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04
제504화. 명분을 짓다
날것 그대로의 물음은 어떠한 답도 끌어내지 못했다. 이안이, 그리고 마법부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바리엘에게 주어진 행보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는 전쟁.’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자원 소모가 발생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이 꺼져갈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관료들에게는 그리 문제 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승전 시 가져올 영광이 더욱 컸기에.
진은 적막만이 감도는 회의장을 스윽 둘러보고서 입을 떼었다.
“마법부 장관의 복직에 관하여,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군. 혹, 더 발언할 자가 있는가?”
있다면 친히 들어주겠다는 자애로운 미소였으나, 그 누구도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문화부가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여기서 잘못했다간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누군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노력했다.
“더 있을까요? 하하하, 제가 보았을 때는 동질물약을 쓰지 않아도, 이안 히엘로 경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예예, 이안 경에게는 고작 열흘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잖아요. 아, 그런데 마주하니 아주 생생하네요.”
“하하하! 그러게요. 이안 경, 다시 한번 심연에서 살아 돌아온 걸 축하합니다. 예예, 고생했어요. 아주 큰 일 하셨습니다.”
“이안 경 아니었으면, 당시 황궁에 어떤 재앙이 들이닥쳤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인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맞습니다. 검증은 거치는 것이 맞고, 치하할 것은 치하하는 것이 맞지요. 다들 이쯤에서 그만하고, 예예. 논의를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태세를 전환한 자들도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법부의 결집과 이안의 귀환을 환영하는 자들이 주고받는 너스레였다.
마법부가 단단해진다면, 전쟁만이 아니라 그 어떤 외교적 문제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리라. 바리엘의 홍복이다.
“이견 없나?”
진이 마지막으로 되묻자, 누군가 손을 슬그머니 들었다. 황태자의 고갯짓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손 든 자는 갓 부임한 것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조금은 촌스러운 행색의, 긴장한 티가 역력해 보이는 모습. 그때, 누군가 벌떡 일어나며 이름을 외쳤다.
“라시다!”
“기, 기, 기술발전부의 라, 라, 라시다입니다!”
일어난 자는 라시다의 상관인 기술발전부 장관. 라시다의 발언을 막으려고 하자, 진이 손짓하여 저지했다. 라시다는 진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이 달달 떨리고 있었는데, 저 상태로 발언을 청한 게 용하다.
“아, 아까 이, 이드갈 관련 대답에 궁금점이 이, 있어서요. 추가 질문해도 괘, 괜찮겠습니까아!”
“예, 질문하십시오.”
이안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펜대를 다시 잡았다.
“과거 러, 러더포드와 함께 이드갈을 제조했다고 하, 하셨는데 지금도 그것이 가, 가능합니까? 러, 러더포드 또한 제조 기술을 여전히 가졌는지 구,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라시다는 질문을 마치고서도 여전히 이를 딱딱 부딪치며 떨어댔고, 기술발전부 장관은 이마를 한 번 짚고서 설명을 덧붙였다.
“이안 경이 사라진 이후로, 바리엘은 물론 인근국에서 새로운 이드갈이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하여 러더포드가 그 제조의 핵심이라 파악하는 중인데, 마침 그자가 돌아왔다고 하니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하신 대로 이드갈은 현재 균열을 제어하는 중요 장치입니다. 양면의 날을 가지고 있지만, 차라리 상대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됩니다. 이안 경. 이드갈, 만들 수 있습니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질문이 바로 그것이라며, 라시다가 열광적으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이안은 펜대를 내려놓았고, 뜻밖이라는 미소를 지었다. 가능하다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을 자제할 요령이었는데,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제조 당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자세한 방법을 알 수 없어 러더포드 또한 기술을 여전히 가졌는지 확답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기억 되찾는 법을 알고 있으니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기억을 어떻게 되찾는다는 것이지요?”
“현재로서는 공개할 수 없는 범위의 내용입니다.”
