“문화부를 비롯하여 여섯 부서가 마법부 예산을 차출해갔으나, 단 한 곳도 제대로 갚은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모욕이지요. 델마 장관님.”
눈썹을 매만지던 진이 손을 까딱거리며 델마에게 자중하라 일렀다.
“각자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잡는 게 옳다. 문화부, 선택하라. 책임과 업무를 모두 질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져버릴 것인지.”
이안에게 반대한다면, 보물 회수 건을 마법부로 넘겨주는 수밖에. 사달이 일어난 직후라면 몰라도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책임을 문화부로 가져오는 게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옆의 부하들이 입을 가린 채 장관에게 속삭였다.
“장관님. 예산 차출 건을 공식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아, 분명히 저것 또한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습니다.”
“예, 저희는 여기서 빠지는 게 어떠신지요.”
델마가 입술을 짓이기며 잠시 숨을 골랐다. 타 부서들은 이안이 예산 건을 들이미는 순간부터 저들끼리 회의한답시고 이미 정신없어 보였다.
델마는 잠시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곤, 결정했다.
“…이견 없습니다. 문화부가 보물 소실에 대한 책임을 지어, 끝까지 업무를 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알겠네. 그리하지.”
이안의 신원 진위 문제와 보물 소실에 관한 책임 건이 마무리되었다. 이안은 줄을 직직 그으며 델마에게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문화부는 지금부터라도 자금 관리 신중히 하십시오. 상반기 안으로, 대금(貸金) 전액을 청구할 것이니.”
“…….”
“저희는 이안 히엘로 장관에 대한 질문 없습니다.”
“예, 마찬가지입니다. 질의응답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부서 두 곳에서 결정을 내렸는지, 재빨리 손을 들어 의견을 밝혔다. 이안은 괜찮은 판단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보고서를 덮었다.
“자, 그렇다면 남은 건 제 개인의 자질에 관한 것이겠군요. 마법으로 러더포드와 맞서지 못했다는, 그 사실 말입니다.”
희소식을 전하는 듯 미소가 유독 밝았다. 난데없는 환한 후광. 관료들은 눈만 끔뻑거렸다.
“러더포드는 마법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뭐, 뭐라고요?”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아까 본인도 마법 때문에 러더포드에게 맞서지 못했다고 하였는데요. 또 수많은 마법사가 러더포드를 추종했습니다. 그런데 범인(凡人)이라니,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와 러더포드 사이에 계약 마법이 맺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힘으로 인해 묶여있던 것이고요. 하지만 심연에서 그 고리를 잘라내었고, 이제 그와 저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제 러더포드에게 지지 않습니다.”
뒤에서 가만 듣던 헤일이 손을 들었다. 관료들의 시선이 뒤로 향하자, 이안 역시 뒤를 돌아보았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이안 님은 이전에도 지신 적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지긴 뭘 져요. 심연에다가 들이받았는데! 가서도 또 한바탕하시고.”
“너는 조용히 해, 인마.”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마법부는 러더포드에게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졌다는 기준이 대체 뭡니까? 사상자는 전투에서 언제나 생기는 법입니다. 아직 끝난 게 없는데, 어찌하여 졌다는 말로 마법부 위상을 낮추는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이것도 모욕입니다.”
마법사들도 용기 내어 한마디씩 덧붙였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곤 앞을 돌아보았다. 마법사들을 쳐다보는 관료들의 낯이 볼만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그리고, 솔직히 묻겠습니다. 대안은 있으십니까?”
마법부 없이, 신의 그림자를 등에 업은 러더포드와 맞설 대안. 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버고스, 나아가 토올룬까지 넘어설 대안 말이다.
뭐든 좋으니 답해보라며, 이안은 재차 물었다.
“있으십니까? 그 무엇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