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506
제506화. 연애 상담
진의 표정이 묘해졌다. 혀끝에서 무언가 맴도는 것 같긴 한데, 쉽사리 입술을 떼지 못하는 모습. 이에 베릭은 아예 턱까지 괴고서 진을 빤히 쳐다봤다. 히죽거리는 것이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면, 이안은 아주 담담하면서도 느긋해 보였는데, 진의 대답이 늦어지자 샌드위치 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대화를 깊게 할 필요가 있다 여긴 것이다.
진은 당황하여 손을 들어 보였다.
“잠깐, 이안 경. 갑자기 그런 것을 왜 묻는 것인가?”
“언짢으셨다면 송구합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진이 맞이한 인연에 바리엘의 미래가 달려있으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황후가 누구인지 기억이라도 난다면 몰라.
“아니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잠시 앉으시겠습니까?”
“그래, 전하님. 여기 앉아요. 크크크.”
“베릭. 웃음이 영 볼품없구나.”
“그랬나? 재밌어서.”
베릭은 이안에게 연신 눈짓을 찡긋찡긋하고선 입을 다물었다. 하나 그 입술이 자꾸만 꼼지락거리는 것이, 질문을 주고받을 두 사람보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이안은 진에게 차를 내어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전하께서도 성인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현재 황실을 잇는 유일한 분이신지라, 이는 전하만이 황실 대를 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연을 들이시는 게 순리이옵니다.”
진은 미간을 좁힌 채 차를 입에 머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황실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건, 자신이 직면한 중대사이자 하나의 책무임을. 하지만 공적인 것과 사적인 영역이 섞여드는 지점이다 보니,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렀다.
“생각해둔 영애가 있긴 하다.”
“오오오! 누구요? 예뻐요?”
“우선, 홀린 공작의 둘째 여식.”
“우선?”
하나가 아니란 말인가?
진은 베릭의 의문 섞인 물음을 뒤로하고서 설명했다.
“홀린 공작이 버고스 내전 특수를 제대로 누렸네.”
“원래 그쪽 가문이 무기 제작으로는 알아주지요.”
“그리하여 벌어들인 자금으로 중앙 내 부지들을 공격적으로 매입하여, 현재 황궁과 맞닿은 외곽지의 절반 정도가 홀린 공작가의 소유가 되었어. 중앙 귀족 중에서는 단연코 제일가는 세력이라. 그곳의 둘째 여식이 나와 나이가 같다 들었네.”
“여러모로 적당하긴 합니다만…….”
완벽하지 않으니 진이 결정을 못 내린 게다.
넌지시 들어오는 이안의 물음에, 진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형제자매가 일곱인데, 그중 셋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황실 인원으로 함께하기에는 품격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혹 혼사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무기 사업을 가문에서 주도하여 진행하려는 의지가 뚜렷해.”
“음. 그러면 곤란한데요.”
“아니, 예쁘냐고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다비온 백작의 막내딸. 현재 황궁 고위 공직자를 여럿 배출한 명망 깊은 가문으로, 제국민의 평판도 좋은 데다 귀족들 사이에서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지. 특별한 단점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사가 진행되었을 시 특별한 이득 또한 없어.”
다비온 백작가의 인재들은 이미 진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진은 고민이라며 소파 등받이에 목을 기댔다.
“루스웨나, 하완, 심지어는 버고스에서도 물색을 하고 있긴 한데,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자는 없군. 후궁이라면 몰라도, 황후 자리는 단 하나니까.”
“그렇습니까. 한데, 전하.”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이안이 다시 질문했다.
“가문의 위세와 조건을 떠나, 전하의 마음에 든 인연은 없으십니까?”
“…그것이 중요한가?”
진이 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옆자리는 일반적인 반려의 의미와 절대 같을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는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진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안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건만.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나 타국의 왕족을 맞이하신다면, 혼사로 인한 이점이 많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새겨가실 역사는 아주 길어요. 그러니 반려와 마음 또한 맞는다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핏줄 외, 모든 것은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장의 이득보다는 미래 가치를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혹 마음에 두신 인연이 있으시다면요.”
진의 바리엘은 앞으로 그 어떤 흔들림도 없을 것이다. 이안이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그러니 혹 인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 돕고 싶었다.
