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05
제505화. 부작용
관료들은 어이없이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범상치 않은 자라는 건 회의 시작하면서부터 느꼈으나, 이건 조금 상식을 벗어나지 않나? 심연에서 십 년 동안 있다가 오늘 막 중앙으로 돌아온 자가, 관료들도 모르는 명분을 알고 있다니?
하지만 아이가 보여줬던 태도들로 미루어 보아, 헛소리는 아닌 것 같아 더욱 어이가 없었다.
“아탄족을 아실 것입니다.”
“북쪽에 있는 아탄이요?”
“네. 황궁친위대 베릭은 전하의 명으로 아탄족과 회담했습니다. 내용은 추측하다시피, 북쪽의 균열 확산 방지를 위하여 아탄족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것이었고요.”
오호, 내 얘기한다! 회의장 구석에 처박혀있던 베릭이 귀를 쫑긋거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베릭이 누구였더라, 헷갈리던 관료들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 알겠노라 탄성을 내질렀다.
‘그, 미친놈이로구먼.’
황궁 주방장들의 주적이자, 허구한 날 사건을 일으킨다는 붉은 머리의 마검사.
“그런데요?”
“베릭은 자신이 황궁친위대 소속인 것과 황태자 전하의 명으로 온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리엘에 남아 협조하는 대신, 버고스의 러더포드와 접선하는 것을 택했지요. 그 과정에서 전투가 있었습니다.”
“전투 흔적, 여기! 나 여기 쥐여 터진 것 봐요!”
베릭이 제 얼굴을 요리조리 돌리며 상처를 보여줬다. 그사이 많이 아물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다쳤다고 하니, 뭐.
제이럿 대장이 까불지 말라는 뜻으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경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릭은 귀만 후비적거렸지만.
“잠깐만요. 이안 경. 러더포드와의 접선이라니요?”
“기술발전부의 라시다가 저와 러더포드가 이드갈 제조 기술을 가졌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러더포드는 균열을 확장하려는 의지를 지닌 동시에, 균열을 제어할 수 있는 이드갈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마물을 먹는 아탄족 입장에서 러더포드가 정말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의 의중은 어떠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아탄족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버고스로 넘어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관료들은 사태를 바로 파악했다. 한마디로 아탄족을 쫓아 버고스로 들어가면 된다는 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들려왔고, 이안은 보고서를 완전히 덮었다. 이번 회의에서 자신이 할 일은 모두 했다는 듯.
“전투는 어떻게 마무리되었습니까?”
“아탄족이 베릭을 쫓아 들어왔으나, 마법사들이 합류하자 후퇴하여 그대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완벽합니다. 됐네요, 됐어요.”
“한데, 이안 경은 그걸 어떻게……?”
“저를 호위하여 온 것이 베릭입니다. 당시 현장에 저 또한 함께 있었습니다.”
실력인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안은 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요청했다.
“하여, 전하. 사절단을 보내시되 왕당파가 아니라 반왕당파 쪽으로 직접 보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탄족 토벌을 명분 삼아 바리엘 병사들의 입국허가를 요청하시고, 혹 거절한다면 함께 묶어서 처리하심을 권장 드립니다. 그들이 응한다면, 그대로 주둔하여 왕당파와 합동으로 공격하면 될 것입니다.”
응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지만 말이다.
“좋다. 그러도록 하지.”
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어쩐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것 같았다.
“옳으신 결정이시옵니다.”
“이견 있는가?”
진이 물었으나, 회의장은 조용했다. 별다른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안건이 더 나올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새벽 두 시. 진은 여기까지 하겠다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 부서는 오늘 회의 안건을 정리하여 오후 중 제출하도록 하라.”
“예, 전하.”
“늦게까지 고생했소. 다들 일어나시게.”
진이 먼저 일어나 자리를 떠나자, 팽팽했던 회의장 분위기가 확 풀리며 어수선해졌다. 관료들은 관료들끼리, 부하들은 부하들끼리 모여 앞으로 처리할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듯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다. 앞에 놓여있는 서류를 탁탁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 경. 돌아와서 진심으로 반갑소.”