“…알겠습니다.”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황태자의 반응으로 보아 이미 그에게는 보고가 올라간 것 같았으니. 기술발전부 장관은 질문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두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더 없으십니까?”
이안은 펜대를 잡은 채로 관료들을 쭉 훑어보았다. 여기저기서 헛기침이 나왔지만, 그뿐이다. 이안은 진을 쳐다봤고,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논의를 마무리하겠노라 정리했다.
“이 시간부로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의 복직을 공식으로 알리는 바다.”
“예, 전하. 뜻을 받들겠습니다.”
마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옆 사람 손을 꽉 잡으며 시선을 나눴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서로를 다독이는 눈빛에는 감격이 묻어있었다. 맞잡은 손은 더욱 단단히, 풀릴 기미 없이 단단하게 얽혀들었다.
“됐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안 님, 돌아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기다리고 있었어요.”
뒤에서 들리는 인사말에, 이안은 희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가벼운 질책 섞인 웃음이다. 마법사들은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며 다시금 정면을 쳐다봤다.
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리고 작은 문제가 있소.”
“전하, 문제라 하시면, 어떤……?”
“어떤 계시를 받았는데, 도통 풀리지 않아. 다들 머리를 맞대어 해석해봤으면 좋겠군.”
진이 손을 까딱거리자, 부서별로 서류가 놓였다.
-노을이 짙고, 검은 창이 곳곳에 솟아있는 곳. 노을이 지는 쪽으로는 낮은 언덕이 있는데, 피 묻은 꽃이 있다. 검은 갑옷 입은 사람들이 시체를 묻고 있다.
“이게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원.”
“흐음. 검은 창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요? 창문일까요, 아니면 무기류일까요?”
“검은 갑옷이 언급되었으니, 무기류인 창이라 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일전에 마력석이 섞인 흑갑옷을 뜻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흑색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버고스가 떠오르는데요. 버고스 왕당파의 무기와 갑옷이 검정색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노을 지는 쪽은 서쪽이지요. 피 묻은 꽃으로 보아, 내전 중인 버고스를 뜻하는 바로 보입니다.”
버고스 쪽이라는 의견이 우세했으나, 반대되는 의견 또한 심심치 않게 나왔다.
“노을과 언덕은 대표적인 동남쪽 지역의 특징입니다. 클리포포드와 루스웨나가 맞닿은 곳 아닐지요.”
“노을은 클리포포드가 유명하고, 언덕은 루스웨나가 대표적이지요. 저도 그쪽으로 한 표 던지겠습니다.”
“흑갑옷은 하이만 가에서 나왔던 것으로, 루스웨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고스는 척박하여 꽃 핀 들판, 뭐, 이런 거 보기 어렵지 않나요?”
“루스웨나 또한 얼마 전 왕권 다툼으로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피 묻은’ 부분이 의미하는 게 그것 같습니다.”
뚫린 입이라도 여러 개가 모이니 의견이 많구나. 진은 그만하면 되었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각 부서는 짐작 가는 곳을 정리하여 올리도록.”
“전하, 하온데 이것이 무엇에 관한 계시입니까?”
“그건 그대가 답을 찾아내면 일러주지.”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이것도 극비 중 하나인 게다.
관료들은 당최 알 수 없다는 낯으로 서류를 조심스럽게 보관했다. 이어서 남은 것은, 이안과 함께 가이아로 돌아온 러더포드 사안이다.
“현재 러더포드는 버고스에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세력을 다시 모으고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으며, 버고스에서도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필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안 그래도 내 성인식 이후 첫 위업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버고스의 내란 종식이거늘.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가?”
진 베로시온이 써 내려갈 역사서의 서두는 버고스였다. 왕당파는 이미 친바리엘로 돌아서 있었기에, 사실상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하면 무너져내릴 모래성이나 마찬가지.
다만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이런저런 연유를 끌어다 쓸 예정이었으나, 러더포드의 등장으로 인해 그 과정이 조금 쉬워질 것 같았다.