“조금 놀랍군. 이안 경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거든.”
“전하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아하, 알아서 잘 데려와라?”
진의 농담에 이안이 싱긋 웃었다. 득과 실로 따져 태어난 자가 바로 자신 아니던가. 대의를 업고 있다 한들 그 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찾는 게 맞았다. 그것이 진에게도, 그리고 맞이하게 될 반려에게도, 나아가 훗날의 아이에게도 옳다.
“알겠네. 하지만 내 아직 마음으로 품은 자는 없어. 혹 생긴다면, 이안 경에게 먼저 일러주지.”
“예, 전하. 그리해 주신다면, 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부적격하다면 쳐내겠노라, 그리 들리는군.”
진은 반쯤 빈 찻잔을 천천히 흔들며 웃었다.
“아무튼, 이러나저러나 당장은 혼사 계획이 없다네. 원하는 자들의 경쟁이 아직 불붙지 않아서.”
황실의 일원이 될 기회이니, 수많은 귀족이 눈에 불을 켜고서 덤벼들 터였다. 진은 그 과정에서 최대한 황실 이득을 얻어낼 생각이었고, 막 성인식을 지난 터라 이제 그 시작이 막을 열었을 뿐이라 생각했다.
“이안 경. 원한다면 홀린과 다비온 가문의 여식을 직접 만나보아도 좋아. 모를 일이지. 그 두 사람 중 내 인연이 있을지. 마음이라는 게, 본래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 것 아니던가.”
“그것도 옳으신 말씀입니다.”
진은 문득 옛날이 떠올랐다. 온실에서 세르오가 이안에게 혼담 넣었던 날. 그때는 이런 상황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일 것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어느새 혼사 얘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게 되었구나. 그것도 이안 경보다 자신이 먼저.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술을 따랐다.
“그러고 보니, 이안 경은 모르겠군. 알레나라 영애는 지방의 하급 귀족과 연을 맺어 중앙을 떠났네. 루스웨나 왕과 내통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에리포니가 죽고 그대가 떠나면서 중앙이 혼란스러웠거든. 사실상 세르오 가문을 신경 쓸 수 없었지. 세르오 경은 아직 저택에 남아있지만.”
사실상 몰락을 앞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은 달그락거리며 얼음을 잔에 넣었다.
“한데, 이안 경. 나도 묻고 싶은 게 있네. 자네는 마음에 둔 인연이 있는가? 아니면, 인연을 맺었던 적은?”
스윽.
진은 다시 등을 돌렸다. 그러자 코를 훌쩍이는 베릭과 눈이 마주쳤다. 음? 원래대로라면 이안과 눈이 마주쳐야 하는데?
그때. 또르륵, 베릭의 눈동자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이더니 텅 빈 소파를 가리켰다.
“이안이 기절이요.”
“응?”
자세를 바로 하여 앉아있던 이안이 소파에 푹 기댄 채 미끄러져 내린 것이다.
“……?”
말도 안 돼. 방금까지 잘만 얘기하던 자가 어찌하여 갑자기?
진이 가까이 걸어가자, 놀랍게도 진짜로 곯아떨어진 이안이 보였다.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 단정히 눈만 감은 모습.
“아코렐라! 이안이 기절했다!”
콰앙!
베릭의 부름에 문이 단박에 열리더니,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소파를 가운데 두고 이리저리 구경하는 사람들. 다들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속닥거렸다.
“이안 님 드디어 잔다.”
“크흑. 이걸 얼마 만에 보는 거람.”
“북쪽에서도 안 잤어?”
“몰라. 방을 따로 썼으니까. 근데 문 두드리면 늘 잘 차려입고서 책상 앞에 앉아계시더라고. 내가 봤을 때는 별로 안 자신 것 같아.”
“오오, 입술 살짝 떨어진다.”
“쉿. 조용히 해. 깨실라. 아코렐라 대장, 이거 효과 얼마나 가요?”
“일반적으로는 이틀 안팎인데, 글쎄. 이안 님 샌드위치 먹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 우선 침대로 옮기고서 지켜보자.”