“예, 고맙습니다.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저도 다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법부에 우호적인 자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고, 이안은 자연스레 그들의 손을 맞잡았다. 이를 주시하는 눈빛이 사방에서 쏟아졌으나, 그는 가볍게 무시하곤 회의장을 나섰다.
그러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소란.
“미쳤습니다. 정말 소문대로 마법부 장관이네요.”
“명분은 대체 또 언제, 어떻게 만들었답니까?”
“어찌하여 그 어린 나이에 제국의 실세였던 것인지, 이제 알겠어요. 허허. 참나.”
“예산 건만 어떻게 마무리하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마법부에서 언제쯤 대금 반환을 청구할까요?”
“이안 경은, 가벼운 손짓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 자요. 아마 마법부에게 가장 도움 되는 최적의 시기에 청구할 것이니, 하루빨리 준비하는 게 좋아.”
“귀찮아질 것 같은데, 하필이면 마법부랍니까. 마법부만 아니면 임명 건 같은 건 관료들 입김이 세게 작용하여 할 만할 텐데. 마법부는 저들끼리 세상이라 턱도 없습니다.”
한편, 이안을 뒤따르던 마법사들이 뒤쪽을 힐끔거렸다. 아닌 척하지만, 사방팔방에서 저들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여실해 불쾌했다.
“관료 놈들, 자꾸 꼬나봅니다. 재수 없게.”
“어허, 들리겠다. 목소리를 낮춰.”
“들으라지요. 저놈들도 보라고 꼬나보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안 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하셨어요. 진 전하께서도 만족스러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닌 척하면서 계속 웃으시더라고요.”
“어? 너도 그렇게 봤어? 나도 나도.”
“이안 님, 마법부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출궁하시겠습니까? 늦었으니, 출궁하신다면 오후에 마차를 보내겠습니다.”
“마법부로.”
당연한 걸 묻는다며, 이안이 웃는 순간이다. 스쳐 지나가는 관료들이 꽤 흥미로운 것들을 떠들어댔다.
“연회장에 모였던 귀족들은 뭐 하고 있답니까?”
“충실하게 떠들면서 놀고 있겠지요. 아, 이럴 때면 정말 부럽습니다. 누구는 새벽 두 시까지 회의하는데 누구는 술이나 퍼마시고.”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어마어마합니다. 특히 혼기 찬 여식 둔 귀족들이요. 밤새 어디 가지도 못하고, 혹여나 전하께서 돌아오실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진에게도 이제 혼담이 들어올 때가 되었다. 훌륭하게 장성한 데다, 황실의 유일한 후계자였으니, 그 옆자리가 더욱 빛나고 탐스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안은 진 시대의 황후가 누구였는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이안 님?”
마법사가 마차 문을 열어 재촉하자, 이안이 웃으며 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안은 몸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배에 손을 올렸다.
“왜 그러십니까? 불편하십니까?”
“아…….”
가볍게 물었건만, 이안은 대답 대신 배를 쥐고서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놀란 마법사들이 함께 자세를 낮추고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했다.
“이안 님. 왜, 왜 그러세요? 아프세요?”
“…부작용인 것 같다.”
“예? 부작용이요? 어떤?”
이안의 안색이 파리해지자, 마법사들 역시 핏기가 가신 것처럼 창백해졌다.
아이의 시선이 닿은 곳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아코렐라. 오가다 아는 사람과 잡담도 하고, 무엇보다 걸음이 불편했기에 이제 절반 정도 오는 중이었다. 멈칫, 그녀는 시선을 느끼며 멈추었고, 이내 마법사들이 단체로 뛰어오르며 아코렐라에게 덤벼들었다.
“기어코 그걸 이안 님께 먹였네요! 아코렐라 대장!”
“엥? 갑자기 왜? 뭐? 나 뭐?”
“이안 님 부작용 일어난 것 같다잖아요!”
“오늘 막 황궁 들어오신 분한테, 어쩜! 바보!”
“아아, 부작용. 난 또 뭐라고. 서둘러서 가자.”
아코렐라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마법사들을 돌파했고, 이내 이안 옆을 지키고 있는 로만드로에게 외쳤다.
“로만드로 님. 뭐 해요? 이안 님 어서 태워요.”