“아무튼, 바리엘에서 버고스로 공식 사절단을 한 번 파견할까 하는데,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소?”
“옳아 보입니다. 러더포드는 반왕당파였으니, 이번 기회에 왕당파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 지배력을 더욱 확대해 놓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왕당파 쪽에 힘을 실어서 내란을 종식시키면 금방 끝날 일입니다.”
“하오나 전하. 왕당파들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친바리엘 성향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들은 버고스인이고, 버고스를 위해 내전 중입니다. 바리엘이 들어서려는 걸 눈치채면 결집하여 대항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자는 것이지요.”
“사절단은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할 것이고, 그리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중 또한 내비치게 될 것입니다. 결집할 가능성을 아예 잘라버리는 게 낫다 여겨집니다. 밀어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기에는 명분이 약합니다.”
지금 바리엘이 지닌 명분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난민, 소실된 보물의 회수, 클리포포드-버고스 전쟁 이후 이행되지 않은 피해배상금 등등. 사실상 전쟁의 씨앗이라 보기보단, 외교적 문제에 머무르는 게 많았다.
그러자 한 관료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모든 전쟁의 명분은 말로 짓는 법입니다. 새삼스럽게 무슨. 허허.”
“전하의 성인식 이후, 버고스와 루스웨나가 긴장하고 있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요. 사실상 내부에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보는 게 맞습니다.”
“왕당파와 반왕당파가 결집하고 있다? 증거는요?”
“없으니까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자는 것이지요. 아, 답답한 사람 같으니.”
“답답한 사람? 지금 무어라 했소?”
콰앙!
개판이로구나. 어찌 하나의 주제마다 갈리는 파가 바뀌는 것인가.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이안을 두고 뭉쳤던 자들이, 이제는 삿대질까지 해가며 언성을 높여댔다.
“그만들 하시오.”
진이 인상을 찌푸리자, 관료들은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꾹꾹 눌러 담고서 자중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과열된 회의장.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좋겠다 판단한 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전하.”
이안이었다. 작고 흰 손을 들어 발언하고 싶은 게 있음을 나지막이 알려왔다. 여기저기서 의견을 주고받던 관료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이안에게 주목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왕당파 쪽을 파고드는 것보다 반왕당파를 바로 잡아내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됩니다.”
“이안 경. 그, 심연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어 정세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왕당파가 바로 친바리엘 쪽일세. 부담 없이 버고스로 흘러들어 가려면 그쪽 물꼬를 트는 게 정석 아닌가?”
한 관료의 반박에, 이안이 펜대를 툭툭 돌렸다.
“전쟁이 정석대로 흘러가는 것, 보셨습니까?”
“무어라? 하하. 이보시게. 전쟁을 보아도 내가 그대보다 곱절은 더 보았을 것이네.”
“어느 부서의 누구시죠?”
오, 그러십니까? 이안이 이름을 묻자, 관료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딱 보아도 노익장인 자신과 풋풋한 소년 사이, 누가 전쟁을 더 많이 겪었겠나?
이안은 답을 듣지 않은 채 설명했다.
“첫째. 반왕당파 쪽을 잡고 들어가면 러더포드를 확보하는 데 있어 효율적입니다. 운이 좋다면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도 있겠지요. 둘째. 왕당파의 의심을 원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앞서 말하였듯, 그들은 친바리엘 이전에 버고스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확실히 짚지요. 왕당파가, 친바리엘임이 분명합니까?”
“그래.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지.”
“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마땅합니다. 언젠가 내전과 전쟁이 끝나면, 왕당파는 버고스 국민이 바리엘 병사를 만났을 때 증오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할 자들입니다. 의심보단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알아. 아는데,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시작일세. 전쟁의 시작. 반왕당파는 바리엘과 접점이 없어 명분 또한 없네. 왕당파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이 말이네.”
“있습니다.”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명분이요. 반왕당파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