베릭이 자세를 낮춰 이안과 눈높이를 맞추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아, 근데 타이밍이 영 거시기 하다.”
“뭐가?”
“이안이 이거, 냄새가 수상해. 대답하기 곤란해서 자는 척하는 거 아닌가? 응? 이안아? 일어나 있지?”
그러고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콕!
마법사들이 기함하며 베릭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듯이, 팔과 목에 매달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댔다. 이게 감히 어디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죽을라고!
“으악, 알았어. 알았다고!”
“미친놈아, 더럽게 진짜. 야, 이안 님 코 닦아.”
“엥? 내 손이 아니라?”
“꺼져. 세균 덩어리.”
“근데 베릭. 대답은 무슨 대답?”
마법사가 담요를 옮기며 묻자, 베릭이 진을 쳐다봤다. 말해도 좋은지 허락을 받으려는 게다. 진이 술을 마저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자, 베릭은 기지개를 쭉 켜며 일렀다.
“이안이 연애해 봤는지, 전하가 그거 물었거든. 근데 딱 눈 한 번 감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렸잖아.”
그러자 투욱. 마법사의 손에서 담요가 떨어졌다. 그뿐인가? 주섬주섬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서류를 챙기던 손짓, 밖으로 나가려던 발걸음, 심지어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것처럼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타닥타닥. 들리는 것이라고는 모닥불 타는 소리뿐이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말을 더듬었다.
“이, 이, 이안 님이, 연애?”
“뭐지? 이 기분, 뭔가 되게 흐뭇하면서도 착잡하고, 응원하면서도 방해하고 싶네.”
“상상이 안 간다. 이안 님이, 우리 이안 님이…….”
“연애하시면 우리 퇴근 가능한가? 칼퇴근.”
“인정 못 해. 반대반대. 어지간해도 성에 못 차.”
“네가 뭔데 인정을 한다, 안 한다 지랄?”
따악!
아코렐라가 마법사들의 이마에 꿀밤을 놓으며 속삭였다. 부작용으로 잠들긴 했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우면 깰 수도 있다.
“다들 닥치고, 이안 님이 보던 서류나 분배해서 가져가. 하여간 생산성 없는 말만 지껄이지. 전하. 보고서는 저와 헤일이 번갈아 올리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흐윽. 마법사들은 찌릿한 고통을 삼키며 주위를 정리했고, 베릭은 이안을 안아 들고서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진이 방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아오시가 외투를 건네며 맞이했다.
“황태자 궁으로 드시겠습니까?”
“그래. 가서 일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타닥타닥!
그때, 마법부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시종 한 명.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시아오시에게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그의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왜 그러는가?”
“…다몬이 또 시작했다 합니다.”
“지치지도 않나, 그자는.”
진이 혀를 쯧 차며 무시하려는 것도 잠시. 마음을 바꿔 명령했다.
“아니다. 처소가 아니라 그쪽으로 가자.”
“다몬에게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곧 버고스에 사절단을 보낼 것인데, 왕으로서 조언할 게 있는지 내 직접 듣는 게 좋겠다.”
이안과 러더포드가 돌아온 걸 모르는지라, 다몬의 세상은 여전히 십 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었다.
진이 마차에 오르자 시아오시는 고개를 끄덕였고, 말 머리가 마탑 쪽으로 고정되었다.
히이잉!
타닥타닥!
* * *
한편, 대연회장.
시간이 시간인지라, 절반 이상의 귀족들이 자리를 떠났다. 누군가는 불콰하게 취해서, 또 누군가는 피곤함에 절어서, 그리고 또 누군가는 좋은 인연을 만들어서 말이다. 남아있는 자들 또한 대부분이 술에 취했거나, 아니면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자세를 반듯하게 하여 정면만 쳐다보고 있는 두 여인.
“카일라 홀린 영애, 차를 더 드릴까요?”
“클로이 다비온 영애. 추우시면 이것이라도.”
둘은 귀족 영식들의 권유를 웃음으로 거절했다.
그리고 서로 맞물리는 시선. 두 여인은 서로를 힐끗거린 다음, 다시금 정면만 바라보았다. 혹여나 진이 들어섰을 때, 자신이 먼저 눈 마주치기를 고대하며.