“의, 의사를 부르는 게 좋을까? 하지만 마력회복제 때문에 이러는데, 소용이 있겠어?”
“의사는 무슨. 말고, 저기 주방장이나 불러요.”
“주, 주방장은 왜?”
이안은 비틀거리며 로만드로의 팔을 붙잡았고, 희게 질린 낯으로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리고 이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어서, 어서 갑시다. 로만드로 님.”
* * *
끼익!
히이잉!
가벼운 옷차림의 진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걸음을 빠르게 했다. 이안이 회의장을 나서자마자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는 소문이 돈 탓이다. 여명이 터오는 시간이었으나, 진은 개의치 않고 황태자 궁을 박차고 나왔다.
심연에서 돌아와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인가? 남들이 세월을 지나는 동안, 저 홀로 머물러 있었으니 문제가 생긴다 한들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나?
타닥타닥!
새벽이지만, 온 황궁이 업무 처리로 인해 소란스러웠다. 마법부 역시 그러할 것이라 여겼는데, 로비는 놀라울 정도로 적막했다. 불안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인지라, 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안 경!”
벌컥!
“억, 깜짝이야.”
“엥? 누군데?”
“전하다, 전하!”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손수 열어젖힌 진. 이어서 장관실 가득 앉아있는 마법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의자와 소파 그리고 바닥 곳곳에서 서류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이동식 트롤리에 그릇을 잔뜩 쌓아 나가는 시종. 이안은 샌드위치를 든 채로 진을 쳐다봤다.
“전하?”
“이안 경. 괜찮은가? 쓰러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아, 예. 아코렐라의 회복제 때문에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허기가 심하게, 예상보다 더 진 것뿐이라서요.”
이안의 옆에 사람 키가 훌쩍 넘는 그릇이 놓여있었다. 방금 시종들이 한 번 치운 게 저 정도인 것이라.
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이건 뭐, 베릭도 아니고…….
“…정말 괜찮은 게 맞아?”
“급격한 회복 단계를 거치면서 일어나는 반응이라더군요. 사실 객관적으로 괜찮은 상태는 아니지만, 저는 문제없습니다. 전하,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이안은 제 옆에 수북이 쌓여있는 샌드위치를 슬쩍 쳐다봤다. 업무를 처리하며 먹기에는 이것만 한 게 없지 않나?
“아니. 아니, 나는 되었네.”
“미쳤다니까, 미쳤어. 이안이가 나보다 많이 먹는 거 처음 봄.”
바쁜 마법사들 사이에 태평하게 널브러져 있는 베릭. 계속 그 말만 꿍얼대고 있었는지, 이안을 비롯한 마법사들 그 누구도 대꾸 없이 서류만 들여다봤다. 바빠 죽겠는데 황궁친위대 소속인 놈이 왜 여기에 궁둥이 붙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염려를 끼친 것 같습니다. 전하. 송구합니다.”
“아니, 아닐세. 소문에 불과한 것이라면 다행이군.”
“아코렐라 말로는 아마 이렇게 먹고서 며칠을 내리 잘 수도 있다 하던데, 마침 그 전에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어째서? 보고서 올리는 것은 다른 자들이 해도 된다. 그대는 어제 막 황궁에 돌아왔어. 사실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닙니다. 할 일을 할 때 저는 마음이 편합니다. 다들, 잠시 쉬었다 하지.”
“아이고, 살았다. 감사합니다.”
“가서 잠 좀 깨고 오자. 하아암.”
“실례합니다. 으윽.”
자리를 잠깐 비켜달라는 뜻이다. 마법사들은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갔고, 베릭은 여전히 소파 등받이에 딱 붙어 뒹굴어댔다.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았으니, 나갈 필요도 없다 여긴 게다.
“베릭. 너도.”
“엥? 나는 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베릭마저 들으면 안 될 사안인가?”
진이 의아하게 묻자, 이안이 펜대를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하의 사생활과 관련된 물음이라서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르라. 괜찮다.”
“혹-”
베릭의 귀가 쫑긋거리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눈을 반짝였다. 아주 재밌는 걸 들었다는 듯이.
“마음에 두신 인연이 따로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